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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줄 서서 들어가는 부킹 포차 가보니

젊은 男女가 ‘불금’을 즐기는 법

글·구희언 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2014. 03. 05

불금의 밸런타인데이, 홍대 밤거리에서 20대 청춘 남녀는 뭘 하고 놀까.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인 부킹 포차를 찾았다. 쌀쌀한 날씨에도 몇 시간씩 줄 서가며 입장을 기다린 이들이 그곳에서 기대한 것은?

줄 서서 들어가는 부킹 포차 가보니

1 나이 상한선을 두고 남녀 손님 비율을 관리하는 홍대의 한 포차 입구.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밤 11시, 홍대 삼거리포차 인근 술집. 밸런타인데이의 ‘불금’을 즐기려 완전무장한 남녀들이 가게 입구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섰다. 나이트클럽은 아니지만 일반 술집과는 분위기가 영 딴판인, 간판부터 묘한 느낌을 주는 이곳은 일명 ‘부킹 포차’였다. ‘남녀 같이 오면 구석 안내’ ‘꽃남끼리 오면, 헌팅 셀프’ ‘미녀끼리 오면 합석 준비’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정장, 도서관 패션, 슬리퍼 착용 시 입장 불가’라고도 쓰여 있었다.

무작정 줄을 서보기로 했다. 여자들은 콤팩트를 꺼내들고 화장을 분주히 고쳤고, 남자들은 머리를 고정시킬 스프레이를 찾았다. ‘나 멋 좀 내고 놀 줄 안다’는 느낌의 젊은이들이 한껏 무장하고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부킹’이다. 40여 분쯤 기다리자 가게 직원이 “여자 2명!”을 외쳤다. 인원수가 맞아떨어진 덕에 앞서 기다리던 이들보다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우리 뒤로 아까만큼 줄이 길어져 있었다.

나이 상한선 정해 수질 관리

이곳은 여느 술집과 달리 나이 제한이 있었다. 출입 가능한 사람은 1983년생부터 1995년생까지. 계산대에서부터 신분증을 걷었다. 신분증이 없으면 여러 의미로 입장이 어려운 곳이었다. 포차는 복층 구조였다. 안내해준 자리에 앉아 혹 ‘응답하라 1994’ 속 해태와 삼천포처럼 ‘수질 관리를 당한 건 아닌가’ 하고 눈치를 살폈는데 다행히 아니었다.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앞자리 사람과도 귀에 대고 소리치지 않으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메뉴는 그리 비싸지 않았다. 맥주 두 잔을 시켜놓고 안주를 몇 개 집어먹는데 한 남자가 말을 붙였다. 처음엔 웨이터인 줄 알았는데, 그날의 첫 부킹이었다.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어요?”라는 흔한 멘트로 말문을 튼 그는 “이 테이블 뒤가 남자 화장실이라 왔다 갔다 했는데 못 봤느냐”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었다. “어디 앉을까요? 무릎이라도 꿇을까?”라고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던 그는 “여기 2인석이라 자리가…”라고 하자 냉큼 옆자리 의자를 당겨 앉아서는 ‘나이, 사는 곳, 직업’을 물었다. 들어온 지 15분도 안 돼서 벌어진 상황에 미처 대답을 준비하지 못해 “여기 들어올 수 있는 마지노선쯤 된다”고 했다. 대답을 듣지 못했는지 그는 “어려 보이는데, 스물네 살? 내가 오빠겠네! 난 스물여섯 살”이라고 했다. 믿어지진 않았지만.



몇 마디 나누면 곧바로 합석 여부가 정해졌다. 우리가 회사원이라고 하자 그 역시도 회사원이라고 했다. 인천에서 왔다는 그의 말에 순간 머릿속에 ‘밸런타인데이에 인천에서 서울까지 와서 부킹 포차에 입장하는 회사원이라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조금 마시고 나갈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바로 수긍하고 자기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 사이 옆 테이블에선 즉석 만남에 성공한 남녀가 스킨십 농도 진한 술 게임을 시작했다.

줄 서서 들어가는 부킹 포차 가보니

2 홍대의 ‘불금’을 즐기는 젊은이들.

일행과 분위기를 살피며 키득대는 사이 또 다른 남자가 옆에 앉았다. 그는 좀 더 노골적이었다. “아까부터 봤는데 그쪽 분들이 마음에 든다”는 작업용 멘트를 던진 그는 술을 사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나이와 사는 곳, 주량을 물었다. “소주 반병”이라 하자 술이 세지 않은 게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이곳에서는 이름이나 직업보다 나이가 더 괜찮은 간판으로 통했다. OK 하자 그는 일행을 불렀고 만난 지 30분도 안 된 우리는 술과 안주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영양가 있는 대화는 나눌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럴 환경도 아니었다. 이들의 목적은 ‘2차’였다. 우리가 ‘2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그들은 얼마 후 다른 테이블로 이동했다. 쑥스러움도, 거리낌도 없었다. 거절에도, 수락에도 굉장히 익숙한 모습이었다.

