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책을 펴는 즐거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세계를 향해 ‘전쟁의 비극’을 고발하는 외침!

기획·김동희 기자 / 글·민지일‘문화에세이스트’ / 사진·REX

2006. 12. 19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쿠웨이트에 밀입국을 시도하는 팔레스타인 남자 세 사람. 이들은 40℃를 웃도는 사막을 통과해야 한다. 두 차례 국경경비대 지역을 통과할 때 트럭의 빈 물탱크 안에 숨어 있어야 하고, 6~7분 안에 통과하지 못하면 물탱크 안 찜통 온도에 삶아져 죽게 된다. 기구한 이들의 운명은 세계를 향해 보내는 절규, 전쟁에 대한 거부에 다름 아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중동 땅 팔레스타인은 기구한 지역이다. 가나안이라고 불리던 수천 년 전부터 짓밟히고, 구겨지고, 피에 전 전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종교와 종족을 둘러싼 전쟁이 끝없이 이어졌고 점령자가 바뀔 때마다 주민들은 쫓겨나고, 박해받고, 살해됐다. 지금도 그곳에선 폭탄차량이 돌진하고 로켓탄이 날며 가족을 잃은 이들의 울부짖음이 하늘을 찌른다.

우리도 전쟁을 치렀다. 국토는 남북으로 나뉘어 여전히 대치상태다. 언제든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개연성도 엄존한다. 최근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그런 걱정이 한층 커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쟁 공포로 일상을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진 않는다. 시민의식이 성숙해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일부는 전쟁의 야만성과 그것이 주는 고통을 우리가 애써 생각지 않거나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팔레스타인 작가 가산 카나파니의 대표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중동전쟁의 비극을 말 그대로 ‘뜨겁게’ 다룬 작품이다. 이스라엘의 침략으로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의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망가지고 구겨지는지 짧은 중편은 절절하게 보여준다. 죽음과 고통, 치욕이 반복되는 세계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불타는 사막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 ‘올리브 나무 몇 그루 심을 정도의 돈을 벌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내 셋이 끝내 꺾이고 마는 모습은 비인간적이다 못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전쟁으로 굶주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 무릅쓴 사람들
아부 카이스와 아사드, 마완 세 사람은 팔레스타인 유민이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을 나와 요르단을 거쳐 지금은 이라크의 바스라에 있다. 지나온 삶은 다르지만 그들의 꿈은 같다. 쿠웨이트에 밀입국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택시 운전 같은 잡일로 돈을 벌어 고향의 굶주린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 바스라에서 쿠웨이트 국경까지는 150km. 때는 뜨거운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는 8월이고 한나절 여정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다시피 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전문 밀입국업자를 만나 흥정을 했으나 돈 낼 형편이 못돼 한탕만 뛰고 푼돈을 벌려는 아불 카이주란의 안내를 받기로 한다.

아불 카이주란 역시 팔레스타인 난민. 세 사람을 물탱크 트럭에 싣고 국경을 건널 생각이다. 국경 경비대가 있는 지역을 통과할 때는 빈 물탱크 속에다 세 사람을 숨겨야 한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대지를 달궈 낮 기온이 40℃를 웃도는 만큼 탱크 속은 그야말로 불가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쪽 두 곳에 있는 국경경비대 지역을 각각 6, 7분 만에 통과하지 않으면 세 사람은 찜통 속에서 삶아져 죽게 된다. 국경을 향해 트럭은 달리고 아직 탱크 속에 들어가지 않은 세 사람을 아불 카이주란은 호기롭게 격려한다.



“한번 상상해봐! 150km에 달하는 우리의 이 여정이 내겐 마치, 천국 또는 지옥에 이르기 전 사람들이 건너야 한다고 알라 신이 말했던 그 여정처럼 생각돼. 만일 도중에 탈락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거고 성공하면 천국에 이르는 거지. 이곳 국경경비대는 수호천사들이라고나 할까?” 그런 호기와 달리 세 사람은 걱정이 가득하다. 지난 삶에 대한 상념을 떨치지 못한다.

