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제 존재가 아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를 꼭 안은 채 맑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에 오직 저와 아이 단둘만 있는 것 같은 절대적인 평화가 느껴지죠. 이런 게 모성이구나, 나를 다 버려도 아깝지 않을 사랑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라는 걸 아이를 돌보며 하루하루 실감하고 있어요. 아마 이 감정은 세상에서 엄마만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난 3월 초 첫아들을 낳은 MBC 김은혜 앵커(36)는 요즘 행복에 푹 빠져 있는 듯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환상적인 체험”이라는 그는, 아이를 낳으며 경험한 생애 최고의 아픔과 요즘 느끼고 있는 생애 최고의 환희 사이에서 자신이 인간적으로 몇 단계 성장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 이처럼 놀라운 기쁨을 준 존재는 지난 3월5일 건강한 첫 울음을 터뜨린 아들 유희준군. 김 앵커는 “자연 분만을 하기에는 많은 나이”라는 주위의 우려를 무릅쓰고 8시간 진통 끝에 희준군을 낳았다.
“진통 중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아이가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가는 바람에 계속 힘을 줘야 했는데, 나중에는 힘을 쓰려야 쓸 힘이 없을 정도로 탈진했죠. 결국엔 힘 좋은 남자 선생님이 투입돼 제 배를 누르며 아이를 밀어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신랑은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 했고요. 계속 제 손 잡고 ‘나 군대 3년 다녀온 걸 오늘 하루에 다 한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참아’ ‘내 머리를 다 쥐어뜯어도 좋으니 조금만 더 기운내’ 하는데…(웃음).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그만 포기하고 수술해달라고 할까’ 싶을 만큼 괴롭더군요.”
희준군은 간호사가 “이 이상 기다리면 아이 심장박동이 느려져 위험할 수 있다. 2시간만 더 지켜보고 안 되면 수술하자”고 한 최종 시한 15분 전에 태어났다고 한다. 김 앵커는 “엄마가 기자라고 아이도 데드라인(마감시간)만큼은 철저히 지키는 모양”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태어나던 그 순간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배가 출렁하면서 가벼워지는 느낌, 정말 뭔가 쑥 빠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켁’ 하는 아이의 첫 소리가 들렸죠. 그렇게 가볍게 목을 고르더니 울음을 터뜨리는데, 아, 정말 몇 시간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더군요.”
김 앵커의 남편인 유형동 변호사(36)는 아들의 탯줄을 자르며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감격적인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조용히 아들을 향해 ‘하이, 주니어~’라며 첫인사를 건넸다고.
“아이의 첫 울음소리가 큰 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미미하게 울었다’고 했더니 남편이 옆에서 ‘점잖게 운 것’이라고 교정하더군요(웃음). 아이를 직접 보니 아빠로서의 사랑이 샘솟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나면 아빠를 먼저 나가게 하는데, 분만실 문 앞에서 갑자기 뒤로 돌더니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제게 ‘아이 러브 유’ 하더군요. 저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 모습이 정말 따뜻했어요.”
김 앵커는 그 순간 “이런 감동을 느끼게 하려고 아이를 낳기 전에 그토록 큰 고통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소중한 건 지금껏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큰 아픔을 거름 삼아 태어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아기에게 모유 먹이며 모든 사랑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어요”
“아이가 태어난 뒤 참 많은 게 달라졌어요. 남편은 평소 하루 반 갑씩 담배를 피웠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딱 끊더군요. 집에 오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제일 먼저 희준이에게 가요. 그러고는 하염없이 바라보며 웃다가 다른 일을 시작하죠. 나중에 아이에게 선물하려고 희준이를 가진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은 육아일기를 쓰고 있는데, 그 책 안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첫 번째 느낌이 뭐였나요?’라는 질문에 남편은 ‘왜 이렇게 작냐’라고 적었어요(웃음). 그렇게 신기해하고, 감사해하고, 소중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죠.”
희준군은 외모와 성격 등 여러 면에서 아빠를 쏙 빼닮았다고 한다. 특히 아이가 살짝 찡그리는 순간 나타나는 독특한 표정은 남편과 똑같아 신기할 정도라고.
“어느 책을 보니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한쪽을 15분 물린 뒤엔 다른 쪽을 또 15분 물리는 방식으로 양쪽을 번갈아가며 먹이는 게 좋다고 써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계를 보면서 딱 15분이 된 순간 젖을 뺐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더군요. 그런데 그 순간 깜짝 놀랐잖아요. 그 표정에서 남편 얼굴이 보여서요(웃음).”
김 앵커는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우는 얼굴도 어찌나 귀엽게 느껴지는지, 가끔씩 일부러 아이를 울리기도 한다”며 웃었다.
이렇게 소중한 희준군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달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상태가 심하지 않아 이틀 정도 지난 뒤 바로 퇴원했지만, 그 기간 동안 김 앵커는 참을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고. 겨우 며칠 함께 지냈을 뿐인데, 아이를 병원에 내려놓고 돌아서려는 순간 평생 처음으로 통곡이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요. 남편이 온갖 자료를 찾아 보여주며 ‘아이 황달은 절대 위험한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는데도 진정이 안 되더군요.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제 품을 떠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저 슬픈 거였어요. 참 신기하죠?(웃음)”
그 경험은 김 앵커에게 아이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요즘 김 앵커는 모유 수유를 하며 자신의 모든 시간과 사랑을 온전히 아이에게 쏟아붓고 있다고.
그러나 그는 ‘일하는 엄마’. 출산 휴가가 끝나면 다시 회사에 복귀해 ‘기자 김은혜’로 돌아가야 한다. 김 앵커는 “아이를 낳은 뒤부터 회사 선후배들에게 언제 복귀할 것인지를 묻는 전화가 많이 온다”며 “아이가 백일이 지난 후인 6월 말쯤 다시 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요즘은 어쩌면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아이에게 바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래서 그는 아들과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가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고 한다.
“이제 회사에 복귀하면 더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기르며 겪은 일들이 저를 더 성숙하게 해줬으니까요.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감싸안는 기사를 쓰고 싶어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이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둘째를 낳고 싶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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