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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중음식과 프랑스 오트 퀴진에서 배우는 음식의 품격

푸드 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글·이미령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3.07.17 11:25:00

오늘날 한국은 뭐든 ‘빨리빨리’ 해야 하는 속도의 사회가 됐지만 궁중음식은 진정한 느림의 미학이 담겨 있는 슬로 푸드다.
어설프게 흉내 낸 음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음식’의 맛과 형식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후세에 전수해야 하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조선 궁중음식과 프랑스 오트 퀴진에서 배우는 음식의 품격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제3대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이사장.



로랭은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을 메트르(Mai^tre)라고 부른다. 프랑스어로 ‘명인’ ‘대가’를 일컬을 때 이름 앞에 붙이는 말이다. 그의 영향 때문인지 내게도 이사장이나 원장이란 호칭보다 ‘메트르 한’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사장이나 원장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만 특정 분야에서 ‘마스터’로 인정받는 거장을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약속된 날, 로랭은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입고 갈 양복과 와이셔츠를 직접 다렸다. 숱 없는 머리를 깨끗이 이발하고 양복에 맞춰 신고 갈 구두도 정성껏 닦았다.
“메트르 한을 뵙는데 격식에 맞는 차림을 해야지.”
얼마나 박박 닦았는지 반짝반짝 윤이 나는 구두를 높이 들더니, 몸을 뒤로 쭉 빼고 서서는 여기저기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한 말이다. 메트르 한이 로랭의 구두만 쳐다볼 것도 아닌데 너무 유난을 떠는구나 싶었다.
우리 부부는 약속 시간에 맞춰 궁중음식연구원에 도착했다. 연구원 마당에 주차를 하고 나니 딱 맞춰 한복려 이사장이 자상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준다. 5월 15일에 열린 ‘궁중음식, 소통의 길을 열다’라는 공개 행사 때 본 것까지 이번이 네 번째다. 한 이사장은 한국의 음식 문화를 배우려고 장기 체류를 결심한 로랭이 고맙고 기특한 모양이다. 알지도 못하는 프랑스인 셰프지만 한국의 음식 문화에 관심을 가진 만큼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열성을 다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궁중음식연구원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우리의 ‘얼’을 배우고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국 문화 체험’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해외 유명 요리사들에게 궁중음식연구원은 필수 코스다. 세계 컬리너리계에서 천재 요리사로 꼽히는 피에르 가니에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국인 셰프가 연구원을 방문하면 일단 의자가 아닌 방석에 앉기를 권하고 전통적인 반상 차림을 수저로 들도록 하지요.”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로랭을 바라보며, 신발을 벗고 한옥 온돌 바닥에서 한 이사장과 마주하고 앉았을 피에르 가니에르를 상상해보았다.
“우리나라 전통 음식에 사용되는 기본적인 소스들, 심플하고 담백한 간장 소스, 서양의 크림 소스 같은 효과가 나는 잣 소스, 마치 프렌치 드레싱처럼 초를 이용한 새콤달콤한 소스, 고추장이나 된장을 이용한 소스들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맛을 보게 하는 거예요. 우리랑 똑같이 숟가락, 젓가락을 이용해 기본적인 음식 맛을 보여준 뒤 우리 음식에 들어 있는 심오한 철학과 우주관을 설명하죠. 한 그릇, 한 상마다 오행(五行)의 순환이 연결돼 있는 우수한 음식이잖아요? 철학과 스토리가 있는 음식들인 거죠.”
한국에 온 외국인 셰프에게 전통 한식을 소개하고 교육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민간 외교다. 요란한 전시 행사나 방향과 장기 전략이 부재한 일회성 정책으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조선왕조 궁중음식’은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됐다. 13세(고종 39년) 때 덕수궁 주방 나인으로 입궁해 주방 상궁으로서 고종과 순종의 음식을 담당한 한희순 상궁이 제1대, 1944년부터 낙선재 소주방에서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30년간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으며, ‘궁중음식을 계량화하고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황혜성 선생이 제2대, 어머니 황혜성의 옆을 그림자처럼 지키며 수십 년간 전수받은 한 이사장이 제3대 기능보유자다.
조선 최고 식자재를 이용해 뛰어난 조리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만든 조선왕조 궁중음식은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정수이자 한국의 대표적 음식’이다. 하지만 이견도 많다. 대표적으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궁중음식의 뼈대가 흔들렸기 때문에 패망한 조선왕실 마지막 상궁들의 구전이나 손을 통해 전수된 음식을 조선의 정통 궁중음식 문화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 조선 시대에는 왕의 음식을 만들던 사람들의 다수가 남자였으며 드라마 ‘대장금’(한 이사장이 감수와 자문, 재현을 맡음)에서 수많은 여성 나인이나 궁녀들이 만들어낸 코스 음식은 왜곡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선 마치 조선 시대 궁궐에서 살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궁중음식의 원형과 조리법 혹은 당시 음식 문화에 대해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한 이사장은 이런 논란에 대해 말을 아끼며 조근조근하게 “일부 근거 없는 비평이나 비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요. 공부가 되면서 차차 나아지리라고 보지요”라고 할 뿐이다.
옛 상궁들이 전해준 조리법이나 사용된 식기, 예법 등에 대한 정보는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희순 상궁과 황혜성 선생이 함께 저술한 ‘이조궁정요리통고(1957)’는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기록물이다. 조선왕조 마지막 상궁이 구전으로 전달한 내용과, 여러 사람이 옛 고서들을 발굴해 정리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견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으로 수십 년에 걸친 연구 업적의 정통성과 정당성이 의심받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물론 음식은 시대와 함께 진화하고 시대에 맞게 변모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선 궁중음식은 오래전 박물관의 전시물 신세로 전락했을 것이다. 한 이사장의 설명을 들으며 옛 책에 나오는 제한적인 기록만 갖고 수백 년 전 음식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문득 열심히 음악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조선 궁중음식과 프랑스 오트 퀴진에서 배우는 음식의 품격

