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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식객’ 임지호 자연을 먹고 자유를 입다

“밥을 먹는 행위는 생명의 지혜를 얻는 것, 감사하며 먹는 법 배워야 해요”

글·김유림 기자|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4.10.15 14:27:00

“웰빙 열풍’이 한 차례 휩쓸고 간 지금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체 에너지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음식에 대한 가치관도 많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방랑식객’으로 유명한 자연요리 연구가 임지호 셰프에게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관해 물었다.
‘방랑식객’ 임지호 자연을 먹고 자유를 입다
입맛은 비록 인스턴트 음식과 조미료에 길들여져 있지만 누구나 ‘자연주의 밥상’을 꿈꾼다. 그것이 곧 건강과, 생명과 직결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에서 보약과 같은 음식을 선보이고 있는 ‘방랑식객’, 자연요리 연구가 임지호(58) 셰프는 산과 들에서 먹을 것을 찾아 투박하게 차린 밥상은 보기에는 볼품없고 맛의 강렬함도 덜하지만 재료 자체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그대로 우리 몸에 전달한다고 말한다. 특히 그의 요리는 영혼을 울리는 마력을 지녔다. 그의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맛”이라고 입을 모은다. 방송인 이경규는 임지호가 즉석에서 선보인 요리를 먹고 “53년 헛살았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음의 병으로 가득 찬 현대인들이 앞으로라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까. 그 해답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임지호 셰프가 운영 중인 경기도 양평의 한식당 ‘산당(山堂)’으로 향했다. 그의 호를 따서 이름 지은 ‘산당’은, 사실 여러 매스컴과 블로거들의 후기를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메뉴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김치와 젓갈류를 제외한 메인 메뉴는 그날 주인장의 기분과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그에게는 자연에서 나는 모든 것이 음식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잡초도 그의 손을 거치면 부드럽고 향긋한 나물이 된다. 실제로 임 셰프는 날마다 식당 주변의 산과 들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구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음식을 만들어 손님상에 내놓는다.

점심 손님이 한바탕 식당을 휩쓸고 간 오후 2시 반, 식당 안에 들어서자 반백 머리의 임 셰프가 배 부분이 흠뻑 젖은 티셔츠 차림으로 손님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왜 옷이 젖었느냐고 묻자 “막 설거지를 끝내서”라는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이름 있는 요리사도 설거지를 하느냐”고 묻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설거지야말로 자기 망상을 씻어내는 최고의 행위”라고 말했다.

“건강하려면 부지런해야 해요.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을 이끌고 마당에 나가 풀을 뽑잖아요. 일반인들은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세상 시름을 걷어내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져요. 요즘 사람들은 제발 값비싼 명품에 한눈팔지 말고 정신 세계를 썩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닭똥도 약으로 만드는 자연의 마법



‘방랑식객’ 임지호 자연을 먹고 자유를 입다
‘설거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그의 대답은 마치 부지깽이로 머리 한 대를 ‘콕’ 얻어맞은 것처럼 따끔했다. 인터뷰는 식당 2층에 있는 휴게실에서 진행됐다. 넓은 장독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확 트인 이곳은 손님들이 식사를 마친 뒤 과일과 커피를 들고 올라와 산과 들의 풍광을 감상하고 잠시 눈도 붙이는 휴식 공간이다. 임 셰프에게 ‘산당’은 식당이자 집이다. 휴게실 옆쪽에 붙어 있는 독립된 건물에서 동갑내기 아내와 살고 있다. 장성한 두 아들은 일찌감치 독립해 따로 살고 있다. 아버지의 재능을 빼닮은 큰아들은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활동 중이고, 둘째 아들은 군 제대 후 인도네시아에서 단기간 체육 교사로 경험을 쌓는 중이다. 임지호가 처음 ‘산당’을 차린 이유도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지금 집사람은 두 번째 아내예요. 이혼 후 아들 둘을 키우려니 돈이 필요해서 떠돌이 생활을 접고 이곳에 식당을 차렸죠. 지금 아내는 제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한테 음식 만들어줄 때부터 여기에서 15년 넘게 된장찌개를 나르던 사람이에요.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몸이 여기저기 안 좋은데도 참 부지런해요. 소파 커버도 늘 하얗게 광이 나도록 빨고… 대단한 사람이에요. 요즘은 저한테 ‘꾀 부리지 말고 청소 좀 잘하라’고 잔소리를 많이 해요. 하하.”

