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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증 앓는 딸, 자폐증 손자 돌보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덕례 할머니의 고단한 삶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안소희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3.10.31 16:20:00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을 앓는 딸과 자폐증에 걸린 손자를 돌보며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한덕례 할머니. 가난한 삶을 지탱하는 것도 힘든데, 가난 때문에 딸의 뱃속 종양이 어른 주먹만해지도록 방치할 수밖에 없어 더욱 막막하기만 하다. 지하 사글셋방 냉골에서 가난에 신음하는 세 식구의 벼랑 끝 삶.
정신분열증 앓는 딸, 자폐증 손자 돌보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덕례 할머니의 고단한 삶

한덕례 할머니와 딸 이정원씨. 손자 우성군.


올여름 이정원씨(41)가 처음 아주대병원을 찾았을 때 의료진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뱃속의 물혹이 너무 커 배가 마치 만삭의 임산부처럼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치의조차 이렇게 커다란 종양은 처음 본다며 놀랄 정도였다. 평소 바깥 출입이 거의 없고 집안에서도 활동력이 떨어졌던 정원씨는 체중이 급격히 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살이 쪄서 배가 나온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사실 정원씨가 난소에 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5년여전. 다행히도 악성종양, 즉 암이 아닌 양성종양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집안형편이 어려워 치료엔 손도 대지 못했고 결국 심각한 상황이 되도록 병을 키우고 만 것이다.
9월 중순에 병원측과 주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았다. 종양이 너무 자라 자궁을 완전히 드러내야 했다. 보통 2시간이면 끝나는 수술이지만 종양이 오래 되어 뱃속에서 터지는 바람에 5시간이 넘는 대수술이 되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부족한 자식이기 때문에 차라리 제가 눈감기 전에 먼저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이렇게 죽는다면 너무 불쌍하잖아요. 뱃속에 고름이 차 이지경이 되도록 어미라는 사람이 모르고 있었으니…”
정원씨의 친정어머니인 한덕례 할머니(73)는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칠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는 남편을 여의고 딸 정원씨, 손자 우성군(10)과 함께 살고 있다. 유학파 지식인이었던 남편은 서울에서 수년간 은행장을 지낸 재력가였고 3백평짜리 고급 주택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20여년 전,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장성한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연락조차 끊겼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 할머니는 그때부터 파출부, 식당일, 청소일 등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남편은 실의에 빠져 생계를 돌보지 않았고 먹고사는 일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딸 정원씨는 지능발달이 조금 느린데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남들보다 지적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딸에게 적절한 교육을 시켜주지 못한 것이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그럭저럭 집안일을 돌보며 생활하던 정원씨가 결혼을 한 것은 서른두살 때였다.
“제가 직접 나서서 품성 착하고 성실한 사람을 고르고 골랐어요. 재워주고 입혀주기만 했지 제대로 해준 게 없는 것이 평생 마음 아파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길 빌었지요.”
할머니의 바람대로 신혼 초 정원씨는 금실이 좋은 부부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착하기만 한 줄 알았던 정원씨의 남편 김씨에겐 치유할 수 없는 병이 있었던 것.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알코올중독이었다. 김씨는 술만 먹으면 정원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집안의 물건을 때려부쉈다. 심지어는 정원씨가 임신했을 때조차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폭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프라이팬으로 때리고 빨래줄로 채찍질을 가하고…. 할머니는 사위를 꾸짖어도 보고 달래도 보고 병원치료까지 받게 했지만 김씨는 술이 깨면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어도 그때뿐, 다시 술에 손을 대곤 했다.
“그 꼴을 당하면서도 첫정이 무섭다고 헤어지질 못하더라고요. 그렇게 7년을 살았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가보니 머리에서 피를 쏟고 실려왔더라고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았다더군요. 그런데 머릿속을 보니까 상처가 열 군데가 넘었어요. 정신도 오락가락 했죠.”
7년 동안 폭력에 시달린 정원씨는 심한 우울증과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였다.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정신장애 1급이었다. 또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들 우성이마저 정신지체 및 자폐증으로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정신분열증 앓는 딸, 자폐증 손자 돌보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덕례 할머니의 고단한 삶

한덕례 할머니는 가난으로 영구임대 아파트에 조차 입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이혼을 시켰어요. 이번엔 딸도 가만있더라고요. 그후 사위가 몇번인가 집으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기도 했는데, 작년에 결국 술을 못 끊고 객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정원씨와 우성이를 돌보는 일에서부터 집안일이며 생계까지 모두 할머니의 몫이 되었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이 걱정이었다. 나이도 나이인데다 오랜 세월 노동한 탓에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 거동이 불편하고 심장이 좋지 않은데다 난청과 시력저하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니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정부에서 생활보조금으로 다달이 30만원씩을 받고 있지만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두 사람의 뒷바라지는커녕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지하 단칸방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 5백만원은 반도 남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얻은 빚도 5백만원이 넘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할머니 가족에게 영구임대아파트 입주 자격이 주어졌으나 임대보증금 5백만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
“너무 힘들 때는 함께 죽어버릴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우성이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 거예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쓰기는커녕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요즘엔 저녁이면 할머니 다리를 주무르며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할 정도예요. 어떨 때는 1부터 10까지 숫자도 쓰고…. 모두, 우리 우성이 똥오줌까지 받아주신 학교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살핌 덕분인 것 같아요. 그뿐인가요? 병원에서도 선생님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렇게 낯 모르는 분들도 우리 우성이를 위해 애쓰시는데 할미가 약한 마음을 먹을 수는 없잖아요?”
차분하지만 힘주어 말하는 할머니는 정원씨와 우성이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상처를 딛고 이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세 식구. 그들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의 온정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여성동아 2003년 11월 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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