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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브의 달인, 성동일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글 두정아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이데일리 제공

입력 2010.08.18 11:19:00

올 상반기 최고의 인기드라마 ‘추노’에서 절정의 연기를 선보이며 ‘미친 존재감’이라는 애칭을 얻은 성동일. 하지만 연기 이외의 인간 성동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거나 왜곡돼 있다. 그조차도 “내가 내성적이고 조용하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고 말한다. 겉과 속이 다른 남자, 성동일을 집중 해부했다.
애드리브의 달인, 성동일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재미난 얘기가 아닌데도 낄낄거리며 웃어줄 것 같은 사람. 왠지 모르게 동네 어귀에서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한 번쯤은 마주칠 것 같은 사람. 아직도 쉰 목소리를 내며 ‘대길’을 쫓을 것만 같은 ‘천지호’. 그는 배우 성동일(43)이다.
그는 올해 초 ‘추노’에서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만들어내 호평을 받았다. 조선 최고의 왈패로 날카로운 인상과 강한 포스를 뿜어내며 잡초처럼 끝까지 살아남아 극악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능글거리고 흐느적거리는 말투와 누렇고 검게 썩은 이로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표현해 ‘주인공을 뛰어넘는 조연’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사소한 애드리브도 진정성 없으면 통하지 않아
91년 SBS 공채탤런트 1기로 데뷔한 성동일은 지난 98년 드라마 ‘은실이’에서 ‘빨간 양말’이라는 닉네임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드라마 ‘패션70s’ ‘칼잡이 오수정’ ‘뉴하트’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국가대표’ ‘홍길동의 후예’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특유의 코믹 연기로 많은 웃음을 선사해왔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며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성동일은 현재 드라마 ‘도망자’등 3편의 작품을 동시에 촬영해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이 바쁜 활동 가운데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큰 도움을 준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6년째 MBC 아침방송 ‘기분 좋은 날’에 꾸준히 출연할 만큼 정도 깊다.
‘주연을 능가하는 조연’ ‘명품 배우’ 등 자신을 일컫는 화려한 수식어가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그는 “명품은 비싸잖아요. 누구나 갖고 싶은 타이틀인 만큼 감사하죠”라며 넉살 좋게 웃었다.
그는 최근 개봉한 영화 ‘마음이2’에서 도둑 ‘필브라더스’의 맏형 혁필 역을 맡아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서울 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성동일은 “작품을 하면서 동료(견공) 배우와 술잔을 기울이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무척 아쉬웠다”며 “견공 배우 마음이와 내 출연료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애드리브의 달인, 성동일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 인터뷰를 잘 안 하는 배우로 유명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본질적으로 게을러서 그런 것 같다. 오늘 인터뷰 때문에 어제 미리 씻고 잤다(웃음). 얼마 전 한 방송국에서 인터뷰하자고 하기에 우리 집이 있는 인천시 부평으로 오라고 해놓고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인터뷰 장소를 노래방으로 정했다. 사실 나는 남 앞에 나서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강남 술집에서 나를 봤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슬리퍼 끌고 시장에 나가 통닭 장사하는 동네 친구하고 노는 스타일이니까.”
▼ 지난해 ‘국가대표’에 이어 ‘추노’의 인상 깊은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인기를 실감하나.
“아직은 나서는 게 어색하다. 오늘 이런 (인터뷰) 자리를 안 만들려고 했던 이유도 어색해서다. 이번 영화 포스터도 안 찍는다고 했다. 사진에 나 없어도 내 이름 들어가면 다 알지 않느냐고.”
▼ 주연이 아니더라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했을 텐데.
“SBS 전속으로 있을 때 월급이 30만원이었다. 금전적으로나 여러 가지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예전에는 조연은 조연답게 연기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조금만 튀거나 하면 ‘네가 주인공이냐? 그냥 네 역할 대로 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으니까. 조연답게 연기하는 게 어디 있나.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얘기 안 한다. 그러니까 ‘추노’에서 ‘천지호’ 캐릭터를 내가 만들 수 있었던 거다. 가끔 누가 좋은 배우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하면 ‘대학로 가면 많다’고 말한다. 좋은 배우를 찾아서 다듬는 것도 매력 아닌가.”



