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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SENSE&SEX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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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미소년 | 일러스트·송다혜

입력 2015.03.11 14:40:00

새로 이사 간 오피스텔, 옆집 여자와 나는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매일 같이 자는데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오피스텔에 살 때였다. 후배가 축구 게임을 하러 왔는데, 문을 열자마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형, 대박! 옆집 여자 되게 예뻐요.”

그녀는 혼자 살 거였다. 나도 혼자 살았으니까. 무슨 논리가 그러냐고? 남자들은 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는 한참 그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축구 게임도 잊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층 버튼을 안 누르는 거예요. 그래서 한번 쳐다봤는데, 키도 크고, 몸매도 괜찮고, 얼굴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얼굴이 ‘볼매’예요. 점점 더 예뻐 보이는 거 있죠?”

옆집 여자는 1층에서 5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볼매’가 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집 여자를 상상했다. 흐뭇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런 여자와 살다니. 음, 흐흐.



“그리고 형, 나이가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서른두세 살 정도? 형이랑 비슷하거나 한두 살 어릴 것 같아요.”

괜찮았다. 어차피 옆집 여자니까. 사귈 것도 아니고, 데리고 살 것도 아니고, 그냥 옆집 여자니까.

“형, 제가 떡이라도 사가지고 옆집에 갔다 올까요?”

“왜?”

“형이 이사 왔으니까 명분이 있잖아요. 얼굴도 보고 인사도 하고. 떡 돌려야죠.”

“근데 그걸 왜 네가 갖고 가냐고?”

그때부터 옆집 여자랑 살게 됐다. 물론 벽을 사이에 두고. 그런데 정말 함께 사는 것 같았다. 그녀와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벽이 얇았다. 부실 공사였을 거다. 그러나 소음은 없었다. 다 듣기 좋은 소리였다. 우선 나는 그녀의 취향을 알게 됐다. 그녀는 밤마다 예능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보았다. ‘무한도전’을 봤다가 ‘라디오스타’를 봤다가 ‘1박 2일’도 봤다가…. 그녀는 특히 정준하 목소리가 크게 들릴 때마다 깔깔 웃었다. 정준하가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는 안 들렸지만 정준하 목소리라는 걸 알아챌 수는 있었다. 국정원 직원이나 스파이처럼 주도면밀하게 도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들렸다. 좋아하는 여자라 관심이 가서 그랬나? 귀가 6백만 달러의 사나이가 됐다. 풋. 흐흐. 이건 딴소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소리는 콘센트를 넘어 들어왔다. 콘센트가 벽을 뚫고 구멍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건 또 딴소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야릇했다. 콘센트, 뚫고, 로맨틱. 그리고 그녀는 정말 ‘깔깔’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하며 웃었다. 나중에 만나면 물어봐야지, 왜 그렇게 웃는지, 속으로 말했다.

아무튼 밤마다 그녀는 아주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 사이에 남자들 목소리가 섞여 있었지만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질투가 안 느껴졌다. 그녀가 복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밟는 소리를 내면 새벽 2시였다. 그녀는 늘 그때 잤다.

어느 날 밤엔 그녀가 통화하는 소리까지 들렸다. 내용까지 들리진 않았는데(벽에 귀를 대고 들어볼까 생각했는데, 내가 대통령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가 너무 맘대로 상상한 건가?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가 결혼한다고 말한 거 같다. 아, 적고 나니까 나, 진짜 스토커 같네. 그런데 이런 게 스토커지 뭐, 아닐 건 또 뭐, 있나. 그녀는 약간 과장된 목소리로 축하해, 라고 서너 번 말했다. 결혼식엔 안 갈 것 같았다. 아무튼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들린다는 건 그녀한테도 들린다는 거? 오!

