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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프라이버시 인터뷰

박근혜 대표가 털어놓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 요즘 생활

”어린 시절 추억하는 공간 꾸며놓고 서재에선 경쾌한 음악 들으며 웹서핑 해요”

글·송화선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2005. 09. 12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삼성동 자택을 공개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마음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올해로 사망 31주기를 맞는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에 대한 그리움 & 김종국의 ‘제자리 걸음’ 등 최신 가요를 즐겨 듣는 요즘 생활.

지난8월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2층 양옥집의 문이 활짝 열렸다. 하얀 칼라가 달린 경쾌한 느낌의 원피스를 입고 손님을 맞은 이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53). 그가 지난해 7월 이후 1년여 만에 자택을 공개한 것이다.
자연석 돌 계단과 푸른 잔디가 깔린 작은 정원을 지나자 늘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박 대표의 보금자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밝고 현대적인 느낌의 정원에 비해 집안은 장식이나 가재도구가 거의 없는 소박한 분위기. 고풍스런 갈색의 거실 인테리어와 벽에 걸린 ‘금성’ 에어컨 등이 이 집을 1970년대의 한순간에 머물러 있게 하는 듯했다.

집안 곳곳에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에 대한 추억이 가득
박근혜 대표가 털어놓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 요즘 생활


박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청와대에서 나와 성북동에 살다가 지난 90년 이 집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그 뒤 98년 정치를 시작할 때까지 세상과 교류 없이 이 안에서 혼자 살았다. 이 때문인지 그의 집안에는 여전히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와 함께 했던 시절의 추억이 가득했다.
거실 벽난로 위에는 꽃꽂이를 하는 육 여사의 흑백사진, 박 대표가 박 전 대통령·육 여사와 함께 청와대 목련꽃 아래서 찍은 흑백사진 등이 놓여 있었고, 한쪽으로 에밀레종을 축소한 모양의 작은 종이 눈에 들어왔다. 박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종소리가 꼭 ‘엄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던 바로 그 종이다.
올해는 지난 74년 8월15일 광복절 축하행사 도중 육 여사가 사망한 지 31년째 되는 해. 당시 스물두 살에 불과했던 박 대표는 어느새 쉰세 살로, 마흔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육 여사보다 더 나이든 중년 여성이 됐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 육 여사는 지금도 자신을 따뜻하게 돌봐주던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뒤 20대 후반까지 그 안에서 생활한 박 대표에게 육 여사는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고. 박 대표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온 가족이 함께 경남 진해의 대통령 휴양지에 가 아무 걱정 없이 자유롭게 놀던 어린 시절”이라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머니와 함께 그날 있던 일을 이야기하며 마음껏 웃던 그 때가 늘 그립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육 여사의 흔적은 거실 옆 손님맞이방 벽에도 걸려 있다. 육 여사가 직접 수를 놓아 무궁화 꽃과 잎새 모양으로 만든 한반도 지도인데, 이 자수는 박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각별히 아끼던 것이라고 한다. 육 여사 사망 뒤 액자가 너무 낡았다며 새로 갈아 청와대 안에 걸어두고 보던 것을 박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난 뒤 박 대표가 가지고 나왔다고. 거실과 서재 곳곳에는 이 외에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그린 그림, 정계입문 전 박 대표가 수놓은 자수 작품 등이 걸려 있었다.
흑백 추억으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유난히 눈에 띈 것은 벽난로 한켠에 놓인 동생 지만씨와 서향희 변호사의 컬러 사진. 9월 출산 예정인 이들 부부와 박 대표가 함께 찍은 사진은 집안 전체에 화사한 공기를 불어넣고 있는 듯 보였다. 박 대표는 이 사진을 소개하며 “둘이 얼마나 재미있게 사는지 모른다. 올케가 들어오면서 마치 여동생이 하나 생긴 것처럼 기쁘고 마음 든든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사진도 하나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새로운 가족에 대한 행복한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박 대표는 “요즘 바빠서 한동안 전화로만 안부를 전했는데, 곧 만나 아기용품을 선물할 것”이라며 “원래 아이들을 좋아해 생각만 해도 기대가 크다”며 환히 웃었다.
박근혜 대표가 털어놓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 요즘 생활

박 대표가 늘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 모습들.



