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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선수 서향순씨 가족의 목장 체험

“푸른 초원에서 젖소와 뛰놀다 보니 ‘알프스 소녀’가 된 기분이에요”

■ 사진·박해윤 기자 ■ 촬영협조·신우목장

입력 2003.07.04 18:59:00

한여름의 푸르름이 가득한 날, 84년 LA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서향순씨 가족이 울산의 신우목장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서씨 가족이 22만평의 초지와 산에서 100% 방목하는 젖소들과 함께 어울려서 보낸, 그림 엽서에 담긴 풍경 같은 하루.
양궁선수 서향순씨 가족의 목장 체험

젖소는 방목을 하는 것이 좋지만 젖을 짜야 하는 시기에는 가두어 둘 수밖에 없다.


84년 LA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서향순씨(36)는 최근 남편이 아파서 마음고생이 많았다. 이 말을 들으면 ‘아니 왜?’ 할 정도로 그의 남편 박경호씨(40)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박경호씨는 86년 서울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두 사람은 선수촌에서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 연애를 한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박씨는 현재 한서대 경호비서학과 교수로 재직중인데 여전히 훤칠한 키, 떡 벌어진 어깨를 지녀 건강의 보증 수표처럼 보인다.
“아니에요. 스트레스에는 장사가 없어요. 남편은 지난해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올해 학과장이 됐어요. 그런데 큰 덩치와 다르게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라 신경을 많이 썼나 봐요. 3월에 돌발성 난치로 쓰러졌죠. 거의 한달을 병원에서 보냈는데 지금도 귀 한쪽이 잘 안 들린대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새삼 모든 행복의 토대는 건강이라는 걸 깨닫게 됐지요.”
서향순씨는 남편이 건강을 회복하고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 건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시간을 건강관리에 할애하게 됐다고 한다.
“저는 충주에서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하고, 남편은 충남 서산에 있는 학교가 직장이라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 매주 금요일 오후에 가족상봉을 하는데 남편이 아프고 난 후로 여행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있어요.”
이번에 이들 가족이 울산의 신우목장으로 견학을 간 것은 아들 성대(10)가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공장견학을 숙제로 받았기 때문. 그래서 누나 성민이(13)와 함께 가족이 즐거운 여행길에 나섰다.
방목해서 키운 젖소는 잔병 없고 우유도 많이 나와
양궁선수 서향순씨 가족의 목장 체험

갓 태어난 송아지에게 젖을 먹여 보는 서향순씨 가족.


“엄마, 젖소 좀 보세요!”
목장에 다다랐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초지 위의 소들. 자동차에서 내리자 성대가 깡충깡충 뛰며 좋아라 외친다. 푸른 초원에서 젖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가롭게 풀을 뜯는 정경은 이른 아침 먼 길을 달려온 가족들의 피로를 풀어주며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흠흠! 코끝에 와 닿는 공기도 싱그럽고 그야말로 청정환경이네요.”
서향순씨가 인사를 하자, 농장주 김옥배씨(68)가 반갑게 맞는다.
“아침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축사 울타리를 열어주면 녀석들이 신이 나서 산 위로 뛰어오르지요. 하루 종일 너른 초지를 다니며 각자 입맛에 맞게 풀을 뜯어먹고 저녁이 되면 알아서 축사로 돌아옵니다.”
소가 집을 찾아들어온다는 말에 성민이가 “진짜요?” 한다.
“날씨가 좋으면 조금 늦게 돌아오고 날이 흐려 어둑어둑해지면 조금 일찍 돌아옵니다. 사람하고 똑같아요. 재미있게도 젖소 중에서도 우두머리가 있어서 우두머리 소가 내려오면 다른 소들도 그 뒤를 따릅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박경호씨가 “사람도 잘 먹고 잘 놀면 건강하듯 소도 그런가요?” 하고 묻는다.
“그럼요. 소는 초식동물이라서 풀을 많이 먹어야 하지요. 산을 오르내리며 신선한 풀을 먹고 운동도 많이 한 소는 잔병이 없고 젖도 풍부합니다. 보통 젖소 한 마리당 하루 약 20~24kg의 젖을 짜는데 방목하는 젖소에서는 30kg 정도 짤 수 있습니다.”
“사료도 절약되고 일손도 절약되고 우유도 신선하고… 방목을 하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하고 끄덕이는 서향순씨. “그런데 겨울엔 어떻게 해요?” 하고 되묻는다.

