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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엄마 성영자씨에게 묻다

“세 살 때부터 가수 꿈꾸던 딸 월드스타로 키운 비결”

글·이혜민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비오출판 제공

입력 2010.11.16 15:54:00

자식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엄마는 없다. 그래서 때로 자식의 인생에 과도하게 끼어들어 자식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자타공인 성공한 엄마로 꼽히는 성영자씨는 아이들에게 맡기고 격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보아 엄마 성영자씨에게 묻다


월드스타 보아 엄마 성영자씨(54)가 ‘황금률’이란 책을 펴냈다. 유명인의 부모가 책을 내는 일이 다반사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삼남매 중 큰 아들이 서울대 음대 피아노학과 출신 피아니스트 권순훤(30), 둘째 아들이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뮤직비디오 감독 권순욱(29), 막내가 보아(24)라고 하니 지은이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평소 월드스타의 부모란 사실을 드러내지 않던 그는 자신의 얘기를 듣고 많은 사람이 희망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펴냈다고 한다.

마음껏 피아노 치게 해주고 싶어 시작한 전원생활
▼ 자녀들이 모두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상경해 제약회사 실험실 보조원이 됐는데 어느 날부터 그렇게 피아노가 치고 싶더라고요. 노을을 봐도 비를 봐도 시를 쓰고 싶었는데 그때는 피아노 소리에 빠져 정말 열심히 배웠죠.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가르치겠다고 다짐해 그렇게 시켰는데, 신기한 건 첫째는 저보다 훨씬 더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둘째는 피아노보다 춤을, 막내 보아는 노래를 더 좋아했다는 거예요. 큰 아이한테는 태교할 때부터 클래식을 많이 들려줘서 그런지 그 아이만 클래식을 전공한 것 같아요(웃음).
▼ 피아노 배운다고 누구나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닐 텐데요. 다른 지원은 안 하셨나요.
문화적인 지원을 해주면 좋았겠지만 여의치 않아 피아노만 가르쳤어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 안에서 좋아하는 걸 찾더라고요.
▼ 자녀들이 어렸을 때 남양주로 이사 가셨다고 들었어요.
큰 아이가 피아노 치는 걸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이왕이면 마음껏 피아노 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 싶었죠. 방송국 PD였던 남편이 마침 남양주에서 대학 전공을 살려 목장을 하며 소를 키웠어요. 외딴 곳이다 보니 아이들 놀거리도 없고 해서 집에 빔 프로젝트를 설치해 영화를 보게끔 하고 노래방 기계를 들여놨죠. 그런데 별달리 놀 게 없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그때부터 밤낮없이 춤추고 노래 부르더라고요. 보아는 특히 거실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 보면서 춤추는 걸 좋아했는데 춤 연습이 끝나면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았어요. 물론 아이들을 목장 안에서만 키웠던 건 아니에요. 보아는 가야금도 배우고 태권도도 배우고 수영도 배우고 심지어는 레슬링까지 배웠는데, 배우고 싶다면 가르쳐 줄 때까지 졸랐기 때문에 안 가르칠 수가 없었어요.

보아 엄마 성영자씨에게 묻다


▼ 자녀들이 원하는 것만 가르치셨나요.
네,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것만 가르쳤어요. 큰아이는 보습학원에 한번 보내 봤는데 도리어 성적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 뒤로는 안 보냈고, 둘째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내려고 세 달간 바짝 과외 시킨 게 전부에요. 그것 말고는 늘 아이들에게 맡기고 격려했던 것 같아요. 한번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큰 아들이 피아노를 그만둔다기에 그러라고 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단 하루를 살더라도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하던 걸요. 그래서 네가 좋은 것 하면서 사는 게 맞는 거라고, 그게 인생이라고 말해줬죠. 성악가가 꿈이던 남편이 노래를 부르고 그 옆에서 시를 쓰며 사는 게 제 꿈이었는데 어디 그렇게 살 수 있나요. 현실이 팍팍할수록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밀어줬던 것 같아요.
▼ 보통의 엄마라면 아이들이 음악에 너무 빠지면 말리기 마련인데요.
큰아이는 나사(NASA) 같은 곳에서 일하고 둘째는 목장을 하고 가르치는 걸 잘하는 막내는 교수로 살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건 엄마의 망상일 뿐 아이들의 재능은 따로 있더군요(웃음).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적어도 한 가지씩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빨리 발견하여 잘 키울 수만 있다면 성공한 자식 교육이 되고, 보다 만족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중략) 오랜 삶을 살았거나 경험이 많고 학식이 높다 하여 자식을 잘 이끌어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철저히 자식의 뜻에 맞춰서 스스로가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이 더 현명한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황금률’ 중에서



