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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남다른 열정

강남여자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 손정완

섹시, 페미닌, 럭셔리 3박자 갖춘 옷으로 세계무대 도전

글 이혜민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10.10.19 11:40:00

엄마와 딸의 취향을 모두 만족시키는 브랜드는 드물다. 하지만 여성복 브랜드 ‘손정완’ 만큼은 예외다. 1989년 서울 강남에 부티크를 연 뒤 감각적이면서도 우아한 옷으로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디자이너 손정완을 만나 그 비결을 물었다.
강남여자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 손정완


지난 20년간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에 입점해 단 한 번도 밀려나지 않은 브랜드 ‘손정완’을 이끄는 디자이너 손정완(51). 그를 만나러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본사 매장을 찾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색색의 가을 겨울 옷만 가지런히 걸려 있을 뿐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대며 ‘요즘에는 옷이 잘 안 팔리나?’ 생각하던 찰나 이 브랜드의 지난해 매출액이 3백60억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대기업 유통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홈쇼핑 시장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나 탄탄한 중견기업인 셈이다.
캣워킹하는 모델처럼 당당하게 나타난 손정완. 뱅 헤어, 눈웃음, 유머감각으로 권위 대신 친근감을 선사하는 그에게 매장이 조용한 이유를 물었다. 해외 명품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내 프리미엄 브랜드를 이끄는 그는 ‘손정완’의 트레이드마크인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정장만큼이나 재기 발랄하고 우아했다.
“판매는 백화점과 부티크에서만 해요. 여기에서는 에디터들에게 옷을 공개할 뿐 영업은 안 하죠. 디자이너가 고객과 너무 밀착되면 시간적인 로스(손실)도 많고, 고객의 요구를 맞추다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이렇게 일한 지 벌써 20년이 됐네요.”
드라마 스타일링을 맡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드라마 캐릭터가 자신의 콘셉트와 맞는 경우 의상을 협찬하기도 하지만 주인공 스타일에 맞춰 옷을 일일이 만들어 제공하지는 않는다. “브랜드 홍보에는 도움될 수도 있으나 손정완의 스타일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스타들과 작업하면 감성적으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데도 자신이 좋아하는 상큼하고 투명한 매력을 가진 윤은혜, 황정음, 최화정 등과 교류할 뿐 관계의 폭을 넓히려 애쓰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60년대 영화를 보는 것은 오트쿠튀르에 대한 로망 때문
자신의 개성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그가 영감을 얻는 통로는 다름 아닌 영화와 여행. “영화를 통해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깊이 감동할 수 있다”는 손정완이 좋아하는 영화는 1960년대 히치콕 감독 영화다. 여배우가 드는 전화기 색깔과 여배우의 옷 색깔을 맞출 정도로 디테일에 민감한 히치콕 감독의 영화는 손정완의 ‘페미닌(여성적인) 스타일 교과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또한 즐겨 본다. 시크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의상을 보노라면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운 것이다’라는 말이 진리임을 새록새록 깨닫는다. 반복해서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은 그 시대 오트쿠튀르(고급 여성복)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다. 틈나는 대로 떠나는 여행도 그의 창조성을 자극하긴 마찬가지다.
“여행을 좋아해서 통영, 제주도, 터키, 로마, 뉴욕 등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가는데 어디든 떠나면 많이 배울 수 있어요. 물론 즐기는 걸로 끝나지 않고 대가를 치러야 하긴 하죠. 이런 영감을 어떻게 상업적인 디자인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디자이너만한 직업이 없는 것 같아요. 좋은 것을 접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좋은 곳을 많이 가게 되거든요.”
한번은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을 보곤 ‘최첨단의 아름다움에는 순수한 무언가가 녹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그는 순수한 요소를 포함한 여러 요소를 교합해 복합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편이다.
“너무 시크하거나 너무 미니멀한 것보다는 미니멀하면서도 로맨틱하고, 로맨틱하면서도 미니멀해야 세련된 거라고 봐요. 스타일이 너무 곧으면 거부반응이 생기잖아요. 여러 요소가 잘 ‘믹싱’되어야 자연스러운 거죠.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는 사람은 매력 없잖아요. 이것저것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는 사람이 오픈마인드 소유자로 매력 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옷도 그래요.”

강남여자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 손정완


애초부터 그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좇은 것은 아니다. “치기 어린 열정으로 도발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다 마침내 새로운 목표를 찾은 것이다. 숙명여대 산업공예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대 유명했던 브랜드 ‘뼝뼝’에서 2년간 단정한 숙녀복만 만들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독립했기에 손정완의 초기 디자인은 그야말로 거침없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진다”는 그는 10cm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알 없는 커다란 안경을 끼고 다니던 끼로 아방가르드한 까만색 옷만을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색의 조화’를 고민하며 컬러 매칭을 시작했다.