그의 말대로 한때 임지호는 ‘떠돌이’였다. 그가 ‘방랑식객’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북 안동 출생인 임지호는 한의사인 아버지의 서자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에게 보내졌다. 하지만 평범치 않은 가족사 때문이었는지 그는 열한 살 때 “일본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동네 어른들의 얘기를 들은 후 밀항을 결심하고 집을 뛰쳐나왔다. 물론 밀항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때부터 그는 세상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전국을 떠돌며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어린 소년이 찾은 곳은 식당이었다. 한식집, 요정, 분식집, 양식집 할 것 없이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한 임지호는 20대 중반 서울에 정착하면서 요리사를 정식 직업으로 삼았다. 이후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그의 떠돌이 기질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으로 가서 근로자 2천여 명의 세끼를 책임졌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서울 종로구 서린호텔 한식당 주방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자연주의 요리에 관심이 많던 그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다시 전국을 떠돌았다. 1년의 절반은 산속, 바닷가에 머물며 자신도 처음 접하는 식재료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풀을 맛보다 온몸에 독이 퍼져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여러 번. 결국 그는 지금껏 어느 누구도 구현하지 못했던 자연의 맛, 생명의 맛을 표현해낼 수 있는 요리사로 거듭났다.

그의 특별함을 먼저 알아챈 건 외국인들이었다. 자연요리 연구가로 해외에서도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는 2003년 유엔 한국음식 축제, 2004년 미 캘리포니아 사찰 음식 퍼포먼스, 200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식 시연회, 아르헨티나 수교 기념 한국 음식전, 베네수엘라 수교 40주년 한국 음식전 등에 참가했으며, 미국의 대표적인 요리 잡지인 ‘푸드 아트’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또 2009년에는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에 출연해 길 위에서 만난 이들에게 ‘공양’의 의미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방송에서 그는 산과 들, 길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온갖 풀과 꽃잎들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생선 비늘, 닭똥, 매미 껍질, 굼벵이 등 말만 들어도 혐오감이 느껴지는 것들도 음식의 재료로 사용한다.

“닭똥에 하얀 부분이 있는데, 그게 강력한 소화제예요. 오래된 백자 있죠? 그걸 곱게 갈면 백토가 되는데 닭똥이랑 섞어서 마시면 오래된 체증도 한 번에 내려가요. 겉으로 보기엔 흉측한 것들이지만 내면의 역할은 대단해요. 자연의 모든 건 다 형편에 맞게 쓰도록 돼 있어요. 어떤 심성으로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죠. 음식이 ‘손맛’이라고 하는 건 음식을 주무를 때 손에서 기가 나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물도 정성 들여 팍팍 무쳐야 합니다. 또 흔히들 음식은 ‘마음’이라고 하잖아요. 그건 음식에 심장의 울림을 담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해 밥을 먹는다는 건 심장의 울림을 느낀다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로 인해 모두가 생명을 공유하는 것, 그게 음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방랑식객’ 임지호 자연을 먹고 자유를 입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공존하는 밥상

음식에는 기술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스턴트 식품은 죽은 음식이나 마찬가지다. 임지호는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사상마저도 인스턴트화돼버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산업화, 물질주의로 인해 우리는 정말 소중한 걸 잃어버렸어요. 우리는 밥상에서 기다림을 먹고 그리움을 먹습니다. 바글바글 끓인 된장찌개를 먹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컥 눈물이 날 때가 있잖아요. 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밥상 앞에 앉아요. 다 먹고 떠났다가도 또 찾아오는 곳이 밥상이죠.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이 나의 밥상이라는 걸 인정하고 거기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어야 해요. 우리의 몸은 자연 그 자체예요. 마음의 병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자연을 먹고 자연과 소통해야 하죠.”

또한 그는 음식에는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공존한다고 믿는다. 벼가 익어 쌀이 되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음식을 먹고 힘을 내 맞이할 내일,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음식을 매개로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그만의 철학은 언제, 어떻게 터득한 것일까.

“음식을 만든 지 40년이 넘었는데, 이런 생각들이 든 지는 2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하루 종일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잠깐 쉬고 있을 때였는데, 어둑어둑하게 날이 저무는 것 같더니 갑자기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현실의 세계에선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당시 제가 느낀 감흥과 깨달음은 상당했습니다. 제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바보처럼 오랫동안 한 가지에만 몰입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든 몰입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요리할 때 무슨 생각하느냐고 묻는데, 저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요(웃음). 요리를 하는 그 순간이 최고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음식에만 몰입하죠.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위해 차려진 밥상을 보면서 누군가의 노고에 감사하고, 몰입해서 먹는 연습을 자꾸 해야 비로소 자기가 하는 일에서도 몰입할 수 있어요. 밥을 먹는다는 건 그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생명의 지혜를 얻는 거거든요.”

