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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음식과 음식 문맹자

푸드 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글·이미령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3.08.16 17:58:00

자연에서 재배한 것일수록 모양이 들쑥날쑥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무조건 크고 윤이 반지르르해서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것을 선호했다.
그렇게 ‘진짜’가 아니라 ‘가짜’에 쉽게 넘어갔다. 나야말로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던 ‘음식 문맹자’였던 것이다.
성형 음식과 음식 문맹자


“음식을 못 먹으면 화가 날 지경이었어. 그걸 먹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니까!”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 조카가 미국 중·고등학교 시절 즐겨 먹던 음식에 대해 털어놓았다.
“델타코(아메리칸 스타일의 멕시코 음식을 선보이는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거의 매일 치킨소프트타코 6개와 작은 프렌치프라이에 레모네이드를 마셨고, 팬더익스프레스(중국음식 체인점)에서는 볶음밥이나 초우멘(볶은 면 요리)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반찬으론 쿵파오치킨, 비프·브로콜리, 오렌지치킨을 주문했죠. 방과 후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 틈틈이 학교 뒷문으로 배달시켜 먹어요. 우리 학교는 밖에 나가서 식사하는 것은 금지했지만 배달은 아무 제약이 없었어요.”
조카가 다니던 학교는 미국 부촌에 위치한 사립학교로 일년 치 수업료만 수만 달러다. 그런 학교가 구내식당을 인앤아웃버거 같은 패스트푸드 업체에 맡긴다는 것도 탐탁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밖에서 패스트푸드를 배달시켜 먹게 하다니!
“어느 날 엄마가 내가 먹는 음식을 보고 너무 놀라 차라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라고 했어요.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샌드위치나 김밥은 친구들에게 인기만점이었죠. 미국 엄마들은 집에서 요리를 잘 안 해요. 친구들 말을 들어봐도 요리하는 엄마들이 별로 없더라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이렇게 보낸 조카는 3년 전 버클리대학에 진학해 지금은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시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버클리시가 셰 파니스(Chez Panisse)라는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로컬푸드 운동가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의 본고장이다. 앨리스 워터스는 40년 전부터 ‘오가닉 푸드 운동’을 이끌며 미국의 식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09년 그의 영향을 받은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가 어린이 비만 퇴치운동을 위해 백악관 내 유기농 텃밭을 만들기도 했다. 앨리스 워터스 덕분에 오늘날 버클리는 미국 음식문화 혁명의 중심지이자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자리 잡기 어려운 도시가 됐다.
“버클리에는 유기농 마니아만 있더라고. 어쩔 수 없이 내 식습관이 바뀌었어요.”
“버클리에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하나도 없어?”
“요구르트 파는 가게랑 서브웨이 같은 샌드위치 가게가 있지만 로컬 오가닉 푸드만 먹는 사람이 많아서 슈퍼마켓이나 시장에 가도 생전 처음 보는 못생긴 채소와 과일이 수두룩해요.”

식품첨가물에 사로잡힌 미각

성형 음식과 음식 문맹자

프랑스 시장 가판대의 채소. 프랑스인인 시어머니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포장된 식자재는 ‘죽은 음식’이라며 생산자가 직접 파는 시장을 선호했다.



