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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화제의 주인공

3년 간격으로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제패한 박현우·영우 형제의 ‘스스로 학습법’

“다양한 독서 경험과 항상 공부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과학 영재로 자라게 했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9.10 15:27:00

세계 최고의 과학 영재들이 실력을 겨루는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형제가 3년 간격으로 금메달을 따내 화제다. 서울대 휴학 중인 박현우씨와 서울과학고 재학 중인 영우군이 그 주인공. 나란히 서울과학고에 진학하고, 국제화학올림피아드까지 제패한 두 형제와 그 부모를 만나 남다른 교육법을 들어봤다.
3년 간격으로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제패한 박현우·영우 형제의 ‘스스로 학습법’

지난 7월20일 독일 킬에서 열린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서울과학고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영우군(18·사진 오른쪽)이 68개국 2백33명과 경쟁해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3년 전, 같은 대회에서 영우군의 형 현우씨(21·사진 왼쪽)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과학 영재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형제가 잇따라 금메달을 수상한 건 이례적인 일. 8월 초 일요일 아침 형제가 사는 서울 봉천동의 아파트를 찾았다. 인터뷰 시간을 일요일 아침으로 잡은 건 영우군이 방학 중에도 혜화동 서울과학고 기숙사에서 생활해 주말에만 집에 오기 때문. 형 현우씨는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2학년을 마치고 지난해 11월부터 카투사로 군 복무 중이다.
영우군에게 “어떻게 그렇게 과학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집안의 영향”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LG화학 시스템영업부 부장으로 재직 중인 아버지 박찬갑씨(48)에게 시선을 돌리자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잘해서 과학고를 보냈는데 학교에서 받은 체계적인 학습을 통해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이라며 “집에서는 별 도움을 못 줬다”고 대답한다. 아버지 박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LG화학에서도 줄곧 영업파트에서 일해왔다고 한다.
“집안의 영향”이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기자에게 구암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어머니 이선기씨(46)는 “영우가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서울 노원구의 중평중학교를 졸업한 영우군은 과학고에 다니는 형 현우씨를 보며 과학고 진학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형이 주말에 집에 오면 학교 얘기를 많이 했어요.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성적이 전교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큼은 되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데 과학고에 들어가면 굳이 전교 1등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과학고 아이들이라고 해서 공부만 하는 건 아닐 테니까 즐겁게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또 과학을 중점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도 과학고를 가고 싶은 이유가 됐고요.”
영우군에게 과학고 진학의 꿈을 심어준 형 현우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출전한 서울교육대학교 주최 과학경시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과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자 현우가 과학 공부에 재미를 붙이더라고요. 중학교에 가서는 과학과 수학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모아 심화학습을 하는 과학반 활동을 하면서 수준 높은 문제들을 접했죠. 그러다 1학년 말부터 과학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어요.”

과학고 진학 위해 과외와 학원 적절히 활용
과학고는 일반 고등학교와 입시 전형이 다른 탓에 어머니 이선기씨는 과학고 입시에 맞는 공부법을 터득하도록 과외를 시키기도 했는데 현우씨가 과외 학습에 흥미를 보이지 않아 곧 그만뒀다고 한다. 평소 성격이 너무 온순해 부모로 하여금 ‘과연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공부에 있어서만은 강한 성취욕을 가졌다고 한다. 한번 풀기 시작한 문제는 이틀, 사흘씩 매달려서라도 결국 해결하고 마는 강한 근성이 있다고. 어머니 이선기씨는 “사흘 만에 한 문제를 풀고 나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혼자 힘으로 해냈다는 쾌감 덕분에 공부를 계속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3년 간격으로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제패한 박현우·영우 형제의 ‘스스로 학습법’

