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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연극계 화제

한무대에 서는 연극인 전무송 가족

“사위가 연출하는 작품에 아들, 딸이 주연을 맡고 저는 조연으로 출연합니다”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ㆍ조영철 기자

2006. 04. 04

연극인 가족으로 유명한 전무송씨 가족이 한무대에 모였다. 연극배우로 활동 중인 딸과 아들이 주연을 맡고 사위가 연출하는 작품에 전무송씨가 조연으로 출연하는 것. 공연 준비로 분주한 연습실에서 전무송씨 가족을 만났다.

한무대에 서는 연극인 전무송 가족

아버지에 이어 두 남매와 사위까지 모두 연극을 하고 있는 전무송씨(65) 가족. 연기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단단하고 깊은 유대감으로 묶여 있는 이 가족이 이번에는 아예 한무대에 총출동해 연극인 가족의 파워를 보여준다. 서울 대학로에서 4월16일까지 공연하는 ‘상당한 가족’에 딸 현아(34), 아들 진우씨(31)가 부부로, 아버지 전무송씨가 운전기사로 출연하고 사위 김진만씨(37)가 연출을 맡은 것.
연습실에서 만난 전무송씨는 자식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는 이번 경험이 흐뭇하고 즐거운 눈치였다.
“아이들이 6년 전부터 극단을 만들어 저희들끼리 열심히 해왔어요. 이번에 저더러 같이 하자고 대본을 가져왔는데 희극이더라고요. 희극은 처음이라 좀 주저했는데 같이 하다 보니 재미있네요.”
‘가족 연극’의 아이디어는 연출가이자 극단 꼭두의 대표인 사위 김진만씨에게서 처음 시작됐다. 올해로 연극인생 45년째를 맞는 한국 연극계의 대배우 전무송을 ‘단지 식구라는 이유’로 손쉽게 캐스팅한 이 젊은 연출가는 원래 ‘호랑이 선생님’에 출연했던 아역 탤런트 출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그는 현아씨를 만나 ‘전무송 패밀리’의 일원이 됐다.
“저희 극단의 올해 계획이 ‘희로애락 프로젝트’입니다. 봄맞이 첫 작품으로 희극을 골랐는데 희극은 장르의 특성상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해요. 더욱이 가족 이야기라서 호흡이 척척 맞는 배우들을 등장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가족 중 유일하게 배우가 아닌 장모를 이번 기회에 연극무대에 데뷔시키고 장인과 더불어 부부 역할을 맡겨보면 어떻겠냐’는 당초의 발상은 아내와 처남에게 부부 역을 맡기고 장인이 나이든 운전사 역을 연기하는 선에서 정리됐다.
“식구들 중에서 어머니가 연기를 가장 잘하시는데 아쉬워요. 가족들 모두의 상대역을 해주며 실력을 쌓으셨거든요. 언젠가는 어머니를 꼭 무대에 모시고 싶어요.”

장모를 이번 기회에 데뷔시키려던 사위의 계획은 불발로 끝나
한무대에 서는 연극인 전무송 가족

데뷔 45주년을 맞아 아들, 딸과 함께 연극무대에 서는 전무송씨(좌).전씨 옆에 있는 이가 사위 김진만씨(우).


함께 공연을 준비하다보면 가족이라 좋은 점도 있겠지만 가족이라서 오히려 불편한 점도 있을 법하다.
“좋은 점은 무엇보다 경비가 절감된다는 거죠. 식비, 교통비, 출연료….”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모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현아씨는 “모두 한식구이다 보니 배우들이 은연중 무대에서 벌이는 경쟁이 없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혼자 두드러져 보이려 하기보다 연기 앙상블에 더 중점을 두게 되지요. 호흡이 잘 맞아 상대방의 의도를 빨리 알아채기도 하고요. 하지만 서로 너무 잘 알다 보니 한 사람의 컨디션이 나쁘면 나머지 배우들도 같이 처지는 경우도 생겨요.”
다른 연극 후배들이었다면 고분고분 들었을 대선배의 연기지도가 정작 집안 식구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아버지 전무송씨의 불만.

