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두경아 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4.10.16 17:55:00
9월 초 리움 개관 10주년 관련 행사에 홍라희 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한 번도 공식석상에 참석하지 않던 그의 이번 외출에서 리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읽힌다. 홍라희 관장 외에도 재계에는 아트 경영 일선에 나선 안주인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대와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닌다.
“사장님, 제가 드디어 요즘 가장 핫하다는 디자이너 다니엘 피트와 미팅 약속을 잡았습니다!”지난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한 번도 공식석상에 참석하지 않던 그의 이번 외출에서 리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읽힌다. 홍라희 관장 외에도 재계에는 아트 경영 일선에 나선 안주인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대와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닌다.
장인화학 이건(장혁) 사장은 해임 위기가 닥치자,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할 방안으로 다니엘 피트(최진혁)와 콜래보레이션을 추진한다. 얼마 전 종영한 장혁, 장나라 주연의 MBC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한 장면이다. 주말드라마 ‘마마’ 역시 정준호의 첫사랑 송윤아가 유명한 작가가 되어 돌아와 비슷한 에피소드를 펼친다. 이들은 모두 ‘유명 예술가와의 콜래보레이션’이 기업을 회생시킬 히든카드라고 말한다. 이는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엮어가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으나, 드라마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9월부터 10월 1일까지 그래피티 아티스트 벤 아이네와 ‘러브 잇(Love It)’이라는 아트 마케팅을 진행한다. 벤 아이네는 영국의 촉망받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타이포그래퍼로, 영국 수상 데이비드 캐머런이 미국 첫 공식 방문 시 그의 작품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선물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벤 아이네의 감각적인 그래피티를 활용한 콜래보레이션 상품을 선보이며 “세계적 아티스트와의 협업 같은 차별화된 아트 마케팅으로 가을 패션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미 2011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제프 쿤스의 작품 ‘세이크리드 하트(Sacred Heart)’(당시 추정가 3백억원)를 본점 옥상 정원에 설치하고, 그 작품 이미지를 활용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 같은 아트 마케팅을 통해 기업이 차별화와 고급화를 꾀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 삼성을 비롯해 SK그룹, 금호아시아나, 포스코 등 손에 꼽히는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재벌가 며느리나 딸 중 미대 출신이 유난히 많다.
PART 01 재능 있는 정예 엘리트서울대 미대 출신 안주인들
미술계 파워 리더, 홍라희 리움 관장
서울대 미대 출신의 대표 주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인인 홍라희(69)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홍 관장은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그림을 가까이하며 자랐고, 시아버지인 고 이병철 회장을 통해 미술품을 보는 안목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병철 회장은 알려졌다시피 당대 최고의 고미술 컬렉터였고 홍 관장은 현대미술 애호가로 유명하다. 그를 처음 만난 것도 자신의 작품이 걸린 갤러리에서였다고 한다.
홍 관장이 미술관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5년, 고 이병철 회장이 세운 호암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2004년 개관한 리움은 고 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고미술품 외에 홍라희 관장의 취향을 반영한 방대한 현대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지난 9월 2일 리움 개관 10주년 및 광주 비엔날레 창설 20주년을 기념해 리움에서 열린 ‘확장하는 예술 경험’이라는 주제의 아트 포럼에 참석한 홍 관장은 환영사를 통해 “문화 외교를 이끄는 여러 전문가를 모시고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돼 뜻깊다”며 “이번 포럼이 세계의 미술 문화 현장을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미래의 패러다임을 함께 그려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포럼에는 리처드 암스트롱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장과 니콜라스 세로타 영국 테이트미술관장, 오쿠이 엔위저 2015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 아네트 쿨렌캄프 카셀 도큐멘타 대표이사,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등이 참석했다. 지난 5월 10일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두문불출하며 남편 곁을 지켰던 홍 관장은 이번 행사 참여를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다고 한다. 홍 관장이 공식석상에 선 것을 이건희 회장의 병세 회복과 연결 짓는 시선도 있다. 이에 관해 삼성 측은 “두 가지 사안을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이 회장이 많이 회복된 것은 맞다”면서 “올해 리움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홍 관장이 포럼을 포함해 미리 계획했던 일을 정상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리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12월 21일까지 ‘교감’이라는 주제로 근현대, 동서양 등 시공간을 아우르는 거장들의 작품 2백30점을 선보인다. 고 이병철 회장의 고미술 컬렉션과, 제프 쿤스, 루이스 부르주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 등 세계 현대미술 애호가인 홍라희 관장의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대 미대 출신 금속공예가들의 모임인 서울금공예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효성그룹 안주인 송광자 씨의 작품 ‘대화’.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작가로 인정받는 재벌가 안주인도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부인인 송광자(70) 씨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그는 경기여고 안에 있는 경운박물관 관장을 맡고 있다. 그의 미술 실력이 세간에 알려진 건 2006년 치우금속공예관이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연 전시에 작품 두 점을 선보이면서다. 송 관장의 1966년 ‘제1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 국무총리상 수상작과 15회 국전 문교부장관상 수상작이 전시된 것. 송 관장은 대학 졸업 후 국전에서 특선 및 문교부장관상 등을 수상하며 두각을 보였고 1970년대 중반까지도 작품 활동을 했다. 최근 서울대 미대 출신 금속공예가들의 모임인 ‘서울금공예회’ 소속으로 작품을 출품하는 등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946년 예술대학으로 시작해 1953년 미술대학(회화과, 조소과, 응용미술과)으로 학제가 개편됐다. 1981년 동양학과, 서양학과, 조소과, 공예과, 산업미술과 5개 학과로 분리했으며 현재 동양학과, 서양학과, 조소과, 디자인학부(공예전공, 디자인전공)로 운영되고 있다.
PART 02 우린 이대 나온 여자!이대 미대 출신 안주인들
재계 이대 모전여전 이명희 신세계 회장&정유경 부사장

