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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인세 전액 기증한 탤런트 김혜자

“참혹한 현실에 분노하기보다 아이들에게 밥 한끼 더 먹이는 게 우선이에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4.11.10 13:45:00

탤런트 김혜자가 지난 3월에 출간한 자신의 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의 10년 인세 전액을 전세계 불우 어린이들을 위해 기탁해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그가 들려준 사랑, 나눔,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
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인세 전액 기증한 탤런트 김혜자

‘좋은 일을 생각하면 당신이 떠오릅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좋은 일만 떠오릅니다’라는 어느 광고 카피처럼, 아름답고 좋은 일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탤런트 김혜자(63)다.
그가 1992년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소말리아, 르완다, 방글라데시, 라오스 그리고 북한과 아프카니스탄 등 14개 빈곤국을 찾아다니며 가난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했다는 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지난 3월엔 자신의 12년 봉사 활동 경험과 감회를 담은 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펴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또다시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수필집의 10년치 인세 전액을 전세계 불우 어린이들을 위해 기탁하기로 한 것. 이미 첫 번째로 받은 인세 전액은 북한 용정의 열차폭파사건으로 고아가 되거나 부상을 당한 아이들에게 보내졌고, 두 번째로 받은 인세 역시 공부방을 만드는 데 쓰였다. 나눔과 사랑을 베풀어 세상에 희망의 싹을 심고 있는 그를 이화여대 미술관에서 만났다.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쓴 거니까 그 수익금은 당연히 그 아이들을 위해 쓰여져야죠. 책 한 권을 팔면 1천원이 제 몫으로 떨어지는데, 그 돈이면 아이 한 명이 사흘 동안 음식을 먹을 수 있어요.”
그는 단돈 1천원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고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부끄럽고 슬픈 일이라고 말한다.
“저는 희망이 언제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나눔이며, 사랑이 그 어떤 전쟁과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믿어요.”
22년 동안 그의 일상이 되어버린 드라마 ‘전원일기’가 2002년 12월 대장정의 막을 내린 후 그는 지난 해 1년 동안 방송 활동을 중단한 채 집에서 꼼짝 않고 글쓰기에만 매달렸다.
“그동안 써놓았던 일기와 비행기 안에서 메모했던 것들, 방송국에서 동행 취재한 테이프들을 수십 번씩 봤어요. 그런데 제가 본 것들은 가슴속에 다 있는데 막상 글로 쓰려니까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쓰다가 지쳐서 ‘내가 무슨 글을 써’ 하고 대학노트를 덮었다가 다시 꺼내기를 수십 번 반복했어요. ‘글 쓰는 걸 포기할까’ 생각이 들다가도 아이들의 간절한 눈길이, 힘없는 손길이 떠올라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 책은 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쓴 것인 셈이죠.”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 보며 인생 가치관 변화
그는 자신이 특별해서 봉사 활동을 시작한 게 아니라 고통 받는 아이들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보았기 때문에 먼저 도왔을 뿐이라면서, 자신의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고통을 보고,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저를 걱정거리 없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는 염세주의자, 회의주의자예요. 가족들한텐 미안하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몰랐어요. 그래서 자살도 생각했죠. 항상 ‘빨리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있었는데, 아들이 한번은 ‘엄마가 자꾸 그래서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연기할 때를 제외한 나머지 그의 삶은 슬로모션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이 왜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지만, 그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마음 속 어딘가에 끝없는 허무감만 생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인세 전액 기증한 탤런트 김혜자

