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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의 황제 김동성 가족 공개

“악성 루머와 누명으로 가슴앓이 8년, 툭툭 털고 예능인으로 종횡무진”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08.16 11:54:00

최근 방송에서 여전한 운동 실력과 입담을 자랑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훈남 금메달리스트 김동성이 아내 오유진 씨와 나영·마빈 남매를 공개하며 단란한 가족애를 과시했다.
은퇴 후 지겹게 따라다니는 악성 루머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쇼트트랙의 황제 김동성 가족 공개


10년 전 온 국민이 TV 앞에서 억울함과 분노로 발을 구른 사건이 있었다. 2002년 2월 21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남자 1500m 경기에서 김동성(32)과 미국의 안톤 오노가 1, 2위로 나란히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그러나 김동성의 환호는 곧 좌절로 바뀌었다. 비디오 판독 결과 김동성이 오노를 밀었다는 심판 판정에 따라 김동성은 실격을 당하고 금메달은 오노 차지가 된 것. 이 사건에 한국인들이 얼마나 분통을 터뜨렸는지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미국전에서 동점골을 넣은 안정환 선수가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비꼬는 골 세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얼마 전 김동성과 안톤 오노의 악연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6월 6일 방영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동성이 “미국에 있을 때 9년 만에 오노와 마주쳤는데, 먼저 아는 척하기에 나도 아는 척했고, 다가오더니 팔을 벌리기에 얼떨결에 포옹했는데 주변에서 사진을 찍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 무렵 자서전을 출간한 오노가 책에서 김동성이 오노에게 “네가 1등이고 최고의 선수다”라고 했다며 하지도 않은 말을 쓴 뒤 마치 그것을 인정하는 듯한 사진 촬영을 유도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동성은 “난 두 번 사기당한 것”이라 했고, MC로부터 “김동성에게 오노란?”이란 질문을 받자 “미움이자 제가 안고 가야 하는 친구”라고 답했다.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에서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에 금메달을 빼앗기며 올림픽 2연패에 실패했지만, 누가 뭐래도 김동성은 쇼트트랙의 황제다.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남자 1000m와 5000m 계주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고, 그해 세계선수권대회 3000m 금메달, 1999년 월드컵대회에서는 9차례나 우승을 했다. 그리고 2002년 동계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6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당시 남자 1500m 결선에 출전한 그는 오노가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 복수할 기회를 잃은 것이 분해 경기 초반부터 스퍼트를 해 2위와 한 바퀴 반 이상 앞서며 우승을 했다. 이 경기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지금도 ‘분노의 질주’라는 제목으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김동성의 선수 생활은 무릎 연골 부상과 함께 끝이 났다. 2005년 스물다섯 살에 은퇴를 선언하고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코치로 활동하다 2011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요즘 김동성의 얼굴을 빙상장 대신 TV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다. ‘불멸의 국가대표’ ‘출발 드림팀’ 등에 출연하며 예능인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외모부터 입담까지 두루 갖춘 그는 2004년 여름 오유진(30) 씨와 결혼해 슬하에 나영(7)과 마빈(5) 남매를 두었다.

