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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

이찬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

한 살 연하 사업가와 웨딩마치!

글 김명희 기자 사진 이기욱 기자

2010. 04. 15

지난 2월 결혼해 가정을 꾸린 이찬. 그는 결혼과 동시에 지난날을 모두 잊고 새 출발하겠다는 각오로 본명도 곽민찬으로 개명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내보이는 러브스토리 &신혼일기.

탤런트 이찬(34)이 지난 2월19일 웨딩마치를 울렸다. 상대는 한 살 연하 사업가 배모씨. 결혼은 누구에게나 축복받을 일이지만, 그는 “아직 조심스럽다”며 비공개로 결혼식을 진행했고 인터뷰도 사양했다. 수소문 끝에 그가 지인의 일을 돕고 있다는 서울 신림동 ‘걷고싶은 문화의거리’의 한 식당을 찾았다. 마침 그는 길 건너 고깃집에서 아버지 곽영범 PD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식사 중이었다.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곳이다.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일터로 다시 돌아온 이찬은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라며 힘들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가 창문 너머로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었다.

“아내 만나면 복잡한 일 잊을 만큼 마음 편했어요”

이찬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


그와 아내의 인연은 1년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잡한 법정공방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는 머리도 식히고 용돈도 벌 겸 경기도 청평 인근의 한 수상 레포츠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내는 그곳을 찾은 손님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그가 기억하는 아내의 첫인상은 피부가 까맣고 깡말랐다는 것. 처음엔 서로 이성으로서 호감을 느끼지 못했기에 두 사람은 상투적인 인삿말만 주고받는 사이로 몇 달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서로의 집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뚜벅이던 이찬이 몇 번 그녀의 차를 얻어타면서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때는 연애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저 편한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차를 타고 오는 2~3시간 동안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복잡한 일들을 다 잊을 만큼 마음이 편해졌어요. 점점 그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졌죠.”
그의 마음이 조금씩 배씨에게로 향할 무렵, 그녀의 마음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서울 이태원에서 친구들과 모임을 갖던 중, 배씨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들이 보고 싶어 하는데 지금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때마침 그 친구도 강남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선뜻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이 친구도 나에게 마음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그다음부터는 제가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꼭 동석을 해 계산을 하고 가더라고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오빠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준 사람들이니 내가 갚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 당시 수입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한테 얻어먹는 게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같아요.”
평범한 연인이었더라면 손잡고 데이트도 하며 충분히 즐겼을 시기. 하지만 이찬은 그럴 처지가 안 됐다. 이찬은 되도록이면 공공장소에 나서기를 꺼렸고, 혹 그런 곳에 갈 일이 있어도 어두운 곳을 찾아 숨곤 했다. 그런데 배씨는 사람들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고 항상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찬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든 자신을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고 한다. 점차 이찬의 마음에서 배씨가 차지하는 부분이 커져갔다. 하지만 결혼은 언감생심이었다. 배씨의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저를 만나는 걸 알고 부모님이 분명히 반대하셨을 텐데, 그래도 저한테는 절대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는 이야기를 안 했어요. ‘오빠, 우리 부모님도 오빠를 실제로 만나보면 좋아하실 거야’라는 말만 하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장인 장모께 인사를 드릴 일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동안 여자친구가 자신한테 내색도 못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를 생각하니 자신도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찬은 예비 장인 장모를 부지런히 찾아뵙고 아들처럼 살갑게 굴기 시작했다.
“예전에 장인께서 암 수술을 받으셨는데 그게 재발해서 몇 개월 동안 병원에 다니며 방사선치료를 받으셨어요. 그때 제가 하루도 안 빠지고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모시고 오곤 했어요. 그것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신 것 같아요.”