혼자 살기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밤에 ‘야동’을 볼 때도 볼륨을 낮췄다. 습관이었다. 거실에 있는 엄마가 들을까봐 생긴. 하지만 더 이상 거실도 없고, 엄마도 없다. 그래도 볼륨을 줄이지 않으면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수줍음 많은 청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 방 안의 소리가 다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용기가 생겼다. 무슨 용기냐고? 볼륨을 높이고 ‘야동’을 볼 용기지. 나 또라인가? 아닌가? 이런 게 또라이지. 나는 볼륨을 높였다. 옆집 여자뿐 아니라 윗집, 아랫집, 다른 옆집까지 들을 수도 있는데, 볼륨을 높였다. 다른 집이야 알게 뭔가. 옆집 사는 여자가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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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을 볼 때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녀가 나의 욕망을 눈치챌까? 채면 좋겠는데, 챈다고 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문밖을 나서면 옆집 대문 앞에 쓰레기봉투가 놓여 있었다. 쓰레기봉투가 누드 톤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뭘 먹고, 뭘 쓰고, 뭘 버렸는지 다 보였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그녀가 쓰레기봉투에 플라스틱 생수통을 버린다는 거였다. 제대로 구기지도 않은 채.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분리수거하러 가는 것도 귀찮다. 양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아, 저 쓰레기봉투 안에 내가 마시고 처박아놓은 하이네켄 캔도 함께 넣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면서 쓰레기봉투를 그녀 대신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피스텔 뒤쪽 쓰레기함에 가져다 놓았다. 누가 봐도 내 쓰레기였다. 내가 쓰레기가 아니라, 내 쓰레기.

그런데 그녀와 나는 얇은 벽 하나를 두고 매일 같이 자는데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외모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닌데, 라고 적기엔, 좋아하는 다른 이유가 없었던 것 같긴 한데, 아무튼… 봐야, 이 마음을 더 키워나갈 것 아닌가? ‘야동’ 보는 것까지 고백한 사인데.

후배들이 또 축구 게임을 하러 왔을 때 그중 한 명이 말했다. 그녀를 최초 발견한 후배였다.

“형, 잤어요, 안 잤어요?”

미친놈. 무슨 뇌로 저따위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는 되지만.

“얼굴도 못 봤어. 지금도 바로 건너편에 있는데.”

“그럼 지금 여기로 부르죠.”

나와 기타 등등은 놀란 표정으로 그 녀석을 바라보았다.

“형, 지금 밤 11시란 말이에요. 토요일 밤에 집에 혼자 있으면 안 심심하겠어요? 우리가 떠들면 오게 돼 있어요.”

그래서 우린 떠들었다. 축구 게임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발로 벽을 탁탁, 쳤다. 콘센트에 대고 노래도 불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남자들은 떠드는 게 정말 쉽다. 그렇게 놀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설마? 설마? 후배가 현관으로 달려가서 굳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여자였다. 키가 크고, 몸매도 괜찮고, 얼굴도 나쁘지 않은 여자였다. 계속 보고 있으니까 더 예뻐 보였다. ‘볼매’였다.

“옆집인데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

그녀가 평소에 내게 들려주던 목소리로 말했다. 문을 연 후배뿐만 아니라, 방 안 구석에 앉아 있던 나와 기타 등등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에!”

그녀가 돌아가고 문을 닫자마자 다들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대박!”

밤마다 ‘야동’ 본 남자가 나라는 걸 그녀는 알까?

우리는 전부 소름이 끼쳤다. 정말, 옆집 여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오다니! 그리고 정말 예뻤다. 나이는 좀 있는 것 같았지만,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옆집 누나가 나오는 ‘야동’을 봐왔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렇게 ‘같이’ 살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본 것이다. 그녀는 알까? 쓰레기봉투를 대신 버리고 간 사람이 나라는 거. 화요일과 목요일 밤마다 야동을 본 남자가 나라는 걸, 이 모든 이야기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그러나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녀와 나와 아까 문을 연 후배 사이에 ‘막장 드라마’까지는 아니지만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막장 드라마는 너무 막장이라 현실에서 따라갈 수가 없다. 아무튼 ‘우리’는 정말 살을 맞대고 함께 자게 되는데….

To bo continued.

미소년

작업 본능과 심연을 알 수 없는 예민한 감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남성들의 통속화된 성적 비열과 환상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

여성동아 2015년 3월 6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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