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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거울앞에 서다

전 남편과의 상처 덮고 라디오 음악 프로 진행 맡은 오미희

“좋은 시간, 아름다운 인연 기다리며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래요”

■ 기획·김지영 기자 ■ 글·조득진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4.11.10 14:09:00

최근 오미희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찾아들었다. 지난 97년 시작된 전 남편과의 지리한 법정싸움이 어느 정도 끝을 맺고 새롭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것. 지난날들의 분노와 화해하며 지내고 있다는 그에게선 고통의 시간을 넘어선 성숙함이 느껴졌다.
전 남편과의 상처 덮고 라디오 음악 프로 진행 맡은 오미희

“서로가 원해서 하는 인터뷰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지난 10월 중순 남산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오미희(46). 최근 2년간 어떤 매스컴과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그가 기자와 인사를 나눈 후 혼잣말처럼 말을 꺼냈다. 한숨 쉬듯 뱉은 말이었지만 표정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환하고 가벼웠다. 곱게 단장하고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해 보이는 그에게 어떤 변화가 감지됐다.
“그래 보여요? 이제야 한숨 돌리는 것 같아요. 마음의 그늘이 조금씩 걷히고 있다고 할까요? 주위 사람들도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스스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그를 집요하게 붙잡고 있던 전남편과의 법정 다툼은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항소심)이 오미희의 상해 혐의만을 인정해 벌금 1백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리면서 일단 마무리되었다. 오미희가 승용차로 자신을 치려 했다는 전 남편의 살인미수 주장은 기각되고 손등을 문 가벼운 상해만 유죄로 인정된 것. 하지만 오미희는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대법원에 즉각 상고해 다음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죠. 그 사람 손등을 문 것에 대해 유죄판결이 났지만 저는 그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유산을 했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항암치료까지 받았어요. 제겐 억울한 판결일 수밖에 없죠.”
팬들에게 최근 2~3년간 그의 모습은 방송 외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채 1년도 채우지 못한 결혼 생활, 하지만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인연의 끈을 정리하느라 법정싸움을 하고, ‘살인미수’라는 어마어마한 단어까지 법정에서 오르내리게 된 것.
“연예인으로 공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언론과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됐지만 지금 와서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다만 제게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죠. 살아도 죽은 목숨이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 모든 사람이 제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생각에 힘겨웠어요. 사람들의 시선과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소리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어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칼날처럼 느껴지던 시간
연이은 소송으로 법정싸움을 하는 동안 그는 철창 없는 감옥과 같은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팠다, 힘겨웠다”는 말이 주는 느낌으론 부족하다고. 그중 가장 힘겨웠던 것은 기소가 되면서 한 방송국에서 해고된 일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앞이 깜깜하다’는 표현이 심리적인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그 상황이 되니 물리적으로 다가오더군요. 해고 통보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버튼이 안보이더라고요. 그때는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웠어요. ‘9년을 해온 방송인데 이럴 수 있느냐, 이렇게 어려울 때 바람막이가 되어주면 안되나’ 매달렸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아는 순간 너무 암담해 눈물이 쏟아졌어요. 청취자에게 죄송하다는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나올 땐 벼랑 끝에 버려진 느낌이었죠.”
2003년 2월 방송을 그만두고 그해 10월까지 그는 방송 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재판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법정싸움의 장본인을 그 어떤 방송국도 찾지 않았던 것이다.
“8개월 동안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철창처럼 느껴졌어요. 어디 갈 수도 없고…. 정말 심하게 앓았던 시간이었어요.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아침에 잠들었다가 오후부터 다시 괴로워하곤 했죠.”

