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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교재 펴낸 개그우먼 정선희가 일러주는 외국어 공부 비법

“ 가족들이 시끄럽다고 짜증낼 정도로 집에서 1인2역하며 일본어 연습했어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 장소협찬·일산 풍동 봉주르

입력 2004.01.09 11:37:00

개그우먼 정선희가 최근 일본어 교재를 펴내 화제다. 그는 일본어 전공자도 아니고, 일본 어학연수 경험도 없지만 연예계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일본어 도사’로 통했다.
본업인 개그를 잠시 중단하고, MC와 DJ로 활약중인 재주꾼 정선희를 만났다.
일본어 교재 펴낸 개그우먼 정선희가 일러주는 외국어 공부 비법

톡톡 튀는 말투, 자지러지는 웃음, 재치 있는 입담으로 ‘딱따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개그우먼 정선희(32). MBC ‘맛있는 TV’, SBS ‘TV 동물농장’ 등에서 MC로 맹활약중인 그는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DJ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11월, 자신의 이름을 건 일본어 교재, ‘정선희의 톡톡 튀는 생활 일본어’를 펴냈다. 이 책은 ‘나의 가족·나의 하루’ ‘대중가요·대중문화’ ‘전화로 수다떨기’ ‘의성어·의태어’ 등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회화와 정선희의 생생한 목소리를 녹음한 강의 테이프로 구성돼 있다. 그는 각장의 첫 페이지에는 새로 배울 내용을 요약해 보여주는 일러스트를 직접 그려 넣기도 했다.
“제가 일본어 교재를 냈다고 하니까 ‘정말 당신이 썼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겐 제 강의 테이프를 들어보라고 권하죠. 이름만 빌려준 사람이 직접 강의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제가 강의하는 걸 들어보시면 그런 의심은 금세 사라질 거예요.”
일본어 전공자도 아니고,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한 적도 없는 그가 이처럼 자신감을 갖는 건 그의 일본어 공부 경력이 어느덧 10년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는 한 케이블 방송에서 미즈노 교수와 일본어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다.

동료 연예인들의 칭찬에 일본어 공부에 더욱 몰두
정선희는 어려서부터 어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때 영어경시대회에 출전해 입상한 경력이 있고, 한때 동시통역사를 꿈꾸기도 했던 것. 처음 일본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건 일본인 이모부와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가 고등학교 때 이모가 일본인과 결혼하셨어요. 그 뒤로 이모댁에 가면 친척끼리 앉아 있으면서 말 한마디 못하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학(동덕여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뒤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죠.”
시중에 나와 있는 일본어 교재와 학원 강의를 통해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8개월쯤 됐을 무렵 그는 SBS 공채 시험에 합격하면서 개그맨이 됐다. 그후 불규칙한 스케줄 때문에 일본어 공부는 중단했지만 어학에 대한 욕심만은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이 연예인으로 활동하며 미숙한 일본어 실력이나마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그는 다시 일본어 교재를 집어들었다.
“한번은 동료 개그맨들과 사이판에 관광을 갔는데 일본인 관광객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더듬더듬 일본어로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일본어를 잘한다는 소문이 쫙 퍼진 거예요. 그러니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실력이 들통나면 안되니까 다시 학원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어요(웃음).”

일본어 교재 펴낸 개그우먼 정선희가 일러주는 외국어 공부 비법

일본인 이모부와 대화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웠다는 정선희는 자신의 노하우를 담아 일본어 교재를 펴냈다.


