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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쾌활 노현희로 돌아왔어요

아픔 딛고, 6년 만에 드라마 복귀

글·진혜린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3.03.15 14:35:00

마음속으로 응원하던 이가 있었다. 세상의 시선이 자물쇠가 돼 연극 무대 위를 벗어나지 않던 그였다. 그가 조금만 덜 솔직했더라면, 연기에 대한 사랑이 조금만 덜 컸더라면, 배우의 의무를 조금만 소홀히 했더라면 그가 받아야 했던 상처의 크기가 조금은 더 작았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제는 그가 꿋꿋하게 지켜왔던 솔직함과 사랑, 그리고 책임감이 열쇠가 돼 사람들의 시선에 묶인 자물쇠를 열고 있다. 6년 만에 ‘당신의 여자’로 드라마에 복귀한 노현희의 그 당당한 새 출발이 반갑다.
명랑 쾌활 노현희로 돌아왔어요


“오랜만에 드라마 촬영이라 긴장됐죠. 감이 떨어져서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감독님이 오히려 ‘선수가 뭘 걱정하냐’며 안심시켜주셨어요. 그간 가지고 있던 좌절 아이콘을 버리고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만큼 명랑 쾌활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2월 18일 첫 방송된 SBS 아침드라마 ‘당신의 여자’에서 마동희 역을 맡은 노현희의 출사표다. 1991년 데뷔해 ‘다모’ ‘태조왕건’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로 사랑을 받던 노현희(41)의 마지막 드라마는 2007년 방영된 MBC ‘메리대구 공방전’이다. 6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섰으니 낯설고 어색할 법도 했다.
“오디오 스태프들이 제 목소리가 너무 크니까 마이크를 멀리 잡으라고 이야기하는 걸 살짝 들었어요. 10년 동안 연극 무대에만 익숙해져서 볼륨 조절이 안됐나 봐요(웃음).”
사실 첫 촬영을 하기까지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이었다. 6년 전 브라운관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또다시 불거져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됐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카메라 앞에 노현희로 서기까지
“열아홉 살에 데뷔해서 한 번도 ‘쟤, 연기가 왜 저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쟤, 얼굴이 왜 저래?’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죠. 배우가 작품에서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데, 얼굴만 부각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드라마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연극만 하면서 손가락 빨고 살았어요” 하며 웃어 보였지만 그것은 연기 하나로 승부를 보고 싶은 배우의 자존심이자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지금, 또다시 ‘성형 논란’으로 작품의 몰입도를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짐짓 걱정이 앞섰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막상 방송 후 시청자들과 언론의 호평이 쏟아져서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캐릭터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고민도 많이 했고 반신반의한 점도 많았어요. 어색하지는 않을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을지, 방송을 보는 내내 애간장이 타들어갈 것 같아 본 방송을 챙겨 보지도 못했어요. 오죽했으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질타받는 악몽까지 꿨다니까요(웃음). 그런데 의외로 좋게 보셨다는 분들이 많아서 용기를 내 방송을 봤어요. 그 뒤로는 밤새 모니터링을 했죠. 촬영 중에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편집을 참 잘 해주신 것 같아요(웃음). 저는 꼭 좋은 평이 아니더라도 연기로 평가받고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연기가 어떻더라, 배역이 어떻더라, 이런 말을 더 많이 듣고 싶어요.”
노현희는 작품에서 천방지축 노처녀 역을 멋들어지게 소화해내고 있다. 드라마 ‘파도’로 인연을 맺었던 PD가 ‘이 역은 노현희 거다’며 추천해줬다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실제로 8세 연하인 배우 김민찬과 드라마에서 연인 구도가 형성된다는 것. 어린 남자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앞으로 러브라인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도 되지만 처음에는 워낙 걱정할 것이 많아서 오히려 그런 정도는 부담스럽지 않았어요(웃음). 예전에 한창 활동을 많이 할 때는 연기가 너무 익숙해서 마치 생활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모든 것이 다 처음 같아요. 아직은 예전의 기량을 다 보여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노현희의 시간은 현재로 흐른다
그동안 브라운관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가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 그는 그간 숨만 쉬어도 구설에 오르던 때가 있었다며 ‘이제는 다 잊었다는 듯’ 밝게 웃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2007년 이후 공백기를 거쳐 재기를 계획하던 때였다. 잠깐 방송 출연을 했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이 냉담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성형 사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그냥 남들처럼 조용히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제 자신이 조금 망가져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성형 부작용과 이혼이 맞물리며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됐다. 그의 솔직함에 살이 붙고 오해가 쌓여 악성 댓글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만 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할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대학로와 집만 오가던 생활이었다. 그토록 무서웠던 사람들의 시선도 무대에 서면 두렵지가 않았다. 모든 고통과 아픔은 사라지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1년에 10편씩 작품을 소화해냈고, ‘폭소 춘향전’ 등을 롱런 작품이자 전국 순회 공연작 대열에 올려놓았다.