‘간’만 보고 나오는 우리에게 계산대의 직원은 “알고 계시겠지만 단골손님이 많다”며 “평일에 세 번 오면 주말에 무료 입장을 시켜드린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주 와도 아는 척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 시곗바늘은 새벽 2시를 향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줄이 길었다.

줄 서서 들어가는 부킹 포차 가보니

목욕탕이라는 이색 콘셉트로 성업 중인 홍대의 또 다른 부킹 주점. 40세 이상은 입장은 가능하나 1백만원을 내야 한다는 요금표가 인상적이다.

나이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무제한 부킹

홍대 클럽 마니아인 여자 후배에게 체험기를 풀어놓자 “앉아만 있는 것보다 화장실도 가고 계단도 오르내리고 분주하게 움직여야 부킹이 들어올 확률이 높다”고 했다. 일단 이런 부킹 주점에는 남성 손님보다 여성 손님이 한참 모자라서 남자 줄이 훨씬 길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래서인지 부킹 포차에선 여성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다. 여자끼리 오면 안주를 무료로 주거나, 자정 전에 여성끼리 입장하면 테이블 금액의 50%를 깎아주는 식이다. 그는 “대다수의 부킹 주점이 나이 상한선을 둔다. 종로의 한 부킹 주점은 35세가 출입 마지노선이라 그나마 후한 편”이라고 했다. 부킹 성공률이 가장 높은 인원수는 2~3명. 일행 간 나이 차가 너무 나면 부킹이 성사되기 어렵다고 했다.

기자가 갔던 주점은 따로 요구하지 않는 이상 웨이터가 부킹을 돕진 않았지만, 대다수의 부킹 술집에는 일명 ‘부킹 카드’가 있다. 몇천원 주고 산 카드에 테이블 넘버와 메시지, 휴대전화 번호 혹은 카카오톡 아이디를 적으면 웨이터가 다른 테이블에 전달해 즉석 만남을 성사시켜준다. 성공률을 높이려면 술이나 안주 같은 부킹용 메뉴를 사서 같이 전달하면 된다. 테이블마다 있는 아이패드로 주문부터 부킹까지 한 방에 해결하는 스마트 부킹 주점은 이미 전국에 체인을 내고 자리 잡은 지 오래. 주점 전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채팅으로 즉석 만남을 할 수 있게 한 주점도 있었다. 후배는 “여자끼리 오는 팀이 남자끼리 오는 팀보다 적어서 어지간하면 남자들로부터 부킹 카드를 두세 장은 받을 것”이라 귀띔했다. 그러고는 “여기 맛 들리면 비슷한 부킹 포차를 돌다 전에 본 사람을 또 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남자 후배는 “부킹을 성사시키는 데 중요한 건 근성”이라고 했다. 실제로 기자가 갔을 때 테이블의 성비는 남자 대 여자가 7:3 정도였다. 그는 “이런 곳에 올 정도면 즉석 만남에 거리낌 없을 여자일 확률이 높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들이대다 보면 한 테이블은 걸리게 마련”이라고 했다. 일행 중 제일 멀끔한 사람이 부킹을 제안해야 성공률이 높아지는 건 물론이다. 룸형 부킹 주점에서는 “벌칙 게임에 걸렸는데 술 한 잔만 받아오라고 했다”며 노크하는 게 전형적이지만 잘 먹힌다고 했다. 즉석 만남이 성사됐는데 테이블에 ‘사이즈 안 나오는’ 폭탄이 있으면 처음 제안한 사람이 책임지고 수습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룰도 있었다. 그는 “종종 안주발만 실컷 세우고 화장실 가는 척 가방 들고 나가는 ‘먹튀녀’도 있어서 합석하면 가방부터 안쪽으로 모아둔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차에서 나와 집에 가려 택시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맞은편 홍대 밤거리는 불야성을 이뤘다. 취재에 동행한 지인은 “내년에는 나이 제한 때문에 와보지도 못하겠다.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날 간 곳 외에도 복고풍의 롤라장이나 목욕탕 같은 이색 콘셉트로 운영하는 부킹 술집이 길 건너에 즐비했다. 남탕과 여탕으로 나뉜 부킹 주점 앞에는 남자 줄이 길게 늘어서 흡사 한밤중에 목욕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홍대뿐 아니라 신촌, 건대, 신림, 강남 등은 ‘뜨거운 밤’을 즐기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 혹자는 “미팅마저 돈 주고 하는 시대”냐며 혀를 차기도 하지만, 나이트클럽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성과의 즉석 만남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은 놀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겐 상당한 어드밴티지임에 분명했다. 어르신의 낮보다 화려한 젊은이의 밤은 이날도 무르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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