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아이들은 유방암으로 엄마를 잃을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안젤리나 졸리(38)는 5월 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내 의학적 선택’이라는 글에서 유방암과 난소암 위험 인자가 있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피부색이 각각 다른 여섯 자녀를 둔 엄마다. 캄보디아에서 아들 매덕스(12)를, 에티오피아에서 딸 자하라(9)를, 베트남에서 아들 팍스 티엔(9)을 입양했고, 배우 브래드 피트와의 사이에 딸 샤일로 누벨(6), 쌍둥이인 아들 녹스 레온(5)과 딸 비비엔 마셸린(5)이 있다.
난소암으로 어머니 잃은 후 트라우마 시달려
2005년 영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에 부부로 출연한 뒤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7년간의 동거 끝에 지난해 4월 약혼했다. 3월 영국의 한 연예 매체는 피트가 2월에 졸리와 향후 90일 이내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웨딩 라이선스(wedding licence)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졸리와 피트가 칸 영화제가 끝난 5월에 세기의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졸리가 결혼을 앞두고 전신 성형을 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추측을 뒤로하고, 2월 2일부터 4월 27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양쪽 가슴 절제와 복원 수술을 받았으며 흉터 자국을 제외하면 외견상 이전과 변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의 신부가 돼야 했을 졸리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트라우마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어머니인 배우 마르셀린 버트란드는 난소암에 걸려 10여 년간 투병하다 2007년 57세로 숨졌으며, 외할머니도 난소암으로 투병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지독한 고통을 지켜봤던 졸리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런 시련의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졸리는 2011년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과 일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것도 많이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처럼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엄마는 10년 가까이 암과 싸웠고, 첫 손주를 팔에 안기까지 오랫동안 버텨야 했어요. 하지만 내 다른 아이들은 외할머니를 만날 수 없었기에 외할머니가 얼마나 다정하고 자애로운지 알 수 없어요.”
그는 어머니의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운명을 피하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졸리의 부모는 모두 배우다. 아버지 존 보이트는 영화 ‘폭주 기관차’로 1979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명배우였고 어머니 마르셀린 버트란드도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꾸준히 영화에 출연했다. 배우 집안에서 태어난 졸리가 배우가 된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졸리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던 것 같다. 졸리가 태어난 이듬해인 1976년 부모는 이혼을 한다.
오빠 제임스 헤이븐과 졸리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이 시기 졸리는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어렵게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미국 사회가 이혼에 관대하다 해도 여자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졸리에게 부모와 아이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수술 전 과정을 함께한 브래드 피트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졸리의 결정을 직접 눈으로 지켜보면서 그녀의 선택이 정말 영웅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원하는 건 졸리가 나와 우리 아이들과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졸리는 “이번 수술로 인해 여성성을 조금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성을 해치지 않는 강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졸리는 가족을 위해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사진은 2011년 11월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하네다 공항을 나서는 모습.
▼ 졸리가 받은 유전자 검사&유방 절제술은…
“BRCA1(브라카)으로 알려진 유전자 때문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였고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50%였다. 난소암보다 유방암 위험 인자가 더 심각했고, 수술도 더 복잡해 유방 수술부터 했다. 이번 수술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5%로 낮아졌다.”
졸리가 기고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브라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유방암과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졸리의 어머니 버트란드는 난소암이었는데 졸리는 왜 유방을 절제했을까.
“브라카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되면 유방암과 난소암 등 여성 생식기 암 발병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졸리가 수술을 결심한 것 같아요.”
김승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유방암클리닉 팀장의 말이다. 김 교수는 졸리가 유방 절제를 받았다는 것은 유방 조직인 유선을 제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유방암은 주로 유선 조직이나 유관에서 발생하므로 유선 조직을 제거하면 암 발병 확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이후 졸리가 받은 유방 재건술은 외형만 복원한 것으로, 모유 수유나 유방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유방암은 난소암·대장암과 함께 가족력이 강한 암이다. 그러나 가족력이 있다고 무조건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BRCA1·2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된 경우에 한해, 유방암이 발병할 가능성이 80% 수준으로 예측된다. 또한 발병 시기도 빠르며 양쪽 유방에 모두 암이 발생할 위험도 높다. 김 교수는 “전체 유방암 환자 중 유전자 이상이 원인인 비율은 6~7% 수준이며 나머지는 여성호르몬이나 음식, 출산 기피, 술, 담배, 고지방식 등으로 생긴다”고 설명했다.
졸리는 난소암 예방을 위해 난소 적출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이 일반적으로 난소암에 걸릴 확률은 1.5%다. 그런데 BRCA1 변이가 있는 경우는 이 확률이 40~60%, BRCA2 변이의 경우는 16~27%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외과 수술만이 유방암이나 난소암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김 교수는 일 년에 두 번 초음파나 MRI 검사 등을 통해 변이의 진행을 예의 주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예방적 차원의 유방 완전 절제술은 우리나라에서 시도된 적은 있지만 거의 드물다. 수술을 해도 유방암은 완전히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6개월마다 초음파 검사 등을 더 철저히 하는 게 이롭다”고 말했다. 또 BRCA 변이 여부와는 상관없이, 적정 몸무게 유지와 주기적인 운동, 음주 절제, 금연 등을 통해서도 유방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어머니나 자매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다면 혈액 검사를 통해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유전 상담을 통해 위험도를 평가한 후 위험도가 높을 경우 혈액을 채취해 DNA 염기 서열을 해독, BRCA 유전자 돌연변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비용은 80만원 안팎이며 가족력이 있다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BRCA1·2 유전자 돌연변이는 전체 여성의 약 0.2%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유럽보다 비율이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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