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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에 대처하는 자세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 | 한여진 기자 글&사진 | 유디트

입력 2011.12.02 17:00:00

이혼에 대처하는 자세

(작은 사진) 유디트의 어린 시절 가족 사진



몇 년 전 서울 근교의 어느 대학교에 강의를 나갈 때 일이다. 강사 한 분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 ‘친구’는 나를 만나기 2년 전쯤에 이혼한 상태였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던 그는 가끔 우리 집에 놀러왔다. 한번은 그가 우리 집에 놀러왔을 때, 마침 시누이도 우리 집에 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시누이에게 소개했다. 내 친구와 시누이는 나이가 비슷해 인사를 나눈 지 얼마 안 되어 금방 친해졌다. 식사를 한 후 우리는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시누이가 친구에게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이혼한 지 이미 2년 정도 시간이 흘렀기에, 나는 시누이의 질문이 문제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당황해하는 듯 보였다. 잠시 후 친구는 태연하게 “제 남편은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친구 말을 듣고 내가 더 당황했지만 대화의 분위기를 생각해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혼자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혼했다는 것’은 되도록 숨기고 싶은 사실이다.
내 부모는 내가 여덟 살일 때 이혼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15년 동안 같이 살았는데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활발한 성격의 어머니와 내성적인 아버지가 그만큼 오래 같이 산 것이 놀랍다. 나는 부모님의 성격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안다. 게다가 어머니와 아버지는 너무 일찍 결혼했다. 어머니는 스물한 살에, 아버지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했다. 만약 내가 스물한 살에 성격이 잘 맞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분명 어머니보다 더 빨리 이혼했을 것이다.
물론 나와 언니에게 부모의 이혼은 큰 충격이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우리 가족이 갑자기 없어진다는 것이 두렵고 불안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와 언니는 계속 안정감을 갈구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던 세계가 갑자기 불안해진 경험을 한 이후 항상 안정을 최우선으로 찾아 헤매게 됐다. 물론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어도 우리를 계속 사랑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혼 이후로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믿는 것이 언니와 나에게 어려운 일이 됐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한다’라는 당연했던 사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됐을 때, ‘엄마와 아빠가 우리를 사랑한다’라는 당연한 사실도 의심스러워졌던 것이다. 나는 부모의 이혼 이후 가족의 사랑이 언제든지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이를 먹으면서 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그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왜 부모님은 우리를 낳기 전에, 두 분이 앞으로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면서 우리를 키울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책임을 생각해보지 않고 무턱대고 우리를 낳은 것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책임을 묻고 싶었다.

이혼에 대처하는 자세

독일에 있을 때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 후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아버지’다.



이제 마흔이 된 나는 부모님을 더 이상 비난하지 않는다. 스물한 살과 스물다섯 살이었던 부모님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에게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스물한 살에 아기를 낳았더라면, 책임을 지고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낳지 않은 나도 잘 안다.
이제는 어떤 경우에는 이혼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혼하는 것이 계속 같이 사는 것보다 현명한 해결책이 되는 경우도 있다.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겠다는 용기가 죽을 때까지 괴로운 결혼생활을 참고 견디는 인내보다 값진 선택일 수 있다. 엄마인 여자들, 그리고 아빠인 남자들에게 아이를 위해 무조건 자기 인생을 희생하라고 하는 것은 잔인하다. 삶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니까. 엄마 아빠도 자신의 인생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아이 입장에서 이혼은 비극이지만 부모가 함께 노력하면 아이의 고통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아이와 자주 만나면서 부모가 아이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 있다. 나도 부모의 이혼 때문에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크면서 아픔은 점점 줄어들었다. 시간은 상처를 치료한다.

이혼에 대처하는 자세




그런데 한국에 오면서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상처 부위에 또 다른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친구가 이혼 사실을 숨기는 것을 보면서 내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다시 문제가 됐던 것이다. 내가 만난 한국 사람들은 예외 없이 ‘내 가족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부모가 이혼했다고 했을 때는 “아이고”라고 외치며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독일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독일 사람들도 물론 이혼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이혼에 대해 코멘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에 왔을 때 처음엔 주위에서 이혼한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놀라웠다. 부모가 이혼한 학생도 만나기 어려웠다. 난 한국 사람들은 이혼을 거의 안 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한국도 독일처럼 이혼율이 높은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때부터 나는 한국에서 이혼은 여전히 터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혼을 했어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내 친구처럼 그 사실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이 왜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지 나는 나중에야 깨닫게 됐다. 직장에 다니면서 이런 경험을 가끔 했다. 직장 동료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갑자기 상대방이 낮은 목소리로 “X선생님이 이혼한 얘기 들으셨죠?” 또는 “Y학생의 부모님이 이혼했으니까 가족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이 조언을 하는 사람은 동정하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지만 내심 남의 불행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사람과 아무 관계도 없는 나에게 ‘이혼이라는 불행한 사건’에 대해 알려준 것 아니겠는가.) 그때 나는 한국 사람들이 왜 ‘자신과 자기 주위의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남의 이혼’은 소곤거리며 이야기 나눌 소재지만, ‘자신과 가족의 이혼 사실’은 숨겨야 할 터부였던 것이다. 결국 나도 점점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이혼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가족에 대해 물었을 때 나도 부모님이 아직 같이 사는 것처럼 얼버무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에 온 후 왜 갑자기 부모님을 창피해하게 된 거지? 독일에서는 이런 느낌 한 번도 없었잖아. 어렸을 때는 부모의 이혼 때문에 괴로웠지만 성인이 되고 난 다음에는 괴로워한 적 없잖아. 내가 왜 다시 부모의 이혼으로 괴로워해야 하는 거지? 한국 사람들이 이혼 때문에 창피함을 느끼면 나도 창피함을 느껴야 하는 거야? 내가 도대체 왜 부모의 이혼 때문에 두 번 괴로워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결정을 내렸다. ‘나는 부모의 이혼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즐거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내 부모의 이혼 사실을 알려준다 해도 내가 신경 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내가 창피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의 ‘숨기고 싶은 비밀’을 알고 나서 즐거워하는 것 아니겠는가.’
앞으로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내 가족에 대해 물어보면 솔직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부모가 이혼한 학생과는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이혼한 사람을 두 번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남의 이혼 사실을 전한다면, 나의 무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것이다. 관심 없는 척하면서 오히려 남의 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웃기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비극이 만들어놓은 상처가 어른이 돼서도 아물지 않고 아프게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혼에 대처하는 자세


유디트씨(40)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일러스트 | 한은선

여성동아 2011년 12월 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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