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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장편소설 ‘리진’ 펴낸 작가 신경숙

글·구가인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chez HOO

입력 2007.07.23 15:56:00

작가 신경숙이 2003년 발표한 단편집 이후 4년 만에 새 책 ‘리진’을 세상에 내놓았다. 신경숙을 만나 22년간의 문학인생 & 시인이자 평론가인 남편과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들었다.
4년 만에 장편소설 ‘리진’ 펴낸 작가 신경숙

작가의 집 근처, 서울 평창동 한 카페에서 신경숙(44)을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이 진행됐고, 멀찍이서 이를 구경하던 카페의 종업원들은 “선생님(신경숙)이 참 소녀 같다”는 말을 속삭이듯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니 마흔이 넘은 신경숙에겐 아직도 소녀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검고 긴 생머리도 그렇고, 어떤 수줍음이 어려 있는 미소나 머뭇거리는 말투는 확실히 우리가 ‘소녀답다’고 칭하는 것들과 닮아 있다.
“소녀요?(웃음) 철이 없다는 뜻이겠죠. 제 동생도 가끔 ‘언니는 덜 큰 데가 있다’고 그래요(웃음). 글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요. 때로 심각해야 할 부분에서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계산에도 약하고… 그리고, 마음이 여리죠.”
“마음이 여리다”는 말을 뱉은 뒤 바로 “에이,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하며 말끝을 흐린다. “남에게 약하게 보이는 게 싫다”는 그는 “(약하고 여린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소설 때문인지 소설을 쓴 작가까지도 지나치게 약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서 힘들 때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위로 오빠 셋이 있고, 아래로 여동생이 있어요. 형제 많은 집에서 자라다 보니 성격상 까다롭게 굴기보다는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는 면이 많아요. 어떤 일 때문에 막 화가 나서 ‘이건 내가 좀 따져봐야겠다’고 하다가도 10분쯤 지나면 ‘뭐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이렇게 되고…(웃음). 소설도 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저는 냉소적인 쪽으로는 잘 안되는 사람이에요. 주로 ‘가엾다’ ‘안됐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런 것들에 마음이 끌려요. 다 까발리는 것보다는 웬만하면 덮어주는 편이죠. 그런데 이게 작가로서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독해야 좋을지도 싶고… 하지만 독한 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소설을 계속 쓰는 건 독하지 않으면 할 수 없거든요.”

4년 만에 장편소설 ‘리진’ 펴낸 작가 신경숙

조선시대 프랑스로 건너간 궁녀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리진’은 신경숙의 첫 역사소설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는 리진을 “역사 속 인물이 아닌 현재 살고 있는 인물처럼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지난 85년 등단한 신경숙은 지난 22년간 첫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를 비롯해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방’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왔다. 그가 작가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고향인 전북 정읍을 떠나 서울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에 다니던 시절부터였다. 학교를 며칠간 빠진 데 대한 반성문으로 노트 반 권을 채워 낸 그에게 당시 담임 선생님은 “소설을 쓰면 어떻겠냐”며 권유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선배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면서 홀로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반성문으로 노트 반 권을 채워낸 제자에게 ‘작가’의 꿈 키워준 선생님
“나중에 진짜 작가가 돼서 찾아갔더니 선생님께서 ‘너 정말 작가가 됐니?’그러시더라고요(웃음). 당시 재능을 알아보셨다기보다는, 제가 마음을 못 잡는 것 같아서 그렇게 얘기하셨던 것 같아요. 말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만일 그때 선생님으로부터 다른 말을 들었다면, 또 다른 내가 됐을 거 같아요. 어떻게 표현할 길은 없지만, 마치 내가 그 말을 들으려고 그 학교 간 거 같기도 하고, 그 선생님은 내게 그 말을 해주려고 그 학교에 근무한 것도 같고… 그래서인지 요즘 제가 10대들이나 대학 신입생들을 대할 때 정말 조심스럽더라고요.”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가 나중에는 세상을 향한 창처럼 됐다”는 신경숙은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 이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놓았다는 충족감이 있다”며 이것이 글을 쓰는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소설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작품을 쓰고 있을 때는 마음도 평화롭고, 신체 컨디션도 가장 좋은 거 같아요. 물론 잘 안될 때는 불행하죠. 그런데 그런 것들도 하나씩, 하나씩 이겨내가는 과정이 행복인 거 같아요. 힘이 들지만 충족감도 있고,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내가 행복해서 하는 일 아닐까요. 글 쓰는 일이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22년간 해올 수 있었겠어요? 나는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행복하려고 하는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어그러지고 잘 안되긴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기 위해서 뭔가를 하는 거죠.”
작품을 완성하고 난 뒤에도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아직도 다들 살아 있는 거 같다”는 그는 이 때문에 “소설에서 사람 죽이기 싫다”는 말도 했다. 아직도 10여 년 전 발표한 ‘깊은 슬픔’의 주인공 은서의 죽음이 “마음에 걸리고 생각난다”는 신경숙. 그래도 혹시 그 많은 작품 속 인물 중에서도 유달리 가슴에 남고 애틋한 인물이 있진 않을까.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가장 최근에 쓴 작품이 그렇죠. 그래서 지금은 리진이 가장 가슴에 남아 있어요. 아직 그 세계에서 못 벗어나기도 했고, 그게 현재의 나이기도 하니까.”
리진은 그가 4년 만에 내놓은 책이자 장편소설로서는 6년 만에 내놓은 ‘리진’의 여주인공이다. 조선 말 프랑스로 건너간 궁중 무희 리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그의 첫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주로 작고 여린 존재들을 그리고, 내면 풍경을 묘사하는 데 뛰어난 작가인 그와 역사소설은 언뜻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 역시 ‘리진’을 “역사소설이라 생각하고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리진은 허난설헌이나 황진이처럼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 아니라 존재했지만 잊히고, 지워진 인물이에요. 저는 이번 소설에서 독자들이 리진을 고답적인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닌 현대인, 옆에서 살고 있는 여자처럼 느끼도록 쓰려고 노력했어요. 독자들이 이 여자가 지금 살고 있다고 느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 이상 잊히지 않길 바라요.”
‘리진’을 쓰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 지난 2003년 지인으로부터 리진과 관련된 A4용지 한 장 반 분량의 자료를 받고 “자꾸 그 기록 속의 여자가 마음에 남아” 작품을 시작하게 됐지만 막상 구체적인 자료를 찾자 “이 여자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로” 기록이 없었던 것.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어요. 포기할까 생각했을 정도로 실망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는 ‘난 작가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참고할 자료가) 없는 게 상상력을 훨씬 더 강하게 끌어올 수 있다’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렇게 3분의 1 정도 써지니까 자신감이 생겼고 나중에는 리진이 살아 있는 듯 느껴져서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됐어요. 마치 제가 쓰는 글을 보다가 뭔가 다른 내용을 쓰면 리진이 직접 ‘나, 그렇게 안 할 거거든요’ 하고 얘기하는 것 같았죠.”

