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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LIFE IN NEW YORK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식

푸드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글·사진 | 이미령, 로랭 달레

입력 2012.05.16 11:49:00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식

엘리자베스의 결혼식은 뉴욕에 있는 그들의 아파트에서 열렸다. 사진은 엘리자베스의 결혼 피로연 세팅.



“혹시 그 사람들 대화 도중 Benoire(매우 싫은 상대 또는 강적을 가리키는 말)나 Denouement(결말, 대단원) 같은 프랑스어를 섞어 쓰는 스놉(Snob: 좀 젠체하는 속물 근성을 가진 부류) 아냐?”
엘리자베스가 프랑스 문화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고 로랭과 프랑스어로 대화하고 싶어 한다는 말에 내가 좀 짓궂게 물었다. 뉴욕엔 그런 사람들이 많다. 프랑스어를 섞어 쓰며 약간 잘난 척하는 사람들. 물론 프랑스에 가면 어쭙잖은 영어를 섞어 쓰며 잘난 척하는 프랑스인도 많으니 피차일반. 그런데 내 질문에 로랭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 사람들 정말 괜찮아. 겸손하고 격의 없어. 직접 만나보면 당신도 편하게 느낄 거야.”
엘리자베스는 3월 초 우리에게 연락해 3월 16일에 열리는 자신의 결혼 피로연을 맡아달라고 의뢰한 고객이다. 40명을 위한 저녁 식사 준비인 데다 결혼처럼 특별한 이벤트를 겨우 2주 전에 부탁하는 고객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고객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메뉴 샘플을 마련해놓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에게 그중 몇 가지 메뉴를 보냈다. 우리가 제안한 예산을 그녀와 약혼자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우리와 경쟁하는 케이터링 업체도 없었다. 결정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예상한 대로 엘리자베스는 48시간 안에 메뉴를 선택해 우리의 제안을 승인한다는 이메일 회신을 보내왔다.
그런데 결혼식 일주일 전 엘리자베스가 태도를 바꿨다. 비용을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보통 케이터링 업체들이 식자재에 마진을 많이 붙여서 이익을 남기는데 자기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우리는 식자재에 마진을 붙이는 일은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제시한 견적은 고객이 원하는 메뉴에 맞춘 결혼 기념 디너파티 비용으로 매우 합리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일 다니엘(뉴욕 다니엘 레스토랑의 주인)처럼 유명 셰프가 하는 케이터링 업체를 이용해보면 우리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 번 검토해달라고 했다.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식

1 바닷가재를 손질하는 로랭. 2 엘리자베스 결혼 피로연 메뉴. 3 40인분의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4 결혼 피로연에 빼놓을 수 없는 크로캉부슈를 장식하는 모습.



난감했다. 이 일을 맡느냐 포기하느냐. 고객에게 견적 내용을 상세히 공개한 뒤 그래도 안 한다고 하면 이 일을 포기하자고 로랭에게 말했다. 준비할 시간도 부족한데 쓸데없는 가격 흥정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고객이 심하게 흥정을 하는 이벤트는 피곤하기만 할 때가 많다.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최고급 식자재를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아니면 원하는 식자재 수준을 조금 낮추면 된다. 만일 엘리자베스 부부가 송로버섯이나 캐비어, 프랑스 직송 푸아그라 같은 것을 포기한다면 식자재 단가를 많이 낮출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엘리자베스 측에 다음과 같이 식자재 명세서를 공개했다.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식




각 항목의 마지막에 식자재 공급처까지 집어넣었다. 고객이 원한다면 직접 접촉해 가격을 확인할 수도 있다. 상기 비용 외 각종 채소, 오르되브르(핑거 푸드) 재료 등의 구입에 추가로 4백 달러 정도 든다고 밝혔다. 영수증 제공까지 약속했다. 식자재 구입에 드는 예상 비용은 총 3천 달러였다.

결혼 피로연 5일 전 가격 협상 마무리
케이터링 서비스에 드는 비용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주방 보조인 메르세데스에게 8시간 노동 기준 3백 달러를 지급한다. 홀 서빙을 맡는 8명의 스태프들에게도 5시간 노동 기준으로 1인당 2백 달러씩 지불한다. 뉴욕 맨해튼에서 최고급 서빙 스태프를 고용하려면 1시간에 최소 40달러는 지불해야 한다. 물론 팁이 제외된 금액이다. 로랭과 나는 보통 서빙 스태프들에게 팁 포함 2백50달러씩 지불한다. 고객이 팁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팁까지 계산해서 준다. 홀 서비스는 보통 5시간 노동 기준이다. 최고급 서빙 스태프들을 고용하려면 그 정도 사례비는 기본이다.
그 밖에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으로는 당연히 셰프 두 사람(로랭과 스테판)에게 지불해야 하는 사례비, 꽃값, 테이블 장식 비용, 음료수 비용 등이 있다. 고객은 식자재 비용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우리는 이벤트 준비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공개했다. 그렇게까지 공개하는 업체는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앞의 내용을 고객에게 보낸 지 24시간 안에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최후 통보가 왔다. 결혼 피로연 5일 전 겨우 협상이 끝났다. 모든 것이 결정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수 식자재는 일주일 전에 주문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미 주문이 늦은 것은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됐다. 로랭이 식자재 공급처에 연락하는 동안 나는 고객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전에 먼저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다. 고객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제대로 된 맞춤 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식

1 행복한 신부 엘리자베스의 모습. 2 결혼식의 주례를 맡은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3 엘리자베스와 남편 제프리.



