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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난민촌, 전쟁중인 이라크 등에서 자원봉사한 서울대생 설지인의 특별한 체험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4.07.12 10:56:00

해마다 방학 때면 필리핀, 태국, 네팔, 이라크 등 제3세계에서 자원봉사를 해온 당찬 여대생 설지인. 전염병이 만연하고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그곳에도 사랑과 희망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그가 들려주는 가슴 따뜻한 이웃 사랑.
필리핀 난민촌, 전쟁중인 이라크 등에서 자원봉사한 서울대생 설지인의 특별한 체험

방학을 이용해 필리핀, 일본, 태국, 네팔 등에서 봉사활동을 한 데 이어 지난해 6월엔 전쟁의 포성이 멈추지 않은 이라크까지 다녀온 ‘겁 없는’ 여대생이 있다. 최근 제3세계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책으로 펴낸 서울대 외교학과 4학년 설지인씨(22)가 그 주인공.
제3세계 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외교학과에 진학한 그는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필리핀 파야타스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파야타스는 마닐라에 있는 건물 7층 높이의 거대한 쓰레기 산인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라고 한다.
“그들의 모습은 차마 인간의 삶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어요. 쓰레기 더미 위에 판잣집을 지어놓은 채 쓰레기를 뒤져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질식하여 죽기까지 하는 메탄가스와 악취에 이미 내성이 생겼고, 그 쓰레기 더미 속에 자식을 묻으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거대한 쓰레기 산은 그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그는 필리핀 땅을 밟기 전까지 빈민이나 난민들을 위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작았고, 일생을 그 일에 헌신한다고 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든 것에 회의가 생기던 대학 3학년 때, 그는 이라크에 가면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운좋게 이라크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라크 난민들을 위한 의약품 지원 과정을 모니터링 하기 위해 이라크로 떠나는 사회봉사단체 ‘지구촌나눔운동’ 실무팀에 합류한 것.
이라크의 첫인상은 적막함과 침울함이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이라크는 아직도 국지전이 계속되고 있는 전쟁터였다. 길가 곳곳에 철조망을 세워둔 채 지나가는 차를 일일이 수색하는 미군의 모습, 탱크들이 웅웅거리며 지나가는 바그다드 거리, 시커멓게 그을리거나 붕괴된 건물들, 계속되는 무장 게릴라들과 미군 간의 충돌과 자신의 신변은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무정부 상태의 치안 부재…. 그는 이 땅이 전쟁중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게다가 바그다드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한국인 의사 피살 사건’은 그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외에도 전쟁과 무관한 또 다른 위험들이 깔려 있었다. 오염된 물을 마시면 생기는 수인성 전염병이 만연했고,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일사병에 걸릴 정도로 섭씨 50도를 웃도는 더위가 계속되었다.
“나시리야에서 서희부대와 함께 이라크 민간인 집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때 마신 차 때문에 탈이 나서 내내 몸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이라크에서는 워낙 긴장해 있었기 때문에 아픈 줄도 모르다가 요르단에 나와 긴장이 풀리니까 그제야 아프기 시작했어요. 설사와 복통, 구토가 심했고 열이 막 났어요. 의사가 이라크에서 돌고 있는 수인성 전염병인 것 같다는 거예요.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는 이라크에 간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폐허가 된 그곳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라크 나시리야에서 만난 꼬마 남매가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폭염에 달구어져 델 것같이 뜨거운 땅바닥을 그냥 맨발로 걸어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자아이는 우리를 보더니 자신도 신발이 없으면서 남동생이 신을 신발이 필요하다며 먼저 챙기는 거예요. 그 아이가 어찌나 예뻐 보였던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울컥’ 하고 뭔가 올라왔어요.”
그는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답고 예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또 이라크 서희부대 단장을 경호하던 특전사에게서 들은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루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이라크 소녀가 다가와서 길에 피어 있는 꽃을 꺾어 한아름 안겨주고 갔대요. 어른이 된 후 단 한번도 꽃을 받은 적이 없었다며 그 이야기를 하는 특전사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죠. 그때 그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필리핀 난민촌, 전쟁중인 이라크 등에서 자원봉사한 서울대생 설지인의 특별한 체험

그는 그런 사랑과 기쁨을 간직한 사람이 있는 한 결코 세상은 전쟁 같은 어둠에 무릎 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쟁의 광풍이 지나간 이라크에서 그는 그렇게 들꽃처럼 살아 숨쉬는, 사람이란 희망을 보았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에 그는 컬럼비아대학교 국제관계학 대학원에서 분쟁지역의 아동 인권에 대한 계절학기 수업을 듣기 위해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모든 것이 부족한 땅에서 모든 것이 풍족한 사회로 가니까 그 괴리감에 한동안 적응이 안 되었다고 한다. 집집마다 시간에 맞춰 잔디밭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프링클러를 보면서 제대로 된 식수원이 없어 하수를 다시 상수로 이용하던 이라크인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모든 게 풍족한 미국 사람들이 너무 밉더라고요. 지구 한쪽에서는 먹을 게 없어 5초마다 3명이 굶어 죽는데…. 세상이 참 불공평하고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졸업 후 난민이나 아동 관련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그는 굳이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로 경계를 짓고 우리나라 사람을 먼저 도와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서로 연결이 된다고 해요. 신기하죠? 자기가 이름이나 얼굴은커녕 그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는 사람과 여섯 단계만 거치면 연결된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라 해도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닌 거예요.”
그는 지금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준비중이다. 공부가 끝나면 난민 인권이나 아동 인권에 관련된 국제기구에 들어가 일하고 싶다고 한다.
배고픔을 잊어버리기 위해 병 속에 본드를 담아 흡입하는 아이들,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소녀들, 생존을 위해 총을 메고 칼을 들어야 하는 아이들, 굶주림에 지쳐 누워 있다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어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
설씨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오늘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결코 확실한 해답은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묵묵히 자신의 길이라 믿는 그 길을 걸어갈 뿐이라고 한다.
“희망과 꿈으로 제 인생을 빚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희망과 꿈을 전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제가 걸어간 길에 항상 희망이라는 발자국을 남길 수 있도록 열심히 살 거예요.”

여성동아 2004년 7월 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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