이소라 엄정화 최화정 이영자 홍진경 등 절친한 여자연예인들이 그의 일본어 실력을 부러워하는 것도 일본어 공부에 열중하는 데 한몫했다. 그는 요즘도 3년전 미즈노 교수가 소개해준 한국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생으로부터 일주일에 두번씩 개인교습을 받고 있다.
“화정 언니나 정화 언니는 제가 일본어로 말할 때 섹시하다면서 일본어 문장을 하나 가르쳐주면 자신들의 여성성을 극대화해서 따라하곤 해요(웃음). 제가 하는 일본어가 ‘매력 있다’고 인정받으면 기분 좋죠.”
정선희는 일본어 실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글래디에이터’ 같은 ‘당당함’이라고 말한다. 단어 다섯개를 가지고도 외국에서 열흘을 잘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50개를 알면서도 사흘도 못 버티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이만큼밖에 모른다는 걸 들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외국어 실력을 쌓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자존심을 버리고, ‘나는 잘한다’ 하는 자기 최면을 걸고 자꾸 말해야 표현이 입에 붙는다”고 충고했다.
그렇다고 낯선 일본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눌 만큼 그의 성격이 외향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대신 새로 익힌 표현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활용하고, 연기하듯 혼잣말을 한다.
“가족들이 시끄럽다고 짜증을 낼 정도로 집에서 일본어로 얘기를 많이 해요. 그리고 A B로 되어 있는 회화를 연기하듯 1인2역으로 연습하죠. 의성어나 의태어를 외울 때는 관련 형용사를 함께 공부하고요.”
일본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은 그에게 아주 훌륭한 어학교재가 된다. 일단 재미있기 때문에 몰입하기 쉽고, 딱딱한 회화가 아니라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 그는 요즘도 틈틈이 일본 드라마를 자막 없이 여러 번 반복해 보고, 들으며 일본어 실력을 가다듬는다고 한다.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다른 나라말을 가르치는 교재를 펴내기는 쉽지 않은 일. 2년 전쯤, 막연히 자신이 아는 걸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무렵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표현들 중에 실생활에서는 쓰이지 않는 것들도 많아요. 그래서 저처럼 일본어가 무작정 좋아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그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어 책을 내기로 결심했어요. 결국은 책을 쓰기 위해 나름대로 일본어 습득 노하우를 짜내면서 제 일본어 실력도 한 걸음 크게 내딛게 됐죠.”

“베스트셀러 아닌 스테디셀러 인생 살고 싶어요”
그는 방송과 집필,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느라 한동안 힘들었지만 돌아보니 자신의 일본어 실력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기억 저편에서 가물가물하던 것들을 끄집어내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누군가에게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된다고.
포기할 건 포기할 줄 아는 판단력이 생긴 것도 큰 소득이라고 한다. 첫 작품인 만큼 처음엔 의욕이 앞서 이것저것 다 담을 욕심에 혼란스럽기만 했는데 결국 욕심을 버리고 나니 담백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 이런 깨달음은 그의 삶에도 적용된다.

일본어 교재 펴낸 개그우먼 정선희가 일러주는 외국어 공부 비법

“어느덧 데뷔한 지 11년이나 됐어요. 인생을 중간점검 해보니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고, 적정선에서 여유를 갖고 힘을 빼면 장기전에 유리하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힘 조절하면서 건방지지 않으면서도 여유 있어 보이는, 책으로 말하면 베스트셀러가 아닌 스테디셀러 인생을 살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정선희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동물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더없이 행복하면서도 한편 코미디언으로서의 본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맡을 수 있다는 건 복이죠. 하지만 제 몸엔 코미디언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2년전 ‘코미디하우스’에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의 기대치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사이에서 한계를 느껴 잠시 물러났는데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날 문득 내가 변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건 결코 제가 생각한 ‘품위’가 아니거든요.”
남을 웃기는 데 매력을 느껴 개그맨이 된 자신이 어느 순간 웃기는 직업을 우습게 보고 품위만 고집하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인간형이 될까 겁이 난다는 것이다.
최근 이경실과 조혜련 등 MC와 패널로 활약하던 선배 개그우먼들이 속속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돌아오고 있는 건 그에게 반가운 일이다. 정선희는 “희극이든 비극이든 연기에 대한 꿈이 있다”며 “연극무대에서 꿈을 실현하려면 나름대로 내공을 쌓아야 하고, 연기력을 검증받을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해 다시 연기를 재개할 마음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의 나이도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겼다. 더욱이 그는 요즘 남동생 부부가 낳은 조카의 재롱을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그에게 “결혼 계획은 없냐”고 물으니 “건축 자재가 있어야 집을 짓죠” 하며 웃는다.
“언니들을 제치고 먼저 시집을 간 진경이는 나름대로 책임감을 느끼는지 ‘눈을 낮추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자주 나가라’고 하는데 전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런 만남은 허탈하기만 하거든요. 그래서 ‘사자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다’고 했어요(웃음).”
순간 요란하게 반짝하기보다, 지금처럼 좋아하는 일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며 오래오래 기억되고 싶다는 정선희. 그는 일도 결혼도 조바심 내지 않겠다고 한다.

여성동아 2004년 1월 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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