음식은 인간의 생명 지키는 하나의 보루

‘방랑식객’ 임지호 자연을 먹고 자유를 입다

메주를 띄워 간장을 담그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딱 10개월. 임지호 셰프가 장과 장독을 들어 “인간의 탄생과 똑같다”고 말하는 이유다.

우리는 흔히 요리를 예술에 비교한다. 그는 문득 “밥이 예술이라면, 어떤 예술일 것 같느냐”고 물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선뜻 입을 떼지 못하자 그는 살짝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댄싱”이라고 말한다.

“유리 솥에 밥을 한번 지어보세요.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쌀알들이 밥으로 완성되기까지 현란하게 춤을 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저는 이걸 ‘라이스 댄싱’이라고 불러요. 온갖 모션과 리듬이 거기에 다 있죠.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밥이 매일 우리에게 예술을 보여주고, 강렬한 에너지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겠어요. 밥상머리 교육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밥을 먹으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그게 바로 교육이에요.”

‘산당’을 찾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바로 장독대다. 수백 개의 항아리들이 햇볕을 받아 반들반들 빛나고 있고, 그 안에는 또 다른 생명이 자리하고 있다. 임지호는 장과 항아리를 들어 인간과 자연이 하나임을 증명한다. 참고로 그가 한 해 담그는 장의 양은 3000kg 정도 된다.

“콩을 삶아서 메주를 완벽하게 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9개월이에요. 항아리는 여성의 자궁이고 소금물은 양수, 메주는 정자예요. 항아리에 소금물과 메주를 넣음으로써 10개월이 되고 드디어 생명이 탄생하죠. 장 담글 때 항아리에 금줄을 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우리 음식의 시작과 끝은 장이에요. 메주를 띄우면 파랑·노랑·빨강·하양·검정, 이렇게 다섯 가지의 곰팡이가 피어요. 이 곰팡이들은 우리 몸의 저항력을 높여주고 이뇨 작용과 해독 작용을 돕습니다. 간장은 오래될수록 약이고, 된장은 담근 지 2년 8개월 됐을 때 가장 맛이 있어요. 요즘은 다들 아파트 생활하느라 장독을 둘 곳이 없다고 하는데, 아파트에 주차 공간 하나 더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게라도 공동의 텃밭이 있어야 해요. 자투리 땅에 콩을 심고 스스로 생명을 지키며 우리가 곧 자연이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한편 다행스러운 건 사회적으로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유행과 더불어 요리사를 꿈꾸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임지호는 음식 만드는 걸 업으로 삼으려 하는 이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요리사가 자신의 흥에 취해 음식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나의 만족이 50%라면 나머지 절반은 고요함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해요. 하지만 요리사를 꿈꾸는 사람들 중에는 허상만 쫓는 이들이 있어요. 바닥부터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어요. 외국의 이름 있는 요리 학교를 나와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기본을 잘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에요. 날마다 우리에게 밥을 해주는 어머니는 어떤가요. 모든 걸 포용하고, 용서하고 배려하고 희생하잖아요. 그게 진정한 사랑이에요. 요리사도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요리를 돈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인류는 절대 건강해질 수 없어요. 음식은 생명을 지키는 하나의 보루가 돼야 해요.”

그가 구현하는 예술은 요리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그림이다. 리콴유 총리 재임 시절 만찬 요리 담당으로 싱가포르에 갔을 때 밤거리의 ‘루미나리에’를 보고 문득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충동이 들어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미술 도구를 사용할 줄 몰라 주걱과 숟가락 등 그의 손에 가장 익숙한 주방 도구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재료에 구애를 받지 않는 건 그림도 마찬가지. 숯가루, 송진, 옻 등 자연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물감이고 캔버스다. 11년 전 싱가포르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개인전만 8번을 열었다니 이쯤 되면 중견 화가라 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뉴욕에서 봄가을로 두 번이나 전시회를 열었고 지금까지 그린 그림 수만 해도 1만 점이 넘는다.

“누구한테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고, 공부한 적도 없어요. 음식이나 그림이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그저 자연이고 자유예요.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게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요.”

여성동아 2014년 10월 6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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