해명할 수 없는 스캔들에 8년간 시달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 비스트로 카페에서 김동성 가족을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네 사람은 누가 봐도 똑 닮은 얼굴.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중 잠깐 졸다 잠이 덜 깼는지 두 아이는 아빠 엄마 품에 폭 안겨 잠투정을 한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이나, 서로를 바라보는 부부의 따뜻한 눈빛이 닮아 있었다. 아직도 앳된 얼굴의 두 사람. 다정한 모습이 결혼 8년 차임에도 신혼부부처럼 보였다.
이웃사촌이던 이들 부부는 2003년 친구들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런데 그 장소가 동네 나이트클럽이었던 탓에 한때 두 사람의 만남이 입방아에 올랐다.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만난 건 맞지만 부킹은 아녜요(웃음). 친구들 모임에서 소개받은 건데 장소 때문에 오해가 생겼죠.”
남들이야 뭐라든 첫눈에 아내에게 반한 김동성은 곧바로 데이트를 신청했고, 만난 지 10개월 만인 2004년 8월 말 웨딩마치를 울렸다. 김동성의 나이 스물넷, 아내는 스물두 살이었다. 그 무렵 김동성은 황당한 스캔들에 휘말렸다. 한 여배우와의 불륜설이 인터넷을 통해 퍼진 것. 2002년 한강 둔치에서 유부녀인 여배우와 스포츠 스타가 자동차 밀회를 하다 경찰에게 발각됐다는 내용이었는데, 이후 ‘그 당사자는 허벅지가 좋은 스포츠 선수다’라는 내용이 추가되면서 김동성의 이름이 거론됐다. 실체 없는 루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사자로 지목된 여배우 부부의 불화설이 돌더니 결국 2006년 이혼을 발표하자, 아예 루머가 기정사실이 됐다. 김동성으로선 “내가 아니다”라고 세상을 향해 떠들 수도 없고 말 그대로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오유진 씨가 이런 황당한 소문을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결혼 직전이었다.
“일단 남편 입으로 아니라고 했으니 믿어야죠. 솔직히 말해 결혼을 앞두고 긴가민가한 부분도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제 눈으로 그게 헛소문이라는 걸 확인했죠. 결혼식 당일 아침 신부 화장을 하러 남편과 함께 헤어숍에 갔는데 마침 그 여배우도 메이크업을 받으러 왔더라고요. 루머가 사실이었다면 저희 부부와 마주쳤을 때 어색해하고 그랬을 텐데 아예 알아보지도 못하고 지나치더라고요. 남편 말이 진실이란 걸 확신했죠.”

