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생일 선물을 받은 아기 코끼리 가자바와 수겔라.
“가자바, 수겔라 생일 축하해!”
하나 둘 셋 소리에 동물원에 관람 온 아이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5월 4일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특별한 생일잔치가 열렸다. 스리랑카에서 온 코끼리 가자바와 수겔라의 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하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미는 다르지만 한 날에 태어난 두 코끼리 앞에 생일상이 놓였다. 호기심 많은 둘은 코와 발로 선물 꾸러미를 열었다. 코끼리가 좋아하는 먹을거리인 사과와 바나나, 건초와 장난감 공과 악기가 한가득 펼쳐졌다. 아기 코끼리라고 하지만 가자바와 수겔라는 사람으로 치면 이미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사육사에 따르면 처음 왔을 때 1200kg가량 하던 몸무게가 2년이 채 안 돼 300kg이나 늘었다고 한다. 1500kg이면 이미 성년 코끼리의 몸무게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 코끼리의 가임기는 대략 15~30세로 암컷 수겔라도 앞으로 7~8년이 지나면 엄마 코끼리가 될 수 있다.
이들의 생일잔치에는 동물원 관계자들 외에 타샤 위제라트너 주한 스리랑카 대사와 한국에 거주하는 스리랑카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스리랑카 전통 무용을 선보이며 흥겨움을 더하고 생일 떡 대신 스리랑카 음식을 돌렸다. 이번 생일잔치는 스리랑카 대사관 측에서 서울대공원에 먼저 제안했고, 이를 수락한 대공원 측이 함께 준비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기 코끼리들의 생일을 한국과 스리랑카가 한마음으로 축하하게 된 사연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저 베푼 사랑이 코끼리 선물로 돌아오다
2 두 코끼리는 머나먼 한국 땅에 와서 어린이들의 좋은 친구가 됐다.
1996년 겨울, 경기도 성남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얇은 옷차림의 이주노동자 두 사람이 덜덜 떨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김해성(51) 목사가 그들을 발견하고 당시 자신이 운영하던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으로 데려가 식사를 제공하고 일자리도 구해줬다. 이것이 입소문이 나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줄줄이 김 목사를 찾아왔고 그때마다 그는 성심껏 도왔다. 이렇게 도움을 받은 이들 가운데 자민다 라자팍세 씨가 있었다.
자민다 씨는 김 목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자신의 삼촌이 스리랑카 야당 국회의원 마힌다 라자팍세라고 밝혔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간 자민다 씨가 삼촌에게 김 목사 이야기를 했고, 2003년 삼촌은 국회의원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해 김 목사를 만났다. 이들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스리랑카가 지진 해일 피해를 입자 김 목사는 의료진과 함께 스리랑카로 가서 한 달 가까이 구호 활동을 펼치면서 이들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그 사이 라자팍세 의원은 장관, 국무총리를 거쳐 2005년 1월 스리랑카 대통령이 됐다.
2010년 1월 라자팍세 대통령은 스리랑카를 방문한 김 목사에게 감사의 뜻으로 코끼리를 선물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김 목사는 처음엔 코끼리 선물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지만, 귀국 후 한국에 임신 가능한 코끼리가 없어 조만간 동물원에서 코끼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본 뒤 마음을 바꿨다. 코끼리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대상이라 쉽게 사고팔 수도 없어 외교통상부까지 나섰지만 코끼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김 목사는 스리랑카 대통령에게 기왕 보내줄 거라면 임신 가능한 코끼리 한 쌍을 보내달라고 했다. 이후 두 마리 코끼리가 한국 땅을 밟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10년 9월 29일 화물기 컨테이너 박스에 실려 무사히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생활 3년째를 맞고 있는 가자바와 수겔라는 서울대공원의 인기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경험하지 못한 추운 겨울 등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법도 한데 스리랑카에서 함께 온 사육사와 서울대공원 코끼리 사육사들의 보살핌 속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라고 있다. 두 코끼리와 관련된 행사라면 빠지지 않는 김해성 목사는 아쉽게도 이번 생일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자바와 수겔라가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고. 현재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 대표인 그는 “내가 베푼 작은 사랑이 어느덧 큰 선물로 돌아왔고, 아이들이 코끼리를 보며 이주노동자들을 따뜻하고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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