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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신동’김재형 15개 국어 익힌 비결

“책 살 돈 없어 서점에서 책과 벗하며 놀다 영재성 발견했어요”

글 이설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09.10.13 14:22:00

재형군은 생후 17개월에 한글을, 일곱 살에 영어를 독학한 영재다. 지능지수는 130선으로 평범하지만 영아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며 자신만의 공부법을 터득했다. 재형군 부모는 “넉넉지 못한 환경 때문에 아이를 서점에 데리고 간 것이 재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꼬마 신동’김재형 15개 국어 익힌 비결



“저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특별히 가르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영어를 읽더라고요.”(재형군 부모)
대전 도마초등학교 2학년 김재형군(9)은 언어·수학 영재다. 생후 17개월부터 책을 읽기 시작해 스스로 15개 국어를 깨쳤다. 15개 국어를 한다니 사실일까. 당최 15개 국가는 어디일까. 숱한 궁금증을 안고 카이스트에서 수학공부를 하고 나오는 재형군과 부모 김정호(38)·장홍지(35)씨를 만났다. 쏟아지는 질문에 부부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차분히 답변을 이어갔다.

책과 사랑에 빠진 꼬마, 한글과 외국어 스스로 깨치다
“재형이가 영어 중국어 일어 프랑스어 독어 러시아어 미얀마어 베트남어 몽골어 터키어 등을 읽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이해하진 못합니다. 읽고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와 중국어 정도예요. 특히 중국어는 전국 말하기 대회에서 1등도 했죠.”(아버지)
재형군이 한글을 읽기 시작한 것은 17개월 무렵. 여느 때처럼 책과 뒹굴며 놀던 아이가 어느 날 엄마 앞에서 제목을 발음했다. 한글을 가르친 적도 없는데 알고 말한 것일까. 신기함 반 기대 반으로 문장 몇 개를 적어 내밀었더니 놀랍게도 아이는 모든 글을 척척 읽어냈다.
“정식으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단지 갓난아기 때부터 책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해 수시로 방에 책을 넣어줬죠. 장난감으로 여기는 줄만 알았는데 스스로 한글을 익혔더군요. 아기 때부터 책을 너무 좋아해서 세 살 때부터 온갖 책을 다 봤습니다.”(어머니)
재형군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책 보지 마”와 “일찍 자”. 세 살 무렵부터 새벽 3,4시까지 책을 봤다고 한다. 혼자 책방에 틀어박혀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스르르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해부학 책을 볼 때는 무섭다며 엄마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종류도 가리지 않았다. 동화책은 물론 심리학 철학 역사서 등 손길 가는 대로 흥미 닿는 대로 읽어치웠다. 새로운 책이 있으면 수준과 관계없이 호기심을 보였다. 책 때문에 유치원도 다니지 못했다. 늦게까지 독서에 빠져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던 것. 보통 부모라면 무리수를 써서라도 유치원에 보냈겠지만 김씨 부부는 달랐다.
“늘 새벽에 자고 오전 11, 12시에 일어났어요. 유치원에 보내려고 아이를 일찍 재웠더니 스트레스성 틱 장애가 왔죠. 그러고 나서 강제로 유치원에 보내는 것보다 혼자 책으로 공부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새벽 1시가 넘어서 자요. 학교에선 당연히 지각대장이죠.”
잔소리하지 않아도 독서가 취미라니 부모는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김씨 부부에겐 다른 고민이 있다. 아이가 원하는 책을 마음껏 사줄 형편이 아니었던 것. 김씨는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며 반지하집에서 세 자녀를 키우고 있다. 인맥을 이용해서 책을 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헌책방과 파본을 구입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대전에 이사 온 다섯 살 무렵부터 서점에서 살았어요. 유치원에 다니지 않으니 낮에 서점에 가서 마음껏 책을 보다가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밤 10시쯤 집에 왔죠.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서점에 데려갔어요.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직원들도 나중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습니다.”(어머니)