프러포즈를 받으며 한없이 눈물 흘린 아내



이찬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하나둘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젠 결혼을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난 겨울 어느 날 밤, 영업이 끝난 서울의 한 야외 스케이트장을 1시간가량 빌려 아내에게 청혼을 했다.
“여자친구가 지난 겨울 내내 야외 스케이트장에 놀러가자고 노래를 불렀는데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빠서 한 번도 함께 가지 못했어요.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스케이트장을 빌려 한가운데 촛불을 켜 케이크를 놓고 프러포즈를 했어요.”
‘한밤중에 영업 끝난 스케이트장엔 왜 가느냐’며 의아해하던 아내는 그 순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스케이트장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김동률의 노래 ‘아이처럼’이 울려 퍼졌다.
“좀처럼 울지 않는 친구예요.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그동안 오빠 만나 힘들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그런데 이제 그 힘들었던 순간이 다 지나고 행복할 일들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행복해서 그래’라고 하더라고요. 눈물 흘리면서 입으로는 웃는 사람, 실제로 그때 처음 봤어요(웃음).”
아내가 그를 만난 후 눈물을 흘린 적은 딱 두 번이다. 청혼을 했을 때와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이찬이 공개적으로 ‘여자친구가 있다’고 밝힌 직후였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이찬도, 그의 여자친구도 큰 상처를 입었던 것.
“당시 댓글 중에 ‘이찬 같은 남자를 만나는 여자는 도대체 어떤 여자냐’라는 내용이 있었나봐요. 그걸 보고 너무 속상해서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한테 막 뭐라고 해’라면서 속상해하더라고요. 프러포즈하면서 아내가 우는 모습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 마음이 짠해지더군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해줘야겠구나, 실망시키지 말고 잘 살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결혼식은 하객 1백50명만 초대한 가운데 간소하게 치렀다. 이찬 본인의 하객은 최민수·홍석천 등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이찬은 “특히 최민수 선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는 사연이 있다. 지난해 케이블TV 프로그램 ‘나는 PD다’에 출연한 이찬이 경기도 남양주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던 최민수를 만나러 갔던 것. 당시 이찬도 방송활동을 쉬다가 컴백한 직후였다. 두 사람은 서로 속마음을 터놓으며 우정을 쌓았다고 한다.
“전화로 결혼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그래. 찬아, 결혼식장엔 양복 입고 가야지?’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형님 편한 대로 하세요. 바이크 타고 오셔도 돼요’ 했는데 정말 양복 입고 오셨더라고요. 설마 오시랴 싶었는데 와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고, 아내한테도 ‘고맙다, 행복하게 잘 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결혼과 동시에 이찬은 새로이 거듭나기 위해 본명도 곽민찬으로 개명했다. 꽤 오래전부터 이름을 바꾸고자 맘먹고 있던 차에 결혼을 계기로 실행한 것이다.
“상견례를 마치고 양가 어른들께 의견을 여쭤봤더니, 민찬이라는 이름을 골라주셨어요. 새로 바뀐 이름은 많이 불러줄 수록 좋대요. 새 이름을 가장 많이 불러주는 분요? 저희 장인어른이세요(웃음).”
이찬 부부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와 양가와 가까운 서울 흑석동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일하다 새벽에 나란히 퇴근한다. 다음 날엔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함께 운동을 하거나 한강변을 걷는다. 아내는 가끔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번개’를 제안하기도 한다.
“저흰 아들만 둘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형수님이나 아내를 딸처럼 생각하세요.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한두 시간 산책하다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지곤 하죠.”

이찬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 되고 싶어

가정을 꾸린 이찬은 이제 방송 복귀를 준비 중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끔 출연 요청이 들어오지만 그는 되도록이면 연기를 통해 컴백하고 싶다고 한다.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배워보고 싶어 그쪽에 계신 선배에게 찾아갔더니 일단은 많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매주 화요일엔 아내와 산에 갔다가 오후에 대학로에 들러서 연극을 봐요.”
이찬의 연기 복귀를 누구보다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다. 아내가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오빠, (연기가) 좋아서 하는 것과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다른 것 같아. 난 오빠가 걱정 없이 맘 편히 연기하면 좋겠어’라고.
“그 친구 처음 봤을 때 손이 참 고왔는데 매일 궂은일을 하다 보니 손이 좀 거칠어 졌어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게 모두 저 때문이에요. 그리고 절 만난 다음부터 지금까지도 제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있더라고요. 여러모로 저한테는 과분한 사람입니다.”
어두운 터널을 막 나와 꿈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이찬. 그는 어떤 연기자를 꿈꿀까.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다기보다 이제까지 보여드리지 못한 부분을 앞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굳이 말하자면 연기를 잘하는 연기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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