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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디자인’으로 활동 영역 넓힌 앙드레 김의 새로운 도전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8.12.22 16:21:00

평생 아름다움을 좇아 살아온 디자이너 앙드레 김.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그는 최근 ‘생활 디자인’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가전제품·침구 등에 이어 벽지 디자인에 도전하는 앙드레 김의 열정 & 세 손자 자랑.
앙드레 김(73)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화려한 의상들은 많은 여성의 로망인 동시에 근접하기 힘든 작품이라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의 디자인은 가전제품을 비롯해 침구, 향수, 아동복, 란제리 등 의외로 생활 곳곳에 침투돼 있다. 이처럼 활동 영역을 넓혀온 앙드레 김이 얼마 전 한 벽지 제조업체와 디자인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벽지 브랜드 론칭을 앞두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단조로운 문양의 벽지들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꼈다는 그는 벽지 디자인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제가 추구하는 최대 인생 목표예요. 어린 시절에도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벽지 문양이 좀 더 아름다우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했죠. 하지만 그때는 먹고살기도 바빴던 시절이라 다들 미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우리나라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미적 욕구도 서서히 커졌죠. 최근에는 유럽 등에서 고급 벽지가 많이 수입되고 있는데, 그들과 맞설 수 있는 멋진 벽지를 만들 생각입니다.”
‘생활 디자인’으로 활동 영역 넓힌 앙드레 김의 새로운 도전

앙드레 김은 패션뿐 아니라 가전제품, 친구, 아동복, 란제리 등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하며 활동영역을 넓혀왔다.


그가 디자인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이다. 황금빛 왕실 문양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도 왕족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주고픈 마음에서라고. 그는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건 사치가 아닌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했다.
앙드레 김이 디자인의 주요 모티브로 삼는 것은 건축과 음악, 자연 등이다. 그는 로코코·비잔틴 양식 건축물과 조각, 미켈란젤로·라파엘로의 등의 벽화를 보며 기품 있는 왕실 문양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또한 세계적인 심포니·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를 직접 찾아서 관람할 정도로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다. 젊은 시절 클래식이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름다운 선율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또한 그에게는 신선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한다. 그는 “벽지 디자인을 고안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도안이 매화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민간외교관’으로 불리며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앙드레 김은 그 공을 인정받아 얼마 전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해마다 유니세프 기금 마련 패션쇼를 열어 ‘나눔의 삶’을 실천해오고 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세 손자의 앙증맞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욱 커졌다고 한다.

일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손자 사랑도 각별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지난 82년 당시 생후 18개월 된 아들 중도씨(30)를 입양해 다소 늦은 나이에 가정을 이뤘고, 2004년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장가보낸 뒤 더 큰 행복을 얻었다고 한다. 네 살배기 이란성 쌍둥이 손자손녀에 이어 지난해에는 셋째 손녀까지 얻은 것. 평소 아이들을 끔찍하게 예뻐하는 그는 지난 10월 셋째 손녀의 돌잔치를 직접 열어줬다고 한다.
“아들이 결혼할 때는 사치스러운 걸 원치 않아서 하객이 1백 명 정도 들어가는 작은 룸에서 식을 올렸는데, 아이들 돌잔치는 예쁘게 해주고 싶었어요. 이번에도 테이블 세팅 등 데커레이션에 각별히 신경을 썼는데, 꽃과 풍선으로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꾸몄죠. 알록달록한 건 촌스러워서 흰색과 핑크색만 사용했어요. 아이들을 위해 피에로와 마술사도 불렀는데, 마술사에게 ‘비둘기 나오는 건 꼭 해주세요’ 하고 미리 부탁을 했더니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비둘기를 나오게 하더군요(웃음). 종교는 불교이지만 천주교적인 음악을 좋아해서 성가 합창단도 불렀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생활 디자인’으로 활동 영역 넓힌 앙드레 김의 새로운 도전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식지 않는 창작열을 바탕으로 벽지 디자인에 도전하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


그는 올겨울 가족들과 함께 경기도 기흥에 새로 지은 별장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앙드레 김 디자인 연구소’로 이름 붙여진 그곳은 12월 완공 예정으로, 그동안 그가 수집해온 각종 조각품과 미술품을 전시하고, 지인들을 초청해 패션쇼를 여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완공 기념식 때는 지인들과 유니세프 후원 어린이들을 초청해 조촐한 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건물 외관은 물론 정원 디자인까지 직접 진두지휘했다는 그는 “지붕은 작은 오두막집처럼 세모로 만들었고, 거실 벽면 한쪽에는 벽난로도 설치했다”고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경비실도 “아름답고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경비실이 아닌가 싶어요(웃음). 화장실과 샤워실, 폭신한 침대와 오븐, 가스레인지 등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품들이 거의 다 구비돼 있죠. 사실 이곳은 별장보다 박물관에 가까운 공간인데, 손자손녀를 위해 작은 침실도 하나 마련해뒀어요. 서울 생활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가족들과 함께 그곳을 찾아 머리를 식히고 올 생각입니다.”
칠십 평생 잠시도 쉬지 않고 일에 전념해온 그는 “일 자체가 삶의 활력소”라고 말한다. 일하지 않을 때는 외로움을 많이 타기 때문에 그에게 쉬는 날은 고문(?)과도 같다고. 새해 달력을 받아들면 가장 먼저 공휴일부터 체크한다는 그는 주말과 연휴가 붙어 있으면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주말에 쉬었다가 연휴에 또 쉬는 것보다 한꺼번에 외로운 게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 때문에 직원들이 고생이 많아요. ‘디자인은 혼자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 일은 팀워크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디자인을 한 뒤 패턴도 짜야 하고 미싱까지 하려면 보통 10여 명이 한 조가 돼서 일하죠. 언제쯤 일에 대한 열정이 식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을 빛내고 있는 앙드레 김. 그의 창작 열정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여성동아 2008년 12월 5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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