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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사랑을 나눠요

위탁모로 사춘기 소년 보살피는 주부 서송자

“말썽꾸러기 태호와 울고 웃으며 인생의 보람 찾아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안소희 ■ 사진·정경진

입력 2004.04.02 11:17:00

소문난 말썽꾼이었던 태호를 맡아 기르고 있는 위탁엄마 서송자씨(44).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고 세상을 원망했던 태호였지만 지금 그의 휴대전화에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정위탁으로 인연을 맺은 태호와 함께 울고 웃으며 인생의 보람을 찾는다는 서씨의 새롭게 쓰는 가족 일기.
위탁모로 사춘기 소년 보살피는 주부 서송자

오늘은 우리 가족에게 정말 특별한 날이다. 태호(17)의 고등학교 입학식이 있기 때문이다. 교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태호. 몇달 사이 몸도 마음도 몰라보게 훌쩍 자랐다. 의젓한 모습이 대견해 몇번을 돌려 세워 먼지를 털고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태호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싫지 않은지 연방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에게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입학식을 한 적이 없었던 태호에겐 오늘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게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꽃다발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점심으로 자장면을 사먹는 의례적인 입학식이 태호에겐 그저 남 얘기처럼 멀게 느껴졌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쓸쓸한 입학식이 얼마나 서러웠을까…. 가슴 한쪽이 다시 아파온다.
우리 가족이 태호와 인연을 맺은 것은 6개월 전, 한국복지재단을 통해 가정위탁으로 태호를 맡으면서부터였다. 가정위탁이란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를 일시적으로 맡아 기르는 것으로, 지난해 3월 우연히 생활정보지에서 ‘한국복지재단 위탁부모교육’ 모집 광고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평소 입양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 첫걸음을 가정위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마침 막내아들이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 허전했던 터라 서둘러 신청했다.
가정위탁은 입양보다 심리적 부담은 덜하지만 아이를 위탁하는 기간만큼은 친부모처럼 돌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위탁한 아이의 모든 양육과정을 가정위탁지원센터와 상의해야 한다는 것 등을 교육받았다. 나를 비롯해 10쌍의 부부가 정식으로 교육을 받아 1기 수료생이 되었다. 수료증을 받던 날, 어떤 아이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묻는 설문지를 받았다. 나는 설문지를 작성하지 않았다. 그저 활발하고 남자다운 아들을 키우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만난 아이가 바로 태호다. “조금 특별한 아이예요” 하던 사회복지사의 말처럼 별난 구석이 많은 아이였다. 보통, 가정위탁을 신청하는 아동은 취학 전의 어린아이들이 많은데 태호는 열여섯살, 사춘기였던 것이다. 더구나 태호는 소문난 말썽꾸러기여서 선뜻 위탁부모를 자원하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위탁지원센터에서는 위탁이 성사되지 않으면 사회복지시설로 보내는데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뚤어질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태호를 처음 만나던 날, 태호의 반항기 가득한 눈빛과 말투에 놀라 쉽게 결정을 할 수 없었다. ‘마음이 굳게 닫혀있는 이 아이를 내가 잘 돌볼 수 있을까’ 망설여졌다. 망설이는 내게 사회복지사가 태호의 성장과정을 들려주었다.
태호는 네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중독)으로 매일 술에 취해 있었고 어린 태호를 돌보기는커녕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친척집에서 살았는데 말썽을 피우는 데다 사정도 여의치 않아 위탁가정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가슴아픈 태호의 사연을 듣고 나는 마음이 아파 며칠 잠을 설쳤다. 그 며칠동안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던 태호의 눈빛이 이상하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창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지독한 외로움을 알아버린 태호.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가져보지 못한 태호, ‘가족’과 함께 꿈도 추억도 잃어버린 태호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태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위탁모로 사춘기 소년 보살피는 주부 서송자

서씨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태호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태호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학교 결석을 밥먹듯 하고 종일 PC방에서 컴퓨터게임에 매달려 있곤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질로 엉망이 된 채 들어오기도 했다. 딸아이 신애(23)와 아들 성경이(22)를 키우며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다. 야단도 쳐보았지만 그럴수록 더 엇나가기만 했다. 태호가 계속 마음을 잡지 못하자 포기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태호를 앉혀놓고 그런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태호야, 여기서 그만둘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나는 너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너는 하늘이 내게 주신 사랑하는 아들이다. 네가 어떤 일을 하든 내가 책임질 거야. 엄마니까.”
이 말은 태호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한 약속이었다. 그러자 한참만에 태호가 말했다. “잘못했습니다.” 태호에게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그 후로 태호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태호가 “오늘 아이들이 저를 때렸어요. 그런데 전 손 안 댔어요”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들의 주먹세례를 이를 악물고 참았을 태호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태호는 학교도 착실히 다녔다.
졸업식날 태호는 졸업장을 손에 들고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졸업을 했네. 난 중학교도 졸업 못 할 줄 알았는데” 하며 졸업장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태호 할머니도 “세상에, 세상에”를 연발하셨다.
이제 또다른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내 아들 태호야, 조금씩 변해가는 네 모습이 엄마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어제 성경이형 면회를 다녀오면서 너는 대학에 가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살짝 내비쳤지? 나에게도 작은 꿈이 있단다. 그건 어제처럼 온가족이 통닭 한마리 사들고 군입대한 태호 면회를 가는 거야. 사랑하는 우리 아들 태호야, 너는 나의 작은 꿈이란다. 고등학교 입학을 축하해!


여성동아 2004년 4월 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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