쇼트트랙의 황제 김동성 가족 공개

채널A ‘불멸의 국가대표’에 출연하는 김동성은 다양한 운동 종목에 도전하려니 몸은 힘들어도 자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내의 믿음은 굳건했지만 악의적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번에는 이들 부부가 서둘러 결혼한 것도 이 사실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문이 번졌다.
“애초에 루머가 사실이라면 제가 결혼할 수 있었을까요. 어떤 부모가 그런 남자에게 딸을 시집보내겠어요. 장인, 장모님도 모든 소문이 거짓임을 알고 딸을 제게 주신 거죠.”
하지만 이 루머는 최근까지도 끈질기게 김동성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김동성은 포털 사이트에 ‘연관 검색어’ 삭제를 요청하고 방송에 출연해 적극 해명했다. 혹여라도 아이들이 커서 인터넷을 하다가 부모와 관련된 루머를 접하고 상처를 입을까 걱정해서다.
숱한 소문들에도 서로를 아끼며 지금까지 살아온 부부. 실제로 김동성이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잘하는지 궁금했다. 나이도 나이인 데다 보여준 모습만 놓고 보면 로맨틱한 이벤트도 자주 할 것 같지만 김동성의 약점은 이벤트라고. 심지어 결혼 전 프러포즈도 제대로 못해 아내 오씨는 그 서운함을 방송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김동성은 “주는 것보다 받는 데 익숙해 그런 것”이라고 변명했다.
“저도 이 사람도 집안에서 막내예요. 자라면서 부모님뿐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받기만 했지 베풀 일이 없었어요. 하지만 아빠가 된 뒤로는 베푸는 일이 더 많아졌죠. 아이들한테는 시도 때도 없이 여러 가지를 해줘요. 딸! 아빠가 선물 자주 사주지? 엄마는 안 사주고?(웃음)”
결혼을 빨리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오씨는 요즘 들어 커리어우먼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친구들을 보면 가끔 아쉬울 때가 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사라진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친구들이 육아 고민을 할 시기에 자신의 아이들은 이미 성장해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가질 걸 생각하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미국에서 제자 폭행설 사실이었다면 지금 감옥에 있을 것
김동성은 결혼 직후 2005년 은퇴하고, 이듬해 국제심판이 되기 위해 어학연수차 미국으로 떠났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 덕분에 코치직 제안도 들어와 이참에 지도자로서 경력을 쌓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부부의 바람과 달리 미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심지어 김동성은 학생들에 대한 폭행 혐의를 받았다. 2011년 2월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김동성이 스케이팅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하키 스틱, 스케이트 날 보호 가죽, 타이머 등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신체적 체벌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신문에 체벌을 받았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주장이 함께 실리며 큰 파장이 일었다. 한국에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그를 비난했다. 김동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폭행’에만 관심을 가질 뿐 사실은 알려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2009년 미국의 한 스케이트 클럽에서 코치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아이들 실력이 늘자 수강생들이 쇄도했고 클럽에서는 저를 이용해 광고도 많이 했는데 정작 고용 계약서는 써주지 않았어요. 클럽 측에 계약서를 써달라고 요구했더니 바로 해고하더군요.”
그는 클럽을 나와 자신의 이름을 딴 ‘DS 스케이트 클럽’을 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전 클럽에서 가르쳤던 70명의 학생들 중 40명 정도가 그를 따라 옮겼고, 그가 지도한 팀이 미국 클럽 대회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전에 있던 클럽에서 3년 전 제게 스케이트를 배웠다는 한 아이의 부모가 미국빙상연맹에 고발을 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자신의 아이를 폭행했다는 이유에서였죠. 전에 있던 클럽에서 견제한 것 같았어요.”
김동성은 2011년 2월 연맹에 의해 코치직 자격 정지를 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성년자 폭행 혐의로 미국 미성년 사법 기관인 몽고메리 카운티 차일드 센터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과 동시에 6개월간의 코치직 자격 정지 제재가 풀렸다. 그러나 미국빙상연맹은 7개월에 걸쳐 그와 관련된 의혹을 조사한 뒤 청문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문회에서 결백하다는 김동성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2년 5월 말, 미국빙상연맹 중재위원회는 “메릴랜드 주와 버지니아 주 3개 스포츠클럽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동성이 하키 채를 이용해 때리거나, 라커룸에 선수들을 감금하는 등 모두 18가지에 해당하는 부적절한 강압 행위를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동성은 연맹이 “폭행했다고 주장하는 7~8명의 이야기만 듣고 나머지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는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심지어 자신을 따라 옮긴 학생들의 부모에게도 이전 클럽의 회장과 부회장이 ‘옮기지 말라’며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통유리로 된 스케이트장에서 훈련 도중 아이들에게 손을 댔다면 그 장면을 보지 못한 부모들이 없을 겁니다. 제가 그들이 주장하는 강압 행위를 했다면,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은 폭행을 방조한 꼴이 돼요. 미국에서는 아이가 부모한테 맞았는데, 이웃에서 그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죄가 되니까요. 제가 무혐의 판결을 받은 것도, 저와 함께 운동하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탄원서도 연맹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그들이 주장하는 항목마다 모두 반박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쇼트트랙의 황제 김동성 가족 공개

둘이 넷이 되면서 더 행복해 보이는 김동성 가족.



