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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했어요

오뚝이 같은 여자, 노현희 싱글라이프

글 오진영 사진 홍중식 기자

2010. 06. 16

이혼 후 브라운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무대에서는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노현희. 성형수술에 대한 악성 댓글, 이혼,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악재가 겹쳤음에도 꿋꿋하게 활동을 계속해온 그를 만나보았다.

서울 혜화동에서 만난 노현희(38)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빨개진 코끝엔 콧물이 맺혀 있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한참을 울부짖었음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연극 ‘별궁의 노래’(5월21~31일) 연습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들어오는 작품마다 발랄하고 경쾌하고 천방지축인 역할이었어요. 그래서 덩달아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출연작이 계속 비극이네요. 작년에 느끼지 못했던 슬픔과 우울감이 요새 밀려오는 것 같아 큰일이에요.”

이혼, 나보다 주변 사람이 더 의식하는 게 고민

오뚝이 같은 여자, 노현희 싱글라이프


‘별궁의 노래’는 조선의 개혁을 꿈꾸던 소현세자빈의 삶과 죽음을 다룬 창작극이다. 소현세자빈은 1636년 병자호란에 패배하자 남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서 8년간 볼모로 지내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남편을 잃고 폐세자빈이 돼 죽임을 당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노현희는 주인공 소현세자빈 역을 맡았다. 그는 ‘별궁의 노래’ 외에도 한국연극배우협회에서 준비하는 악극 ‘애수의 소야곡’에 출연 중이다.
알려진 대로 지난해 그에게는 힘든 일이 많았다. 유명 탤런트와 아나운서 커플의 이혼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제 성격이 원래 작은 일에는 안달복달해도 정작 큰일이 닥치면 침착해지는 편이에요. 제 일생일대의 사건인 이혼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치러냈다고 생각해요. 소현세자빈의 성격에도 그런 면이 있어서 완전히 빠져 지내고 있어요.”
노현희는 자신이 아무리 의연하게 행동해도 주위에서 그렇게 보지 않는 게 고민이라고 한다.
“저는 제가 이혼했다는 사실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게 얘기하는 편인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조심스러워하더라고요. 연습할 때 후배들의 발음을 지적하면서 ‘발음이 그게 뭐야? 내가 이래봬도 아나운서와 살았던 사람이야. 그 발음은 문제 있다’ 라는 식으로 얘기하니까 후배들이 처음엔 당황하더라고요. 요즘은 후배들도 익숙해져서 제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마마,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하고 받아줘요.”
그는 당장이라도 TV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평소 성격대로 발랄하게 웃고 떠들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발악한다’는 평을 들을 것 같아 아무래도 움츠러들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조용히 지내고 있으면 이혼으로 인한 우울증이라고 의심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면 ‘참 애쓴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혼한 여배우’는 이래저래 힘들다.
이혼한 뒤론 어디를 가든 그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엔 ‘왜 헤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담겨 있다. 직접적으로 이혼 사유를 물어오는 사람들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한 번도 그들을 만족시킨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좋은데 헤어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혼 얘기를 하자면 어떻게든 상대방에 대한 험담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저는 그런 식으로 그분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오뚝이 같은 여자, 노현희 싱글라이프