한무대에 서는 연극인 전무송 가족

남편과 딸, 아들에 이어 사위까지 연극을 하는 사람을 맞게 되자 전무송의 아내 이기순씨는 “이제 유랑극단을 차리면 되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제 지적이 선배의 충고라기보다 아버지의 잔소리로 들리나봐요. 그래서 아무 소리 안 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있어요(웃음).”
현아씨는 이번 공연에서 원작의 번안도 맡았다. 94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 ‘토지’ ‘여인천하’ ‘장희빈’ 등으로 얼굴을 알린 그는 99년 동서 희곡문학 신인작가상을 받은 경력이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공연장을 따라다니며 낮 공연과 저녁 공연 사이, 빈 무대에 살그머니 올라가보는 게 즐거웠어요. 일찌감치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 ‘장래 희망 연극배우’라고 적어놓기도 했죠.”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은 당연히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연극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긍지가 어린 시절부터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려서는 연극을 하는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들에 비해 돈을 못 벌어오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좀 자라서야 ‘아,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시는구나’ 하고 알게 됐지만 그래도 가난하다, 힘들다고 느껴본 적 없어요. 네 식구가 항상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니까요.”
다른 집 아버지들은 밤 늦게 들어왔다가 아침 일찍 나가고 주말에도 피곤하다며 근처에도 못 오게 하는 모양인데 연극배우 아버지는 공연만 없으면 언제나 집에 있으면서 간식도 잘 만들어줘서 좋았다고.
진우씨는 아예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언제나 곁에 있어줬던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81년 영화 ‘만다라’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타셨을 때 여기저기서 출연 제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나중에 ‘그때 거절 안 하고 들어오는 일마다 다 했으면 너희를 좀 더 편하게 해줬을 텐데’ 하는 말씀을 하시기에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렸어요. 물질적으로 조금 더 풍족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의 저희를 만든 건 항상 곁에 계셨던 아버지, 가는 곳마다 저희 손을 꼭 잡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 아버지니까요.”

눈 덮인 길의 이정표 같은 아버지
어린 자녀들이야 매일 집에 있으면서 놀아주는 아버지가 좋았겠지만 아내 입장에서 보면 공연 없을 때는 백수, 공연이 있을 때도 들고 오는 돈이 변변찮은 배우 남편이 곱게 보일 리 없었을 것이다.
“집사람은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눈치 준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집안 살림에 신경쓰지 않도록 해줬으니 정말 고마운 사람이죠.”
생활을 위해서 연극을 그만둬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 붙들어준 이도 아내 이기순씨였다. 아내가 시집올 때 들고온 피아노를 내다팔게 되자 그는 ‘연극 그만두겠다. 장사라도 하면 네 식구 밥 못 먹겠냐’며 대본 가방을 내던진 적 있었다고 한다. 그때 아내는 대본을 집어주며 “내가 배우하고 결혼했지, 장사꾼하고 결혼했느냐”며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고.
그런 아내도 자식들이 둘 다 연극을 하겠다고 나서자 반가워하지 않았다. 큰딸이 먼저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하자 아들만은 다른 길을 갔으면 했다. 아들마저 서울예대를 나와 국립극단에 들어가자 사위만이라도 다른 일 하는 사람으로 얻고 싶어했다. 결국 현아씨가 연극 ‘땅 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에 같이 출연했던 김진만씨와 결혼을 하게 되자 아내는 “이제는 유랑극단이나 만듭시다. 나는 표나 팔면 되겠네”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한무대에 서는 연극인 전무송 가족

두 자녀가 한창 자랄 때도 ‘돈 되는 일’인 TV, 영화 출연에 거리를 두고 ‘돈 안되는 일’인 연극에 몰두했던 전무송씨는 이제 자녀들도 다 자라고 여유가 있어서일까. 텔레비전에서 모습을 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2년 전 ‘무인시대’를 끝으로 TV 드라마는 더 이상 안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KBS에서 새 대하드라마 출연 제의가 들어왔지만 올해는 어렵겠다고 대답했어요.”
그는 2005년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하면서 생각한 바가 많다고 한다. 89년 작고한 이해랑 선생은 그의 드라마센터 연극수업 시절의 스승이었다.
“‘네 연기는 내면이 부족하다’고 채찍질해 주시던 스승이셨는데 어느 날 공연을 와서 보시더니, ‘이제 내면이 생겼구나,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더군요. 먼저 다른 세상에 가신 선생님께서 남은 시간 더욱 열심히 연극하라고 주신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됐으니 힘이 있을 때 제대로 연극을 해봐야겠어요.”
‘제대로 하라’는 말은 아마도 전무송씨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주문인 듯했다.
“아이들에게도 이왕 연극을 시작했으면 제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잘해나가는 것 같아서 기대를 해봅니다. 한길을 간다는 건 참을성과 끈기가 필요한 일이지요. 저희들이 알아서 능히 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바라보는 중입니다.”
인생에서 부딪치게 마련인 크고 작은 시련이 올 때 신뢰의 눈으로 바라봐주는 가족처럼 든든하고 확실한 재산은 없다. 진우씨는 “그 어떤 물질적인 풍요와 비교할 수 없이 귀중한, 일에 대한 긍지와 애정을 물려준 아버지가 험한 세상에서 길을 찾는 이정표 같다”고 말했다.
“‘눈을 밟으며 들판을 갈 때는 모름지기 함부로 어지럽게 가지 마라. 오늘 내가 지나간 발자국은 후인들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읊었던 글귀라고 하는데 아버지의 삶은 바로 저에게 그런 길잡이, 이정표와 같습니다. 아버지를 보면서 저도 누군가 따라오며 배울 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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