그는 지지부진한 싸움을 이어갔다. 자신 이전에 미국에서 코치직을 했던 한국 선수들 역시 비슷한 일로 직위를 박탈당한 뒤,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변호사 선임 비용이 부담스웠지만, 메달리스트로서의 명예 때문에 지금까지 싸웠어요.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떳떳한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싶고요.”
김동성과 미국빙상연맹과의 싸움은 현재 진행 중이다. 미국빙상연맹의 코치자격은 복직됐으나 이번 법정 다툼으로 변호사 선임 비용이 1억원 이상 들었고 명예훼손으로 큰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동성은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꼭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떠난 미국. 그곳에서 부부는 평생 할 마음고생을 다한 듯 보였다. 큰 희망을 품고 시작한 미국 생활이었지만 떠날 때는 상처가 가득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그는 당시 사건과 관련한 모든 서류를 고려대와 삼성전자에 제출하고 사실 관계를 밝힌 뒤 코치와 강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불국단’ 노총각 멤버들이 부러워하는 결혼 생활
김동성은 이제는 1인다역을 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불멸의 국가대표’ ‘출발 드림팀’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한편 고려대학교 아이스링크와 경기초등학교에서 빙상꿈나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일뿐 아니라 두 아이의 아빠로서 가정에도 충실하다고 자부한다. 아내 오씨는 “전에는 아이들이 아빠를 보면 낯설어 하며 ‘엄마한테 가겠다’고 울곤 했는데 요즘은 아빠가 몸으로 놀아주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고 했다. 신혼 초부터 김동성이 집안일을 자주 도와준 편이라고 남편 자랑도 아끼지 않는다.
“요즘은 외부 활동이 많아 제가 집안일을 전담하지만 미국에 있을 때는 지금보다 많이 도와줬어요. 특히 아내들이 귀찮아 하는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등은 빠지지 않고 해줬죠.”
오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방송계에서 “김동성은 남편으로도 아빠로도 메달리스트다”라는 칭찬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동성이 출연하는 채널A ‘불멸의 국가대표’는 각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 종목을 하나씩 경험하며 해당 종목 선수들과 대결을 펼치는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만기(씨름), 이봉주(마라톤), 김세진(배구), 우지원(농구), 심권호(레슬링), 양준혁(야구), 김동성(쇼트트랙) 등 ‘불국단’ 멤버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김동성은 ‘불멸의 국가대표’를 통해 오유진 씨와 두 자녀를 공개한 바 있다. 탁구 국가대표 유승민과의 대결을 위한 자체 평가전에서 꼴찌를 한 벌칙으로 이들 가족을 초청한 것. 김동성 가족이 촬영장에 나타나자 ‘불국단’ 대표 노총각 양준혁과 심권호가 가장 부러워했다.
“원래는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야 했는데, 어머니가 안 된다고 하셔서 가족을 데리고 나왔어요. 저희 가족을 보자마자 권호 형이 부러운 눈빛을 보이더라고요. 나이는 막내인 제가 다섯 살짜리 둘째를 데리고 나오니 모두들 놀랐지요.”
양준혁은 한 술 더 떠 “벌칙이 아니라 자랑하러 나온 거냐. 그런 벌칙이라면 다들 하겠다”며 핀잔을 줬다고 했다. 두 사람의 반응에 김동성은 “형들이 빨리 제 짝을 찾길 바란다”며 애교를 떨었다고.
“메달 따고 따끈따끈할 때 결혼했어야 하는데 아쉽죠. 특히 권호 형은 전 세계를 들어 올린 사람이잖아요. 결혼에 대한 굳건한 의지가 있으니 꼭 하실 거라 믿습니다.”
최근 부쩍 스포츠 스타들이 이 프로그램의 출연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에게도 어떻게 하면 ‘불국단’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묻는 선수들이 많다고.
“최고의 프로그램이죠. 막내인 저부터 최고참인 이만기 선배님까지 다들 승부욕 하나는 대단한데, 은퇴 후에는 선수로서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마땅히 없잖아요. 그런데 모두들 여러 종목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면깜짝깜짝 놀라요. 저 혼자‘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스케이트 하나밖에 없나?’ 싶어 주눅이 들 정도로요.”
아픈 기억을 툭툭 털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후 누구보다밝은 미소를 보여주는 김동성. 그의 미소 뒤에는 아내 오유진 씨가 있었다. 성격이 달라 다툴 때도 많지만 서로를 믿고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아픔을 나누고 용기를 더한 부부는 이미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종목의 금메달리스트가 돼 있었다.

장소협찬 | 찰리스포춘(02-571-8821)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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