궁중음식연구원의 한식 다과, 장독대 풍경, 처마에 걸린 곶감.



볼 수도 없고 맛볼 수도 없는 기록 속 먹거리

조선 궁중음식과 프랑스 오트 퀴진에서 배우는 음식의 품격

한 이사장이 수집한 젓가락이 가지런히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궁중음식연구원 다실. 왼쪽부터 한 이사장, 로랭, 이미령.





영국 런던대에서 연주학과 석사 과정을 이수할 때의 일이다. ‘연주 미학’ 수업에서 ‘정격 음악(authentic music)’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정격 음악’ 또는 ‘원전 음악’으로 알려진 ‘HIP(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에 대한 해석을 놓고 입장이 갈린 것. 정격 음악이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초기 클래식 음악을 그 당시 사용하던 악기를 이용해 당대의 연주 스타일 그대로 연주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통이 아니라는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으로 한동안 학계가 시끄러웠다.
바흐나 모차르트 생전에 제조된 악기들은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처지에, 현대 악기들로 연주하는 것에 대해 틀렸다느니 가짜라느니 하며 엄격한 척도를 제시하는 음악학자들의 주장은 참으로 난감했다. 이런 이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당신은 그 시대를 살아봤나? 라모나 쿠프랭, 바흐나 모차르트가 실제 작곡한 의도와 연주 스타일을 들어본 적이 있나?”라고. 사실 답이 없는 질문이다. 살아보지 못했으니 알 수 없고, 들어보지 못했으니 무엇이 ‘정통’인지 판정할 수 없다. 조선의 궁중음식을 놓고 벌이는 논쟁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한 이사장이 조선 궁중음식의 재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 것은 1999년 어머니 황혜성(1920~2006)의 팔순 잔치를 준비할 때였다. 단순한 개인 생일상이 아니라 1887년(고종 25년)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의 팔순 잔치를 옛 기록에 따라 재현하는 뜻 깊은 행사였다. 이를 위해 한 이사장을 비롯해 황혜성 선생의 전수자들이 최고의 존경 선물로 음식을 높이 고여 바치는 진언찬안을 차린 바 있다.
“어머님 팔순 때 궁중 연회를 재현해드리고 싶었는데 옛 기록들을 보면서 궁중의 잔치 분위기와 음식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러다 마침 ‘궁정요리사 바텔’이란 프랑스의 17세기 궁중잔치 풍속을 볼 수 있는 영화가 나와 참고했지요. 그때 프랑스 오트 퀴진(haute cuisine·정통 최고급 요리)과 조선 궁중음식은 공통점이 참 많다고 생각했어요.”
17세기 프랑스 콩데 왕자의 집사 겸 요리사로 샹티이 궁에서 루이 14세를 비롯해 2천여 명이 넘는 귀족들을 위한 연회를 준비한 프랑수아 바텔. 2000년 제라르 드파르디외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다(자세한 내용은 여성동아 2012년 1월호 ‘비운의 요리사 바텔과 프라이빗 셰프의 세계’에서 소개한 바 있다).
“우리는 흔히 한국 음식이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하다고 하지만 프랑스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접시에 담겨 있는 ‘예뻐 보이는’ 음식이 아니잖아요. 식탁에 올리기까지 얼마나 손이 많이 갑니까. 여간한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콩소메(말갛게 끓인 수프)의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게 투명한 국물이 나오지 않아요. 콩소메 본연의 깊은 맛을 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죠.”
그렇다. 프랑스 왕은 아무 음식이나 먹지 않았다. 프랑스 전역에서 생산되는 최고 품질의 식자재가 왕궁으로 보내졌고, 이 재료들로 최고의 요리가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 왕의 권력에 버금가는 귀족들도 이와 비슷한 호사를 누렸다.
