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짐을 채 풀기도 전에 신부 혼자 차가운 병실에 누워있다. 코뼈가 부러지고 눈 주위는 시퍼렇게 멍들어 있다. 배속 아이까지 잃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 멍한 표정으로 병실 천장만 바라보던 그는 시시때때로 가슴을 치며 울부짖곤 했다.
병실에 입원해 있는 탤런트 이민영(31)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참담했다. 지난해 12월 동료 탤런트 이찬(31·본명 곽현식)과 결혼한 그는 12일 만에 파경을 맞았다. 원인은 폭행과 그로 인한 유산. 신경정신과 치료와 코뼈 접합 수술을 위해 입원해 있는 이민영의 병실에 여러 차례 찾아간 끝에 지난 1월15일 퇴원 무렵 그로부터 파경 이유와 지난 사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하면 옆에 있던 그의 어머니와 언니 이주연씨가 도와주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친정과 시집에서 하루씩 묵고 신혼집으로 가려고 차에 탄 후 출발하기 전부터 폭행이 시작됐어요. 말다툼 끝에 그 사람이 갑자기 욕설과 함께 주먹으로 얼굴과 머리를 여러 차례 구타하고 머리채를 휘어잡고 흔들었어요. 그리고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이혼할래!’ 하고는 한손으로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운전하기 시작했어요.”
이 과정에서 이민영은 코뼈가 부러지고 눈이 시퍼렇게 멍들어 부어올랐으며 새끼손가락 손톱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극도의 공포감에 탈출하려고 달리는 차문의 고리를 잡아당겨 문을 열자 그 사람이 버스정류장 부근에 차를 급하게 세우고는 제 옆구리를 발로 차 밖으로 나동그라졌죠. 사람들이 보고 있어 도로에 엎어져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차에서 내려 저를 끌고 차에 태운 후 머리채를 잡은 채 30분간이나 운전해 다시 시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차에서 떨어지면서 땅에 부딪혀 무릎과 팔 등에 타박상을 입은 이민영은 종아리에서 피가 흐르고 머리카락이 쥐어뜯겨 산발이 된 흉한 몰골로 시집에 들어섰다.
“시집 식구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별 다른 말씀 없이 2층으로 올라가 자라고 하시더군요. 새벽 3시쯤 식구들이 모두 잠든 틈을 타 시집을 빠져나오려 했지만 그 사람에게 다시 붙들려 들어갔다가 새벽 6시, 그가 드라마 촬영을 나간 사이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번 더 손찌검하면 손가락 자르겠다고 한 약속 믿어
도망나오다시피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더군다나 그는 임신 15주에 접어든 임신부였다. 지난해 2월 처음 교제를 시작한 두 사람은 9월 임신 사실을 알게 됐으며 이후 양가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결혼을 허락받았다.
전날 공포심에 밤을 새운 이민영은 친정에 돌아오자마자 탈진 상태로 잠이 들었는데 그때부터 하혈과 함께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한다. 산부인과를 찾은 그는 ‘자궁 내 태아 사망’이라는 진단에 따라 12월21일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담당했던 산부인과 의사는 “초음파 진단 결과 태아의 심장이 뛰지 않았다.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수술을 집도했다. 사실을 알렸을 때 이민영씨가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이민영의 어머니는 “시집에서 돌아온 딸을 봤을 때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죽지 않고 돌아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일이 반복될까 두려웠고 다시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유산 후 양가 부모는 12월22일 서울 한 호텔에서 결혼취소합의서를 작성하고 다음 날 예물과 예단을 돌려줬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별도의 이혼 절차는 필요치 않았다.
두 사람의 파경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해 12월 말. 이민영은 교제할 때부터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으며, 배를 걷어차여 아이를 유산하게 됐다고 알렸다. 이에 대해 이찬은 “상습적인 폭행은 말도 안 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따귀를 몇 차례 때린 적은 있지만 배를 걷어찬 적은 없다. 유산된 태아는 내게도 소중한 생명이었다”며 폭행과 유산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게다가 그는 이민영의 어머니가 신혼집 문제 등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며 화살을 이민영의 어머니 쪽으로 돌렸다.
