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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나이 들어 더 서러운 살빼기의 치열함

입력 2004.09.01 17:53:00

나이 들어 더 서러운 살빼기의 치열함

나이 들면서 서러운 것 중 하나가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사실이다. 물론 체질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살을 뺄 의지가 있다면 먹은 만큼 운동을 해야겠지만, 배불리 먹은 날은 오히려 몸이 더욱 노곤해져 그대로 소파에 쓰러지게 된다. 남들은 첨단 의료기술로 살도 빼고 주름도 편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방법이 맘에 내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어쨌든 건강을 위해서라도 올가을엔 살을 빼리라 거듭 다짐해본다.
나이 들어서 돈 많이 벌어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면 참 우아한데 엉뚱하게 몸매만 다이아몬드형으로 변해간다. 얼굴은 세로로 길어지고 배는 세상이 뭐가 그리 궁금한지 자꾸 밖으로만 나온다. 전에는 저녁을 배불리 먹어도 아침이면 배가 평평했는데 요즘은 아침에도 배가 소복하게 솟아 있다. 어쩜 이렇게 내 몸은 솔직할까.
하긴 세상에 공짜가 있나. 워낙 먹을 것만 보면 이성을 잃는 데다 맛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꼭 함께 가자고 하는 이들이 줄줄이고, ‘아침형 인간’ 바람이 불면서 조찬 약속까지 만들어 하루 세 끼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살이 안 찐다면 내가 사이보그 인조인간이 아니겠는가.

뱃살은 스카프로, 벌어진 원피스 가슴 부위는 책으로 가려야 하는 서글픔
살이 찌고 배가 나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우선 예쁜 옷을 입을 수가 없다. 최신 유행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 만져보면 종업원이 “어머, 어떡하죠? 작은 사이즈밖에 없는데…” 하며 ‘왜 주제 파악을 못하는 걸까’하는 시선으로 날 본다.
워낙 물살이기 때문에 살들을 적당히 쓸어 담아 예전에 입던 옷도 아직 입긴 하지만 미셸린 타이어처럼 울룩불룩 선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넉넉하고 헐렁한 옷을 입으면 더욱 뚱뚱해 보여 안간힘을 쓰며 몸에 붙는 옷을 입는다.
또 자꾸 몸이 의식된다. 제일 신경 쓰일 때는 다른 사람들과 식사할 때다. 평소에 꼿꼿한 자세로 허리를 펴고 우아하게 밥을 먹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밥 먹을 때는 허리를 최대한 세우고, 가능한 한 근처의 쿠션이나 방석, 재킷, 냅킨 등을 활용해 불러오는 윗배를 가린다. 나이 들수록 요긴한 것이 긴 스카프다. 적당히 배를 가려주기 때문이다. 그런 용도로 스카프를 한다고했더니 친구가 이랬다.
“얘, 배는 가려줄지 모르지만 옆구리에 삐져나온 살은 어떡하니? 너만 안 보이지 남들은 다 보이는데….”
얼마 전엔 예전에 즐겨 입던 원피스를 모처럼 꺼내 입었다. 좀 끼는 듯해도 튿어져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아, 그런데 그건 아무것도 안 먹고 똑바로 섰을 때의 모습이었다. 점심식사하면서 흘긋 옷매무새를 확인해보니 앞부분의 단추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단추와 단추 사이로 슬쩍 보이는 살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아주 젊잖고 고상한 분과 취재 약속이 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집에 돌아가 옷을 바꿔 입거나 옷가게에 가서 적당한 옷을 사 입고 싶었지만 약속시간이 촉박했다. 할 수 없이 책을 꺼내 가슴 부분을 가리고 정말 조신하고 엄격한 집안의 규수 같은 자세로 대화를 나눴다. 옷에 신경이 쓰여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뭔 말을 하는지 정신이 없었다. 헤어지면서 악수를 나눌 때도 책으로 가슴 부분을 꼭 가리고 있었다. 그랬더니 그분은 “방송에서 볼 때는 굉장히 터프해 보이던데 직접 만나 뵈니 굉장히 여성스러우시네요” 하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이 들어 더 서러운 살빼기의 치열함

그런 일이 있고 나면 꼭 결심을 한다.
“그래, 나도 살을 좀 빼자. 미모보다 건강을 생각해 저녁을 건너뛰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잠들기 전에 윗몸 일으키기 등을 하리라.”
그런데 이렇게 각오를 다져놓고도 건망증이 심해서인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저녁을 안 먹겠다고 해놓고 집에 들어와서 반찬 냄새만 맡아도 벌써 식탁에 앉아 있다. 또 든든히 저녁까지 먹으면 물에 젖은 솜처럼 노곤해져서 동네 한 바퀴는커녕 마루를 걸어 다니는 것도 귀찮아 소파에 드러눕는다. 윗몸 일으키기는 꿈속에서나 시도한다.
얼마 전에 유명 패션디자이너를 만났다. 50이 가까운 나이인데 뒤에서 보면 처녀처럼 날렵하다. 매일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고 골프도 하고 온갖 다이어트 방법을 꿰고 있다. 그뿐 아니라 성형수술도 짬짬이 받고 피부 관리도 철저히 한다. 그처럼 완벽한 자기 연출과 식욕절제를 하는 이들이 보기엔 내가 동물 같은가보다. 함께 저녁을 먹던 그분이 갑자기 “전화번호 좀 받아 적어요” 라고 했다. 무슨 취재거리를 주는 줄 알고 얼떨결에 수첩을 펼쳐 들었더니 다짜고짜 병원 이름과 전화번호들을 줄줄이 불렀다.
“ㅇ병원, 이 병원은 팔뚝이나 배, 허벅지 등 부위별로 체지방을 분해해주는 주사를 놔주고 체질에 따라 알맞게 살 빠지는 약도 지어줘요. 그 다음은 ㅅ한의원. 여기는 몸의 독소 성분을 제거해주죠. 그리고 ㄹ피부과. 보톡스보다 경미한 메조테라피란 걸 잘하는 곳이야. 요 몇 달 사이에 참 살이 많이 쪘네? 내가 보기에도 부담스러워. 살 5kg만 빼고, 얼굴에 보톡스 좀 맞아 팽팽하게 만들면 다섯 살은 젊어 보일 거예요. 뭐 힘들여 고생하는 것도 아니고, 약 먹고 주사 몇 대만 맞으면 되는 거잖아. 더 나이 들어 하면 발악하는 것 같을 테니 이번 기회에 이미지를 확 바꿔봐요, 응?”
정말 고마운 충고이고 조언이다. 나 역시 슈퍼모델 같은 몸매로 1주일만 살면 인생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은 수술이나 약의 도움을 받아 새 인생을 찾고 싶지는 않다. 신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솔직히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걱정되는 나의 새가슴 때문이다. 보톡스 주사를 잘못 맞아 온 눈썹이 포청천처럼 올라간 이들도 봤고, 살을 뺐다 쪘다를 반복하다 꽈리처럼 자글자글해진 친구도 있다.
아니 미모보다 건강 때문에라도 살은 빼야 한다. 배가 나오니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다. 아, 내일부터는 정말 조금만 먹어야지. 아니 군것질만이라도 끊어야지. 그래서 올 가을엔 몸에 꼭 붙는 니트 원피스를 입어보리라. 그래도 오늘은 감자를 삶아놨으니 버터랑 설탕에 버무려 먹자. 이거 버리면 벌 받을 테니까.


여성동아 2004년 9월 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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