92년 여름, MBC 주말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를 끝낸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배역을 맡을 때마다 그 역할에 몰입한 나머지 극이 끝나면 탈진해 한동안 시름시름 앓곤 했던 그였지만 이번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지치고 공허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딸과 함께 유럽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월드비전 한국지부에서 친선대사로 아프리카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는 거예요. 영화 ‘장원’에서 기막히게 아름다운 숲을 요정처럼 뛰어다니던 오드리 헵번이 떠올라 덥석 가겠다고 했죠.”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줄도 모르고, 딸에게는 “넌 너대로, 난 나대로 추억을 만들자”고 하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런데 15인승 프로펠러 경비행기를 타고 에티오피아 북부 아마라주볼로라는 곳에 내렸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상상했던 낭만이 아닌 가난과 전쟁에서 피어난 ‘슬픔의 먹구름’이었다.
오랜 가뭄으로 흙먼지만 날리는 거리에 썩어가는 짐승의 시체, 말라비틀어진 엄마의 젖을 물고 있는 아이, 말라리아에 걸려 누워 있는 아빠의 배 위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 눈과 입으로 수없이 파리가 달려들어도 쫓을 힘조차 없는 아이들….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아프리카가 가난하다고 해도 그저 우리나라 50년대의 가난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보니까 너무 놀랍고 충격적이었어요. 열흘 동안 머물면서 울기만 했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그 다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었던 그는 해마다 수십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고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사막을 수도 없이 넘어 아이들을 찾아갔다. 그가 찾아다닌 곳에 전쟁과 가난으로 인한 고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의 사랑은 존재했다.
“소말리아에 갔을 때, 피부가 거의 1백 살이나 된 것처럼 쭈그러든 소년을 봤어요. 사과를 주니까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걸어가더군요. 그곳엔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소년의 동생이 있었는데, 소년이 자신은 먹지 않고 사과를 씹어서 그 동생한테 먹여주는 거예요. 나중에 들으니까 결국 소년은 동생을 살리고 숨졌다더군요.”
그는 참혹한 현실 속에도 사랑과 희생이 남아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제서야 세상의 불평등과 모순에 분노하고 따지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한 끼의 밥이라도 더 먹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라면 벌써 죽었을 것 같은 참혹한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존경스러웠고, 죽고 싶어 한다는 게 사치라는 생각을 했다. 늘 알 수 없는 허망함에 빠져 있던 그는 이렇게 아이들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가 보사부 차관을 지냈을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막내딸로 태어나고 자라 가난을 겪어보지도 않은 그가, 배우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어려움과 고통 따위는 모를 것 같은 그가, 10년 넘게 전세계 가난하고 불행한 아이들의 어머니를 자처하는 것에 대해 가진 자의 ‘만용’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살면서 권력과 재력을 가진 분들과 얼마나 많이 악수를 하고 담소를 나눴겠어요. 하지만 제 손이 아직도 기억하는 건 그들의 손이 아니라 고통 받는 아이들의 힘없는 손이에요. 그 아이들의 손을 오래오래 잡아주고 싶을 뿐이에요.”
그는 비극의 현장과 화려한 무대를 오가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곳에는 아무 일이 없어요. 호텔 레스토랑에서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를 생각하고, 군살이 찌지 않게 수영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아가죠.”

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인세 전액 기증한 탤런트 김혜자

김혜자는 책을 펴낸 후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격려와 참여에 감동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두 가지 삶의 괴리에서 괴로워하던 그는 이따금 아프리카에 가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말라 발자국도 생기지 않을 아이를 한 시간 넘게 안고 있던 기억과 떠나는 그에게 하루치 양식을 건네던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려 또다시 짐을 싸곤 했다고.
그는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것 외에도 50명의 아이들과 결연을 맺어 한 달에 1인당 2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한 달에 2만원이면 한 아이가 먹고 입고 학교를 다니고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액수다.
후원을 시작한 이후 그는 돈을 쓰기 전에 먼저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좀 비싸다 싶은 가방을 하나 사려고 하다가도 ‘이 돈이면 애들 몇 명이 몇 끼 밥을 먹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차마 그 가방을 살 수가 없다고.

