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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의미 있는 도전

인터넷에 누드 공개해 화제 모은 하반신마비 장애인 이선희

“옷을 벗으며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벗고 장애인에게도 성적 욕망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지주 제공

2004. 12. 10

최근 한 여성 장애인의 누드가 인터넷에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감동적이었다는 격려와 함께 별걸 다 상품화한다는 비난이 교차한 것. 자신의 누드가 공개된 후 동료 장애인들의 힐난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던 이선희씨와 그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박지주씨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장애인인 우리가 누드를 찍고 공개한 이유’.

인터넷에 누드 공개해 화제 모은 하반신마비 장애인 이선희

지난 10월 중순, 가냘픈 몸매의 젊은 여성이 알몸으로 누워 있는 누드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특별히 적나라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이 사진이 화제를 모은 건 모델이 중증장애인이었기 때문. 연예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너나없이 누드를 찍는다지만 장애인 누드는 처음이었기에 세인들의 화제를 모았다.
사진이 공개된 후 ‘용감하다’ ‘감동적이다’는 격려도 있었지만 ‘장애까지 성 상품화하느냐’는 비난도 만만치 않게 쏟아졌다. 사진의 주인공 이선희씨(30)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박지주씨(33)로부터 누드를 찍고 세상에 공개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장애인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성적 욕구가 있고 성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애인도 성을 느낄 수 있느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받는 현실에서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 여성 장애인도 성적 욕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몸부림으로 누드를 찍었다”는 이씨는 하반신과 손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야 하는 중증장애인이다.
그가 장애인이 된 것은 95년 4월.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용두암에 놀러갔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구르는 바람에 경추(목뼈) 5, 6, 7번을 다쳤는데 의식이 돌아온 뒤 평생 누워서 팔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의사의 선고를 듣고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울기만 했어요. ‘절망’이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어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살 기도를 한 것만도 수차례. 그의 팔엔 아직도 칼로 그은 흉터가 선명하다.
그가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세상으로 나온 건 4년 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의 손발이 되어주던 어머니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기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취직을 해도 일이 더디다는 이유로 일주일도 안 돼 해고당하기 일쑤였던 그는 지금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을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에 누드 공개해 화제 모은 하반신마비 장애인 이선희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향유하는 많은 것들로부터 배제되어 있어요. 그중의 하나가 성적인 욕망이죠. 장애인이 된 후에 비장애인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어요. 장애가 있어도 성적인 욕구는 있는 법인데 남자친구가 저와 몸이 닿기만 하면 깜짝 놀라 ‘괜찮냐’고 걱정하니 표현을 할 수 없었어요.”
자신의 성적 욕망을 얘기하지도 못하고, 그게 스트레스로 쌓여 힘들어하던 그는 결국 남자친구를 떠나보냈다.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것이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 문제에서 억압되어 있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던 그는 장애인운동을 하던 박지주씨를 알게 되었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장애인도 성을 느끼고 즐기고 싶어하는 게 잘못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적 욕망 표현 못하고 힘들어하다 남자친구 떠나보내
중학교 때 척수결핵을 앓으면서 걷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 된 박씨 역시 성 문제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여성의 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스물네 살 때, 비장애인과 사귀던 중 정말 수치스러운 일을 겪은 적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만지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그러다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저도 그런 과정을 거쳐 차 안에서 섹스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척수장애인은 대소변 조절이 안 돼 성관계를 하기 전에 관리를 잘해야 해요. 하지만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알 기회도 없었죠. 관계를 하려는 순간에 저도 모르게 소변이 터진 거예요.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멸감이 들었겠어요. 그 일을 계기로 그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죠. 그땐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어요.”

인터넷에 누드 공개해 화제 모은 하반신마비 장애인 이선희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누드가 인터넷에 공개된 후 격려와 비난이 쏟아졌다.


