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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 어머니 시신과 함께 생활한 중학생 송군 사연

■ 글·최규정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4.01.05 13:45:00

최근 한 중학생이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어머니의 시신과 한집에서 살아온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몰라 비밀에 붙인 것. 이제 선생님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송군의 근황과 그간 사연을 취재했다.
6개월 동안 어머니 시신과 함께 생활한 중학생 송군 사연

경기도 이천에 사는 중학교 3학년생 송군(15)의 어머니 심씨(42)가 세상을 떠난 것은 지난 5월28일. 송군은 경찰조사에서 “당뇨병 합병증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처음엔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있다가 그 상태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시신이 집에 있는 걸 알리지 않은 사실을 말하는 것 자체가 무서워 숨기게 됐다”고 진술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는 6월9일부터는 아예 학교(설봉중학교)마저 가지 않은 채 혼자 집에서 만화책을 보거나 뒷산을 오르며 시간을 보냈다. 11월19일 담임교사 오모씨(42)가 수소문 끝에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송군은 “어머니가 가출했다”고 말했다. 그후 딱한 처지의 그를 돕기 위해 오교사를 비롯한 선생님들이 집으로 쌀과 담요 등을 나르면서도 안방은 그저 지저분해서 닫혀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어머니 사망 사실이 밝혀진 것은 12월4일 저녁. 송군의 겨우살이를 위해 보일러를 수리해주려고 찾아갔던 정모 교사가 송군이 집을 비운 사이 잠겨져 있던 안방 문을 열면서다.
사건 초기 일부 언론에서는 ‘학교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고 보도하면서 송군이 다니던 학교 교사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한 네티즌은 ‘송군이 촌지를 잘 주는 집 학생이었다면 그렇게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이에 대해 설봉중학교 이덕남 교감(50)은 안타까운 심경을 피력했다.
“난데없는 비판에 담임교사는 심한 충격을 받고 사표를 내려고 했어요. 다행히 학생들이 ‘선생님이 얼마나 송군을 위해 노력했는지 우리가 안다’며 만류해 마음을 다잡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교감에 따르면 오교사는 송군이 처음 결석을 했을 때부터 찾아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송군이 이사를 하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사는 곳을 알 길이 없었다는 것. 오교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송군을 보았다는 말만 들리면 그 지역 인근 구멍가게와 만화가게를 샅샅이 뒤지며 찾아다녔다. 심지어 송군 어머니가 입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역 병원을 뒤졌을 정도. 그런 노력 끝에 다섯달 만에 송군을 찾아낸 것이다.
당시 송군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도 문을 열지 않았고, 친구가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도 도망갈 정도로 사람들을 피했다. 심지어 사회복지사가 찾아와도 기척을 내지 않아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마저 받지 못했고 나중에는 전기까지 끊긴 채 생활했다. 어머니가 사망한 후 어찌할 바를 몰랐던 송군은 막연한 두려움에 점점 더 폐쇄적이 되어갔던 것이다.
송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시 그 일을 꺼내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이교감의 만류로 잠깐 얼굴만 볼 수 있었다. 170cm가 훌쩍 넘는 키에 안경을 낀 송군은 지난 6개월간의 마음고생을 조금씩 지워가는 듯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건 이후 줄곧 가까이에서 송군을 보살펴온 이교감은 “처음엔 송군의 얼굴에서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제는 웃기도 하고 얼굴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몰라보게 환해졌다”며 그동안의 변화를 설명했다.

6개월 동안 어머니 시신과 함께 생활한 중학생 송군 사연

송군이 보내온 편지


12월8일에는 선생님들과 후원자들이 성금을 모아 학교 앞에 조그만 원룸을 계약했다. 서울에 사는 이모가 함께 살 것을 권했지만, 송군이 이천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다며 혼자 지내겠다는 뜻을 비쳤기 때문이다.
사실 송군은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한 아이였다. 부모가 동네에서 다방을 운영하느라 밤늦은 시간까지 집을 비워 거의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녀 기껏해야 한달에 서너번 집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송군은 지금까지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는 물음에 ‘없었다’고 말할 정도예요. 그렇게 불우한 시절을 보냈지만 학교생활은 성실하게 잘했어요. 성적도 중간 이상이고요.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조퇴를 하기 전까지는 결석 한번 한 적이 없는 아이였어요.”

교사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잃었던 웃음 되찾아
외로움에 익숙한 송군이지만 요즘 선생님들을 통해서 새로이 내리사랑을 느끼고 있다. 특히 자신을 찾느라고 마음고생이 심했던 담임교사에게는 “끝까지 저를 찾아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학급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
송군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학교와 동사무소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후원자들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려왔다. 멀리 강릉에서 찾아와 마음을 전한 부부도 있고 대전에서 올라와 따뜻한 겨울 코트를 전해준 주부도 있었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정교사 역시 틈틈이 장을 봐 저녁을 차려주는 등 엄마노릇을 자청하고 나섰다. 이교감도 종종 송군과 함께 자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정을 나누고 있다.
6개월 동안 어머니 시신과 함께 생활한 중학생 송군 사연

송군이 다니는 설봉중학교 전경.


지역 주민들은 송군 후원회도 만들었다. 이들은 송군 앞으로 오는 후원금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투명하게 관리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교직생활 27년 동안 송군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인연이 될 것 같다는 이교감은 앞으로도 송군을 계속 보살필 생각이라고 한다.
얼마 전 송군은 동아일보사에 ‘저를 도와주시고 염려해주신 분들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 그동안의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 편지에서는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집안에서 숨어살고 있을 것’이라며 ‘웃음을 잃고,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웠던 시간이 끝나고 나니 지금은 마음이 너무 편하다’고 그 심경을 밝혔다.
평소 만화책이나 소설 읽기를 즐긴다는 송군. 그는 그저 평범한 우리 시대의 청소년이다. 간혹 호기심이나 지나친 동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교감은 우려하는 마음을 전했다.
“송군을 이상하게 볼 것도 없고 그렇다고 일부에서 보는 것처럼 뛰어난 효자로 볼 것도 없어요. 단지 급박한 상황에서 판단력을 잃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뿐이죠.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보아주시고 대해주시는 게 정말로 그를 돕는 겁니다.”
선생님들과 이웃의 관심으로 웃음을 되찾은 송군. 이제 우리 주변에 어려운 생활과 외로움 속에서 누구에게도 딱한 사정을 털어놓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송군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후원문의 설봉중학교 031-633-5213

여성동아 2004년 1월 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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