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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시대의 작가

‘토지’ 작가 박경리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

“행복했더라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 좀 더 오래 살면 나 자신에 대해 쓸 지도 모르죠”

■ 기획·구미화 기자 ■ 글·황호택‘동아일보 논설위원’ ■ 사진·김형우 기자

2005. 01. 10

69년 집필을 시작해 94년 완간된 대하소설 ‘토지’가 또 한번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광복 이후 한국문학이 거둔 최대의 수확으로 손꼽히는 ‘토지’의 작자 박경리 선생을 만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그의 삶, 소설과 드라마의 차이점에 대해 들어봤다.

‘토지’ 작가 박경리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

‘토지’의작가 박경리 선생(78)은 여간해서 매스컴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다. 낯가림의 장벽을 뚫기 위해 박경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을 빌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교수(62)와 ‘토지’ 21권을 펴낸 나남출판사 조상호 사장(54)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김 교수는 1983년 ‘토지’ 1~3부를 세 번 읽고 선생의 팬이 되어 20년 교분을 쌓았고, 토지문화관 건설위원장, 토지완간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냈다. 조 사장은 교정 작업을 하면서 ‘토지’ 21권을 다섯 번이나 읽었다. 그는 “SBS에서 드라마 ‘토지’를 시작한 이후 책 주문이 늘었다”며 표정이 밝았다.
강원도 오봉산 자락 아래 토지문화관에서 만난 박경리 선생은 두 사람 때문인지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건강이 좋아 보인다”고 인사를 건네자 낯빛이 환해지면서도 “겉보기만 그래요”라는 말로 받았다. 혈압조절약을 먹고 있고, 당이 조금 나오고, 백내장 수술 날짜를 받아놓았다고 한다. 노인에게 흔한 퇴행성 질환들이다. 인터뷰 3시간 동안 줄담배를 태우면서도 기침 한번 안 하는 것을 보면 아직 정정하다.
선생은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정치와 문학 이야기는 묻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작가는 얼굴이 필요 없습니다. 작품 내놓으면 그걸로 끝이죠. 문학 작품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고 독자들이 읽어주는 것으로 족합니다. 사람마다 자기 눈으로 평가하면 됩니다. 작가가 이러쿵저러쿵 해명을 하는 것은 작품이 미진하다는 뜻이죠. 나는 문학에 관해서는 인터뷰를 하지 않고 생명과 환경에 관한 인터뷰라면 응합니다. 내 작품을 읽고 마음대로 상상하라는 거죠. 굳이 내가 해명할 필요가 있겠어요.”
생명·환경 이야기나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학 이야기를 건너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SBS 드라마 ‘토지’ 보십니까.
“첫 회는 봤는데 그 뒤로는 안 봐요. 내용이 너무 달라서….”
조 사장이 “소설에서는 직접 육성이 나오지 않는 별당아씨와 동학장군 김개주가 나와 이야기를 한다”고 거들었다.
박경리 선생은 SBS에서 받은 원작료 2억원으로 토지문화관 옆에 창작실 다섯 개가 딸린 별관을 지었다. 그동안 작가들이 토지문화관에 와서 집필을 하곤 했는데 무슨 행사가 있을 때면 창작에 방해가 되고, 불편한 게 마음에 걸렸던 것. 2004년엔 작가 박범신 박완서 등 30여 명의 작가가 토지문화관 창작실과 별관에서 창작활동을 하다 돌아갔다고 한다.
-2억원밖에 못 받으셨나요.
“내가 그런 계약에 미숙해 다른 사람에게 맡겼더니 그이도 미숙해 그렇게 됐지요. 지나간 일은 후회해 무슨 소용 있어요. 내 손을 떠났으면 그만이죠.”
-집사람이 ‘토지’ 21권을 다 읽고 요즘 드라마도 빼놓지 않고 보는데 월선이 역을 맡은 배우가 소설에 나오는 이미지하고 다르다고 하더군요.
“월선이가 소설에서는 곱상하게 나오지요. 그림자 같은 여자인데 드라마에서는 윤곽이 드러나더군요.”
“등장인물의 이미지와 내용이 원작과 너무 달라 드라마 ‘토지’ 안 봐요”
69년 ‘토지’ 1부를 쓰기 시작한 선생은 89년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중국 여행에 나섰다. 외국 여행 기회가 적지 않았지만 ‘토지’의 맥이 끊길까봐 두려웠고 복잡한 출국수속이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만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죽(竹)의 장막이 걷힌 직후 북경을 거쳐 토지 제 2부의 무대였던 간도를 찾아갔다.
-한 번도 안 가본 용정 거리가 소설에서 묘사한 것과 얼추 맞던가요.
“소설 쓸 때 참고한 책자들이 있었어요. 지리와 기후를 비롯해 모든 게 다 나와 있었죠.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진 거죠. 간도에 살았던 사람이 ‘간도에 산 적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어요. 묘사와 내용에 리얼리티가 있어야 작품이 살거든요. 상상력과 직관력으로 정확하게 때려잡아야 해요.”