명상 배우러 다닐 때 만난 류시화씨와의 특별한 우정
그는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세상 물정도 잘 모른다. 확실히 그는 아직까지 아이 같은 면이 많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안내원에게 “김일성 배지를 안 달면 혼나요?” 하고 물어봤을 정도다.
그런 그를 모두가 공주처럼 보호해주고 다 받아주는데, 한 사람만은 받아주기는커녕 핀잔을 준다. 바로 류시화 시인이다. 류씨는 그가 명상을 배우러 다닐 때 만나 지금까지 10년 넘게 우정을 쌓고 있는 친구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류씨에게 전화해 상담을 하는데, 그러면 류씨는 그에게 힘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한다.
그가 류시화씨에게 특별히 고마워하는 게 있다. 그 덕분에 생애 최초로 혼자 여행을 한 것이 그렇다.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듬해 가을,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해질 대로 허무해졌어요. 그래서 평소 제 마음을 털어놓곤 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이제 그만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위로해주기는커녕 ‘사라지려면 인도의 갠지스강 부근으로 사라지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냐’면서 저를 인도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그를 따라 여행을 갔어요. 그런데 네팔 공항에서 저를 남겨두고 갑자기 사라져버린 거예요. 그래서 네팔에서 인도까지 생애 최초로 혼자서 여행을 하게 됐죠.”
그가 별 탈 없이 혼자 갠지스 강가의 여관에 도착한 뒤 이틀 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난 류씨는 그를 데리고 화장터로 갔다. 화장터에서 그는 죽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이 사실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런데 이렇듯 여린 그도 아이들을 위한 일에는 강한 모성을 보여주었다. 꼬박 1년을 책을 쓰는 데만 몰두했는가 하면, 책이 나온 후에는 한 권이라도 더 팔아 아이들을 도우려고 석달 동안 자신을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 책을 홍보했다. 그러다 결국 과로로 쓰러져 3일 동안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그렇게 고생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었고, 그래서 좋은 일도 많이 생겼다.
“일산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어떤 분은 학부모 6백 명에게 제 책을 선물했어요. 그리고 자신도 냉수로 허기를 달래던 때가 있었다면서 저처럼 50명을 후원하겠다고 하길래 제가 처음부터 50명은 부담스러우니까 10명부터 하라고 했어요. 너무 뿌듯하고 좋았어요.”
그의 책을 읽은 주부 2명은 결혼 예물을 보내주기까지 했다. 또 시골에 사는 젊은 주부는 꼬깃꼬깃 모은 1만원짜리 지폐 10장, 5천원짜리 지폐 4장, 5백원짜리 동전 2개, 그리고 어디선가 얻었다며 애기 양말 20켤레를 주소도 밝히지 않고 보내주었다.



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인세 전액 기증한 탤런트 김혜자

김혜자는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누구든지 그 아이들을 보면 이러지 않고는 못 배겨요. 사람들 마음속에는 모두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이 숨어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다시 한번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는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후원자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많이 동참하기를 바랐다.
연기 은퇴 후에 아프리카에서 아이들과 살고 싶어
글을 쓰느라, 책을 홍보하느라 오랫동안 연기를 중단해야 했던 그가 얼마 전 ‘홍소장의 가을’이란 SBS 창사특집극 3부작(11월14일 방송)을 찍었다. 이 드라마는 평생을 경찰로 살다가 파출소 소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한 홍상수란 인물의 가족 얘기를 다룬 것으로, 여기서 그는 ‘전원일기’ 이후 최불암씨와 또다시 부부로 만났다.
MBC에 소속되어 있는 그가 타 방송사 드라마에 출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 “작품이 좋아 욕심을 냈다”는 그는 자신을 찾아준 김수현 작가에게도 감사하고, 자신이 이 드라마를 찍도록 허락해준 MBC측에도 감사한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그가 연기할 배역을 못 찾을 때쯤, 아프리카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 아이들은 언제나 그를 필요로 하고, 얼마 안되는 돈으로도 그곳에서는 큰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서는 모든 게 부족해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며칠을 굶었는지, 며칠을 못 씻었는지 모를 정도로 삐쩍 마르고 꾀죄죄한 모습의 모녀가 사막을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안고 있는 딸에게 계속 뽀뽀를 해주는 거예요. 아이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줄 순 없지만 뽀뽀는 마음대로 해줄 수 있다는 듯이 말이죠.”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는 그는 언젠가는 이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인터뷰 다음날, 고등학교 친구가 살고 있는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 12월 중순쯤 돌아올 예정이라는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면 또 틈나는 대로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갈 생각이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도울 힘이 내게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여전히 그들을 도울 힘이 내게 남아 있음을 나는 안다.’(‘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중에서).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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