조카는 버클리에 살면서 불과 3년 만에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다. 사실 버클리에 오기 전까지는 원하는 음식을 못 먹으면 불안해지고 음식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일종의 ‘패스트푸드 중독’인 줄 몰랐다고 한다. 정확히 말해 식품첨가물로 인한 중독 증세다.
울산대 생활과학부 송재철 교수는 저서 ‘식탁 위의 식품첨가물 공포와 부엌의 혁명’에서 화학첨가물의 중독성에 대해 설명했다. ‘미각의 지배(The Omnivorous Mind)’를 쓴 존 앨런도 “인간은 두뇌로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맛을 보는 작용은 입안에서 일어나지만 맛을 인식하는 작용은 두뇌에서 일어난다’는 것. 그래서 먹는 행위와 맛보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상과 동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뇌 인지과학을 연구한 생화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화학물질이 걱정스러운 것이다.
보존료·산화방지제·합성착색료·발색제·표백제·합성감미료·착향료·조미료·산미료·팽창제 등 식품 가공과정에서 수많은 화학물질이 첨가된다. 이것들은 일정량 이하일 때 인체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러 가공식품을 한꺼번에 먹었을 때 각각의 음식 안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들의 상호작용이나 누적되는 양’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 결과도 부족하다. 그래서 “화학첨가물은 정말 나쁘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식품연구소나 제조업체들은 점점 더 새로운 첨가물을 개발해 각종 음식 가공에 이용하고 있다.
조카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프랑스에 살 때 일이 생각났다. 프랑스인인 시어머니는 슈퍼마켓의 포장된 식자재를 ‘죽은 음식’이라며 웬만해선 구입하지 않았다. 대신 신선한 채소와 과일, 생선을 사러 비호렐(Bihorel)에 있는 시장을 자주 찾았다. 그런데 시장을 따라가 보면 어머니가 고르는 과일이나 채소가 너무 못생겨서 왜 저런 것만 사나 싶었다. 흙이 잔뜩 묻어 있고 색은 선명하지 않으며, 여기저기 상처가 있거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을 좋다고 고르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깨끗하게 닦여 있고 모양이 예쁜 것에 손이 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다른 것들을 권했다.



“그것보다 이게 더 맛있단다.”
어머니는 내가 고른 알이 굵고 새빨간 딸기 대신 작고 군데군데 희멀건 부분이 드러난 딸기를 권했다. 그러고는 씻지도 않은 딸기를 내 입속에 넣어주셨다. 살짝 베어 먹자마자 딸기 고유의 상큼한 과즙이 터져나오며 입안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자연스러운 단맛이 일품이었다. 정말 너무 맛있었다.
자연재배한 것일수록 모양이 들쑥날쑥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무조건 크고 윤이 반지르르해서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것을 선호했다. 그렇게 ‘진짜’가 아니라 ‘가짜’에 쉽게 넘어갔다. 나야말로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던 ‘음식 문맹자’였던 것이다.
경남대 김종덕 교수(사회학)는 ‘음식 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라는 책에서 “음식이 먹는 사람의 몸과 정신, 행동을 좌우하고 음식의 선택이 환경과 지역사회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실제로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음식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여기고 지출을 아깝게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음식에 대해 유별난 프랑스 사람들과 지내면서 생긴 확신은 까다로운 소비자가 좋은 생산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구별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더 많다면 생산자는 구태여 신경 쓰고 정성을 다해 농사짓고 가축을 기를 필요가 있을까.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느니 빨리, 쉽게, 많이, 크게 만들어 신속하게 대량 판매하면 그만이다.

조리할 줄 모르는 음식 문맹자
뉴욕에 사는 동안 미국인이 요리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케이터링 서비스를 하러 들른 맨해튼 상류층 가정의 부엌은 최고급 주방도구와 오븐 시설을 갖춰 놓았지만 몇 번 써보지도 않은 새것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포장도 풀지 않은 도구가 쌓여 있곤 했다. 남자든 여자든 직접 장을 보고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프랑스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프랑스의 식문화도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실제로 미국식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프랑스 전역에서 대단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프랑스 젊은이들이 기본적인 조리기술을 익히거나 요리하는 것을 즐겨 하지 않아 프랑스 전통 음식문화가 ‘미국식’으로 변해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음식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만들어 먹을 줄 모르니 늘 남이 만들어주는 것을 먹거나 외식을 해야 한다. 당연히 좋은 식자재를 가려낼 눈도 없다. 아무거나 먹고 배가 부르면 잘 먹었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단순히 활동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이해하는 사람에게 ‘환경, 지역사회, 문화, 민족적 정체성’까지 연계되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다.
음식의 영양소 분석에 집중하는 ‘환원론’에만 신경 쓰는 일부 영양학자도 문제다. 식품 자체를 철저히 해부해 이 음식에는 무슨 성분이 많아서 좋고 나쁘고 가려낸다. 일반인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전문용어를 늘어놓지만 다음 날이면 마트 진열대에서 그 식품이 동이 날 만큼 영향력이 크다. 문제는 영양학자들마다 권장하는 음식이 제각각이어서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영양소 분석이 그리 중요하면 차라리 실험실에서 우리 몸에 이로운 영양소만 모은 알약 하나로 대신하는 게 낫겠다 싶다. 심지어 지방·소금·설탕 덩어리인 과자 봉지에 ‘오메가3 첨가’ ‘비타민C 첨가’ ‘칼슘 첨가’ 등을 광고하며 마치 이 과자를 먹으면 더 건강해지는 것처럼 부추기기도 한다. 사실은 그런 과자를 안 먹을수록 건강한 게 아닐까.