문학적 동반자이자 삶의 기둥이 돼주는 남편
4년 만에 장편소설 ‘리진’ 펴낸 작가 신경숙

책의 내용뿐 아니라 책 앞면에 실린 작가 사진도 화제가 됐다. 신경숙 특유의 분위기가 잘 포착된 이 사진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그의 남편 남진우씨(47)가 찍었다. 사진 옆에 조그맣게 ‘남진우’라는 이름이 보인다.
“얼마 전에 남편이 사진기를 하나 샀어요. 원래 처음에는 열심히 찍잖아요. 집에 움직이는 피사체라고는 저밖에 없으니까 많이 찍었겠죠. 그러다 하나 좋은 게 나온 거예요. 그런데 책에 남편의 이름이 실릴 줄은 몰랐어요. (남편이) 자기 이름을 넣었다고 펄쩍 뛰더라고요(웃음).”
두 사람은 지난 99년 결혼했다. 남편 남씨와 그의 셋째 오빠가 고교시절 친구였기에 신경숙은 이미 어릴 적부터 남편을 “사진을 통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문인으로 활동하면서 작가와 출판사의 편집인으로 지내오던 이들은 99년 초 본격적으로 가까워져 그해 여름 결혼에 이르게 됐다.
“서른세 살이 지나고부터는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혼 6개월 전에야 ‘내가 결혼을 하긴 하는구나’하며 실감나더라고요. 남편은 일상에서 자상하진 않은데, 어떤 면은 정말 친밀하고 자상한 사람이죠. 이를테면 자기가 읽어서 좋고 제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책들을 혹시 제가 안 읽을까봐 몇 구절을 뽑아 가져와서는 제 앞에서 읽어줘요. 그럼 그걸 제가 듣고 ‘책 이리 줘봐’ 해서 읽곤 해요.”
평소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에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남진우 시인을 ‘남편’이라고 호칭하는 게 영 어색하다는 그는 “남편이라는 말, 참 이상하죠?” 하고 되물으며 수줍어했다. 결혼기념일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는 그에게 결혼기념 이벤트가 있는지 물었더니 손사래를 친다.
“아유, 그런 거 없어요. 특히나 (남편은) 그런 거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제 생일 때도 저 혼자 일주일 전부터 ‘일주일 후에 내 생일이야’ 막 이래요(웃음). 하지만 생일에도 뭐 특별한 건 없죠(웃음). 그런데 올해는 책이 나온 뒤 귀걸이를 선물받았어요. 아마도 출판사 여성 편집자의 강권에 못 이겨 산 게 아닌가 짐작은 되는데, 그래도 고맙잖아요?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요즘 어딜 가나, 열심히 하고 다니죠(웃음).”
두 사람이 2년 전부터 살고 있는 서울 평창동 2층짜리 주택은 이들 부부의 보금자리이자 작업실이다. 1층에는 신경숙의 서재와 부엌이, 2층에는 남진우 시인의 서재와 부부 침실이 있다고 한다. 아이 문제는 “하늘의 순리를 따를 생각”이라는 신경숙은 남편에게 삶의 동반자이자 문학적 동료로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다툰 적 없냐는 질문에 “늦게 만난 사이라 크게 갈등할 일은 없다. 이따금 자신이 시비를 걸더라도 (남편이) 소탈한 성격이라 그냥 넘어간다”며 웃는다.
“글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는데… 저는 결혼해서 좋아요. 서로 막 표현하고 그러진 않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도 좋고요, 뭔가 함께 할 수 있잖아요. 영화도 함께 보고, 음악도 함께 듣고, TV도 함께 보고, 어딘가도 함께 갈 수 있으니까.”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잠자리에 들 때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져서 좋다”고 한 말이 떠올라 묻자, 그가 한번 더 고개를 숙이며 수줍게 웃었다.
“작업하다 새벽에 잠자리에 들면 썰렁해요. 침대가 차서 잠잘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그때 내가 혼자라는 걸 느끼곤 했죠.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잠자리에 들더라도 누가 자고 있으니까 따뜻해서 좋아요. 그래서 이름을 한번 불러보면, 잠결에 대답도 해요. 잠결이라 대답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건데(웃음) 그게 좋더라고요… 오래 살다 보면 ‘저 사람은 나 없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마음이 생긴다던데, 저는 거꾸로인 거 같아요. ‘저 사람 없으면 어떻게 할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남편에게) 의지하는 편이에요.”