이혼 후 했던 한 인터뷰에서 그는 “모두 내 잘못”이라는 언급을 했고, 그 표현이 곧바로 기사 타이틀로 부각됐다. 인터뷰 기사를 본 주위 사람들이 “왜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해서 비난을 자초하느냐”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는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복잡한 속사정을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보자기로 덮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분이 끝까지 잘되고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길 바라는 게 제 솔직한 심정이에요. 어쨌든 한 번 부부의 인연을 맺었던 사람인데 잘 안 풀리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낫잖아요.”
안 좋은 일은 몰려서 온다는 말처럼 그는 이혼 무렵 한동안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문에 휩싸여 마음고생을 했다. 한 아침방송에 출연해 건강검진을 받은 것이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왔다.
“병원 가기 무섭다고 병을 키우지 말고 미리 미리 검진받아 조기에 치료하자는 주제를 다룬 프로그램이었어요. 저도 출연자로서 검사를 받았는데, 가슴에 물혹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여자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러니 일년에 한 번씩 꼭 검사를 받아 건강을 체크하자는 식으로 방송이 나갔는데, 어느 날 보니 인터넷에서 제가 암 환자가 돼있더라고요.”
평소 알고 지낸 드라마 PD에게 연극 티켓을 보냈더니, ‘암투병중이라면서 연극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온 적도 있다. 건강이 안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지방 공연이나 행사 섭외가 끊겨 금전적인 손해도 컸다. 그런데도 그는 남을 탓하지 않았다.
“저는 항상 그런 식이었어요. 성형수술 때문에 인터넷에 악성 댓글이 많았을 때도 그저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20대 초반에 데뷔해 지금껏 쉬지 않고 일해온 자칭 ‘생활형 배우’다. 드라마·코미디·버라이어티·정보 프로그램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쉬운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소속사가 있거나 매니저를 둔 적도 없어 인터넷에 불리한 기사가 떠도 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솔직한 성격이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경향도 있었다.
“성격이 너무 솔직해서 탈이지요.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서는 누가 제 눈만 쳐다봐도 ‘수술이 잘 안돼서요’ 하고 묻지도 않은 말을 제 입으로 하고 다녔으니 말이죠.”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는 커플 보면 부럽지만…”
지난 겨울, 그는 한 케이블방송에서 진행한 위탁모 체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촬영하는 2주일 동안 아기와 얼마나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고 나서 마음이 몹시 허전했다고 한다.
“5개월 된 아기였어요. 신생아가 아니면 입양이 잘 안된다고 해서 일부러 5개월 된 아기를 맡았는데, 옹알이하고 뒤집기도 시작해서 한창 예쁠 때였어요. 수영장에 데려갔는데 아기가 물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다리 힘도 좋아서 수영 선생님도 ‘물을 이렇게 좋아하는 아기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어요.”

오뚝이 같은 여자, 노현희 싱글라이프


그가 돌본 아기는 부모가 모두 중증 장애인인 탓에 키울 형편이 안 돼 시설에 맡겨진 상황이었다. 이럴 경우 아기가 장애 유전자를 가졌을 것을 염려해 입양을 꺼리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아기는 다행히 장애 가능성이 있어도 상관없다고 한 좋은 가정에 입양됐다. 노현희는 새 부모에게 아기를 안겨주면서 “아기가 물을 좋아하고 다리가 튼튼하니 꼭 수영을 시켜서 ‘여자 박태환’으로 키워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아기와 헤어질 때 호랑이 인형을 만들어줬는데, 인형 안에 타임캡슐처럼 이 다음에 아기가 읽을 편지를 넣어뒀어요. 헤어지기 전에 한의원에 데려가 특별히 주의할 것은 없는지 진단받은 내용도 새 부모님에게 전해드렸고요. 얼마 전에 아기가 돌이라 만나고 왔어요. 요즘도 아기 어머니께서 예쁜 아기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주신답니다.”
그는 자식으로서 어머니에게 손자손녀를 안겨드리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린다. 얼마 전 남동생이 예쁜 딸을 낳은 덕분에 한시름 덜긴 했지만 말이다. 조카가 고모인 자신을 쏙 빼닮아 마치 자기가 아이를 낳은 것처럼 행복해하는 그에게 주위에선 여전히 “더 늦기 전에 어서 저렇게 예쁜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느냐”고 부추긴다. 하지만 아직 그에겐 자신이 진정으로 다시 결혼을 원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거리를 지나다 황혼의 부부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어요.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는 눈빛을 나눌 상대가 내게도 생길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결혼까진 몰라도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오뚝이 같은 여자, 노현희 싱글라이프


그러나 당분간은 씩씩하고 에너지 넘치는 배우 노현희로 살면서 공연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한다. 그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무대에 설 준비를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이동하는 동안에는 대사를 녹음한 테이프를 들을 정도로 자기 관리와 연습에 철저하다. 그런 열의로 한 달에 4편의 공연을 소화하기도 했다.
“지금 제게 주어진 일, 제가 맡은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별궁의 노래’에서 제가 맡은 소현세자빈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이자 외교관으로 해석되는 캐릭터예요. 제가 전생에 그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작품에 매혹되어 살고 있어요.”
날이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대학로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평상복과 외출복의 중간쯤인 편안한 복장에 코믹한 돼지 그림이 그려진 모자를 눌러쓴 그는 누가 봐도 연예인 같지 않았다. 자기 몸집만 한 가방을 둘러메고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 전혀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생활형 연기자라고 얘기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늘고 왜소하지만 20대 때부터 공연으로 다져진 체력이라 강단이 있어요. 공연계에서는 작은 거인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무대를 가득 채우는, 힘이 있는 배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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