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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새혼일기

이혼자를 위한 커뮤니티 운영자와 회원으로 만나 결혼한 남기주·권명희 부부

“결혼으로 네배의 짐을 지게 됐지만 서로 맞춰가는 요즘 참 행복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2.03 14:42:00

이혼이나 사별의 아픔을 겪고 솔로가 된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쏠로닷컴’을 만들어 화제가 됐던 남기주씨가 11년 솔로 생활을 청산했다. 자신이 만든 사이트 회원이던 권명희씨와 새살림을 차린 남기주씨의 알콩달콩 ‘새혼일기.’
이혼자를 위한 커뮤니티 운영자와 회원으로 만나 결혼한 남기주·권명희 부부

결혼한 두쌍 중 한쌍이 이혼하는 시대다. 몇해 전,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가 된 ‘솔로’들이 서로 상처를 보듬고, 당당하게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돕는 인터넷 사이트 ‘쏠로닷컴’을 만들어 화제가 됐던 남기주씨(38).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추고 싶은 상처로만 여겨졌던 ‘이혼’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 다양한 솔로들의 문화를 만들며 ‘솔로 만세’를 외쳤던 그가 솔로생활을 청산했다. 2001년부터 쏠로닷컴 회원으로 활동하던 권명희씨(34)와 ‘새혼’한 것. 두 사람은 비단 자신들만이 아니라 한번의 실패를 겪은 많은 솔로들의 결합이 ‘재혼’이 아닌 ‘새혼’으로 불리기를 바란다며 이 표현을 사용했다.
쏠로닷컴이 솔로들끼리의 결합을 지양했던 건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청량한 솔로들의 물을 흐려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만큼 두 사람의 결합이 다른 솔로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부인 권씨는 놀랍게도 쏠로닷컴 운영자이기에 마음이 끌리고, 확신이 섰다고 털어놓는다.
“쏠로닷컴에 처음 가입한 사람들은 속내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짜는 것부터 시작하거든요. 그러면 먼저 가입한 선배 회원들이나 운영진이 포용력 있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도 해줘요. 지금은 물론 ‘속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만약 재혼을 한다면 그 상대는 쏠로닷컴 운영진이 1순위’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2001년, 쏠로닷컴에 가입한 권씨는 같은 해 부산에서 열린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남씨를 보고 ‘이 사람이다’하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기를 내 게시판에 정식으로 교제하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때문에 사이트 내에서는 ‘만인의 연인’인 운영자를 욕심낸다며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권씨를 마음에 두고 있던 남씨에게는 오히려 용기를 주는 한줄기 빛이 됐다.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서로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사실 더 마음이 있었어요. 눈에 뭐가 씐다고 하잖아요. 다시는 안 속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 또 속더라고요(웃음).”
남씨는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권씨의 시원시원한 성격에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쏠로닷컴 운영자가 회원과 교제 한다는 사실을 다른 회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내심 걱정이 되는데다 수줍음 많은 성격 탓에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차에 게시판에 올라온 권씨의 고백을 보고 마음을 연 것.

한번의 실패 겪은 만큼 더 신중하기 위해 부모의 허락받고 교제 시작
서로 마음을 확인했지만 한번의 실패를 겪은 만큼 마음 이 끌리는 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었던 두 사람은 권씨의 부모에게 교제 허락을 구했다. 그러나 권씨의 어머니는 두 사람의 교제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권씨의 아들 재원이(10)가 새식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한 것.
“저희 부모님은 제가 이혼할 당시에도 아이를 데려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만약 아이를 키울 거면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제가 새사람을 만나겠다고 하니까 반대하셨던 거예요. 어린 손자가 성이 다른 가족을 만나 애물단지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요.”

이혼자를 위한 커뮤니티 운영자와 회원으로 만나 결혼한 남기주·권명희 부부

결혼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둘이서 한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두 사람.