“마흔이 넘으면서 낙천적이던 어릴 때 성격 되찾는 것 같아요”
“급격한 변화보다는 친숙한 게 좋다”는 그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많은 것이 변하고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마냥 명랑하고 낙천적이었다”는 신경숙은 마흔이 넘으면서 점차 어릴 때 성격을 되찾는 거 같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 집 텃밭에 심은 작은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에게서는 그런 명랑함이 묻어난다.
“백당화를 심었는데 지난해 꽃이 겨우 하나 폈어요. 너무 실망을 해서 지난 겨울 동안 음식물 남은 걸 말려서 거름으로 줬더니만, 올해는 가득, 한 백칠십 송이는 핀 거 같아요. 작은 것들이 하얗게, 정말 예쁘게 폈어요. 어느 날 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진짜 이쁘다~’ 그러더라고요. 안에서 그 소릴 듣고 있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웃음)”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가 “답을 찾기보다는 ‘울림’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그렇고, 여리고 작은 것에 대해 쏟는 속 깊은 애정이, 그 작품에 흐르고 있는 ‘슬픔’의 정서가 그렇다.
“저는 ‘슬픔’이 인간이 계속해서 간직해야 할 감정이고, 인간을 가장 변화시키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슬픔은 모든 것을 정면으로 통과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 감정을 느낄 때는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그게 지나가면, 변화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또 슬픔은 아름다움과 함께 하는 거라고 봐요. 이를테면 꽃이 환하게 피어 있을 때, 보고 있는 마음 한 편이 싸하게 아리기도 한데 그건 찬란한 순간이 곧 지나가리라는 걸 우리의 무의식이 알기 때문이라고 봐요. 사랑을 할 때도, 그 사랑이 영원할 거 같고 내 사랑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잖아요. 저는 그런 것에 대해 느끼는 슬픔이 자기를 되돌아보게 하고, 결국은 존재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제는 이런 슬픔 외에 다른 목소리도 함께 나오겠죠. 제 나이에 따라 받아들여지고 보게 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으니까요. 슬픔을 통과해온 상태를 그리거나, 뭔가를 긍정하거나, 상처에 대처하는 유머라든가 그런 게 나오기도 하겠죠.”
최근 ‘리진’을 탈고한 뒤 “22년 전 처음 작가가 됐을 때의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는 신경숙은 7월 중 일본 중견작가인 스시마 유코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에세이집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을 펴내고, 일본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한다.
“‘리진’이 다른 작품을 쓸 때보다 공력과 시간이 배는 더 들었는데 막상 탈고하니까 다른 작업을 더 잘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작품을 쓰고 나면 새 작품을 쓸 때까지 텅 빈 공간이 생겼는데 이번에는 바로 이어나가려고요.”
그가 새로운 에너지를 쏟아 들려주게 될, 슬픔과 울림이 있는 작품을 계속해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여성동아 2007년 7월 5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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