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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사랑이 뭐죠?”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결혼과 연애에 대한 물음표와 느낌표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현일수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2.03.22 11:18:00

2012년 한국은 사랑 지상주의 국가다.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
때로 엇나간 사랑은 피를 부른다. 백발성성한 노인부터 코흘리개 유치원생까지 사랑 예찬에 여념이 없고, 커플 솔로 불문하고 유행가 가사에 ‘내 이야기’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우리에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물었다. 도대체, 사랑이란?
“도대체, 사랑이 뭐죠?”

‘20대 심리학’ ‘흔들리는 20대’등 읽기 쉬운 심리학 지침서로 대중에게 다가선 곽금주 교수.



보수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3개월 연애하고 23세에 결혼. 아뿔싸. 검사 출신 남편은 아버지보다 더 보수적. “결혼 생활은 조율의 과정”이라며 그를 통해 성숙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다는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그가 사랑에 관한 물음표와 느낌표 가득한 책을 펴냈다. 제목부터 구미가 당긴다. ‘도대체, 사랑’.
“우리 사회는 죄다 사랑을 이야기해요. 나이 든 사람들도 ‘사랑을 못 해봤다’ ‘다시 사랑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환상을 가지고 살죠. 초등학생들도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잖아요. 사람들이 사랑 이야기에 목말라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간발달학회 심포지엄에서 ‘사랑’이란 주제로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죠.”
늘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실험 결과를 하이 톤으로 조목조목 말하던 그가 사랑 이야기를 썼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고. 그는 “저도 사랑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왜’예요. ‘사람들은 이럴 때 왜 이렇게 행동할까?’ ‘왜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습관을 버리지 못할까?’ 같은. ‘왜’에 대한 답을 찾으려 다양한 실험을 하고 결과를 분석, 연구해 결론을 얻는 게 심리학자의 일이죠. 하지만 정작 제 주변의 여러 상황에 대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틈이 없었어요. 결혼하고 남편과 생활하면서 비로소 ‘왜’라는 질문을 내게 던지게 됐죠. ‘나도 아직 사랑 중’이기에 할 이야기가 참 많다고, 그리고 제가 만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어디 일반인만 그런가. TV며 라디오며 가수들은 온통 ‘사랑’을 노래한다. 온라인 음악 감상 사이트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음악을 검색하면 4만4천4백7건이나 나온다. ‘LOVE’로 검색하면 더 많다 (5만4천9백71건, 2012년 2월19일 기준). ‘너랑 나’ ‘둘이서’ ‘우리 사랑했잖아’ ‘미치겠어’ ‘그리워 그리워’ ‘널 사랑하겠어’ ‘이 사랑이 마지막이다’…. 짝사랑이든 이별이든 노래 제목만으로 몇 편의 시를 쓸 수 있을 정도다.
“사랑과 증오, 기대와 실망 등 항상 대립하는 정서는 같이 간다는 이론이 있어요. 사랑이 클 때 증오는 안 보이지만 사랑이 줄면 스멀스멀 나타나는 거죠. 사랑은 변질이 쉽죠. 그러다 보니 옛 연인 사이의 증오는 더 커 보이기도 하고요.”
젊은이들 사이에선 연애 전 간 보고 재보는 게 당연시된다. 사랑에 발도 담그기 전부터 이것저것 따져보고, 성에 안 차면 연애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크고 작은 악행도 많다. 연애 몇 번 못 해보고 이른 나이에 결혼해 아이를 가진 그는 ‘진한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그는 “우리 아이들에게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하는데 안 하더라”며 웃었다. 책을 쓰려고 젊은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연애를 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도대체, 사랑이 뭐죠?”


“연애를 통해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안 돼요.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성숙하게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결국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거거든요. 고통이 따르고 두렵긴 하지만 자신을 성숙하게 해 주죠. 젊을 때 고뇌하는 건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이에요. 주저하지 말고 힘들고 괴로워하면서 상대를 알아가세요.”
곽 교수에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도 그에게 한 학생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호르몬 작용, 번식의 부산물, 근대의 환상. 하지만 이런 답으로 사랑을 설명하기엔 부족하죠. 사랑은 상처 받은 두 사람이 서로 위안하는 과정일지도 몰라요. 사랑은 다시 고통받을지 몰라 불안한 마음에도 또 한 번 인간을 믿게 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는 힘이 있죠. 온전히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 이걸 통해서 자신을 알아갈 수 있어요.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구나’라는 걸 깨닫는 거죠. 사랑은 완벽한 사람의 성장에 도움이 돼요. 저도 남편을 사랑하지만 이 사랑이 안정될 때까지는 수많은 유혹이 있었어요. 그는 관계에 미숙한 제게 사랑을 가르쳐 줬죠.”
곽 교수의 남편은 가만히 지켜봐주는 사랑, 상대를 독립된 인간으로 인정하고 홀로 서는 사랑,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알려줬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그런 사랑을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 생활을 통해 사랑을 조금씩 배워나간 것이다.
“닮은 사람끼리 만난다는 말이 있죠. 결혼식 가면 실제로 놀랄 만큼 닮아 보이는 부부들이 많아요. 살아가면서 닮아가는 것도 있고요. 같이 웃고 살아온 인생 때문에 비슷한 분위기로 늙어가는 거죠. 그런 점에서 부부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희 부부는 결혼해서 많이 싸웠어요. 학자 같은 남편은 거실에 앉아서 쉴 때도 수다를 떨기보다는 책을 읽거나 TV를 봤어요. 결국 남편과 같이 있으려고 책상을 소파 옆에 가져다 놨죠. 부부는 결국 적응이고 절충인 거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사랑이고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편은 ‘교과서처럼 반듯한 남자’다.
“몇 년 전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남편에게 ‘당신에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랑에 정말 확신이 있다면 그땐 당신을 보내줄 수도 있다’고 한 적이 있어요. 너무 슬프고 괴롭겠지만 그 사람이 이 남자에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사랑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나와 함께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죠. 심각하게 얘기했는데 남편이 씩 웃더니 꿀밤을 한 대 쥐어박으면서 ‘네가 그러고 싶구나?’ 하더라고요(웃음).”
그는 “물론 부부는 어떠한 순간에도 함께 고통을 이겨내고 서로의 관계를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단지 ‘결혼’이라는 강박관념에 얽매여 상대를 괴롭히거나 자신을 괴롭히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좀 더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했다. “부부 사이에 사랑 표현은 그때그때 솔직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무것도 아닌 일도 표현하지 않으면 골이 되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 때문.
“남편은 무뚝뚝한 사람이라 애정 표현에는 서툴러요. 그래도 지난 생일에는 살아온 햇수만큼 장미를 사서 꽃다발을 만들어 보내줬죠. 제가 외국에서 석 달 정도 머물게 됐는데 전화로 안 하던 투정을 부리더라고요. 남편의 직업 특성상 외국에 잘 못 나오는데도 그땐 두 번이나 나와서 얼굴을 봤죠. 가고 나니까 제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건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진짜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꼈죠. 학회에 가서 집을 비우면 전화를 자주 하곤 해요.”

