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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배우는 느림의 미학

안양천을 시속 15km로 달리자

기획 한여진 기자 글 차우진(‘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9가지 매력’ 공저자) 사진 홍중식 기자

2009. 12. 14

자전거 타고 배우는 느림의 미학

안양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전거 코스다. 양천, 영등포, 구로, 금천, 광명시를 지나는 이 도로는 넓고, 곳곳에 꽃밭이며 갈대밭이며 호수와 운동장이 잘 조성된 곳이다. 특히 자전거 도로와 인라인 도로, 산책로가 넓게 구분돼 있어 자전거를 타는 데 특별한 애로사항이 없다. 풀밭과 갈대밭이 많아 한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고, 시원한 공기가 내뿜어져 나와 오히려 상쾌하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안양천은 내게 풀들이 내뿜는 숨이 순식간에 나의 온몸을 휘감고 사라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나는 주로 목동 열병합 발전소에서 안양천으로 진입한다. 일단 그 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이 안양 방면이고 왼쪽이 한강 방면인데 보통은 오른쪽으로 직진한다. 안양천은 한강의 지천이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한강을 끼고 달릴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너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지하철 구일역을 지나고 가산디지털단지역도 지난다. 그러다가 독산역, 금천구로 진입하면 전형적인 시골길처럼 생긴 길로 들어서게 된다. 나는 안양천 길 중에서도 이곳을 가장 좋아한다. 이 길을 달리기 위해 안양천을 달리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키 높이까지 자란 갈대들, 자동차 소리가 점점 멀어진 채 풀 냄새와 벌레 소리가 가까워지는 경험은 가을이나 봄에 이 길을 달려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다. 한겨울에 이 길을 달린다면, 한강을 달리는 것보다는 좀 덜 춥겠지만(한겨울에 한강을 달리는 건 정말 무모할 정도로 난감한 일이다)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재킷과 바지는 물론, 장갑과 마스크는 반드시 챙기길 권한다. 한 계절을 잘 참았다가 북동풍이 누그러드는 초봄에 안양천에 나서는 것도 좋다. 물론 저녁에 잠깐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정도라면 상관없다.
안양천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나온다. 금천구를 지나 좀 더 달리면 안양에 들어서는데, 그때부터는 줄곧 아파트 단지와 인접해 가족 단위로 나와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목동 열병합 발전소에서 여기까지 가는 데는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 교차로가 있는데, 왼쪽으로 가면 산본 방면이고 직진하면 안산으로 갈 수 있다. 나는 보통 그쯤에서 발길을 돌린다. 돌아오는 길이 가는 길보다 1.5배 정도 시간이 더 걸리는 걸 감안하면 왕복하는 데 3시간 반 정도의 코스다. 반 나절 동안 타기에 좋은 코스이며, 눈과 코와 입이 즐거운 코스기도 하다. 만약 안양 부근이나 금천구에 살고 있다면 반대로 한강까지 올라오거나, 조금 더 힘을 내서 양화대교와 맞붙어 있는 선유도공원까지 들르는 것도 좋다. 다만 선유도공원에는 자전거를 들고 들어가지 못하니 입구에 단단히 묶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속도에 대한 감각이다. 자동차를 탈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생각해보자. 자동차는 보통 시속 60km로 달린다. 물론 그것도 느리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시속 80km, 혹은 시속 100km를 우습게 여기면서 도로를 질주한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 아무리 빨라야 시속 30km를 넘지 못한다. 그것도 힘이 들어서 짧은 순간에만 그 속도를 기록할 뿐, 보통은 시속 15~20km 정도를 유지한다. 그 정도의 속도라면 적당한 운동을 하는 기분으로 오래 달릴 수 있다. 바로 그게 우리 몸이 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속도이며, 우리 몸이 견딜 수 있는 가장 좋은 속도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내 몸에 맞는 속도에 대해 생각한다. 조금만 더 빨리, 조금만 더 앞질러 가봤자 언젠가 빨간 신호등에 걸리기 마련이다. 어차피 거기서 멈춰 있을 거라면 애초에 느긋하게 마음먹고 달리는 게 좋지 않을까.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과 자전거 페달을 밟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자전거 타고 배우는 느림의 미학

1 날씨가 추울 때는 자전거 타기 전 완전무장이 필수! 도톰한 점퍼와 바지, 장갑, 마스크를 반드시 챙긴다.
2 안양천 길은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넓게 구분돼 있어 자전거 타기 편하다.
3 자전거를 타고 키 높이까지 자란 갈대밭 사이를 달리다 보면 풀 냄새가 온몸을 감싼다. 마치 자연과 친구가 된 느낌이다.
4 자전거 낱말 카드를 손에 들고, 자전거를 타러 나온 아이 모습이 귀여워 사진 한 장 찰칵.
5 지하철 독산역을 지나 금천구로 진입하면 시골길처럼 생긴 좁은 길이 나온다. 좁고 구불구불한 이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어릴 때 할머니 댁에 놀러가 자전거를 타던 기분이 든다.
6 안양천 길에는 운동기구·축구장·인라인장 등이 곳곳에 조성돼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서 공놀이나 운동을 하고 오는 이들도 많다.
7 손자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할아버지 모습. 처음에는 기우뚱거리며 페달을 밟던 아이는 한두 번 실패 후 제법 속도를 냈다. 그런 아이를 대견하게 보는 할아버지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8 안양천의 유일한 현대식 다리였던 ‘뱀쇠다리’ 근처. 지나치지 말고, 자전거에서 내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뱀쇠다리를 걸어보시길.
9 자전거의 최고속도는 30km이다. 아무리 빨리 가고 싶어도 그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다. 남들보다 앞서 가기보다 한 발 뒤에서 여유롭게 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자전거를 타다보면 이런 느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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