‘토지’ 작가 박경리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

청계천 복원 사업 등 생명 운동에도 관심이 많은 박경리 선생은 생명과 생존 이상의 진실이 없다며 생명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사조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지’의 무대 하동 평사리에도 가본 적이 없다죠.
“안 가보고 소설을 썼는데 나도 놀랐어요. 동아일보 문명호 기자가 ‘토지’ 1부가 나온 뒤에 평사리에 찾아가 기사를 썼어요. 평사리에 조대호라는 참판집이 있었답니다. 소설 속의 조준구(김갑수 분)를 실제로 찾으려고 무례하게 ‘족보 내놔라’ 했대요. ‘당신 집안에 혹시 꼽추가 있었냐’는 질문도 했더래요. 토지 속의 조준구 아들 병수를 확인하려고 했던 모양이죠. 곳간 사진도 어쩌면 ‘토지’하고 똑같아요.”
-자료를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어요. 6·25 이전에 외할머니가 들려준 거제도의 누런 벼와 호열자(콜레라) 이야기에서 ‘토지’ 이야기가 촉발됐다는 말을 한 적이 있더군요.
“외할머니는 거제도에 살다가 통영으로 시집을 왔어요. 친정 문중 땅이 아주 넓어 조랑말을 타고 돌았대요. 1902년에 호열자가 돌아 사람이 얼마나 죽었던지, 가을에 벼 베어 먹을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답니다. 그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머릿속에는 색채로 오더라고요. 죽음은 까만빛 아닙니까. 까만빛과 황금빛의 대비. 죽음과 삶.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굴러다니다가 작가가 되니까 더 생생해진 거죠. 그것을 가지고 1부 정도 쓰려던 게 이렇게 확대됐지요. ‘김약국의 딸들’(1962)도 어려서 통영 외가에서 들은 얘기에서 나온 거예요.”
박 선생은 드라마 ‘토지’에서 결정적으로 잘못된 것을 집어냈다.
“‘의관(衣冠)집 자식’을 위관(尉官)집으로 바꾸어놓았어요. 옛날에 위관이라는 벼슬은 없어요. 그러니까 의관집은 옷과 갓을 갖춘 양반집이라는 뜻이에요. 벼슬이 아니거든. 위관이라고 자막 설명이 틀리게 나왔어요. 그런 망신이 어디 있어요.”
박 선생이 지적하는 ‘의관집 자손’은 몰락한 양반의 후예 김평산(유해진 분)을 가리킨다. 김평산은 최참판댁 하녀 귀녀(조안 분)와 농부 칠성이(배도환 분)를 끌어들여 서희(김현주 분)의 아버지 최치수(박지일 분)를 교살할 음모를 꾸미는 인물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의관’을 설명하며 ‘위관’으로 잘못 표기했다는 것.
조 사장이 “귀녀는 하녀인데 너무 섹시하게 보이더라”고 하자 박 선생은 “옛날에 하녀가 루주를 어떻게 칠해요”라며 웃었다.
94년 ‘토지’가 완간된 후 나온 수필집 ‘수정의 메아리’에 작가 김훈이 쓴 ‘1975년 2월15일의 박경리’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석방된 사위 김지하를 마중 나간 박 선생이 10개월 된 손자 원보를 업고 추위에 떠는 대목이 나온다. 큰 아들 원보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다 풀려난 김지하는 한 달 만에 다시 수감돼 6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그 사이 딸 영주씨와 손자를 돌본 박 선생은 손자 원보에 대한 정이 남다르다.
-손자들이 할머니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겠어요.
“아유, 그런 거는 없어요. 할머니는 손자가 좋은데 원보는 안 그래요. 말하자면 할머니의 후광을 받지 않겠다는 결벽증이 있어요. 어디 가서 우리 할머니 아무개, 우리 아버지 아무개라고 절대 안 해요.”
원보씨는 판타지 소설 작가이자 애니메이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손자들이 ‘토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나요.
“둘째 손자 세희는 ‘토지’도 안 읽었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아파서 못 읽겠다’고 그러더래요. 그놈이 할매 이름과 아비 이름이나 팔고 다니면 어디다 써먹겠어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절대로 작품 읽으라는 소리 안 해요. 나에 관한 거는 모두 없는 걸로….”

