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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사랑보다 깊은 정

92년 재결합 후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빠진 홍수환·옥희 부부

“우여곡절 사연도 많았지만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믿음으로 살고 있어요”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3.10.10 11:16:00

유부남 권투선수와 처녀 가수의 동거, 결별과 재회,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어느 연예인 부부보다 많은 스캔들과 화제를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던 홍수환·옥희 부부.
그러나 어느덧 오십줄에 들어선 이들에겐 여느 부부처럼 잔잔한 여유가 배어 나왔다.
늦둥이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부부의 요즘 생활.
92년 재결합 후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빠진 홍수환·옥희 부부

홍수환·옥희 부부에게선 여느 중년부부가 그렇듯 서로 애증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늦둥이 아들 장환이의 재롱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대한민국 만세!”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상대를 링 바닥에 때려눕히고 두손을 번쩍 치켜들어 승리의 감격을 목청껏 외치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사람들의 뇌리에 생생하다. 지난 77년 11월, 먼 나라 파나마의 링 위에서 당시 스물일곱의 그는 4번을 쓰러지고도 일어나 상대 챔피언을 KO시켰다. 그가 일구어낸 ‘4전5기’는 세계 복싱 역사에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고, 당시 생중계하던 동양방송(TBC)은 기적 같은 장면을 무려 스물일곱번이나 반복해 내보냈다. 홍수환(53), 당시 군사독재에 힘겨워하던 국민들은 그를 한국 복싱의 신화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
“두 체급 챔피언에 오르는 순간이었죠. 상대는 ‘지옥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은 카라스키야였는데, 전문가들 모두 저의 완패를 예상하고 있었어요. 2라운드 들어 연거푸 네번이나 강펀치를 맞고 나가떨어졌다가 3라운드 시작 48초만에 KO시켜버렸죠.”
당시를 회상하며 흥분하던 그의 눈에 잠시 감격의 눈물이 맺히는 듯했다.
“아이고 또 그 얘기네. 하도 들어서 이젠 마치 내가 링 위에 있었던 사람처럼 생생하다니까요.”
쟁반 가득 갖가지 제철과일을 들고 주방에서 나온 가수 옥희(49)가 살짝 눈을 흘긴다. 하지만 오랜만의 부부동반 인터뷰라 그런지 즐거운 표정.
“그땐 사나운 맹수 같고 국민들의 우상이었는지 몰라도, 이젠 이빨 빠진 호랑이예요. 남자 나이 쉰이 넘으면 다 그렇지 뭐. 예전엔 티격태격 싸울 일도 많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92년 재결합 후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빠진 홍수환·옥희 부부

홍수환·옥희 부부는 지난 92년 ‘재결합’했다. 77년 당시 강추위 속에서도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던 홍수환은 6개월 만에 콜롬비아의 리카르도에게 타이틀을 뺏겼고, 이후 유부남이었으면서도 지금의 아내인 가수 옥희와 1년간 동거를 하며 ‘스캔들’을 일으켰다. 당시 ‘선수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한국권투위원회로부터 제명당해 방황하다 옥희와도 헤어졌고, 82년엔 가족들과 미국 알래스카로 떠나 택시운전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야 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87년 LA로 옮겼으나 부인과 이혼하면서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92년 귀국, 옥희와 재결합한 것이다.
“재결합하는데는 지금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딸 윤정이의 역할이 컸어요. 몇년 전 국내에서 프로복싱 데뷔전을 치른 전처 소생의 아들 대호와 동갑내기죠. 어려서는 저를 엄청나게 증오했는데, 결국 혼자 된 제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결시켜주더군요.”

92년 재결합 후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빠진 홍수환·옥희 부부

홍수환에겐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1남3녀와 옥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1남1녀가 있다. 윤정이와 대호를 가질 무렵, 당시 세계챔피언이던 홍수환은 가수 옥희와 염문을 뿌리고 있었고, 전처는 대호를 임신한 채 홍씨와 헤어져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아이들을 보면 늘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어느 쪽이고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했잖아요. 그래도 배다른 형제지만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대견해요.”
미국에서 힘겹게 살았던 홍수환은 한국에 돌아온 이후 권투도장을 내고, 한달에 열흘 정도는 기업체 강의에서 ‘4전5기’ 신화를 전파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그전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옥희 역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지난 6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무대를 통해 가수 생활을 시작, 73년 국내 무대에 데뷔한 옥희는 당시 파격적 의상과 시원한 목소리로 주목을 받았다. ‘나는 몰라요’ ‘눈으로만 말해요’ ‘이웃사촌’ ‘아내의 일기’ 등의 수많은 히트곡을 냈지만 홍수환과의 스캔들 이후 18년 동안 앨범을 발표하지 못했다. 그 사이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등 많은 일들을 겪었다.
“밤무대와 미사리 라이브카페에서 활동했어요. 그곳밖에 중견 가수를 받아주는 무대가 없었으니까요. 노래를 하고 싶어도 무대가 없는, 중견 가수들끼리 말하는 ‘닫힌 음악회’를 하고 있었던 셈이죠. 그래도 최근엔 지방 공연이 부쩍 늘어 팬들과 직접 만나는 일이 많아졌어요. 어제도 부부동반으로 경남 거창에서 공연을 하고 왔어요.”
92년 재결합 후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빠진 홍수환·옥희 부부

‘나는 몰라요’ ‘이웃사촌’ ‘눈으로 말해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옥희. 최근 18년 만에 음반을 낸 그는 오는 10월31일 생애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선 조금씩 멀어져갔지만 두 사람에겐 크나 큰 보물이 하나 생겼다. 바로 늦둥이 아들 장환이. 재결합 당시 얻은 장환이는 부부가 감정 싸움을 보일 조짐을 보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아빠는 모르는 비밀을 엄마와만 간직하고 있어 아빠에겐 ‘얄미운’ 아들이고, 엄마에겐 늦은 귀가에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놓는 ‘시어머니’ 아들이라고.
재결합한 지 12년. 불꽃처럼 확 타올랐다가 오랜 시간 이별을 했던, 그리고 다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이들에게 부부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세인들 사이에선 이 부부의 만남과 헤어짐이 늘 화제가 되곤 했는데….