그 일을 겪은 후 더욱 성에 대해 수치심을 갖고 있던 박씨는 그 후 새로운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성이 삶에서 즐거운 부분이라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즐거운 부분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차별받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애여성들이 더 이상 저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고 성을 즐겁게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장애인의 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장애인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www.ablenews.co.kr)에 칼럼 ‘박지주의 마음, 몸, 그리고 섹스’를 쓰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시각으로 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비장애인들도 섹스를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는데 장애인은 더해요. 속으론 해보고 싶으면서도 말을 안 해요.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하는 것처럼 섹스도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가 이씨의 누드를 찍기로 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성교육 강좌라 할 수 있는 ‘장애인 성(Sexuality) 향유를 위한 성 아카데미’를 10월에 열기로 기획하면서였다. 행사 포스터에 장애인의 성을 상징하는 누드를 넣기로 하고 모델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벗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더구나 장애가 있는 몸을 드러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죠. 그래서 누드 사진 찍을 사람을 찾다 미쳤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다행히 선희가 용기를 내어주었죠.”
이씨는 전부터 장애 비장애를 떠나 자신의 가장 솔직한 감정과 모습을 드러내는 누드를 찍고 싶어했다. 그래서 지난해 봄에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누드를 찍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찍는 것과 공개를 전제로 찍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 박씨의 제안에 이씨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누드를 통해 마음의 장애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제가 만들어놓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장애라는 벽을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언니의 제안을 받아들였죠.”
사진 촬영은 9월 중순,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사진작가는 누드 촬영이 처음이었지만 아내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어서 두 사람의 생각을 잘 담아주었다. 하지만 촬영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남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용기는 차치하고서라도 불편한 몸으로 맨바닥에서 5시간여를 떨어야 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자세를 수정할 때마다 일일이 도우미의 보조를 받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마른 몸이 거친 바닥에 긁혀 골반뼈 부위 살이 벗겨지는 고통도 감내해야 했다. 그래도 이씨는 고통보다는 희열이 더 컸다고 한다.
“사진작가가 그만 찍자고 하는데도 선희가 더 찍고 싶다고 하더군요. 억압에서 벗어나니까 너무너무 시원하다면서요. 사진을 찍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였어요. 그래서 처음엔 촬영 과정도 공개하고 싶었어요. 장애인이 얼마나 활동에 부자연스러운지,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 촬영을 해나가는 그 내면의 아픔까지 드러내고 싶었죠. 외출시 소변처리를 위해 착용하는 장애인 의료용 기구(일명 폴리)까지 보여줄 생각이었어요. 결국 공개는 못했지만요.”
이번 누드가 화제가 되어서 그들이 목표로 했던 장애인의 성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적지 않은 시련도 겪어야 했다. ‘용기 있는 도전’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았지만, 같은 장애인들로부터 “그렇게 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느냐” “한번 튀어보려는 거냐” 하는 비난도 쏟아졌다.
“특히 가슴 아픈 게 이번 누드 사진이 장애여성 성폭행의 물꼬를 텄다는 비난을 들었을 때였어요. 너무 힘들어 선희는 며칠 동안 앓아눕기도 했어요.”

인터넷에 누드 공개해 화제 모은 하반신마비 장애인 이선희

장애인 누드를 기획한 박지주씨(사진 왼쪽)와 모델 이선희씨(사진 오른쪽). 사진제공 주간한국.


이씨와 박씨가 가장 속상해하는 점은 ‘누드=선정적=상업적’이라고 몰아가는 시선이었다.
“돈 때문에 누드를 찍은 것 아니냐며 얼마나 벌었냐는 얘기를 들으면 황당해요. 돈을 번 게 아니라 오히려 촬영하느라 쓰고 다닌걸요. 우리는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장애여성도 성적 욕망을 가진 여자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 본연의 모습인 알몸을 찍은 것이지, 상업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죠.”
일부에서는 사진 속 모습이 장애인 같지 않다며 비장애인을 지향한 상업누드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씨는 찬찬히 사진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 손으로만 기다보니까 굳은살이 박힌 손바닥, 제대로 가누지 못해 축 늘어진 손, 한쪽이 움푹 들어간 골반 등 장애의 몸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는 것.
“우리는 ‘봐라, 장애인도 섹시하지 않냐’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걸친 옷을 벗는 것처럼 장애와 사회적 편견이라는 두 굴레를 동시에 벗고 싶었어요.”
그는 사진마다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장애의 상처를 입고, 장애가 있는 몸을 직시하고 괴로워하다 다시 현실과 직면하는 용기를 얻게 되는 과정을 테마로 담았다는 것. 그는 누드를 그 자체로만 보지 말고 왜 누드를 찍어야 했을까,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를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장애인은 이동권, 교육권, 취업 문제, 인권침해 등 많은 부분에서 차별받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장애인의 다른 담론도 많은데 왜 성이야기만 하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그런 것이 중요한 만큼 성도 똑같이 중요한 담론의 하나라고 했다.
“장애인복지관이 1백40개가 넘는데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성적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없어요. 성폭력을 피하는 법 정도일 뿐이죠.”
실제 우리 사회의 장애인의 성에 대한 인식은 아주 낮다. 강압적인 불임수술이 가해지는가 하면 장애인용 공중화장실엔 남녀 구분이 없다. 장애인에게 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성에 대한 고민은 심각하다는 게 박씨의 이야기다. 칼럼을 쓰기 시작한 후 상담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
“얼마 전 한 전신마비 남성이 절박한 상담전화를 걸어왔어요. 항상 섹스에 대한 욕망이 떠나지 않아 괴롭다며 자신이 변태인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의 폰섹스 파트너가 돼줄 수 있냐고 하는 거예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성희롱이겠지만 저에겐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왔어요. 섹스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인데 장애인이란 이유로 누리지 못하고 사니 늘 그 욕망에 시달릴 수밖에요.”
박씨는 장애인 성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성 워크숍(문의 02-711-1962)을 열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수강생 10명을 채우는 것도 힘들지만 첫출발을 한 이상 앞으로 장애인이 스스로 성적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성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라고 한다.
“장애인 성상담, 성문화센터 등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장애인들의 성 향유를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생각중이고요. 무엇보다 장애인다움을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의 관점에서 장애인의 성과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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