현우씨와 영우군은 둘 다 과학고 진학을 위해 과학경시대회를 적극 활용했다. 과학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특별전형에 응시할 수 있었던 것. 형제는 각종 매스컴에서 강북과 강남의 교육환경을 비교하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의기소침해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 이씨는 “강북에서는 상대적으로 내신이 유리하고, 많은 학생들이 과학경시대회보다 수학경시대회에 도전하니 과학을 열심히 하면 승산이 있다”며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그러나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다른 형제는 과학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공부법도 확연히 달랐다고 한다. 현우씨가 혼자서 집요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영우군은 과학경시대회 준비로 특화된 학원에 1년 반 이상 다니며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한 것. 중학교 때 줄곧 전교 5등 안에 들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경시대회 수준은 학교 교과과정의 난이도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 영우군은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과 공부하면 경쟁심도 생기고, 공부하는 노하우도 전수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영우군은 학원에서 돌아와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같은 문제집을 여러 번 반복해 본다는 그는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으면 일단 체크를 해놓고 넘어간 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 다시 도전했다고. 해답을 바로 보지 않는 이유는 알기 쉽게 설명해놓은 해설을 읽으면 그 순간 이해는 되지만 오래 기억에 남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2002년 과학고에 입학한 영우군은 실험과 토론을 통해 과학과 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학고의 교육과정이 적성에 잘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형 현우씨가 서울과학고 재학 시절 과학 분야에서 워낙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형의 그늘이 컸다고.
“저희 반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마다 ‘이 반에 박현우의 동생이 있다지?’ 하고 물어보셨어요. 저를 박영우로 보지 않고, 박현우의 동생으로 보는 게 좀 불만이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형이 없었다면 전 과학고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거예요(웃음).”
현우씨는 서울과학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1년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데 이어 ‘21세기를 이끌어갈 우수 인재’로 뽑혀 대통령상을 수상해 청와대 만찬에까지 초청받았다. 같은 해 말 서울시가 매년 각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 가운데 선발하는 서울학생상도 수상했다.
이렇다보니 형이 앞서 간 길을 따라가는 영우군의 부담은 적지 않았을 터. 어머니 이씨는 형의 그늘을 잘 벗어난 아들을 대견해 했다.
“영우에게는 늘 형만큼은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시기하지 않고 형을 존중하고 좋은 본보기로 삼았어요. 그랬더니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아요.”

성적 떨어져도 나무라지 않고, 어려서부터 독서 강조
3년 간격으로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제패한 박현우·영우 형제의 ‘스스로 학습법’

박현우·영우 형제는 온 가족이 ‘각자 자기 일 열심히 하기’를 실천한 것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현재 영우군 역시 형 못지않은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 과학고에 입학한 뒤 형을 따라 올림피아드 대회에 출전하고 싶었던 영우군은 대학 전공서적을 탐독하며 화학 공부에 열심이었다. 때문에 각종 과학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방학 때마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단을 선발·지도하는 대한화학회에서 주최하는 캠프에 참여해 대학교수들과 함께 올림피아드 대회를 준비해왔다.
그 와중에 지난해 9월엔 과학전람회에 출전해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친구 한 명과 팀을 이뤄 ‘주파수 분석을 통한 국악기의 신시사이저 구현’이라는 주제로 건반을 누르면 징, 북, 꽹과리 등 다양한 국악기 소리를 내는 독특한 신시사이저를 만들어 출전했는데 당당히 최고상을 거머쥔 것. 영우군은 “1년 반가량 전람회를 준비하면서 ‘지금 화학 공부를 해야 하는데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회의도 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고, 대학교수와 대학원생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하는 등 힘들게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형의 뒤를 이어 대통령상을 수상한 영우군은 지난 6월 서울학생상도 받았다.

3년 간격으로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제패한 박현우·영우 형제의 ‘스스로 학습법’

아버지 박찬갑씨는 두 아들에게 거대한 목표를 세우기 보다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좋아하는 일을 즐겨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쳐왔다고 한다.


