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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조연 열전 2

‘표 집사’로 인기몰이~ 이승형

“오랜 무명생활 ‘내공’쌓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달려왔어요”

글 김유림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8. 24

시청률 40%를 웃돌며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는 눈에 띄는 조연이 있다. 오 여사(유지인)와 유쾌한 러브라인을 선보인 ‘표 집사’ 이승형이 그 주인공.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고 말하는 감초 조연 이승형의 못 말리는 연기 열정.

‘표 집사’로 인기몰이~  이승형



공채 연기자 출연료, 엑스트라 출연료, CF 모델료 중 어느 것이 가장 높을까? 정답은 CF모델료’엑스트라 출연료’공채 연기자 출연료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SBS 공채탤런트 출신 이승형(41)의 경우는 그랬다.
“광고 하나 찍으면 대학 등록금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는데, 그걸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찍었어요. 당시 엑스트라 출연료가 3만원이었고 신인탤런트 출연료는 1만원이었죠(웃음). 자동차 기름값도 안 되는 돈이지만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어요.”
SBS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깐깐한 살림9단 ‘표 집사’로 출연한 이승형은 ‘만년 조연’이란 꼬리표가 부끄럽지 않다. 17년 동안 잠시도 공백기를 가진 적이 없을 정도로 그에게 연기는 삶의 전부다. 지금껏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그는 ‘찬란한 유산’을 계기로 자신의 이름 석 자도 알리고픈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얼굴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아줌마 팬을 통해 인기를 실감한다고.
“식당에 가면 주인아주머니께서 밥도 많이 주세요. ‘우리집에도 이런 집사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하시면서요. ‘요리도 잘하고 빨래도 잘하고 생긴 것도 멀쩡하니, 오 여사(유지인)는 얼마나 좋을꼬~’ 하시면서요(웃음). 최근 ‘야심만만2’ ‘TV 로펌 솔로몬’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찾아주실 때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중고차 값 갚기 위해 시작한 모델 활동, 신인시절 중장비기술로 생계유지
그의 멜로 연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드라마 ‘그 여자’에서는 바람피우는 남편 역이었는데 이후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여 호평을 받았다. 당시 소현경 작가는 그에게 “나중에 더 좋은 멜로로 만나자”고 했고, ‘찬란한 유산’으로 그 약속을 지켰다. 극중 ‘띠동갑’ 유지인과 로맨스를 선보인 그는 “중년의 사랑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며 웃었다.
“마지막 한 주 촬영이 남았는데, 오 여사와 어디까지 발전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좋겠는데, 유지인 선배는 ‘이렇게 나이 어린 남자랑? 어우 징그러워~’하시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요즘 실제 커플 중에도 띠동갑이 많잖아요. 또 어떤 분은 ‘나중에 오 여사와 어르신(반효정) 재산을 들고 튀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데요(웃음).”
유쾌한 애정연기로 극의 재미를 더한 두 사람은 얼마 전 CF도 함께 찍었다. 시푸드 레스토랑 광고인데, 드라마 캐릭터대로 두 사람이 식당에서 데이트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촬영은 부산에서 진행됐는데 마침 미국에서 유학 중인 유지인의 두 딸이 현장으로 찾아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경희대 체육학과 87학번인 이승형은 대학시절 CF 모델로 데뷔했다. 중고차 값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기계를 좋아한 그는 대입시험을 마치자마자 운전면허를 딴 뒤 동네 아는 형에게서 포니2 중고차를 70만원에 샀다. 수중에 30만원밖에 없던 터라 나머지 40만원은 대학에 입학한 뒤 갚기로 하고 호프집 등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려니까 정작 차를 몰 시간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이 모델에이전시 명함을 줘서 호기심에 사무실을 찾아갔다가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돈 버는 재미에 열심히 했는데, 하다 보니까 승부욕이 생기더라고요. 광고모델은 콘티가 바뀔 때마다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기성모델들에게 밀리기 싫어서 혼자 거울을 보며 연습하고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당시 그는 의상·제과·음료수 광고 등을 섭렵하며 손지창, 이종원과 함께 CF계를 주름 잡았다고 한다. 패션모델로도 활동했는데, 그때만 해도 키 180cm 정도면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한 달 평균 2, 3개의 광고를 찍었으니 벌이도 꽤 좋았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아파트 한 채를 샀을 정도다. 연기자로 전업한 건 군대에 다녀와서다.
“내무반에서 ‘각 잡고’ 앉아 TV를 보는데 (이)종원이가 스포츠 의류 CF에서 멋지게 의자를 넘기더라고요. 그러더니 연기자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빨리 연기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제대한 뒤 곧바로 MBC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지만 떨어졌고, 이듬해 SBS에 합격했어요.”
그의 동기로는 김지수·이일화·이승신·최준용 등이 있다. 5년 가까이는 엑스트라 수준의 단역만 맡았지만 그는 방송국 다니는 게 즐거웠고,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이승형은 “남들은 돈 들여 학원도 다니는데, 나는 적지만 돈을 받고 연기를 배웠으니 남는 장사 아니냐”며 웃었다.