“젊어서는 서로 오해가 많았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의 문제보다는 주변의 이야기에 너무 귀가 얇았던 거죠. 요즘도 아이들 문제, 두 사람의 성격문제로 여전히 다투지만 예전만 못하죠. 싸울 힘도 없고, 하하.”
홍수환이 말하는 옥희는 감정의 변화가 적고 매사에 꾸준한 성격. 권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는데 가수와 만나 사랑을 하고 부부로 살 수 있어 행운이라고 한다.
“저는 권투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그보다는 가수와 뜨거운 사랑을 했다는 것에 더 감사하고 있어요. 이 사람과 저는 무엇보다도 음악적 취향이 맞거든요. 제 생각엔 옥희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닐까 하는데, 하하.”

92년 재결합 후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빠진 홍수환·옥희 부부

‘4전5기의 신화’ 홍수환. 젊었을 때의 왕성한 혈기는 사라졌지만 복싱과 아내 옥희에 대한 애정만은 여전하다. 최근 연기에 도전하기도 하고, 복싱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옆에서 과일을 깎으며 듣고만 있던 옥희도 한마디 거든다.
“전 원래 권투를 무척 싫어했어요. 사람을 가두어놓고 싸움을 시키는 것 같아 무서웠죠. 그런데 막상 이 사람을 만나 보니 누구보다 순수하고 여리더라고요.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타입이죠.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평소 그렇게 쌓아놓은 공을 ‘욱’ 하는 성미 때문에 한번에 무너뜨린다는 거죠.”
최근 부부는 팬들 앞에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홍수환은 연기 도전과 새로운 사업으로 바쁘고, 아내 옥희도 18년 만에 새 음반을 내며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 우선 그 출발은 남편이 시작했다.
“얼마전 휴먼 코미디영화 ‘최후의 만찬’의 촬영을 끝냈어요. 10월말 개봉 예정인데, 그 작품에서 조직폭력배 보스인 장독대 역으로 나오죠. 또 드라마에도 출연해요. 10월초부터 방송하는 SBS 수목드라마 ‘때려’에 복싱 해설자로 등장하거든요. 극중 복싱 장면이 있을 때마다 등장해 주연 배우인 주진모와 신민아의 복싱 실력에 대해 실감나는 해설을 들려줄 계획입니다.”
지난 8월초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진행된 첫 촬영에서 홍수환은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를 하는 등 연기자로서의 숨겨진 끼를 보여줘 제작진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스태프들 사이에선 “연말 신인 연기상은 이미 따놓은 셈”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을 정도.
“연기요? 해보니 권투보다 쉽더군요. 흔히 권투는 맞는 경기라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은 체중 감량이 가장 어렵거든요. 그러니 먹을 거 다 먹고 하는 연기는 쉬울 수밖에요. 해설을 하다 보니 ‘내가 저 주먹을 다 맞고 살아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 젊은 혈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죠.”
권투라는 경기의 위험성과 과격함을 몸으로 느낀 그는 요즘 새로운 사업을 준비중이다. 권투의 대중화를 선언한 ‘복서사이즈’ 사업이 그것으로, 링이 없는 매트 위에서 권투의 주요 동작을 통해 다이어트와 운동의 효과를 낸다는 것.
“권투도 링이 없는 유도나 태권도처럼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되는 거죠. 사람들이 생활체육의 하나로 권투를 만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92년 재결합 후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빠진 홍수환·옥희 부부

11월 중에 오픈 예정인 ‘홍수환 복서사이즈’는 서울 대치동 1호점을 시작으로 전국에 체인점을 낼 계획이다. 홈페이지는 www.hongsoohwan.co.kr


이에 질세라 아내 옥희도 가수로서의 힘찬 날갯짓을 준비중이다. 18년 만에 여덟번째 음반 ‘소설 같은 사랑’를 발표하며 내친김에 가수 생활 29년 만에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까지 연다.
“주변의 권유도 있고, 또 왕년에 인기를 얻었던 가수들이 하나둘 무대에 복귀하는 걸 보고서 용기를 얻었죠. 데뷔 당시엔 제 흥에 겨워 노래를 불렀는데,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다 보니 노래에 감정이 많이 실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원래 첫 타이틀곡은 홍수환과 함께 부른 댄스곡 ‘불멸의 연인’. 그러나 홍수환이 너무 바빠 시간을 맞출 수 없어 활동곡을 ‘소설 같은 사랑’으로 바꿨다고 한다. ‘소설 같은 사랑’은 성인 취향의 발라드곡. 또 10월31일 오후 6시에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디자이너 하용수의 연출로 가수 인생 35년 만에 첫 단독 콘서트를 연다.
“요즘 연예인 부부의 스캔들이 참 많잖아요. 그걸 보면서 ‘우리 이야기도 저렇게 흥미 위주로 비춰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연예인들은 생각보다 참 순수해요. 그동안 우리 부부를 우려하는 시선으로 보셨던 많은 팬들에게 잘사는 모습,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말을 끝낸 옥희가 고개를 들어 홍수환을 바라보자, 그가 윙크로 화답했다.

여성동아 2003년 10월 4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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