세 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며 가수 꿈 키운 보아

보아 엄마 성영자씨에게 묻다


보아는 SM엔터테인먼트에 소속돼 연습생 시절을 거쳐 만 13세이던 2000년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아시아스타로 거듭나고 2002년에는 ‘넘버원’이란 곡으로 국내에서 가요대상을 차지했다. 10년째 대한민국 톱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그는 활동 반경을 넓혀 할리우드 댄스 영화에 전격 캐스팅된 데 이어 최근 데뷔 10주년을 기념한 6집 앨범 ‘허리케인 비너스’를 발표했다.
▼ 보아씨는 재능도 일찌감치 나타났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죠. 둘째는 춤을 잘 춰 곧잘 상을 받아왔고 큰아이는 청음이 뛰어났는데 보아도 정말 뛰어났어요. 세 살 때부터 ‘엄마! 나는 가수가 될 거야’라고 했는데 당시 유행하던 노래란 노래는 다 외우고 있었거든요. 제 이름이 영자인데 세 살 때 벌써 ‘사랑하는 영자씨’를 불러줬다니까요. 네 살 때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을 완벽히 소화했고요. 그런 보아를 보면서 알게 됐죠.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걸요. 초등학생 때부터 둘째 따라다니면서 PD들에게 연락처 주고 기다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춤 대회 나간 둘째를 따라갔다가 찬조 출연해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눈에 띄었죠. 재능 가진 사람이 노력하면 길도 금세 열리더라고요. 엄마 아빠는 음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끼는 없는 편이었는데 보아는 끼도 많았어요. 어느 날은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곤 애교머리를 길게 내리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제 옷을 입어보기도 했는데 공부도 잘해 초등학교 전교회장까지 하니 나무랄 이유가 없었어요. 그래선지 혼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 아이를 혼내지 않고 키웠다는 말씀이 믿겨지지 않는데요.
물론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죠. 하지만 그런 위기를 잘 이겨내는 지혜를 얻으려고 종교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아이들을 위해 제가 해줄 게 기도밖에 없는 것 같아서 새벽 4시부터 밭고랑으로 가시던 어머니처럼, 부지런히 성당 다녔고요. 아이들은 그런 저를 보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몸에 배었다고 하는데 한번은 보아가 그러더라고요. 기도하는 엄마를 보고 자라 흐트러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고. 보아가 연예인 중에서 ‘범생이’로 유명한 것도 그래서일 거예요. 구속을 했냐고요? 아이를 구속했다가 도리어 엇나간 경우를 여럿 봐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어요. 아이를 존중했죠. 아이들은 저보다 더 위에 있는 존재니까요.
▼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모든 사람이 나보다 위에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요. 물론 제가 애초부터 이렇게 겸손하진 않았어요. 초등학교 동창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제가 그렇게 기가 셌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종교의 힘이겠죠. 살면서 부자인 척하는 사람이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몇 차례 본 뒤로는 위선적으로 살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나보다 더 나은 존재라는 건 아이를 키우면서 실제로 느낀 거예요.
▼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아이들이 제게 가르침을 주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막막할 때면 세 아이에게 물어봐 다수결로 정하곤 해요. 보아가 SM엔터테인먼트에 소속돼 활동할까 고민할 때도 당시 모든 사람들은 연예계가 너무 위험하다면서 만류했는데 세 아이들은 이만큼 좋은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역시나 아이들의 판단이 옳았어요. 수석입학한 중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진출할 때도 “경쟁해서 얻어낸 중요한 기회니까 자신의 선택을 믿어 달라”는 보아 의견을 따랐고요.
▼ 어머님은 늘 자녀들의 의견에 따르시나요.
늘 그런 건 아니에요. 한 번은 빈부차 때문에 힘들어서 선화예고를 그만두겠다는 큰 아들에게 여기에서 견디지 못하면 다른 어디에서도 견디지 못한다고 타일렀어요. 아이들이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너는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시련이 있는 거라고, 수틀에 놓인 수는 아름답지만 뒷면을 보면 여러 매듭이 있듯이 우리의 일상이 아름다우려면 그런 매듭 같은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라고 했죠.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의 성과 더 커

보아 엄마 성영자씨에게 묻다

성영자씨가 “보아는 어린시절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튀는 걸 좋아한 아이였다”며 자신이 집필한 책에 나온 보아 사진을 매만졌다.