이민영의 어머니는 이런 이찬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된다”며 한마디로 잘라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찬은 하혈을 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민영에게 ‘다신 안 그럴게. 진짜로 약속할게. 너라도 나 한 번만 용서해줘, 정말 한 번만… 민영아, 다 내가 저질렀어. 잘못했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또 이민영이 수술을 받던 날 이찬과 그의 부모가 병원에 다녀가기도 했다는 것.
이찬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지만 이민영은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고 한다. 결혼 전 교제를 하는 동안에도 이찬은 여러 차례 이성을 잃은 것처럼 폭력을 휘둘렀고 그 상황을 넘긴 후에는 싹싹 빌기를 반복했다고. 그럴 때마다 이민영은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이찬의 말을 믿고 용서해주었다고 한다.
“폭행 이유는 언제나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해 끝에는 언제나 주먹이 날아왔죠. 얼굴에 멍이 들고 이마에 혹이 날 정도로 때렸고 그 상황이 지나간 다음에는 매번 집으로 찾아와 몇 시간이고 사죄했어요. 저희 집 앞에서 몇 시간이고 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눈물로 사죄하는 모습에 매번 용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리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이찬은 항상 그를 많이 위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이찬의 버릇을 고칠 수 있으리라고 믿었고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고.
“오랫동안 방송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결혼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결혼을 하면 그 사람도 달라질 거라고 믿었어요. 결혼 전 마지막으로 때리고 나서는 ‘배 속에 있는 아이를 걸고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 한 번만 더 손찌검을 하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까지 했죠. 그 말을 믿었고 제가 그 사람의 버릇을 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런 사연을 가족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던 이민영은 결혼식날 하염없이 울었다. 식장에서 신부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많지만 결혼식 처음부터 끝까지 우는 경우는 드물기에 많은 사람이 그 사연을 궁금해했다. 그의 언니 이주연씨는 “우리도 민영이가 왜 그렇게 우는 줄 몰랐다. 그렇게 맞는 줄 알았으면 결혼시키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화장으로 멍 자국을 가리면서까지 그가 이찬과 결혼한 이유는 건강이 좋지 않은 그의 아버지 때문이기도 하다. 99년, 2001년 뇌출혈로 두 번 쓰러진 이민영의 아버지는 지금도 혈압이 높아 매사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의 언니는 “아버지는 막내딸이 시집간다고 들떠 계셨다. 민영이가 그런 아버지께 어떻게 폭행 사실을 알릴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이민영·이찬의 결혼 발표 당시 모습.
“예물 값을 집 얻는 데 보태는 게 좋겠다는 말한 적 있지만 과다한 요구한 적 없어요”
이민영의 언니 주연씨는 이찬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민영의 어머니가 집 문제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괴롭혔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지난 속사정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두 사람이 신혼집을 마련한 곳은 시집인 대방동과 가까운 흑석동의 49평 아파트. 이찬에 따르면 전세 3억5천만원에 이 집을 마련한 후 이민영의 어머니가 ‘우리 민영이가 전셋집에 살게 될 줄 몰랐다. 민영이 친구 모 탤런트는 30억짜리 집에 산다. 민영이가 예전에 그 친구보다 더 잘나갔다’고 말하며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민영의 언니는 “결혼 전 집 문제로 양가가 실랑이를 벌이기는 했지만 이찬이 주장하는 것처럼 황당한 요구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혼부부가 집을 마련하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고려해서 그중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거 아닙니까. 민영이가 곧 아이를 낳을 건데 친정 근처에 집을 얻으면 저나 어머니가 자주 들러 아이를 봐줄 수 있을 것 같아 처음에는 경기도 구리에 20평대 아파트를 얻는 게 어떨까,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가로 3억이 안 되는 아파트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방송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구리는 너무 멀다는 찬이 부모님 말씀에 그 제안은 없던 걸로 됐습니다. 또 그쪽에서 예물 값으로 1억5천만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기에 예물 마련하는 데 쓸 돈을 집 얻는 데 보태면 어떨까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신부 측의 이런 제안을 이찬 쪽에서는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 일로 두 사람은 파혼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고 한다.