“조선에서도 왕이 드실 음식을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일이었겠습니까? 건강과 맛에 얼마나 신경을 썼을 것이며, 그것을 제대로 준비하고자 얼마나 정성으로 다했겠습니까? 영화에 묘사된 바텔을 보세요. 왕에게 올리는 음식을 준비할 식자재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왕을 실망시키게 된 것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잖아요. 조선에서도 왕이 드실 음식은 조선 전역에서 최고의 진상품만을 받아 만들었어요. 왕에 따라 차림상은 조금씩 달랐겠지만 기본적으로 몸에 좋고 품질 좋은 식자재로 만든 최고 음식들을 드셨을 거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왕 앞에 올리고, 궁궐 연회가 끝나면 남은 음식들을 반가로 보내 먹어보게 했다. 그러다 보니 반가 음식도 궁중음식의 영향을 받았을 테고, 양반집 부엌에 드나들던 일반 백성들도 궁중음식을 드물게나마 접해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과정이나 통로를 통해 궁중음식과 민간 음식이 서로 교류되고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한 이사장은 설명한다.
드라마의 특성상 일부 과장과 왜곡은 있다 해도 ‘대장금’을 통해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의 전통 음식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던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조선시대 왕에게 올리는 ‘고급스럽고 맛깔스런’ 음식들을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음식은 박물관 전시실 아닌 밥상 위에 있어야
로랭은 궁중음식연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물었다. 연구원이 박물관처럼 조선의 궁중음식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만 머무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한 이사장은 질문의 의도를 금방 알아채고 전통 음식 문화의 현대화와 진화에 대해 영화 ‘셰프(원제 Comme un chef·셰프처럼)’를 예로 들었다. ‘셰프’는 프랑스 컬리너리의 전통만 고집하며 새로운 경향에 무지한 스타 셰프와 ‘천재적인 조리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페인트공 얘기다. 하지만 페인트공은 고집불통 노 요리사의 전통적 레시피를 연도별로 외울 정도로 기초 조리 실력이 탄탄하다. 천재는 천재가 알아보는 법.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과 우정이 영화의 줄거리다.
“전통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연구가 없고 기능만 가지고 있다면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우리 연구원은 옛 모습 그대로 음식 문화를 보존하고 전수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에요. 현대라는 시대적 요구와 외국으로부터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인정합니다. 음식 문화라는 것은 시대에 맞게 진화해나가는 거죠. 정통성과 아이덴티티는 그대로 보전하고 계승하되 시대적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필요하다면 변화시킬 수 있는 융통성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통이 없으면 뿌리도 없는 거죠. 모래성을 쌓는 거예요.”

조선 궁중음식과 프랑스 오트 퀴진에서 배우는 음식의 품격

1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 상궁이었던 한희순 상궁. 13세 때 덕수궁 주방 나인으로 시작해 경복궁, 창덕궁을 거치면서 고종, 순종의 음식을 담당했다. 2 한복려 이사장. 3 낙선재 소주방에서 한희순 상궁(왼쪽에서 두 번째, 1972년 작고)으로부터 30년간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은 한 이사장의 어머니 황혜성 교수(맨 왼쪽, 2006년 작고). 4 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만드는 한 이사장(왼쪽). 5 1999년 어머니 황혜성 교수의 팔순 잔치 때 세 딸(한복려, 복선, 복진). 6 조선왕조 궁중음식 제2대 기능보유자였던 황혜성 교수가 생전에 음식을 만드는 모습. 이 사진들은 모두 궁중음식연구원 벽에 걸린 액자를 촬영한 것이다.