색에 대한 호감도 높아 컬러 매칭에 힘써
“당시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치’(살구색)나 ‘제이드’(옥색) ‘카멜’(갈색)에 대한 호감도가 없었어요. 수입 브랜드도 그 취향에 맞춰 들어오다 보니 그런 색깔 옷이 있을 리 없었죠. 그런데 저는 그런 컬러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편이라 ‘카멜’과 ‘터키시 블루’(하늘색), ‘피치’와 ‘브라운’, ‘레오파드’(표범무늬)와 ‘체리’(붉은색)를 매치하곤 했어요. 백화점 바이어들도 저의 이런 컬러 매칭에 매력을 느꼈던 걸로 알아요.”
색에 보수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잊고 있던 색감을 일깨워줬기 때문일까. 화사한 색채로 가득한 그의 옷가게는 어느새 옷 잘 입는 여자들의 아지트가 됐다. 젊은 날의 성공으로 자만할 법도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일에 집중했다. 1교시 수업은 기본적으로 빠지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24시간 내내 일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에 갤러리아백화점 입점 제안을 받은 뒤 사업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었는데도 디자인 개발 외 직원 관리, 건물 유지 등 챙겨야 할 실무가 많았던 까닭이다.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원하는 옷을 만들고 싶어 자초한 일이기에 기꺼이 이겨낼 수 있었다는 그는 “사람은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진리를 몸소 깨우쳤다.
물론 그의 열의만으로 오늘날의 ‘손정완’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손정완이 자신의 감각대로 마음껏 옷을 만들 수 있었던 건 가족의 도움이 컸다. 딸 셋 중 장녀인 그가 디자인을 맡자 둘째 여동생(손순혜)이 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셋째 여동생(손은희)이 마케팅을 챙기며 회사의 내실을 다진 것이다. 동생들 못지않게 그를 도와준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 그는 어머니 얘기를 하며 영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우리 엄마가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어요. 제가 원래 비관주의자였거든요. 영어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한자도 배우고 물리도 배워야 하느냐면서 엄마한테 따지고 그랬어요. 학교에 하도 안 가겠다고 버티니까 엄마가 진단서 떼서 학교에 제출해줘서 한 달씩 학교에 안 나가기도 했고요. 살색보다 황토색이 더 살의 색을 잘 표현하는데 왜 그런 색깔에 ‘살색’이란 이름을 붙였냐며 화를 내기도 했죠. 다른 사람한테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엄마한테만 매일같이 까탈을 부렸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어요(웃음).”
다행히 엄마는 그런 딸을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 아래 두 딸은 엄마가 드럼통 뚜껑만 열어도 벌벌 떨었지만 큰딸은 도리어 드럼통 안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구르는 걸 보고는 일찌감치 이 아이의 주장은 꺾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엄마는 그의 개성을 존중해줬다. 옷 좋아하는 초등학생 딸이 기성복이 싫다고 하자 의상실에 데려가 직접 디자인한 옷을 맞춰 입게끔 해줄 정도. 당시 큰 원 모양 지퍼를 가슴에 달고 싶어 한 손정완은 그만한 지퍼가 한국에 없어 작은 크기 지퍼를 달 수밖에 없어 아쉽긴 했지만 그나마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 한동안 행복해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부티크를 차린다고 했을 때 돈을 대준 사람도 어머니. 든든한 버팀목인 어머니는 언제나 그렇듯 딸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손정완도 평생 부정적으로 살기만 한 건 아니다. 그를 긍정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종교였다. “진태옥 선생님과 루비나 선생님과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는 그는 부모의 고마움을 알게 돼 그제야 비로소 효도하려는 마음을 갖게 됐다. 느즈막히 결혼해 얻은 하나 뿐인 아들에게 헌신하는 것도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짝꿍으로 만나 14년 전 그의 반려자가 된 “키 크고 잘생겼지만 ‘배 바지’를 즐겨입는 남편” 또한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긴 마찬가지.

강남여자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 손정완


“제가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별로 없어요. 물론 같은 빌라에 사는 친정엄마가 봐주시긴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저잖아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으로 아직 어리기 때문에 가능한 한 주말은 아이와 보내려고 하고 저녁에는 절대 약속을 안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교류할 시간이 부족하긴 한데 그래도 가족만큼 소중한 게 어디 있겠나 싶어요.”

엄마가 내게 주신 사랑만큼 아이에게 돌려주고 싶어
열혈 엄마는 아니라며 손사래 치는 그가 남다르게 신경 쓰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바로 가족 간의 사랑을 느끼게끔 하고 싶은 것. 당분간 조기유학에 관심이 없는 것도 가족의 사랑을 알게끔 하는 것이 그 어떤 교육보다 중요하다고 느끼는 까닭이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자신감이 있어서 잘못되었다가도 돌아온다고 하는데, 전 그 말을 믿어요. 제 자신도 그랬기 때문에 사랑을 많이 주려고 해요.”
그는 아이가 가족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본인 스스로가 원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 또한 그렇게 제 길을 걷길 소망한다.
물론 본인 또한 스스로가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는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하며 그동안 해온 일을 더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디자이너로 살려면 시간을 잘 쪼개서 관리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일찌감치 오늘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기 전에는 퇴근하지 않는 정도의 성실성은 이미 갖추고 있는 상태.
“물론 언제나 일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휴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더라고요. 이번 추석에 저는 뉴욕에 가려고 해요. 출장 계획이 잡혀 있는데, 마음껏 배우고 즐기고 와서 열심히 디자인해야죠(웃음).”
그는 올해 남다른 계획을 세웠다. 남성복 론칭을 준비중인 그는 여성복에서 추구한 섹시하고 럭셔리한 느낌을 남성복에 적용해보려고 하는 것. 자신의 콘셉트로 그동안 남성복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것을 새로이 추구하고 싶어서다. 당장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션쇼 등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발판을 넓혀갈 예정이다. 2007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쇼를 연 뒤 해외 진출의 어려움을 느껴 한동안 주춤했지만 올해부터는 “외국에서 무명 디자이너로 시작하는 설움을 겪더라도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 해외 패션쇼를 추진하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한 순간의 실수로 바다에 빠질 수 있는 ‘서퍼’(파도 타는 사람)처럼 언제나 민감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디자이너 손정완의 바람은 뭘까.
“제가 죽어도 기억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샤넬이나 지방시, 디올처럼 디자이너가 죽은 뒤에도 지속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여러 가지 면을 구축해서 브랜드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가야겠지요. 주춤거릴 틈이 없어요(웃음).”

여성동아 2010년 10월 5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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