하지만 이런 박 대표의 바람이 언제쯤 이뤄질지는 본인도 잘 모르는 상태다. 최근 국정원 도청사건과 박철언씨 회고록 파문 등으로 정치권이 표류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며칠 전에는 하루에 약속이 12건이나 잡혀 있었다”며 “오전 5시부터 자정까지 사적인 시간이라고는 도무지 낼 수 없는 날이 많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저녁 때 집에 오면 정원의 작은 잔디밭을 거닐며 하루 일을 정리하곤 했는데, 요새는 그런 짬조차 내기 어렵다고. 대신 틈틈이 요가와 단전호흡을 하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바쁜 박 대표가 아무리 늦게 귀가해도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하는 것. 박 대표의 개인공간인 자택 2층 서재에는 그가 미니홈피를 관리하거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둘러보며 네티즌의 목소리를 듣는 데 이용하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박 대표는 “좋아하는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컴퓨터 볼륨을 한껏 높인 채 웹 서핑을 한다”며 “그러다 보면 최신 가요도 금세 외우게 된다”고 말했다.


미니홈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젊은 감각 익혀
평소 솔리드의 ‘천생연분’, 거북이의 ‘빙고’ 등 랩이 섞인 경쾌한 댄스가요를 좋아한다고 말해온 박 대표가 요즘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깔아둔 것은 최근 가요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김종국의 ‘제자리 걸음’. 박 대표는 ‘죽도록 힘겨워도 몸서리치게 외로워도/ 너를 그리워하지 않는 게 더 쓸쓸한 일인데’로 시작되는 이 노래 가사를 벌써 많이 외웠다고 한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언제나 꼿꼿하고 단정한 모습을 보이는 탓에 ‘왠지 멀게 느껴진다’는 평을 듣는 박 대표에게 미니홈피는 소소한 일상의 감정과 사생활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통로. 그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동영상, 맨발로 물구나무 서서 단전호흡하는 모습 등은 미니홈피가 없었다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을 것들이다.
박 대표는 “어린 시절에도 부모님께 꾸중 들은 기억이 별로 없을 만큼 ‘일탈’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다. 하지만 테니스, 탁구, 수영 등 운동을 좋아하고, 지나가다 중국식 호떡을 보면 꼭 사먹을 만큼 평범한 모습도 갖고 있다”며 “미니홈피를 통해 좀 더 많은 이들과 진실된 나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 도중 중국식 호떡을 설명하며 “왜, 그 ‘공갈빵’이라고 하는 것 있잖아요”라고 말하거나, “충청도에서 ‘보신탕 먹을 줄 알아요?’라는 말을 두 글자로 줄이면 뭐라고 할 것 같으냐”고 물은 뒤 “정답은 ‘개 혀~?’”라고 말해 웃음이 터지게 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7월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뒤 한 번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그는 지난 7월20일부터 8일 동안 꿀맛 같은 여름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집에서 쉬는 동안 그가 주로 한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고. ’블루 오션 전략‘ ’괴짜경제학‘ ’대한민국에 고함‘ 등 경제에 관련된 책을 주로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공동 저술한 ’블루 오션 전략‘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한다.
박근혜 대표가 털어놓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 요즘 생활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는 박 대표


박 대표는 “‘블루 오션(blue ocean)’이란 경쟁자와 피 튀기는 싸움을 하는 대신 다른 이들이 따라오지 못할 차별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설명한 뒤 “이 책을 읽으며 여전히 ‘레드 오션(red ocean)’인 우리 정치 현실에서 ‘블루 오션’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서재에서는 이 외에도 ’마거릿 대처의 국가경영‘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 등 여성 지도자들에 대한 책과,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가 쓴 박 대통령 평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등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서재에서 무엇보다도 눈길을 끈 것은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라는 고풍스런 피아노.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사용해왔다는 이 피아노에 앉아 그는 직접 ‘아리랑’을 연주해보였다. 박 대표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자주 피아노 앞에 앉았는데 요새는 바쁘다는 핑계로 뚜껑조차 열어보지 못했다. 너무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으니 쑥스럽다”며 수줍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민속마을에 간 적이 있어요. 툇마루에 앉아 달이 지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이 언젠가는 이런 집을 지어 같이 살자고 말씀하셨죠.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고 그 사이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전 아직도 그 꿈을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좀 더 잘 살게 되고 많은 이들이 행복해진 뒤에, 정말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박 대표는 개인적인 바람을 말할 때조차 ‘나라가 잘 살게 된 뒤’라는 단서를 붙일 만큼 늘 ‘국가’ ‘민족’ ‘경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차기 대권 도전 의사에 대해 묻자 “아직은 당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이 많고, 대통령선거는 벌써 고민할 일이 아닌 것 같다”는 말로 즉답을 피했다.
한때는 TV 드라마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고작 저만한 일을 가지고 뭐가 힘들다고 울고 있을까’라고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었다는 박 대표. 그가 서민의 삶과 아픔을 치유해주는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박 대표의 다음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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