성형 음식과 음식 문맹자


성형 음식과 음식 문맹자


1 어느 것 하나 생김새나 색깔이 똑같지 않은 프랑스 옥수수들.
2 붉은색 표면에 까만 씨앗이 박힌 흰색 과육을 지녀 잘라 놓으면 캔디처럼 예쁜 드래곤푸르츠. 발리에서 먹은 과일이다.
3 두꺼운 껍질 안에 마늘쪽 같이 생긴 알맹이가 들어 있는 망고스틴. 새콤달콤한 대표적인 열대 과일이다.
4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색색의 고추.
5 푸르스름한 라임의 신맛을 생각하니 저절로 침이 고인다.

까다로운 소비자가 돼라
최재숙·김윤정이 쓴 ‘친환경 음식백과’를 보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쌀을 빼면 5%도 안 되며,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도 20%가 안 된다고 한다. 각종 환경 호르몬 오염으로 우리나라 어린이의 40%가 성조숙증에 시달리고, 최근 5년 새 4배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진짜 문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는 데 있다. 이 모든 건강문제, 환경문제, 사회문제가 무섭게 오염돼가는 ‘가짜 음식’들과 관련이 있는데도 정작 까다롭게 질문해야 할 소비자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여동생 가족이 미국으로 돌아가던 날, 우리 부부는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강남 압구정역에서 내렸다. 목적지로 나가는 출구를 찾으려 두리번대다가 지하통로 양 벽면이 성형외과 광고로 도배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 성형수술 전과 후의 얼굴 비교 사진이었다. 수술 후 얼굴들을 보면서 예쁘다기보다 참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로랭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런 말을 했다.
“그로테스크하지 않아? 시장에서도 자주 느끼는 일이야. 공산품이 아닌데도 가게마다 파는 식자재들이 똑같아. 과일이든 채소든 단일품종만 진열해놓은 것 같아. 오히려 얼마 전 여행한 발리의 시장에서 다양한 식자재를 발견하고 놀랐어. 발리가 특별히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도 아니잖아.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재배된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어.”
로랭의 지적에 기분이 상한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로랭은 토마토만 해도 수많은 색상과 다양한 형태를 고를 수 있는 프랑스 시장을 그리워하며, 진열해놓은 제품들이 천편일률적인 한국 시장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품종만 집중해서 생산하다 보니 다른 품종들은 자취를 감추게 된 것 아니겠는가. 수지가 맞지 않은데 누가 소신껏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하겠는가.
“그래도 유기농 과일이나 채소를 보면 꽤 다양해.”
나는 안 되겠다 싶어 한국 시장을 두둔했다.
“유기농이라고 다 유기농이 아닐 수도 있어. 미국을 봐. 유전자 조작 식품도 유기농이라고 하잖아. 유전자를 재배합한 식자재를 구입하면서 미국 소비자는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아예 모른다고.”
“한국은 안 그래. 유전자 재조합된 식품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7월 말 로랭과 나는 집 근처에 작은 쿠킹 스튜디오를 열기로 했다. 앞으로 이런저런 한국산 식자재를 이용한 요리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다양한 식자재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로랭이 한국에 ‘성형음식’들만 있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런 생산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과 농사 철학에 대해 직접 듣고 싶다. 자연과 함께하는 생산자의 농축산물을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정당한 가격으로 구입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슈퍼마켓 진열대를 독차지하고 있는 단일품종 ‘성형음식’들이 자연에서 재배된 ‘못생긴’ 녀석들에게도 약간의 자리를 나누어주었으면 한다.

성형 음식과 음식 문맹자

1 프랑스 시장 가판대의 다양한 호박들. 납작하게 눌러놓은 것 같은 모양의 호박은 한국에서 ‘피터팬호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패티팬쿼시다. 2 발리 시장에서 발견한 패션프루트. 발리에서는 마르키사라고 부른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성형 음식과 음식 문맹자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해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고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여성동아 2013년 8월 5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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