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잘하고, 경쟁 없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 같은 핀란드 청소년들도 알고 보면 많은 문제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최근 한국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비통한 소식을 접한 적이 있는데 핀란드 청소년 자살률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핀란드 남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세계 5위, 여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세계 2위다.
청소년 자살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우울증이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 자살 청소년 중 90%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었으며, 75%는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50%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핀란드 국립보건복지연구원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10명 중 1명은 중증 이상의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여학생의 우울증 발병률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의 우울증이 급증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학교에서 왕따로 고통을 당하는 학생들도 있고, 부모의 이혼과 재혼 등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도 의외로 많다. 핀란드의 이혼율은 50%에 육박한다. 그 밖에 부모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폭력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학생들의 천국’ 핀란드에서도 자살률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핀란드 교육 당국은 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청소년은 우울증에서 자살까지 성인보다 빨리 진행
핀란드 정부는 늘어나는 청소년의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부모 및 청소년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성인(교사, 청소년 지도자, 상담자 등)들이 자살 위험에 놓여 있는 청소년을 도울 수 있는 매뉴얼을 펴냈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은 우울증에 걸린 시점부터 자살을 결정하기까지 과정이 성인보다 빠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청소년의 우울증이 심해진다거나 자살과 관련된 작은 신호가 보이면 성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빠르게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성인들은 때로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실제로 자살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관심을 끌고 싶기 때문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살 예방 매뉴얼에 따르면 실제로 자살한 청소년의 3분의 2는 그 전에 주변에 자살과 관련된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따라서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감지한다면 어느 정도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살 충동을 성인보다는 친구나 또래에게 털어놓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친구의 자살을 예방하는 최선책은 친구의 자살 계획 혹은 충동을 성인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우울증에 걸린 아이들에게는 그들이 얘기를 꺼내기 전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먼저 던져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온다면 지체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때로는 자살을 얘기하던 청소년이 갑자기 밝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 주위 사람들은 자살 위기를 극복했다고 안심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살 결심을 굳힌 후 어려움이 곧 끝난다는 안도감 때문에 편안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매뉴얼의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은 특히 인상적이다. ‘어떤 청소년이든지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자기 파괴의 단계를 밟을 수 있다고 우리는 예상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청소년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그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사회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면 절대로 그들은 쉽게 자살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보영 씨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교육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99년부터 핀란드에 거주하고 있으며 핀란드 교육법을 소개한 책 ‘핀란드 부모혁명’ 중 ‘핀란드 가정통신’의 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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