전 남편과의 상처 덮고 라디오 음악 프로 진행 맡은 오미희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미어져 온다는 그. 하지만 그는 그게 꼭 필요한 시간은 아니었더라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자신 안의 응어리를 되돌아보고 지나온 삶을 들여다본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이후 지난해 가을 SBS에서 섭외가 들어왔을 때 그는 엄마 젖무덤을 찾는 아이처럼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첫 방송에선 울먹이느라 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아직은 지난 시간에 대한 분노가 완전히 사그러들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들이 ‘잊어라, 잊어야 살 수 있다’고 말을 했지만 당신이 내 입장이 되면 그럴 수 있겠어? 이런 말로 반박을 하게 되더군요. 결국 잊는 수밖에 없었어요. 지난 시간과 화해하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자신이 처한 처지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나마 그를 지탱하게 해준 것은 바로 라디오였다. 라디오가 없었다면 그 분노의 시간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을 것이라고.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며 음악을 고르고, 함께 나눠야 할 이야기를 찾다 보니까 스스로 순해지더군요. 또 방송을 하면서 제 안의 분노를 놓게 되고, 마음의 정원을 마련하게 됐어요. 항암치료를 받을 때나 아픔을 느낄 때 항상 라디오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격려하고 깨닫게 해주었어요.”
특히 라디오 부스로 날아든 사람들의 사연들을 통해 많이 배웠다고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스스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당신의 목소리가 내 삶을 어루만진다’는 청취자의 글을 보면서 자신이 위로받고 있는 걸 깨닫기도 했다.

자신의 딸 보면서 어머니에게 미안함 느껴
힘겨운 시간을 보내며 그는 무엇보다도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고 한다. 특히 첫 번째 결혼해서 낳은 딸의 모습을 볼 때면 자신으로 인해 마음고생이 누구보다도 컸을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앞선다고.
“얼마 전에 딸이 집에 왔다가 감기만 옮겨주고 갔어요(웃음). 지금 재수생이라 제 딴에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죠. 지난해 수능시험을 치를 때 학교 교문 앞에 서 있었는데 마중 나온 부모들의 웅성거림을 느끼며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리곤 제 어머니를 생각했죠. 나 같은 불효가 또 있을까, 그 분의 가슴에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는 그간 그나마 삶의 끈을 붙들고 있게 해준 것은 ‘하나님’과 ‘라디오 전파’라고 말했다.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인데 보이는 것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하자 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좋은 사람도 만났어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며 늘 제게 격려와 칭찬을 해주었죠. 다들 메마른 우물이라고 지나치는데 그분은 물을 넣고 펌프질을 해주었어요. 사랑까지는 가지 않고 우정으로 끝이 났지만 제게 희망을 준 사람이에요.”
그는 지난 10월18일 SBS 러브 FM에서 파워 FM (107.7MHz)으로 둥지를 옮겨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오미희의 뮤직 포에버’를 진행하고 있다. ‘오미희를 만나려면 오후 4시 라디오를 켜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지난 10여 년 동안 오후 프로그램만을 맡아왔던 그에겐 새로운 도전인 셈.
“솔직히 오전 11시에 방송을 한다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두려워요. 사람들은 지금처럼 하면 된다고 하지만 배경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놓여진 사물의 모습이 달라 보이잖아요. 11시를 배경으로 어떤 음악과 내용을 담아야 할지 아직은 감이 안 잡혀요. 하지만 26년의 방송경력을 가진 저에게 신인 때 같은 떨림을 주는 것은 신선하게 느껴져요.”

전 남편과의 상처 덮고 라디오 음악 프로 진행 맡은 오미희

지난 10월18일부터 오전 11시로 시간대를 옮겨 방송을 시작한 그. 난생처음 오전시간 마이크 앞에 서면서 신인 때처럼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그는 연기 복귀에도 작은 바람을 드러냈다. 그동안 자신의 연기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기를 피해왔는데 이젠 나이 든 여자의 내면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눈가의 주름과 흰머리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젠 외로움에서 점점 빠져나오는 것 같아요. 아니 친구가 되어서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죠. 어차피 내게 주어진 외로움이라면 시달리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각자 자기 분량만큼의 외로움을 가지고 살잖아요. 지금 막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서러움에 울고 있는 사람이나 10개월간 같이 산 남자에게 살인미수로 고소된 저나 모두가 외롭잖아요.”
그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라디오 방송과 연기, 그리고 사랑. “긴 시간 동안 자신을 꾸짖고 들여다보면서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는 그는 그래서 또 다른 인연을 기다린다고 했다. ‘사랑만큼 고통을 예견하는 것도 없다’고 하지만 잘못된 만남, 긴 아픔의 시간이 있었기에 더욱 절절하지 않을까?
“언젠가 신달자 선생의 ‘내가 행복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으리라. 불행했던 날 글을 끄적이니 그것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됐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저를 아프게 했던 시간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좋은 시간, 아름다운 인연을 기다리며 소중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싶어요.”
그의 바람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방송에서 위로를 받는 팬들 모두 그가 남은 시간들을 따스하고 좋은 기억으로 채워가길 바라고 있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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