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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모텔이 번성하는 이유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 | 한여진 기자 글·사진 | 유디트

입력 2011.12.30 16:10:00

한국에서 모텔이 번성하는 이유


01 나는 학기 중 강의가 있는 날은 산속의 집을 떠나 강릉 시내에 머문다. 강릉에 있을 때 가끔 경포해변에서 산책하는데, 그곳에 줄지어 있는 관광모텔을 볼 때마다 서울 근교에 살 때 보았던 ‘사랑 나누는 모텔’이 떠오른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에는 모텔이 왜 이렇게 많은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이 ‘바람을 많이 피기 때문에’ 모텔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 생각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잘 안다. 모텔이 ‘바람피우는 사람’을 위해 생겼다면 독일에는 왜 모텔이 없는지 설명할 수 없다. 독일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바람을 덜 핀다고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근교 곳곳에 모여 있는 ‘모텔애정촌’을 보면서 한국에서 모텔 사업이 번성할 수 있는 것은 ‘점잖은 부모들의 모순된 사고방식’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모텔애정촌의 진짜 고객은 젊은 연인들이다. 연애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들만의 자유공간이 보장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모텔이 번성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독일에서는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자유롭게 집에 데려오고, 주위 사람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또 젊은 연인들은 대부분 결혼하기 전에 같이 산다. 동거를 하다가 결혼을 하거나 그냥 계속 함께 살기도 한다.


02 경포해변의 모텔을 보면서 독일에서 연애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할 때, 그 사람을 부모님에게 소개하고 싶어 “부모님을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곧바로 “그래, 가자”라고 대답했지만, 얼굴 표정은 밝지 않았다. 당시에는 남편이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혹시 부모님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그래서 그에게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 좋으신 분이야”라고 말했지만, 그는 계속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내가 직접 “무슨 걱정 하고 있어?”라고 물었을 때도 그는 그냥 어깨만 으쓱했다. 부모님은 따로 살고 있기 때문에 먼저 엄마에게 전화했다. 우리가 다음 주말에 엄마의 집에 놀러가도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OK. 토요일 아침, 우리는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남편은 그때까지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다시 한 번 물어봤다.
“무슨 걱정 하고 있어? 좀 말해줘!”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는 건 쉽지 않지.”
“내 엄마 아빠는 진짜 괜찮아. 너도 엄마 아빠 모두 좋아하게 될 거야.”
“그래도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니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의 태도를 이해했다.
“너 혹시 오늘 엄마 아빠에게서 허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음…. 당연히 이 상황은….”
나는 크게 웃었다.
“내가 누구랑 살 건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야. 엄마 아빠 어느 분도 내 결정에 전혀 간섭하지 않을 거야. 두 분 다 그저 호기심만 있어. 네가 누군지 알고 싶을 뿐이지. 우리는 오늘 허락받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야.”
그는 계속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03 고향에 도착해서 우리는 엄마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와 엄마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엄마 집으로 갔다. 밤이 깊었을 때 그가 나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나 어디서 자?”
나는 손님방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가 다시 속삭이듯 물었다.
“너는 어디서 잘 거야?”
“응? 당연히 여기서 같이 자지!”
그가 의심스러운 말투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우리가 같은 방에서 자도 괜찮아?”
나는 또 큰 소리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이 사람이 우리가 같은 방에서 자도 괜찮냐고 물어봐! 하하하.”
엄마도 웃었다. 우리가 따로 자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엄마도 웃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04 그후 몇 년 뒤에 한국에 왔고, 연애 중인 이들도 가끔 만났다.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독일에서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부모님께 인사 가야 하는 연인을 만났을 때는 ‘엄마 집을 방문하던 날 긴장하던 내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여자친구의 집이 멀더라도 남자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밤기차를 타고 돌아가거나, 근처 호텔에 가서 혼자 자야 한다. 심지어 여자의 아버지와 함께 자야 할지도 모른다. 남자친구는 그날 자기 여자친구의 방에서 같이 못 잔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아온 나는 이제 ‘예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조금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한국 부모들은 왜 자기 딸이나 아들이 애인과 함께 집에서 같이 자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왜 젊은 연인들이 부모 앞에서는 ‘정신적 연애’만 하는 척해야 하나?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연애하는지 잘 알면서 왜 굳이 젊은 연인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신문이나 TV에서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 모텔이 들어서는 것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을 몇 번 봤다. 이런 어른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나중에 애인을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자거나 결혼하지 않은 채 같이 살려고 하면 그것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만약 그런 것에 반대할 거라면 모텔이 많이 생기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독일에서 모텔 사업이 안 되는 이유는 독일 사람들이 바람을 덜 피우기 때문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인사드리러 찾아온 딸의 남자친구가 딸의 방에서 함께 자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가 없기 때문에 모텔 사업이 잘될 리가 없다. 젊은 연인들의 연애 현실을 똑바로 보려 하지 않는 점잖은 분들이야말로 한국에서 모텔 사업이 성공할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을 마련해준다.



한국에서 모텔이 번성하는 이유


한국에서 모텔이 번성하는 이유


유디트씨(41)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일러스트 | 한은선

여성동아 2012년 1월 5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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