먼저 아부 카이스. - 10년 동안 너는 뚜렷한 일거리도 없이 단지 기다리기만 했다. 너의 나무들, 너의 고향집, 너의 젊음, 너의 마을 전체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데 10년이라는 길고도 궁핍한 세월이 흘렀다. 이 기나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나섰지만, 너는 남루한 헛간에 늙은 개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쿠웨이트에만 가면 올리브나무 열 그루를 살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는 너무 늙었다. 사막을 건너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란 불안이 컸다. 그러나 늙은 아내와 주렁주렁 태어난 아이들을 먹여 살리려면 쿠웨이트로 가는 것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젊은 아사드. - 이미 요르단에서 이라크로 밀입국할 때 업자에게 속아 사막에서 4시간을 헤맸다. 좋아하지도 않는 삼촌 딸과 결혼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받은 여비의 절반을 냈는데 업자는 그를 사막 한가운데 송유관 근처에 내려놓고 달아나 버렸다. 그때의 감정이라니. 태양은 머리 위에 뜨거운 열기를 쏟아 부었고 노르스름한 경사지를 기어오를 때는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수평선은 일자로 뻗은 직선처럼 보였고 대지는 온통 빛나는 노란색 종이로 변했었다. 빌어먹을 사막, 빌어먹을 밀입국업자라니.

마완. -아버지는 어머니와 우리 형제 넷을 버리고 포격으로 다리가 잘린 여인과 재혼을 했다. 세상에, 아무리 가난이 무섭다고 멀쩡한 가족보다 몸이 망가진 여인과 알량한 집을 선택하다니! 하지만, 하지만 아버지를 이해할 것도 같다. 먼저 쿠웨이트로 가 다달이 송금하던 형이 갑자기 연락을 끊은 뒤 늙은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섯 식구의 부양의무에서 벗어나 좀 더 편한 여생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 나 마완이 돈 벌 차례가 된 것이다.

“왜 당신들은 죽어 가면서도 물탱크 옆구리를 쾅쾅 치지 않은 거야? 왜 그런 거야? 왜, 왜, 왜!”
각기 다른 인생의 경로를 걸어온 세 사람을 태운 트럭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사막 한가운데를 달려 나간다. 둥그런 태양은 그들 머리 위에 높이 떠 눈이 멀 정도로 밝았다. 아무도 더 이상 땀을 닦으려 하지 않았다. 셔츠로 머리를 가리고 태양이 자신을 굽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들의 꿈과 가족과 희망과 야망, 절망과 처절함, 힘과 나약함, 과거와 미래를 싣고 새로운 운명의 거대한 대문을 향해 트럭은 달리고 또 달렸다.’ 사막의 중천에 뜬 태양은 순백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돔이었고 흩날리는 모래먼지는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렬하게 빛났다.

이윽고 첫 번째 국경 경비대. 세 사람을 물탱크 속에 숨기고 카이주란은 단 6분 만에 통과증명을 얻어냈다. 물탱크 속의 세 사람을 꺼내자 벌겋게 물들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내밀며 한마디를 내뱉는다. “이곳이 바로 내가 듣던 지옥이구먼.”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국경경비대. 카이주란이 허겁지겁 서류를 내지만 경비대원들은 딴전을 피운다. 쓸데없는 농담. 찜통 속의 세 사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담패설. 카이주란은 거의 울다시피, 기다시피 증명서를 내달라고 호소하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달아나 버린다.

밤. 아불 카이주란은 도시의 쓰레기장에 세 구의 시체를 내려놓는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의 눈에 띄어 제대로 매장되게 하기 위해서다. 차를 몰고 가려다 그는 시체 곁으로 돌아가 주머니 속 현금을 꺼내고 손목시계를 풀러 챙긴다. 하지만 갑자기 울컥 가슴에 치미는 것이 있다. 그는 트럭에 돌아와 사막에 대고 울부짖는다. “왜 당신들은 죽어 가면서도 물탱크 옆구리를 쾅쾅 치지 않은 거야? 왜 그런 거야? 왜, 왜, 왜!”

그 ‘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세계를 향해 보내는 절규이자 전쟁에 대한 거부에 다름 아니다. 열림원 간, 윤희환 옮김.
글쓴이 가산 카나파니(1936~1972)는…
북부 팔레스타인 아크레에서 태어났다. 팔레스타인 해방전선의 책임 대변인이었고, 이 조직의 기관지 ‘알 하다프’의 창간인이자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그의 소설과 희곡은 16개 국어로 출판돼 전 세계 독자에게 읽히며 팔레스타인 민족이 겪는 고통과 울분을 전달해준다. 그는 자동차에 장착된 폭탄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