“민영이는 욕심이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명품 협찬 제안이 들어와도 사양하고 저와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사곤 했는데 10만원이 넘어가면 그 돈이 아까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1억5천만원어치 예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시집 어른들께, 예물할 돈을 집 사는데 보탰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 게 문제가 돼서 민영이가 새파랗게 질려 밤 11시에 시집에 찾아가 빌고 온 적도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됐지만 이민영의 어머니는 딸이 어려운 자리에 시집가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괴로웠다고 한다.
1999년 | 드라마 ‘하나뿐인 당신’을 통해 동료 연기자로 첫 만남 |
2006년 2월 | 정식 교제 시작 |
2006년 9월 | 이민영 임신 사실 확인 |
2006년 11월 | 사귄 지 9개월 만에 결혼 발표 |
2006년 12월10일 | 서울의 한 호텔에서 결혼 |
2006년 12월19일 |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3일째 되던 날 승용차 안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폭행 사태로 이어짐 |
2006년 12월21일 | 이민영 15주된 태아 유산 |
2006년 12월22일 | 양가 부모 결혼취소합의서 작성 |
2006년 12월30일 | 이민영 서울 길동 강동성심병원에서 코뼈 접합 수술 |
2007년 1월2일 | 이민영 측이 “이찬의 폭행으로 유산했고, 코뼈까지 부러졌다”며 병실 기자회견을 한 데 이어 이찬이 “폭행으로 유산된 게 아니다”라며 반박 기자회견 |
2007년 1월3일 | 이민영 측 폭행·상해·감금 등의 혐의로 이찬을 형사고소 |
2007년 1월7일 | 이민영 측 이찬을 명예훼손 혐의로 추가 고소 |
2007년 1월8일 | 이민영 코뼈 재수술 |
2007년 1월15일 | 이민영 퇴원 |
“이찬이 그동안 드라마에서 반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실제 생활도 그러리라고 믿었고 더군다나 아버지(곽영범 PD)도 방송 일을 하고 계셔서 우리 민영이를 잘 이해해줄 것 같았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이민영은 어머니에게 손톱 밑 상처처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린, 안쓰러운 딸이다.
“민영이가 여섯 살부터 아역배우를 했어요. 유치원에 보낼 돈이 없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는 분 소개로 아역배우를 하게 됐죠. 그 어린 걸 제가 방송국으로, 촬영장으로 업고 다녔어요. 어린 마음에도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걸 알았는지, 힘들어도 내색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밤샘 촬영을 하고 돌아오면서도 ‘엄마, 나는 연기가 좋아’라며 생긋 웃어주었어요. 다른 아역배우들에게 기가 죽을까봐 비싼 아동복을 사 주면 ‘언니 먼저 주라’며 슬쩍 언니 앞으로 돌려두던, 그런 딸입니다.”
딸이 연기를 해서 번 돈은 이민영 앞으로 차곡차곡 저축해두었고 몇 년 전에는 이민영의 명의로 집도 사두었다. 아버지 병원비에 보태는 돈을 제외하면 한 푼도 허투루 쓴 적이 없다고.
“딸이 어떻게 번 돈인데 그걸 흐지부지 쓰겠어요. 십 원 한 장 낭비하지 않고 민영이 앞으로 알뜰하게 모아두었습니다. 시집에 과한 요구를 할 만큼 궁색한 형편도 아니고, 또 사치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저희 식구들이 뭘 알아서 시집에 과다한 요구를 하겠습니까.”
“진실한 사과 원했는데…”
사실 이민영은 유산을 한 직후에도 이찬에 대한 연민의 정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기자회견을 하기 전 ‘내가 인터뷰를 하면 그 사람이 곤란에 빠지는 게 아니냐’며 망설이기도 했다고. 그가 바란 건 이찬의 진실한 사과였지만 이찬은 이를 외면했고, 이에 이민영은 이찬을 폭행과 감금, 상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한다. 이민영은 “그 사람의 진실한 자세를 원했는데 거짓된 시나리오로 나와 내 가족을 매도한 데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제 두 사람의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법정에서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이민영이 여자로서, 또 연예인으로서 입은 상처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꿋꿋하게 일어나 행복을 되찾기를 바란다.
|
||||||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