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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COOKING SPECIAL

4백 년 손맛 밴 동계 정온 종가 요리

종갓집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

기획 한여진 기자 사진 문형일 이기욱 기자 || ■ 요리 최희 유성규(055-942-0173)

입력 2010.04.19 14:44:00

4백 년 손맛  밴 동계 정온 종가 요리


수백 년 동안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대대로 전수된 종가요리에는, 수많은 제사상과 손님상을 차리면서 익힌 맛의 비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동의 풍산 류씨 종가, 광산 김씨 종가, 농암 이현보 종가, 전주 이씨 종가 등의 요리가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맛깔스러운 요리로 소문이 자자한 경남 거창의 동계 정온 선생의 종가를 찾았다.
봄을 질투하듯 때 아닌 폭설이 전국에 내린 3월 중순, 하얀 눈이 발목까지 쌓인 덕유산을 넘어 도착한 거창은 봄이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파란 하늘, 봄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는 나뭇잎….
거창은 금원산, 기백산, 단지봉 등 해발 1000m 이상 되는 10여 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조선시대 중앙관리가 거창으로 발령이 나면 울고 왔다 울고 갔다고 전해지는데, 산 속에 위치한 거창에 오기 싫어 울고 왔다가, 임기가 끝나 올라갈 때는 청정하고 산수 좋은 그곳을 떠나기 아쉬워 울었다는 것이다.
예부터 거창은 땅이 비옥해 쌀은 물론 배추, 무, 사과, 딸기, 포도, 버섯, 밤 등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거창이란 이름에 ‘크고 넓은 들판’이란 의미가 담긴 것만 봐도 먹을거리가 얼마나 풍부한지 짐작이 간다. 그 풍부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요리가 발달했는데, 현재 거창 요리를 대표하는 곳은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던 충신 동계 정온 선생의 종가다. 4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종가 요리는 현재 14대 종부 최희씨(85)와 며느리 유성규씨(63)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최희씨는 경주 최부자집 딸로 15세에 동계 정온 종가에 시집을 와 70년 동안 종부로 살고 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했을 때 종가 요리를 선보였던 하회마을 풍산 류씨 충효당(서애 류성룡의 종택) 종부 최소희씨의 큰언니로 이미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빼어난 요리 솜씨를 선보인 요리 대가다. 그는 요리할 때 몇 가지 철칙이 있다.
“첫째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둘째 요령을 피우지 않고 기본에 충실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옛말처럼 담음새도 예뻐야 하지요. 특히 요리 맛은 식재료가 좌우하므로 장보는 데 신경을 많이 쓰죠. 오늘도 도미를 사기 위해 장에 갔는데, 도미 물이 안 좋아 대신 광어를 샀어요.”
나이가 들어 지금은 부엌일을 며느리 유씨에게 넘겼지만 촬영을 위해 오랜만에 동계 종가의 대표 요리인 고추소, 수란, 광어장, 집장장아찌, 육포를 직접 차렸다. 요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마치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 같다. 그의 말 한마디에 주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식초 한 방울이나 소금 한 숟가락도 그의 승낙 없이 함부로 요리에 넣을 수 없고, 완성된 요리는 그가 최종적으로 맛을 본 뒤에야 그릇에 담는다. 요즘 주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주방 모습이지만 백 년 동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그런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4백 년 손맛  밴 동계 정온 종가 요리

1 종갓집 느낌 물씬 나는 비단 두른 빗자루. 하루에도 열두 번 집 안을 쓸고 닦던 종부에게는 빗자루 하나에도 사연이 가득하다. 2 최씨 요리 비법은 직접 만든 맛있는 된장, 고추장, 간장에 있다. 3 안채 한켠에 위치한 부엌 모습. 가지런히 정돈된 장독에서 최씨의 깔끔한 성품이 엿보인다.