애드리브의 달인, 성동일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영화 ‘마음이2’ 출연진과 함께. 동료배우와 술잔을 기울이지 않은 건 ‘마음이2’의 견공이 유일하다고.



▼ ‘추노’를 통해 여성팬들도 많이 생긴 것 같다.
“‘추노’ 때 캐릭터를 위해 이도 더럽게 하고 머리도 지저분하게 하고 그랬다. 편안한 스타일을 좋아해 주신 것 같다. 주부들이 남편이나 자식에게 스트레스 받다가 나 같은 사람을 보고 재미와 편안함을 느낀 거 아닐까. 내가 눈에 힘주고 연기했으면 달랐을 거다. 내가 사는 모습 그대로, 똑같이 연기하다 보니 잘 전달된 것 같다.”
▼ ‘추노’의 천지호는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독창적인 캐릭터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울 일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웃으면서 풀어간다. 속상하면 일부러 술 안 먹고 맨 정신에 해결한 다음 소주 한잔하러 간다. 악역에게도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다. 그런 복잡한 인생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연기 철학이 있다면 웃음, 눈물, 진지함 이 세 가지를 꼭 넣으려고 한다. 그래서 미친놈처럼 애드리브 치고 막 웃다가 갑자기 표정이 바뀌면서 진지해지고 그런다. 하지만 어떤 캐릭터든 전반적으로 세 가지 감정이 다 묻어 있다. 또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똑같은 연기를 두 번 안 하고 무조건 한 테이크로 다 끝낸다.”
▼ ‘애드리브’에는 특별한 비결이 있나.
“‘애드리브’는 ‘과장된 진실’이다. 진실이 없으면 애드리브는 절대 안 먹힌다. 자칫하면 말장난이 돼버린다. 애드리브는 0.01초 타이밍 조절이 필요한데 리허설 때 일부러 애드리브를 안 하고 그냥 상대방 대사를 듣는 편이다. 평소 나는 대본을 잘 안 외우는 편이다. 다른 배우 대사도 잘 안듣는다. 나는 내가 맡은 배역에만 신경 쓰면 된다. ‘추노’에서는 대길이(장혁)만 죽어라 쫓는다는 생각만 했다.”
▼ 영화 ‘마음이2’에서는 도둑으로 나온다.
“강아지를 납치하는 도둑 역이다. 영화 ‘나홀로 집에’처럼 가족 모두가 봐도 좋아할 만한 유쾌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다. 이 영화는 ‘추노’보다 먼저 찍었는데 ‘추노’에서처럼 가성을 썼다. ‘천지호’ 캐릭터와 30~40%는 비슷하다.”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혼인신고만 한 아내, 고마운 버팀목

그는 올 초 영화 ‘국가대표’로 ‘맥스무비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시상대에 오른 그는 아내를 향해 “경혜야 고맙다”라고 말문을 연 뒤 “아내와 결혼식도 못 올리고 8년간 살았다. 상을 받기까지 2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8년 전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이 어려워질 때쯤 11세 연하의 아내를 만나 첫눈에 반했고, 아내는 식당을 살리기 위해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살림부터 합쳤던 것. 이후 결혼 날짜를 잡았으나 장인의 병환으로 식을 올리지 못하고 혼인신고만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내는 결혼식을 올리자 채근하지 않는다고.
▼ 요즘이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매력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나대지 않고 있는 척하지 않고 폼 안 잡고…. 그런 게 아닐까. 사실 나는 내세울 게 없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건 발가락의 무좀 하나다(웃음). 아내와 무일푼으로 시작했고 누구보다 고생도 많이 했다. 사실 촬영 현장에서 놀다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돈까지 주니 얼마나 좋나. 나를 만들어주는 것은 작가와 스태프다.”
▼ 실제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하는데 정말인가.
“사실 아무도 안 믿지만 그런 편이다. 나는 집에 있는 게 제일 편하고 여행 다니는 게 좋다. 술을 같이 먹기 시작한 사람하고는 매일 만나서 먹는 스타일인데, 지인이 나와 3개월간 술먹다가 어느 날 ‘너랑 술 먹기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더라. 단 몇 사람이라도 깊이 사귀는 걸 좋아한다. 형제 사이 이상으로. 내가 집에 없어도 어떤 후배는 우리 집에 일주일 머물기도 하고 그런다. 집사람이 밥 차려주느라 고생이지.”

