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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공채 출신 한진그룹 첫 여성 수장 조모란 대표

“기회만 기다리지 말고 열심히 나 자신을 드러내라”

글·김유림 기자|사진·지호영 기자

2014. 03. 14

‘아이 키우는 워킹맘’이라고 못할 건 없다. 여성의 유연함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각광받는 요즘, 대한항공 공채 출신 첫 여성 CEO가 된 조모란 한진인터내셔널재팬 대표에게 성공 노하우를 들었다.

공채 출신 한진그룹 첫 여성 수장 조모란 대표
지난해 말 한진그룹은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대한항공 역대 최연소 임원인 조모란(46) 상무보를 대한항공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재팬 대표로 임명한 것. 1945년 한진그룹 창립 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 겸 칼호텔네트워크 대표를 제외하고 계열사와 자회사를 통틀어 공채 출신 여성 대표 이사가 배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이 조 대표는 입사 이후 지속적으로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인물이다. 2012년에는 원래 규정보다 1년 빠른 만 5년 만에 최연소 임원이 됐고, 2007년엔 대한항공 내 유일한 여성 해외지점장으로 발령이 나 일본 하네다공항에서 근무했으며, 더 앞선 2000년엔 기혼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해외 단기파견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런 경력들이 결국 그를 자회사 대표라는 자리에 올려놓았다.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진인터내셔널재팬은 일본 전 지역 공항에 인력을 공급하고 한진그룹 계열사의 설비 및 부동산을 관리하는 회사. 수준 높은 직원을 선발해 모회사의 서비스 수준을 향상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만큼 여성의 유연함과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자리다. 2월 중순 조모란 대표를 대한항공 서울 서소문 사옥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위해 아침 일찍 일본에서 날아왔다는 그는 “회사의 배려로 결혼식 때 이후 처음으로 풀 메이크업을 받았다. (사진 촬영 중) 봐라,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지 않느냐”며 화통하게 웃었다.

현재 조 대표의 가장 큰 목표는 회사가 제시한 새로운 테스트를 잘 통과하는 것이다. 1990년 공채 입사 이후 지금까지 그는 늘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그때마다 조 대표는 자신의 기량보다 더 높은 곳에 지향점을 두고 불도저처럼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여자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불평등하다’고 불평하지 말고, 나도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라는 거예요. 1998년 해외홍보를 담당했는데 당시 여직원에게는 밤샘 당직을 시키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남자에 비해 힘들다는 이유에서였죠. 하지만 저는 당시 여직원도 당직을 설 수 있다며 똑같이 업무를 나눠 맡았어요.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자신의 능력은 스스로 밝혀야 해요. 이런 성향 때문에 한때 ‘쌈닭’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웃음),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각각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를 뿐 여성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은 없어요.”

1년 만에 일어 정복한 악바리 근성



공채 출신 한진그룹 첫 여성 수장 조모란 대표
일본으로 단기파견을 나갈 때도 그는 이 같은 편견을 깼다. 아이가 있는 기혼여성이 해외 근무를 지원하는 게 흔치 않은 시기였기에 면접관들은 그에게 시부모나 남편이 동의했는지를 가장 먼저 물었다고 한다. 물론 가족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했고 결국 그는 남편,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1년간 나리타공항에서 근무했다.

2005년 대한항공 승무원을 포함해 전 직원의 유니폼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지만 함께 일을 추진했던 상사도 그 사실을 몰랐다. 당시 이탈리아 패션디자이너 지안프랑코 페레가 유니폼 디자인을 맡았는데, 조 대표는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마라톤 야근을 해낸 것은 물론 이탈리아 현지 출장도 다녀왔다.

“14년 만에 유니폼을 바꾸는 거라 회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민감한 일이었어요. 임신 사실을 일부러 속인 건 아니고 굳이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제가 원래 임신을 하면 몸 전체에 살이 찌는 체질이라(웃음), 같이 일했던 직원들은 그냥 살이 좀 많이 찐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거의 마무리하고 패션쇼만 남겨둔 상태에서 전무님께 조만간 휴가를 쓰겠다고 했더니 이유가 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다음 달 출산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셨어요. 배신감이 든다며 화도 많이 내셨죠. 그렇다고 지금 후배들에게 임신을 숨기면서까지 일에 몰두하라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배려받아야 할 상황이면 당연히 회사에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조 대표의 가장 큰 강점은 뛰어난 추진력과 집중력이다. 한번 일에 몰두하면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간다. 이번 인사 때도 한 임원은 조 대표에게 “하네다공항에서 근무할 때 그렇게 독하게 일하더니 (조 대표가) 될 줄 알았다”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하네다공항 지점장 시절 대통령 전용기 접견을 위해 3박 4일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뜬눈으로 공항을 지키기도 했다.