그 여자의 두 번째 결혼, 그 남자의 첫 번째 결혼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식


변호사이자 공화당 출신 전 뉴멕시코 주 상원 의원의 딸인 엘리자베스는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Common Good이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전략 담당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변호사인 필립 하워드가 만든 비영리 단체다. 필립 하워드는 미국의 무분별한 소송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회개혁 운동가로 유명하다. 2007년 워싱턴 소재 한 검사가 맡겼던 바지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한국계 세탁소를 상대로 6천5백만 달러짜리 소송을 걸었을 때 필립 하워드는 각종 미디어에 출연해 미국의 비뚤어진 법 문화를 개탄했다. 서로 책임을 지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나 고소하는 행태를 이제는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한국인 세탁소를 고소한 미국인 검사를 비난했다. 또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미국인들이 매일의 기본생활에서 오히려 법이 무서워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Common Good은 상식(Common sense)과 공익(Common good)을 지향하는 단체다. 엘리자베스는 필립 하워드와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번 결혼은 젊은 이혼녀 엘리자베스에게 두 번째이고, 56세 노총각 제프리에게는 첫 결혼이다. 제프리는 예일과 하버드 대학 법과대학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Leeds Equity Partners라는 투자 회사를 설립했다. 두 사람은 40명의 친한 친구와 가족들만 초대해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결혼식을 올릴 것이며 주례는 전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라고 했다.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식

1 성공적인 이벤트는 셰프와 홀 서빙의 완벽한 호흡에서 나온다. 대기 중인 홀 스태프들. 2 디너가 시작되자 정신없이 돌아가는 주방. 3 왼쪽이 셰프 로랭. 파티 전 서빙의 주의사항을 듣는 홀 스태프들.



완벽한 요리에 완벽한 홀 서빙
로랭이 거래처에 연락해 식자재 공급에 차질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우리는 홀 스태프 선정에 들어갔다. 우리는 홀 스태프 선택에 매우 까다롭다. 아무리 음식이 완벽해도 서비스에 실수가 생기면 이벤트를 망치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로랭에게 이번 이벤트는 프랑스 음식이 준비되니 100% 프랑스인 스태프로만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로랭이 “와우, 미령. 그렇게 하다가는 다니엘처럼 고소당해. 인종차별 한다고!” 로랭은 농담을 했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뉴욕의 다니엘 레스토랑은 최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완벽주의자인 다니엘은 스태프들에게 가혹하다는 소문도 있었다(우리 부부는 그에게서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스태프들에게 사용하는 영어도 그리 부드럽지 않다고 한다. 프랑스인인 그가 영어로 막말을 할 때 영어로 전달되는 본 의미가 얼마나 나쁜지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주방에 모여 앉아 스페인어로 떠드는 스태프들에게 그가 “우리 주방에 멕시코 마피아들은 필요 없다. 내 레스토랑에서는 영어 혹은 프랑스어로 소통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가 7명의 전직 스태프들로부터 인종차별을 한다고 고소를 당했다. 5~6년 전 이야기다. 2백만 달러짜리 소송이었다. 히스패닉 계통과 방글라데시 출신의 스태프들은 자신들이 유색 인종이어서 인종차별을 당해 언어 폭력뿐 아니라 승진에서도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다니엘이 프랑스에서 젊은이들을 데려다 훈련시켜 키우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프랑스 출신이 아니면 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다니엘은 ‘Authenticity’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 레스토랑엔 한국인 스태프가 어울리는 것처럼 프랑스 레스토랑에 프렌치가 잘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인종차별 하는 사람이야? 나는 당신과 스테판이 만드는 프랑스 요리들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고 프랑스산 와인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스태프를 원해.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을 고용하고 싶다는 거야. 만일 우리 이벤트를 한식으로 한다면 나는 100% 한국인 스태프들을 원할 거야. 프랑스인 스태프는 필요 없는 거지. 이건 인종차별과 관계 없다고.”
내가 입까지 삐죽이며 로랭의 농담을 받아주지 않자 그가 한 발 물러섰다. “미국인 스태프들 중에도 프랑스 음식과 와인을 아주 잘 아는 친구들이 있어. 마이크랑 리처드 어때? 프로페셔널하지 않아?” 로랭이 개인적으로 호흡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웨이터들이다. 마이크나 리처드는 함께 일해본 경험도 있었다. 로랭의 말대로 홀 서빙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들은 외모도 출중한 데다 손님들을 대하는 태도가 상냥했다. 홀 스태프 리스트 작성이 끝났다. 여자 넷, 남자 넷으로 결정했다. 프랑스인 6명에 미국인 2명. 주방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의 주방장인 스테판이 도와주기로 이미 승낙한 상태였다. 식자재 구입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우리가 함께 일하고 싶은 스태프들이 3월 16일 시간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뛰어난 서빙 기술과 매너, 깨끗한 외모를 가진 프로페셔널한 스태프들은 상당히 바쁘다. 모델이나 배우(주로 단역이나 광고) 등 이런저런 문화 예술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거나, 다른 고급 레스토랑 및 케이터링 업체에서 서빙 일을 겸직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규모가 작아 서빙 스태프들을 풀타임으로 고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이미지에 맞는 스태프들을 섭외한다. 내가 첫 순위로 선택한 독일계 프랑스인 사빈은 3월 16일에 이미 스케줄이 잡혀 있다고 했다. 전직 발레리나로 우아하게 서빙하는 뛰어난 외모의 사빈을 놓친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다음은 알랭. 그는 프랑스 출신 무명 모델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전통적인 소믈리에 교육과 홀 서빙 교육을 받아 프랑스 영사관 행사 때나 우리 이벤트 때 제일 먼저 부킹하는 스태프다. 그런데, 그와는 전화 연락도 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했다. 그의 회신을 기다리며 초조했다. 알랭도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한다.

푸드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엘리자베스의 두 번째 결혼식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 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지금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 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서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여성동아 2012년 5월 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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