고추소

“종부로 지낸 지난 70년 동안 수많은 손님상을 차렸는데, 그때마다 칭찬 받던 요리가 고추소예요. 우리 집 고추소는 풋고추에 T자로 칼집을 낸 뒤 씨를 빼내고 안에 불고기 양념한 볶은 쇠고기를 가득 넣어 만들어요. 고추에 녹말가루를 살짝 바르고 찜통에 넣어 김이 오르면 바로 꺼낸 뒤 잣가루를 듬뿍 올리지요. 고추의 아삭함과 쇠고기의 담백함, 잣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맛이 일품이죠. 손님상은 물론 술안주, 간식으로도 제격이고요. 참, 종가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잣가루 만드는 비법을 전수해드릴게요. 잣을 다질 때 도마 대신 한지를 활용해요. 한지는 칼이 닿아도 찢어지지 않고 마지막 남은 가루까지 톡톡 털어 담을 수 있답니다. 한지 네 모서리를 위로 살짝 접어 그 위에 잣을 올린 뒤 0.1cm 정도 크기로 다져요. 잣가루는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 보관해 사용하세요.”



장조림

“장조림은 일 년 365일 상에 올리는 반찬이에요. 홍두깨살 1근(400g)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냄비에 찬물과 함께 넣어 삶아요. 반드시 찬물에 넣고 익혀야 고기 누린내가 안 난답니다. 고기가 익으면 다른 냄비에 고기만 꺼내 담고 고기 삶은 물 중 위쪽 맑은 물만 덜어 고기가 잠길 정도로 부으세요. 여기에 간장 1공기, 생강 1쪽, 조청 약간을 넣고 자작하게 조리다가 마늘과 풋고추를 통째로 넣고 뚜껑을 닫은 뒤 김이 나면 바로 불을 끄세요. 마늘과 풋고추가 너무 익으면 아삭하지 않으므로 꼭 김이 오르자마자 불에서 냄비를 내려야 해요.”

4백 년 손맛  밴 동계 정온 종가 요리


수란

“삶은 달걀을 곱게 간 잣물에 띄워 먹는 수란은 입맛 없는 봄과 여름에 건강 챙기기 좋은 보양식이에요. TV에서 종종 수란 만드는 법을 소개하던데, 정통 수란 만드는 법이 아니더라고요. 수란은 달걀 삶는 게 중요해요. 끓는 물에 달걀을 조심스럽게 깨뜨려 넣고 10분 정도 익히면 자연스럽고 멋스러운 모양의 반숙이 돼요. TV에서처럼 절대 식용유 바른 국자에 달걀을 올려 익히지 마세요. 잣은 2숟가락(밥숟가락 기준, 이하 동일)을 준비해 식초를 조금씩 부어가며 곱게 으깨세요. 여기에 물 1공기를 붓고 식초와 소금, 설탕을 약간씩 넣어 새콤달콤한 잣물을 만들어요. 잣물에 달걀 반숙을 넣은 뒤 취향에 따라 채썬 석이버섯, 실고추, 데친 실파, 해삼, 문어, 전복, 미나리, 쑥갓, 두릅 등을 올리면 맛 좋고 보기 좋은 수란이 완성돼요.”

광어장

“저희 집은 장조림처럼 조린 생선장 요리가 맛있기로 유명해요. 원래 도미장을 주로 하는데, 어제 장에 나갔더니 도미 물이 안 좋아 대신 광어장을 만들었어요. 광어는 지느러미를 자르지 말고 물로 닦아 머리를 포함해 가로로 어슷하게 토막으로 자르세요. 넓은 냄비에 흰콩을 깔고 광어를 올린 뒤 물 3~4공기와 간장 1공기, 고춧가루 4숟가락 정도를 넣고 센 불에서 한소끔 끓이다가 불을 약하게 줄여 조리세요. 향이 강한 마늘을 넣으면 광어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없으므로 절대 넣지 마세요. 광어장은 반찬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국물에 밥을 비빈 뒤 상추나 배추에 광어 흰살과 함께 올려 쌈 싸먹으면 맛있어요.”

4백 년 손맛  밴 동계 정온 종가 요리


4백 년 손맛  밴 동계 정온 종가 요리

1 소쿠리와 채반 사이에 받쳐서 물이 잘 빠지게 하는 옛 주방용품으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이 배어 있다. 2 장독에서 요리에 사용할 된장과 고추장을 푸고 있는 며느리 유성규씨. 3 집 한켠에 현대식 주방이 있지만, 장을 담글 때만은 가마솥을 이용한다.