지난 2008년 본점 신관을 완공할 때는 ‘신세계 갤러리’를 재오픈하면서 1백50여 점의 소장품으로 백화점 내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명희 회장의 외동딸인 정유경(42) 신세계 부사장 역시 이대 미대 출신으로, 응용미술과 91학번이다. 정 부사장은 어머니의 스타일을 많이 닮아 ‘리틀 이명희’라고도 불린다. 이대 졸업 후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한 정 부사장은 디자인 전문가로 신세계의 인테리어, 광고디자인, 문화예술마케팅 분야 등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신세계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가급 작가들의 콜래보레이션은 이들 모녀의 안목이 반영된 결과다. 조선호텔 프로젝트 실장(상무) 시절 객실 리노베이션과 인테리어 개선 등에 기여했으며, 2009년 신세계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 명품관, 센텀시티점 오픈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센텀시티점 오픈 당시 샤넬, 에르메스 등 최고급 브랜드를 입점시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정유경 부사장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사업인 청담동 분더샵 플래그십 스토어는 리뉴얼 공사를 끝내고 10월 중순 오픈할 예정이다. 국내 대기업 편집숍 1호인 분더샵은 리뉴얼을 통해 기존 패션 중심에서 화장품, 예술, 레스토랑 등 다양한 분야로 신세계의 역량을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이 건물의 디자인은 미국의 건축 디자이너인 피터 마리노가 맡아 주목을 끈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의 큰딸 이혜경(62) 전 동양그룹 부회장도 이대 섬유예술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결혼 후 30년간 내조에만 힘쓰던 그는 2007년부터 동양메이저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혜경 전 부회장이 보유한 미술품의 규모는 동양그룹이 위기를 맞으면서 드러났다. 이 부회장은 2013년 10월 동양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압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자신의 미술품을 서둘러 매각했다. 이 중 일부는 서미갤러리의 홍송원 대표를 통해 판 것으로 드러나 검찰은 지난 7월 강제집행 면탈 혐의로 이 부회장을 피의자로 소환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서미갤러리와 이 부회장 소유의 미술품 보관 창고를 압수 수색하면서 국내외 유명 화가의 그림, 조각 등 수십 점을 발견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법원은 이 부회장 부부가 숨겨놓은 골동품 3백30여 점을 가압류했는데, 가압류 직전 골동품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으려 시도하다가 관리인의 만류로 포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홍송원 대표는 이혜경 부회장의 빼돌린 미술품을 임의로 팔고 매각대금을 넘겨주지 않은 혐의로 구속됐다.
남편 이재현 CJ 회장에게 신장 이식을 해주며 훈훈한 미담을 전했던 김희재(54) 씨 역시 이대 장식미술학과 출신이다. 김희재 씨는 그동안 내조에만 힘써왔을 뿐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제프 쿤스와 쿠사마 야요이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사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의 컬렉션은 CJ건설이 운영하는 경기도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 골프장에 전시돼 있다.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의 5남매 중 맏이인 농심기획 신현주(60) 부회장도 이대 서양미술과 출신. 전업주부로 있다가 지난 1996년 설립된 광고 회사 농심기획 이사로 취임했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이면서, 보유 중인 농심기획과 쓰리에스포유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가 올 2월 농심 백산수 2대 주주로 올랐다. ‘백산수’는 농심이 신라면을 이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공언한 생수 브랜드. 현재 김병순·최윤석 각자 대표이사 체제지만, 지분 투자에 참여한 신 부회장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술이론가 김선정 교수&파워 컬렉터 박성경 부회장

아트선재센터의 관장은 김선정 씨의 어머니이자 김우중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씨. 2011년 경주 선재미술관은 매각했지만 아트선재센터는 계속 운영하고 있다. 모녀는 갤러리 운영을 하면서 견해 차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소 보수적인 경향의 정 관장과 달리, 김선정 씨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최신 미술계의 흐름을 좇아 실험적인 전시를 원했기 때문이다.


1945년 10월 예림원 미술과로 출발해 1960년 2월 4개의 학과(회화과, 생활미술과, 조각과, 자수과)를 가진 미술대학으로 바뀌었다. 1998년 조형예술대학으로 개칭했으며, 현재 조형예술학부, 디자인학부, 섬유패션학부로 운영되고 있다.
여성동아 2014년 10월 6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