“한번은 밑에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면서 혹시 모르니 세 가지 변수를 고려해 각각에 맞는 적절한 준비를 해놓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직원이 지금까지는 그런 적이 없으니 한 가지 버전만 준비했는데 일이 꼬였어요. 어쩔 수 없이 임기응변으로 급하게 일을 처리한 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그 직원 얼굴만 보고 달려가다가 계단에서 심하게 굴렀어요. 나중에 그 직원이 하는 말이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제가 너무 무서웠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공채 출신 한진그룹 첫 여성 수장 조모란 대표

2011년 3월 발생한 일본 대지진 및 원전 사고 당시 대한항공은 지진 피해 교민 수송을 위해 나리타·하네다공항 노선을 늘렸는데, 당시 하네다공항 지점장이던 조모란 대표는 몇 주에 걸쳐 전 직원과 함께 강행군을 펼쳤다. 이후 하네다공항 조업사인 일본항공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을 때 모습.

연세대 영문학과 출신인 조 대표는 영어는 물론 일어에도 능통하다. 일어는 나리타공항에서 1년간 근무할 때 배우기 시작해 귀국할 때쯤에는 거의 현지인 수준으로 늘었다고 한다. 이처럼 단기간에 일어를 익힐 수 있었던 건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조 대표는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다양한 기회의 장이 없었다. 하루빨리 일본 직원들과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언어가 늘더라. 창피함도 모르고 무조건 부딪쳤다”며 웃었다.

조 대표는 이번 인사로 사내 여직원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는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면서 능력 있는 많은 여자 후배들이 큰 꿈과 포부를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여성 친화 1호 기업’답게 해마다 여성 임원을 배출하는 대한항공의 유연한 기업 마인드를 자랑했다.

“여성 관리자를 승진, 발탁하는 인사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에요. 대고객 서비스 기업인 만큼 여성의 창조적이고 섬세한 감각을 어느 곳보다 중요시하죠. 현재 대한항공의 여성 임원은 총 9명으로 기내식, 객실, 광고, 마케팅, 운송, 예약, 서비스 교육 등 서비스 관련 분야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어요. 또 회사가 능력 있는 여성들이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다양한 제도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임원이 되면 서울대에서 3개월간 단기 MBA 과정을 밟는데, 처음에는 귀찮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 조직의 대표가 되고 보니 꼭 필요한 공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니처럼, 누나처럼 고민에 귀 기울일 터

평소 후배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 애쓰는 그는 이번 취임식 때도 전 직원 앞에서 “누나처럼, 언니처럼 언제나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정도 회사 생활을 해보니까 남직원과 여직원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걸 알겠어요. 여성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데 익숙하지만 남자들은 보통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같아요. 결국 남성 직원들에게 대화를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의 고민을 간파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다독이는 편이 훨씬 낫더라고요. 또 여직원들과 커피 한잔을 한다면 남직원들에게는 체육대회를 열어주는 게 더 효과적이에요.”

조 대표는 대학교 4학년 때 친구의 대한항공 입사원서를 대신 접수해주다 덩달아 지원서를 내면서 취업에 성공했다. 초년병 시절 그는 실수를 많이 해 말썽꾼 축에 속했다. 늘 실수는 엉뚱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선배들 일에 관심을 보인 게 화근이었다.

“제가 하도 실수를 많이 해서 그런 후배들을 나쁘게 보지 않아요(웃음). 일이라는 게 다 단계가 있는데 그때는 욕심만 많아서 남의 일이 더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혼자 일을 저질렀다가 수습 못해서 이리저리 묻고 다니느라 바빴어요. 본사 발령 나기 전 2~3년간은 서비스 현장에 직접 투입돼 일을 배우기 때문에 공항에서 근무할 때는 발권, 티케팅 등 온갖 일을 다 경험해봤어요. 심지어 방송까지 했죠. 요즘은 기계음으로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주 촌스러운 발음으로 ‘대한항공에~써~ 안내 말씀드립니다’ 하고 방송을 했는데, 제 사수였던 언니가 그렇게 하지 말고 아나운서처럼 발음하라고 해서 굉장히 놀라워하며 열심히 따라 했던 기억이 나요.”

본사 소속의 여객운송부에서 근무하고 싶은 욕심에 공채 출신은 그리 지원하지 않는 비서직으로 자진해서 옮긴 적도 있다. 당시 그는 기존의 비서 업무를 기본으로 온갖 다양한 종류의 일을 도맡아했다. 그러느라 매일같이 야근을 하며 신혼을 보냈다.

“결혼한 여자 후배들에게는 최대한 가족에게 많은 도움을 요청하라고 얘기해줘요. 물론 그것조차 여의치 않은 사람도 있지만, 여건이 된다면 엄마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큰아이는 생후 8개월 때부터, 둘째는 백일도 안 됐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냈어요. 물론 제가 야근할 때는 시어머니가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돌봐주셨죠. 올해 큰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요.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만큼 키우기까지 산전수전 다 겪었기 때문에 아이 돌보며 직장 다니는 여자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해요.”

조 대표의 가족들은 조만간 일본 도쿄로 모두 옮겨갈 예정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아들 때문에 잠깐 고민을 했지만 결국 그와 남편은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조 대표가 하네다공항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국제학교에 다녔던 큰아들은 이번 이사로 1년 만에 다시 예전에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게 됐다. 조 대표는 “큰아이는 공부는 잘 못하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교우관계가 좋다. 둘째는 현지 학교에 보낼 예정인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유년기를 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분간 조 대표는 일본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의 업무 상태를 파악하고 개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예정이다. 그는 “국적을 불문하고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직원들과 소통하며 즐겁게 한 해를 보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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