전쟁 중 남편과 아들 잃고 불행에서 탈출하기 위해 글쓰기에 몰두
박 선생은 1·4후퇴 때 사망한 남편 이야기도 했다. 박 선생을 오래 알고 지낸 김 교수도 선생 부군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남편은 도쿄에서 학교 다니며 독립운동 하다 일본에서 형무소살이를 1년 했어요. 성질이 고지식하고 괴팍한 사람인데 단식투쟁을 해서 형사가 형무소까지 와서 취조를 했대요. 형사한테 그릇을 막 집어던졌다나요. 결혼한 후에야 일본에서 형무소살이 한 것을 알려주더라고요. 일본인 교사의 도움으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고 해요.”

‘토지’ 작가 박경리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

오봉산 자락 아래 자리한 토지문화관. 5백여 평의 밭이 딸려있어 박 선생이 유기농 채소를 기르고 있다.


몇 해 전 보훈처에서 상을 주겠다며 박 선생에게 신청서류를 내라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박 선생은 남편이 일본에서 독립운동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신청하지 않았는데, 6·25의 상처 때문이다.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꾀부릴 줄 몰라 죽은 거죠. 박정희 시대도 무서웠지만 난 자유당 시절이 더 무서웠어요. 파출소 빨간 등만 봐도 겁이 났습니다. 입 다물고 살았어요. 내 스스로 벽을 쌓고 또 쌓고,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예요. 6·25를 겪으며 아까운 인재들이 이쪽저쪽에서 많이 희생됐어요. 정말 눈앞에서 사람 죽이는 것도 난 봤어요. 북쪽 사람들이 올라가면서 조금 저거한 사람은 전부 쏴 죽였어요. 딸이 김지하와 결혼할 때 정보과 형사가 정릉 집으로 신원조회를 왔더군요. 원보 외할아버지 얘기를 물었어요. 내가 얼마나 싫었겠어요. ‘시장과 전장’에 다 쓴 건데, 공인된 비밀인데, 왜 묻느냐고 고함을 쳤어요. 얘기하기가 싫어서….”
‘시장과 전장’(1964)에 등장하는 황해도 연백의 연안여고 처녀선생 ‘남지영’은 바로 박 선생 자신의 이야기다. 남편은 ‘차기석’으로 나온다.
박 선생은 거제 출신의 남편과 중매결혼을 했다. 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으나 아들과 남편을 전쟁 중에 잃었다. 사위 김지하는 유신치하에서 옥살이를 했다. 망국(亡國), 식민지, 전쟁 그리고 독재시대를 살아오며 작가만큼 인고의 세월을 보낸 사람도 많지 않다. 선생은 데뷔 직후 현대문학 주간 조연현씨가 주최한 문학의 밤에서 “내가 행복했더라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개인의 불행도 불행이지만 우리나라 전체가 불행했죠. 6·25를 겪고 얼마 안 된 시기잖아요. 나는 전쟁미망인이었습니다. 불행의 상징이죠. 아이 데리고, 부모 모시고,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이죠. 불행에서 탈출하려고.”
젊은 시절에는 딸 하나 두고 홀로 사는 미모의 박 선생을 연모하는 남성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 시절 그녀는 재혼하라는 권유에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대했다. 그러나 그가 홀로 살며 견딘 한과 인고의 세월이 생명의 불꽃, 생명의 강이 되어 ‘토지’ 21권으로 태어났다. 박 선생은 “작가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면서도 “내가 좀 더 오래 살면 자신에 대해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확신은 못하겠다”고 말했다.
-선생이 벌이는 생명 운동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죠.
“생명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사조가 나와야 돼요. 사람도 살고 지구도 살리는 일입니다. 내가 인간을 지구의 악성 바이러스라고 말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핵무기가 생존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시장에도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그런 필수품보다는 없어도 될 게 더 많잖아요. 그게 지구를 병들게 하는 거죠. 자원을 고갈시키고. 작가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생명과 생존이 첫째고 정치나 예술은 둘째입니다. 생명과 생존 이상의 진실은 없습니다. 그게 있음으로써 문학도 있는 거죠.”
선생은 기분이 좋았는지 상인들이 ‘토지’를 많이 읽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통영에서 어시장에 들렀는데 장사하는 분들이 전부 악수를 청하는 거예요. 내가 너무 신기해 작가인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책을 읽었다’는 거예요. 백화점이나 휴게소 같은 데 가서도 인사를 받아요. 음식점 구석에 들어가 밥을 먹고 있으면 뭐 한 가지가 더 나와요.”
불행해서 문학을 시작했다던 박경리 선생. ‘토지’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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