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가 동료들과 토론하며 만든 모니터링 자료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하는 밑거름이 된다.(가운데) 인터넷 다시보기를 통해 토론할 TV 프로그램을 꼼꼼히 분석하는 전원남씨.(오른쪽)
내가 TV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년 전이다.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당시 중학생이던 딸아이가 특히 TV에 푹 빠져 지냈는데 아이와 함께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다보니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분위기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 ‘독이 되는 TV’를 보고 열광하는 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YWCA(기독교여자청년회)에서 방송모니터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YWCA 방송모니터회는 분기별로 주제를 정하고 감시할 TV 프로그램을 선정한다. 그 후 주 1회 모임을 갖고 프로그램의 성격과 문제점을 분석한 뒤 이를 보고서로 작성한다. 모니터링 봉사자들의 노력이 담긴 보고서는 보도자료로 만든 뒤 언론사에 보내 시청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한편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오전 10시, 오늘은 방송 모니터 모임이 있는 날이다. 요즘에는 드라마에 나타난 ‘여성의 갈등’을 주제로 잡고 방송3사의 주말드라마 4편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 정해진 프로그램을 보고 꼼꼼히 분석한 뒤 동료들과 함께 열띤 토론을 벌인다.
“먼저 ‘소문난 칠공주’에 드러난 여성의 갈등을 살펴봐요.”
“종칠이는 결혼한 여성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데, 고부 갈등에만 치우치는 것 같아요.”
“미칠이는 할 말은 하는 며느리로 나왔데 너무 이기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어요.”
동료들과 드라마를 본 감상을 말한 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인터넷 다시보기를 통해 다 함께 시청하며 의견을 조율한다. 토론 내용을 정리하고 다음 주에 봐야 할 프로그램을 정하고 나니 벌써 정오가 넘었다.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딸아이가 골라준 최신곡을 MP3로 듣는다. 방송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TV를 보며 눈높이를 맞추다보니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아이들 또한 무심코 보던 TV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내는 눈을 갖게 됐다. 오늘도 아이와 TV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엄마가 있다면 TV, 바로 그 안에 해답이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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