애드리브의 달인, 성동일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 맥스무비 시상식 때 수상 소감을 듣고 아내가 감동받았을 것 같다
“집사람은 TV를 안 보기 때문에 내 연기에 관심이 없다. 출연료 입금 확인만 한다(웃음). 아내가 가장 감동받을 때는 내가 일찍 집에 들어갔을 때다.”
▼ 아내에게 굉장히 헌신적이라고 소문이 파다하다.
“나는 그렇게 헌신적이거나 자상하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은 열심히 돈 벌어서 자식들을 조금 더 편하게 키울 수 있도록 해주는 정도다. 오히려 아내가 헌신적이다. 정말 고마운 것은, 집에서 술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새벽 2시에 사람들을 우루루 데리고 가도 아내는 30분 안에 뚝딱 술상을 차린다. 우리 집사람이 내면 연기는 나보다 더 잘할 거다. 너무 참고 살아서….”
▼ 놀랍다. 신혼 때는 그런 문제로 부부싸움 많이 했겠다.
“아내와 정말 돈 한 푼 없이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싸워도 갈 데가 없어서 이를 악물고 참는다고 할 정도였다. 지금은 싸울 일이 없다. 그리고 아내나 나나, 기댈 데 없이 외로운 사람들이라 싸우면 서로 손해다. 내가 누군가를 데리고 오면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니까. 이제 아내는 자신이 잘해야 명품 백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동료는 장혁, 인생도 연기도 폼 잡고 싶지 않아
성동일이 있는 촬영장은 언제나 웃음이 넘친다. 그의 생활 역시 연기처럼 즐겁다. 성동일은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내 연기를 보는 분들에게 뭔가 가르치려거나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 나대지 않고 무게 안 잡고 폼 안 잡으려 한다”고 말한다. 인기를 얻은 후 가장 달라진 점은 “남들한테 많이 얻어먹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남에게) 사줄 수 있다는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성동일. 그의 연기 내공은 인생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느껴지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제발 까불지 말고, 있어도 없는 척 이 모습 그대로 보여달라’는 소리 같다. 정말로 그런 식으로 즐기고 싶다, 일 자체를. 아침에 눈떠서 고민하는 게 있다. 오늘은 촬영장 가서 누구랑 술 먹나 하는 거다. 어제는 쟤랑 먹었으니 오늘은 얘랑 먹어야겠다, 항상 고민한다. 일단 촬영장에서는 상대를 알아야 트러블이 없다.”
▼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인 것 같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비결이 있다면.
“어떤 배우는 조명팀에게 새 반사판을 사다 주는 걸 봤다. 화면에 잘 나오고 싶어서. 나는 술을 사준다. 그럼 그 스태프가 알아서 가장 좋은 반사판을 가져와 비춰준다. 방법론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수입의 일정 금액을 술값으로 쓰는 나름의 습관이 있다. 출연료의 20%까지 써봤다.”
▼ 함께 연기한 후배 중에 정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배우가 있다면.
“장혁이 ‘추노’ 마치고 3일 만에 중국에 드라마를 찍으러 갔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더라. ‘술을 먹는데 선배님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라고. 그래서 답장 보냈다. ‘아이 둘 키우려면 열심히 돈 벌어라’. ‘국가대표’에 같이 출연한 하정우는 나이 차이가 많아도 촬영 때 술자리가 있으면 항상 나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데리러 오고 그랬다.”
▼ 독보적인 조연도 좋지만 원톱으로 출연하고 싶은 욕심도 들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무조건 망한다. 나는 재래시장 같은 게 좋다. 투박하고 걸러지지 않은 느낌. 조연이 있어야 주연이 빛나는 것임을 잘 안다. 지금의 내 위치만으로도 감사하다.”

여성동아 2010년 8월 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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