명랑 쾌활 노현희로 돌아왔어요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에게 쏟아졌던 악성 댓글이 단지 ‘성형’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창 활발히 활동할 때 사극에 출연하며 자극적인 장면들을 많이 찍었어요. 그때 한 후배가 ‘선배는 더러운 역 전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제가 맡은 역을 보고 저의 실제 모습도 그럴 거라고 단정 짓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것은 제 역을 향한 멸시가 아니고, 저 개인을 향한 멸시처럼 들렸죠.”
데뷔 이래 소속사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연예계를 헤쳐 나가다보니 남들이 안 하려고 하는 역, 이미지 때문에 꺼리는 역만 자신의 차지가 됐다. 술집 작부 역이나 덤벙거리고 빈 구석 많은 바보 역도 도맡아 했다. 그런 이미지가 쌓이고 쌓여 자신에게 화살이 돼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는 대신 오히려 속이 꽉 여문 배우가 되고자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세상에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작은 역이라도 제대로 해내는 큰 배우가 되고 싶었다.
“30대 때 들었던 생각은 나이 마흔을 넘긴 배우가 주어진 배역을 소화해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어떤 질타보다 더 무서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무대 위에 섰어요. 연극 무대에서는 관객들의 반응을 곧바로 볼 수 있어서 고쳐야 할 것, 이어가야 할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죠.”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에 5년간 출연하면서 엄기준, 오만석, 송창의, 원기준의 무명 시절을 함께 했다. 당시에 “노현희와 작품을 하면 스타가 된다”는 말도 있었단다. 그때 자신이 아닌, 상대방을 더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작년에는 고속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하던 행인을 피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링거 한 병 맞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끙끙 앓도록 아프던 몸이 무대에만 올라가면 힘이 솟아났다. 내공은 쌓이고 마음은 단단해졌다. 그것은 무대가 그에게 선사한 치유의 선물이었다.
“최근 ‘강심장’이나 ‘세바퀴’에 출연할 때 주변에서 ‘마음 단단히 먹어라’라는 말을 들었어요. 출연진 모두 입담이 대단해서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다는 거였죠(웃음). 그런데 막상 그 어떤 질문도 아프지 않았어요. 이미 제 안에서 순화되고 다듬어져서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 할 만큼이 된 것 같아요. 그런 저의 모습에 오히려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아파도 아프지 않게, 다시 시작한다

명랑 쾌활 노현희로 돌아왔어요

노현희는 ‘당신의 여자’에서 명문대 출신에 눈치 없고 상황 파악 잘 못하는 ‘모태솔로’, 마동희로 분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에게 과거를 묻는다. 하지만 그의 현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11년 전 인천전문대를 시작으로 명지전문대, 서울종합예술학교에 이어 장안대까지 교수로서의 경력 또한 그녀의 현재다. 학생들과 3일 밤을 새우며 작품을 준비하는 그를 학생들은 ‘장안대 노숙자’로 부르며 믿고 따랐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자신의 ‘배움’ 또한 멈추지 않는다. 조금만 틈이 나면 노래나 춤 등 각종 레슨으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낸다. 작년부터는 숙명여대 원격대학원 향장미용과를 다니고 있다. ‘배우’는 평생 배우라고 ‘배우’란다.
“워낙 성형으로 이슈가 되다 보니까 아예 그쪽으로 뿌리를 뽑고 싶었어요(웃음). 보통 연극할 때도 헤어나 메이크업 정도는 제가 다 하거든요. 사극 스타일, 일본 전통 스타일, 뭐든 가능해요(웃음). 그래서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저 같은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죠.”
그는 성형수술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의 경험담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조언이라 귀가 쫑긋해져서 한참을 듣게 됐다. 일단 ‘한번에 확실히’ 하기보다 ‘조금씩 티 안 나게 예뻐지는 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원 플러스 원’ 행사. 쌍꺼풀을 하러 갔는데 코도 하면 싸게 해준다는 말에 유혹되지 말라고 했다. 한번 성형수술을 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신중히 선택하라는 뜻이다.
“이제 저는 병원 근처에도 안 가요. 코 수술 부작용으로 한쪽 코로만 숨을 쉬고 있는데 행여 ‘노현희가 또 수술한다’는 소문이 돌까봐 손을 쓰지 못하고 있어요. 제 상황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실 때 병원에 찾아갈 생각이에요.”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강심장’ 출연 이후 그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그가 걸어왔던 어두운 터널을 생각해보면,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 울음을 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현희는 “내 인생에서 연기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 다치고 아프고 그래도 사랑해서 다시금 일어선 그가 멋있어 보였다.
“식당을 운영할 때 새로운 손님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한번 발길을 돌린 손님의 마음을 되돌리기가 더 어렵다고 하죠. 저를 모르는 사람에게 제 자신을 알리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한번 외면한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일거예요. 그것이 앞으로 제가 해나가야 할 일이 아닐까요?”

장소협찬·마켓 밤삼킨별(02-335-3532)

여성동아 2013년 3월 5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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