‘표 집사’로 인기몰이~  이승형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던 그는 연기를 하면서 자동차 정비, 중장비 운전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대학시절 따 놓은 자격증이 유용하게 쓰였다. 남들은 그 시절을 ‘고생’이라고 표현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체력이 있어 다행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연기를 고집할 수 있었던 것도 또 다른 직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델 활동을 재개하지 않은 이유는 연기하는 데 독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광고 한 편 찍고 나면 1백만~2백만원을 버는데, 누가 1만원 받고 연기를 하고 싶겠어요. 자꾸 하다 보면 돈 욕심이 생길 것 같아 탤런트가 된 뒤로는 아예 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그러느라 광고 모델로 번 돈은 연기하면서 다 까먹었죠(웃음).”
“한 방에 인생역전 노리기보다 바닥부터 차곡차곡 내실 쌓아 평생 연기자로 남고 싶어요”
이승형은 ‘주인공 친구’ 역 전문으로 통한다.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의사·검사·재벌2세 등의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한때는 캐릭터가 한정된 것에 불만을 갖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연기자”라 자위하며 최선을 다했다.
“솔직히 제가 ‘전원일기’에 어울리는 마스크는 아니잖아요(웃음). 바람피우고, 사기 치는 역할이 잘 어울린다면, 그 안에서 최고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신인 때는 착하고 어수룩한 연기만 해서 ‘악역은 못하겠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연기자라면 누구나 악역에 욕심이 있는데 그걸 못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약이 오르던지…. 그래서 악역에 캐스팅됐을 때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계속 비슷한 역할이 들어오더라고요(웃음).”
작은 역할에도 최선을 다하며 내실을 쌓아온 그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드라마 ‘제5공화국’ ‘작은아씨들’ ‘천하일색 박정금’ 등에 캐스팅되며 조금씩 역할 비중이 늘었다. 그의 인생 좌우명은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다. 무명 연기자로 좌절의 쓴맛도 여러 번 봤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아직 준비가 덜 됐구나’ 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제가 맡기로 한 배역이 하루아침에 다른 연기자에게 넘어가는 일은 비일비재해요. 하지만 지금껏 연기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오히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칼을 갈았죠(웃음). 한 방에 대박을 꿈꾸는 것보다는 바닥부터 시작해 천천히 정상에 오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요. 톱스타가 되진 못하더라도 한평생 연기자로 살면서 일흔에 가까워졌을 때 한국의 아버지상을 제대로 그릴 수만 있다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운동으로 스트레스 푸는 만능 스포츠맨
대부분의 시간을 답답한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레저스포츠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푼다. 체육학과 출신답게 못하는 운동이 없는데, 여름에는 수영·수상스키·산악바이크 등을 즐긴다고 한다. 등산도 3년 전부터 꾸준히 하고 있다. 산행 후 마시는 시원한 물 한잔이 그렇게 달게 느껴질 수 없다고. 싱글인 그는 주로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고 한다.
“요즘은 북한산국립공원 입장이 무료지만, 3년 전만 해도 입장권이 1천8백원이었어요. 4만원에 1년 자유이용권을 끊어 매일같이 다녔죠. 사업하는 친구들이 몇 억원 하는 골프회원권 있다고 자랑할 때 저는 국립공원 회원권 있다며 농담을 하곤 했어요(웃음). 최근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아마추어 수준밖에 안 되지만 산행 때 항상 카메라를 갖고 가요. 똑같은 길이어도 계절마다 그 모습이 수시로 바뀌는데, 렌즈를 통해 자연을 보면 그 변화가 더욱 확연히 느껴지더라고요.”
나이에 비해 피부가 좋은 그는 그 비결로도 등산을 꼽았다. 땀을 흘리고 나면 피부 속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는 것. 그는 한때 애연가였지만 불현듯 ‘연기생활을 오래 하려면 술과 담배 중 하나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담배도 끊었다고 한다.
한동안 ‘표 집사’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는 이제는 마음에서 ‘표 집사’를 떠나보낼 생각이다. 아쉬움도 크지만 새롭게 맡을 역할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후속 작품은 미니시리즈로 결정됐다고 한다. 평소 연극·뮤지컬·영화 등을 자주 보며 연기공부를 하는 그는 “연극무대에도 서고 싶다”며 자신의 꿈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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