조선 궁중음식과 프랑스 오트 퀴진에서 배우는 음식의 품격

7 서울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1887년 신정왕후 조대왕대비 만경전 팔순 잔치를 재현하는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한복려 이사장. 8 2010년 출간된 ‘3대가 쓴 한국의 전통음식’은 황혜성과 장녀 한복려, 삼녀 복진(전주대 한식조리학과 교수), 황혜성의 손녀이자 차녀 한복선(한복선 식문화연구원장, 시인)의 딸 정라나(경희대 조리서비스경영학과 교수)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9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선보인 조선시대 임금의 12첩 수라상(왼쪽)과 별도의 특별한 반찬을 놓는 소원반.



영화 ‘셰프’에서도 프랑스 정통의 오트 퀴진을 하면서 현대에 각광받은 분자 요리를 접목하는 등 시대에 맞는 요리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분자 요리도 철저히 전통에 뿌리를 둔다. 전통에 무지한 일부 조리사가 겉멋만 잔뜩 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분자 요리를 선보이며 감동을 안겨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래서다.
그런 의미에서 궁중음식을 코스 요리로 준비하는 것은 전통의 왜곡이 아니라 현대적인 재해석이라고 본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양반 가문에서는 지금처럼 한 상 가득 차려놓고 함께 둘러앉아 먹는 것이 아닌 독상이 기본이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음식을 개인 접시에 따로따로 담아 차례대로 내는 것이다. 과거 궁중 연회에서도 의식과 함께 공연을 보면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공연에 맞게 시간대별 음식이 나왔을 것이다. 이를 일종의 코스 요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음식 문화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진화해야 하지만 뿌리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조선의 궁중음식은 국가가 나서서 지켜야 할 우리의 전통문화이고 문화유산이다. 오늘날 한국은 뭐든 ‘빨리빨리’ 해야 하는 속도의 사회가 됐지만 궁중음식은 진정한 느림의 미학이 담겨 있는 슬로 푸드다. 어설프게 흉내 낸 음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음식’ 맛과 형식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후세에 전수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한 이사장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궁중음식의 명맥이 이어지는 나라의 음식 문화가 전반적으로 발달했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광장에서 외국인을 모아놓고 시끌벅적 떡볶이를 맛 보이는 것이 한식 세계화의 전부는 아니다. 한식 세계화는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오랜 교류와 소통을 통해 이해하게 되는 것이 음식 문화인데, 일방적인 행사로 한식 이미지가 갑자기 높아지거나 세계인이 한식을 즐기게 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한 이사장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왕에게 올리던 음식에서 품격을 배우다
로랭은 궁중음식이라고 하면 어렵고 비싸다는 이미지 때문에 한국인조차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마스터 셰프’ 같은 프로에서 궁중요리를 소개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실제로 불교계에서도 요리 경연대회를 개최해 사찰 음식까지 경쟁을 시키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한 이사장은 드라마 ‘대장금’을 예로 들었다.
“드라마에서 나인들이 요리 경연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왔는데 사실 제 의도와는 거리가 있었어요.”
그는 선의의 경쟁은 좋으나 순식간에 점수를 매겨 ‘스타’를 만들어내는 경연 대회가 궁극적으로 음식 문화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입에 넣으면 바로 자극이 오는 음식들이죠. 질겨서 씹는 정도가 강해지고, 순간적인 쾌감을 안겨주는 강한 양념을 선호해서 순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옛 음식을 먹으면 밍밍하고 심심하다고 느껴요. 양념이 강해야 맛있다고 하죠. 음식도 순하고 여유 있고 모든 게 조화로워야 하는데 그런 음식이 외면 받는 거예요. 빨리 스타 셰프가 되고 빨리 성공하고 싶어서 자꾸 자극적인 음식을 만들게 돼요. 물론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음식에도 품격이 있는 법이에요.”
궁중음식연구원을 나서는데 한복려 이사장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먹는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대접하는 음식을 아무렇게나 만들어 아무 그릇에 담아 서빙할 수는 없다. 기본적인 격식을 차리게 된다. 로랭이 ‘메트르 한’을 만나려고 아침부터 옷을 다리고 이발하고 구두를 닦으며 부산을 떤 것도 조선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를 만나는 데 최소한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왕에게 올리던 음식에서 최상의 ‘품격’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왕이 아무리 검약하고 백성과 같이 소박한 음식을 먹었다 해도 양푼에 아무렇게나 밥과 찌개를 담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품격이며 우리가 지금 조선의 궁중음식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 궁중음식과 프랑스 오트 퀴진에서 배우는 음식의 품격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해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고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여성동아 2013년 7월 5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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