“도대체, 사랑이 뭐죠?”




이혼율 높은 우리 사회에서 부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팁을 물었다.
“결혼하면 제일 먼저 식는 게 열정이에요. 열정은 몇 년 사이에 사라지죠. 그래도 친밀감은 남아 있어요. 하지만 그마저도 10년 가까이 부부 생활을 지속하면 사라지죠. 4~5년 차 부부들은 이혼율이 높아요. 10~20년 차에는 친밀감도 사라지고 서로 싸움이 잦아지죠. 이 시기를 나쁘게 넘기면 황혼 이혼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다 독립시키고 심리적 이혼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 시기를 잘 넘기면 다시 친밀감이 생기죠. 부부밖에 안 남기 때문에 이 시기가 되면서 굉장히 가까워져요. 20대의 연애처럼 열정적이진 않더라도 ‘우리 남편 찬 바람 불면 병나는데’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거죠.”
결혼은 수많은 책임을 떠안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과 막대한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독신을 선언하는 이들도 많다. 결혼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일이다. 때로는 서로 희생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는 “결혼은 숙제도 목표도 아니다”라고 했다.
“결혼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아마 평생 완벽해지지는 않을 거예요.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하겠다는 의지와 신뢰는 결혼한 이후부터 서서히 생겨나요. 그 사이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뀌다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확고해지죠. 저는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라고, 인생에 한 번쯤은 일어나야 할 일이라고 믿어요. 남을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결혼이죠. ‘언젠가는 결혼하겠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여긴다면 우선 자신의 선택에 회의를 갖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가 결혼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상대가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막연한 불안에 떨기보다는 당신의 사랑을 믿으세요.”
그는 “지금 무엇과 사랑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제 인생에 대한 사랑을 하고 있죠. 거기 다 들어가 있거든요. 남편도, 저 자신도, 제 아이도.”

내 사랑은 어떤 종류일까?

“도대체, 사랑이 뭐죠?”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구애정을 사랑한 독고진과 윤필주, 두 남자의 사랑은 너무나도 달랐다. 이처럼 우리의 사랑도 형태와 방식이 제각각이다. 지금 당신이 하는 사랑은 어떨까. 로버트 스턴버그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 따라 사랑의 종류를 분류해봤다.
사랑에는 친밀감과 열정, 결심이라는 요소가 있다. ‘친밀감’은 친한 친구에게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이며 흔한 사랑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친밀감만 있는 관계는 서로를 좋아하기만 할 뿐, 성적으로 끌리지도 않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지도 않는다. 영화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에서 해리와 샐리가 몇 년 동안이나 우정 어린 친구로 지내며 서로를 이성으로 보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그 둘이 친구로만 남은 것은 아니다. 샐리가 자기도 모르게 해리에게 키스한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생겨난다. 그때 느낀 것이 ‘열정’이다. 그 사람을 보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몸을 섞고 싶은 충동 말이다.
사랑하게 됐지만 아직 해리와 샐리에게는 헌신적으로 그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결심’은 없다. 결심은 오래가는 사랑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해리는 오랜 고민 끝에 샐리에게 청혼하고 둘은 친밀감, 열정, 결심을 모두 갖춘 사랑의 삼각형을 완성한다. 그 사랑의 이름은 ‘성숙한 사랑’이다. 성숙한 사랑을 하는 커플은 서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이해하고 성적 끌림도 있으며 오래 사랑하겠다는 결심도 있다.
성숙한 사랑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인 친밀감, 열정, 결심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열정은 쉽게 생겨난다. 하지만 친밀감과 결심은 많은 시간과 감정을 투자해야 비로소 피어난다. 성숙한 사랑을 향해 가는 길은 지난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힘든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참고도서 | 도대체, 사랑(쌤앤파커스)

여성동아 2012년 3월 5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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