▼ 아이를 격려해주는 건 좋지만 너무 치켜세우다 보면 자만심에 빠질 것 같은데요.
네, 그래서 ‘리미트’는 확실히 정했어요. 잘못하면 책벌도 있었고, 귀가시간도 정해져 있었어요. 철저한 성과제를 운영하기도 했죠. 하고 싶은 것 하게끔 내버려뒀다가는 룰을 지킬 줄 모르는 아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목표치를 달성해야 지원해줬어요. 그렇지만 모든 아이에게 성과제가 적합한 건 아니에요. 해달라는 것이 많은 두 아이에겐 적합했지만 그렇지 않은 둘째에겐 맞지 않았거든요. 돌이켜보니 둘째가 저를 제일 힘들지 않게 해준 것 같아요.
▼ 보아 아버님께서는 이런 어머님의 교육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그저 묵묵히 믿고 따라줬어요. 신기하게도 저와 아이들의 판단을 존중해줬어요. 지금도 저는 보아 챙기느라 청담동에 살고 있고 남편은 남양주 목장에서 나무 기르며 살고 있는데 남편은 여전히 묵묵히 지켜봐주는 든든한 존재죠. 돌이켜보면 남편은 나를 믿고 따라주고 나는 아이들을 믿고 따라주며 산 것 같네요.
▼ 하지만 남편 때문에 힘든 적도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남편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누구에게나 그런 시련이 있잖아요.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마다 지혜를 얻게 되는데 이런 지혜가 살아가게끔 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풍족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선거에 두 차례 도전했다 실패한 뒤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거든요. 비바람도 피하기 어려운 작고 초라한 집에서 살게 됐는데 당시 남편이 피폐해져서 제가 대신 우유판촉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어요.
▼ 전업주부로 살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뿐 다시금 빛이 온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오히려 일터에 나가면서부터는 홀가분해졌어요. 하루하루 일하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꼈죠. 진짜 어려웠던 건 전업주부였던 내가 힘든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끙끙대기만 했을 때예요.
▼ 몇 번이나 판매왕으로 뽑힐 만큼 일을 잘 하셨다고 들었어요.
제가 말을 좀 잘하는 편이거든요(웃음). 그래서 내 아이에게 우유를 권하는 마음으로 엄마들을 설득했는데 진심이 통하더라고요. 푸대접을 받아 상처입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아이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아이들도 이 시기에 더 발전해나갔고요. 대학 다니던 아들은 장학금 받고 레슨하면서 제 앞가림을 했고, 둘째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미술을 시작했지만 삼수한 끝에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어요. 그때 데뷔한 보아는 말할 것도 없고요.
▼ 보아씨는 당시 어떻게 지냈나요.
연습생이던 시절에는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시골 길을 걸어 남양주 집에 오면서도 꿋꿋하게 잘 해냈어요. 연습 장면을 녹화해오곤 했는데 혼나는 장면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연습하는데…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죠.
▼ 힘들어하는 자녀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만류하시진 않았나요.
말리고 싶었지만 스스로가 너무 좋아하니까 그럴 수 없었어요. 전 아이들을 키우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그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걸 익히 잘 알고 있었거든요. 나라면 못 참을 텐데 아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인내하면서 잘 하더라고요.
▼ 만약 어머님이 아이들을 다시금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키우실 건가요.
내가 살아온 방식 그대로 키울 것 같아요. 아이가 피아노를 좋아하듯이 영어를 좋아한다면 밀어주겠죠. 그렇지만 내가 일부러 하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는 그저 평범하게 살면서 아이들의 끼를 이끌어냈는데, 이런 게 아름다운 것 같아요. 내가 잘 기르려고 욕심만 부렸다면 아이들이 이렇게 안 자라줬을 거예요(웃음).

여성동아 2010년 11월 5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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