“사실 저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내용을 알지도 못해요. 다른 엄마들처럼 발빠르게 입시 정보를 캐서 알려주지도 못하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성적을 거둬서 저를 가슴 벅차게 해준 적이 많아요.”
부모가 거듭 아들들을 위해 한 일이 없다고 말하자 영우군은 “부모님이 관심 없는 척하신 게 오히려 스스로 공부하도록 부추기는 작용을 했다”고 말했다.
“성적표를 가져오면 성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분명 속으로는 ‘쟤가 왜 성적이 떨어졌을까’ 하고 걱정이 많으셨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죠. 부모님의 그런 태도 덕분에 아무런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었고, 스스로 공부하는 법도 터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려서 엄마가 바이올린을 배우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너무 하기 싫어서 한번은 바이올린 선생님이 오는 시간에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날 이후로 바이올린을 배우지 않아도 됐죠. 제가 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키시지는 않거든요. 자꾸 하라고 강요하면 오히려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도 하기 싫어지잖아요.”
어머니 이씨는 아이들에게 먼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말한 적이 없지만 형제에게 독서만은 강조해왔다고 한다.
“큰아이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신문까지도, 뭐든 읽는 것은 다 좋아했어요. ‘삼국지’도 스무 번은 읽은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으니까 생각의 폭이 커지고 스스로 공부하는 힘도 키워준 것 같아요. 반면 영우는 어려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후회되는 모양이에요.”
영우군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책 읽으라’ 소리는 많이 들었다. 지금보다 시간이 많았던 어린 시절에 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했다.
또한 영우군은 “부모님이 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줘 좋은 본보기가 됐다”고 말했다.
3년 간격으로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제패한 박현우·영우 형제의 ‘스스로 학습법’

“아빠는 요즘 중국어를 공부하고 계세요. 일본어 공부는 이미 끝내셨고요. 엄마는 뭐든 열심히 하세요. 매일 밤 혼자 공부하시다 꾸벅꾸벅 조시면 아빠가 깨우시죠. 그러니 젊은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웃음).”
각자의 일에 열심이다보니 네 식구는 주말 외에는 마주 앉아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대신에 틈틈이 서로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서로의 생활을 들여다본다고.
어린이들이 과학을 재미있게 공부하는 법을 좀 알려달라고 부탁하니 영우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릴 때는 이것저것 하는 게 좋지 어려서부터 과학만 공부하면 되나요” 하고 반문한다. 중학교 때부터 과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자신은 오히려 다른 분야를 고루 접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중학교 때부터 클래식 기타 배워 스트레스 해소
영우군은 또 과학을 비롯한 공부를 잘하려면 높은 아이큐보다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과학 공부를 하면 사실 재미도 없고 잘 안돼요. 그냥 화학을 공부하다보니 화학이 좋아지고,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공식만 외웠던 것이나 모르고 지나쳤던 일상생활의 원리를 깨달을 때 흥미롭고 신기하죠. 그렇게 뭘 알아간다는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3년 간격으로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제패한 박현우·영우 형제의 ‘스스로 학습법’

과학만 잘하는 학생이고 싶지 않다는 영우군은 서울과학고 내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다. 영우군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인 화학과 관련된 이론화학반과 밴드부, 클래식기타반, 천주교 서클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밴드부에서 전자기타를 맡고 있다는 그는 클래식기타 솜씨도 수준급. 어머니의 권유로 중학교 때부터 배운 덕분이다. 어머니 이씨는 “악기 하나 정도를 잘 다루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기타를 배워볼 것을 권유했는데 둘 다 참 좋아했다”고 말했다.
영우군은 아직 “특별히 정한 꿈이 없다”고 한다. 국제올림피아드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과 어울리며 넓은 세상에 나가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일단 국내 대학 이공계열에 진학할 생각이라고.
“앞으로 더 공부해 나가면서 조금씩 꿈을 좁혀 나가려고 해요. 제가 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멋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에든 멋진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멋진 사람이 되려면 일단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력도 없이 멋만 부리면 우스운 꼴이 되니까요.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요.”
평소 두 아들에게 “거대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왔던 부모는 때로는 같은 길로, 때로는 다른 길로 나아가게 될 형제가 항상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여성동아 2004년 9월 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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