집장장아찌
“가을에 추운 겨울을 대비해 만들어두던 집장장아찌는 집장가루(밀과 콩으로 만든 메주가루)에 가지, 부추, 무, 고추, 배추 등 채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넣고 찐 뒤 2일 후 냄비에 담아 끓여 만들어요, 예전에는 찔 때 쌀 껍질을 태워 나는 연기를 이용했는데 요즘은 밥통에 찌고 있어요.”

대구보풀림
“마른 대구 1마리를 하룻밤 물에 담가 짠맛을 뺀 뒤 머리와 뼈, 껍질을 제거하고 살코기만 햇볕에 말려요. 말린 대구살을 찜통에 넣고 김이 오르면 불에서 내려 잘게 자른 뒤 방망이로 대구살을 쳐서 다져요. 간편하게 믹서를 이용해도 되고요. 간 대구살에 설탕 1숟가락과 참기름, 통깨 약간을 넣고 버무리면 아이들 반찬으로 제격인 대구보풀림이 완성된답니다.”

쇠고기볶음고추장
“적당한 크기로 간 쇠고기 반 근(200g)에 다진 마늘, 다진 파, 간장, 설탕, 조청, 참기름을 1~2숟가락씩 넣고 버무린 뒤 기름 두른 팬에 달달 볶아요. 매콤한 태양초 고추장 6~7숟가락을 넣어 다시 한 번 볶고요. 입맛 없을 때 밥에 듬뿍 넣어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 없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울 수 있답니다.”

4백 년 손맛  밴 동계 정온 종가 요리


2년 전부터 종손인 최씨의 아들 정완수씨(68)와 며느리 유성규씨가 거창으로 내려와 종택을 지키고 있다. 류씨도 시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그대로 물려 받았는데, 특히 된장, 고추장, 간장 맛은 거창뿐만 아니라 경북 일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하다.
“음식 맛은 장맛이란 말처럼, 장맛 좋은 집은 요리도 맛있어요. 저희 집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기 보다는 그냥 시어머니께서 알려주신 전통 방식으로 장을 담그는데, 비옥한 거창에서 자란 콩과 고추로 만들어 퀴퀴한 냄새가 없고 담백한 것 같아요.”
그의 장맛에 반한 사람들이 장을 구입하길 원해 얼마 전부터는 넉넉하게 담가 조금씩 팔고 있다. 올여름에는 인터넷 쇼핑몰도 오픈하고 본격적으로 된장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윤을 남기기보다 된장을 싫어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된장의 참맛을 알려주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종갓집 종부로서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4백 년 손맛  밴 동계 정온 종가 요리

1 동계 정온 종가를 방문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방명록. 2 3 이중 기와로 된 사랑채가 특이한 동계 정온 종가는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집을 둘러싼 대나무와 고목이 종택 분위기를 한층 멋스럽게 만든다.



육포
“육포는 우리 종가의 대표 요리예요. 홍두깨살을 얇고 넓게 저민 뒤 간장과 배즙, 다진 마늘, 조청을 섞어 만든 양념을 앞뒤로 고루 발라 그늘에서 2일 정도 말려 만들죠. 다른 지역 육포보다 맛이 고소하고 깔끔한 이유는 맑고 깨끗한 거창에서 자란 한우로 만든 덕분인 것 같아요.”

도라지연근정과
“연근은 0.5cm 두께로 자르고, 통도라지는 씻어 각각 찜통에 살짝 쪄요. 냄비에 찐 도라지와 연근을 넣고 조청을 자박하게 부어 센 불에서 한소끔 끓이다가 불을 약하게 줄여 3~4시간 동안 조리면 달콤 쌉싸래한 정과가 만들어져요.”

연꽃곶감
“곶감을 손으로 동글납작하게 만들고 잣을 꽂아 연꽃처럼 만들면 잣의 고소한 맛과 달콤한 곶감 맛이 어우러져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나요. 잣을 꽂을 때는 젓가락으로 곶감을 찌른 뒤 넣으면 잘 들어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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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2010년 4월 5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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