이러한 염려를 씻어내고 교제와 함께 결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남씨의 됨됨이가 권씨의 부모에게 믿음을 줬기 때문이다. 남씨는 권씨의 부모를 만나 재원이를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재원이는 첫 만남부터 남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권씨가 재원이에게 남씨를 소개하며 “엄마랑 사귀는 아저씨야” 하고 말했을 때 재원이는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라고 부르면 안돼?”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어린 재원이가 그동안 얼마나 아빠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는가를 확인했다. 교제를 허락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던 권씨의 부모는 남씨가 부산에 내려왔을 때 재원이가 그를 따르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남씨는 요즘 재원이의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 운동회며 학예회 같은 행사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재원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 한 구석이 쓰리다고 털어놓는다. 남씨가 스무살이 되던 해 낳아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 택현이(19) 때문이다.
“결혼 6년 만에 이혼을 하고 한동안 방황을 하는 바람에 사실 택현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어요.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한다고 하면 아내만 보내곤 했는데 작은아들의 아빠 노릇은 제대로 해보겠다며 운동회에도 가고, 학예회에도 가다 보니 ‘택현이에겐 왜 그렇게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커요. 이미 아이가 다 커버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죠.”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택현이는 남씨가 재혼할 뜻을 처음 밝혔을 때 “밥은 잘 해주시겠죠?” 하며 아빠가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을 조용히 축하해줬다고 한다. 남씨는 10년 넘게 엄마 없이 지내온 택현이가 새 가족들과 아무런 마찰 없이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고맙기만 하다고. 그러고 보면 권씨는 다 큰 아들을 거저 얻은 셈이다. 권씨는 ‘새혼’ 후 처음 맞은 생일날, 택현이가 생일 축하 이메일을 띄우고, 남편이 손수 미역국을 끓여줬다며 자랑했다.
“택현이하고는 좋아하는 책이나 먹는 것 등 여러 면에서 취향이 비슷해요. 그리고 저랑 남편이 간혹 다투면 ‘아버지가 좀 참으세요’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시집을 잘 왔구나’ 하고 생각하죠.”
이에 남씨는 “이제 택현이는 제편이 아니에요” 하며 웃는다.

시행착오 겪은 체험 토대로 솔로 청산 도울 계획
두 사람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교제를 한 끝에 2002년 가을, 가까운 친지를 모시고 결혼식을 올린 뒤 한집에 살고 있다. 그러나 ‘새혼’을 한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권씨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밑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란 재원이가 시어머니께 말썽이나 부리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면서, 큰아들 택현이와 시어머니께 어떻게 하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연구중이다. 남씨는 재원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어떻게 반응해야 제대로 아빠 노릇을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재원이가 처음 만나 ‘아빠’라고 했을 때 분명 기분이 좋았거든요. 그 뒤로도 잘하려고 노력하고요. 그런데 재원이가 뭔가를 잘못했을 때 참 난감해요. 친아빠처럼 하려고 하지만 난 분명 새아빠잖아요. 내가 뭐라 꾸짖으면 말은 안해도 아내가 속상해할 것 같아서요….”
남씨의 고민에 권씨는 “계부이건 계모이건 자기 스타일대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노력하면 된다”며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는다.



이혼자를 위한 커뮤니티 운영자와 회원으로 만나 결혼한 남기주·권명희 부부

서로 얘기를 많이 들어주며 맞춰가고 있다는 두 사람은 ‘새혼가정’을 보는 사회의 삐딱한 시선이 하루 빨리 달라지기를 기대했다.


또한 함께 살다 보면 서로 불만이나 요구사항이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 첫 만남이 아닌 경우 헤어진 ‘전임자’가 가졌던 장점들을 새로운 상대에게 요구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두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남씨는 “서로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기분 나빠하기보다 ‘네가 그런 걸 내게 요구하는 건 너의 우매함 때문이야’ 하며 웃어 넘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내를 향해 “우리는 앞으로 30년을 더 살아야 하니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며 웃는다.
“대개의 경우 혼자 짊어진 짐을 덜려고 결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우리는 결혼으로 네배의 짐을 지게 됐어요. 우린 함께 산 지 이제 겨우 1년 됐을 뿐이에요. 서로 맞춰가고 있는 중이죠. 그래서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혼자 살던 때의 버릇이 남아 있어서 서로 부딪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죽을래 살래’하며 아등바등하거나 섣불리 ‘따로 살자’는 말을 하지는 않아요. 혼자서 11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잘 맞춰가고 있는 것만도 놀라운 적응력이죠(웃음). 지금 참고 노력하면 앞으로 20∼30년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요즘 참 행복해요.”
그러나 두 사람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 한번 실패한 데서 오는 주위의 우려, 성이 다른 아버지와 아들…. 온 가족이 손잡고 교회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남씨지만 재원이를 교회 신자로 등록시키며 가족사항을 기재할 때는 부모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 못하고 슬쩍 부인에게 미뤘다. 아버지와 아들이 성이 다르다는 사실이 행여 어린 아들에게 상처를 줄까봐서다.
“우선 내 스스로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해야겠죠. 하지만 앞으로는 관습이나 법 자체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가족의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두 사람은 자신들이 겪은 시행착오 체험을 토대로 결혼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최근 장충동에 오픈한 ‘웨딩카페’와 인터넷 사이트 매리야닷넷(www.marrya.net)을 통해 만남을 주선하고, 결혼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 두 사람은 초혼자는 물론 재혼자와 장애인들의 솔로 청산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여성동아 2004년 2월 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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