‘꼬마 신동’김재형 15개 국어 익힌 비결

서점을 적극 활용한 데에는 경제적인 사정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독서량과 비례해 재형군의 호기심도 무럭무럭 자랐다. 과학 의학 수학 외국어 등 전문서적을 읽은 뒤에는 엄마아빠에게 이런저런 질문도 던졌다. 하지만 부모는 답변을 줄 수 없어 난감할 뿐이었다.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킬 형편도 아니니 책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재형군이 수많은 외국어를 익힌 곳도 서점이다. 구석에 앉아 책에 코를 박고 있던 재형이를 발견한 서점 직원. 평소라면 인사를 건네고 지나쳤겠지만 이날은 읽던 책을 빼앗아 들었다. 아이가 읽던 책은 영어가 빼곡한 전문 원서였던 것. 직원은 재형이가 읽지도 못하는 책으로 장난을 친다 생각한 것이다.
“일곱 살 때쯤 재형이가 영어책을 읽기에 ‘너 읽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렇대요. 직원이 신기해서 발음을 시켰더니 맞아요. 뜻도 알고 있고요. 알파벳에 해당하는 발음을 유추해서 조합을 한다고 하더군요. 재형이는 그런 식으로 수많은 외국어를 익히고 발음했던 거죠. 한자도 그냥 눈으로 암기하는데 1백자 외는 데 20분 정도 걸려요. 일곱 살 때 3개월 만에 한자능력시험 1,2,3급을 차례로 땄죠. 한 외대 교수님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시더군요.”

원칙 외에는 잔소리하지 않는 자유방임형 교육
재형군은 여덟 살 되던 해 교육감 추천으로 카이스트 영재교육원생이 됐다. 초등 3학년 이상이 대상이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특별히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이 수업과 별개로 매주 3번씩 카이스트 학생에게 수학 지도도 받는다. 지금껏 책으로 궁금증을 해결했지만 이제 카이스트라는 새로운 공부친구가 생긴 것이다.
원래 재형군 부모는 사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형편도 형편이었지만 억지로 시키는 공부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서점을 놀이터 삼은 것 외에는 교육법도 특이할 게 없다. 굳이 교육법을 찾는다면 버릇없는 행동을 하거나 떼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공부에도 일절 참견하지 않아 재형군은 주로 누나 지연양(11)과 문제집을 바꿔 풀었다. 집에 TV가 없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 TV광이던 아빠 김씨는 교육을 위해 간간이 내비게이션으로 TV를 본다. 아이들은 자연히 집에서 어울려 책을 읽거나 퍼즐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루할 때면 밖으로 나가 배드민턴을 하거나 장난을 쳤다. 하지만 재형군이 카이스트에서 공부하면서 김씨 부부는 사교육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영재교육원의 모든 수업은 영어로 이뤄져요. 함께 수업 듣는 아이들을 보면 다들 영어도 유창하고 발표도 잘하더군요. 하지만 재형이는 처음에 ‘Yes’라고 답하는 것조차 힘들어했어요. 언어란 대화하면서 익히는 것인데, 책으로만 공부해 말하기에 서툴렀던 것이죠. 1년쯤 선생님과 대화하니 금세 실력이 늘더군요. 수학도 마찬가지예요. 재형이는 정규 수업을 받지 않고 혼자 책으로 공부해 과학고 문제를 풀다가도 간단한 부분에서 쩔쩔매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재능을 썩힌 것 같아 속상했어요.”(아버지)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한 번도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돈 없이는 교육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아픈 세상이치를 깨달았다. 책은 물론 세계지도, 망원경, 하다못해 카이스트로 오가는 교통비조차 이 부부에게는 짐이었다. 김씨는 “가능성 있는 아이는 제도적인 후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낮게 탄식했다.
영재를 둔 모든 부모의 고민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조화. 김씨 부부는 독서나 카이스트 수업을 통해 공부를 하되 학교에는 계속 보낼 생각이다. 공부 못지않게 또래와 어울리며 사회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아이가 원한다면 장기적으로 영재고등학교에 보낼 계획도 갖고 있다.

여성동아 2009년 10월 5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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