양궁선수 서향순씨 가족의 목장 체험

푸른 초원에서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정경은 먼 길을 달려온 서향순씨 가족의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겨울에도 방목을 해요. 봄, 여름엔 풀을 뜯고 가을, 겨울엔 떡갈나무, 가랑잎 같은 낙엽을 먹어요. 일본의 축산초지연구소에서 방목 우유에 대한 연구한 결과를 보면 항암작용이나 대장균 0157의 억제 효과가 상승하고, 심장병이나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성분이라고 알려진 리놀레익산도 3~5배 많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신우목장에서는 1년 365일 방목을 한다”는 김옥배씨의 설명에 감탄사를 보내는 가족들. 풀을 뜯는 젖소들을 바라보노라니,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된 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신우목장의 젖소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모든 젖소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되어 철저한 관리를 받는 것. 매일 위생과 발육상태 등을 꼼꼼히 체크해 고품질의 원유를 생산할 젖소로 키워진다.
서향순씨 가족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갓 태어난 송아지들이 사는 축사. 태어난 지 하루 이틀 정도 된 송아지들이 약 한달 정도 머물다 옮겨가는 곳이다.
“송아지들은 무얼 먹고 자라요?”
성대의 말에 “무얼 먹을지 생각해보렴” 하고 질문의 화살을 되쏘는 서향순씨. “뭐지?” 하며 궁리를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우유지 뭐야” 하며 까르르 웃는다. “아, 그렇지.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성대는 무척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엄마, 송아지에게 우유 한번 먹여볼래요” 하자, 서향순씨는 “아기도 아무나 젖을 주면 안 먹듯이 송아지도 그냥 주면 안 받아먹어. 요령이 있어야지” 하며 시범을 보인다.
송아지 축사를 거쳐 서씨 가족의 발길이 머문 곳은 착유(搾乳) 소들이 모여있는 축사. 착유는 엄격하게 관리되는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최상의 건강상태에 이른 젖소들만 골라 순번제로 짜게 된다.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젖을 짰으나 지금은 모두 기계가 대신 한다.
그래서 “젖 짜는 체험을 해볼 수 없다”는 말에 성민이는 다소 실망한 표정. 하지만 금세 마음이 풀린 성민이는 젖소들에게 사료를 주며 유화정책을 편다. 경계심 많은 젖소들도 서향순씨 가족의 제스처에 이끌려 ‘삐죽’ 고개를 내밀고 환영 인사를 한다.
착유 소들은 젖을 짜야 하기에 방목을 못한다. 그래서 하루 한번 목장에서 옥수수, 건초, 호밀 등을 섞어 만든 사료를 먹게 된다. 오후 1~2시경 김옥배씨가 축사에 나타나면 ‘밥 시간 됐구나’ 하고 젖소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민다는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짜서 바로 포장, 우유 고유의 맛이 살아있어
양궁선수 서향순씨 가족의 목장 체험

목장 내에 있는 가공공장을 둘러보는 가족들.


젖소에서 나온 우유는 어떤 공정을 거쳐 소비자의 손으로 갈까? 방목해서 키운 소의 우유 맛이 궁금해진 가족은 발길을 서둘러 가공공장으로 향했다.
“젖은 아무 시간에나 짜질 않습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정해진 시간에만 짜는데 착유한 우유는 바로 냉각시켜 공장의 저온(65℃) 살균기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저온 살균한 우유는 냉각기를 거쳐 포장을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눈으로 직접 제조과정을 보기 위해 공장 앞에 들어선 가족은 먼저 흰 가운과 모자를 쓰고 장화로 갈아 신은 후 신발을 소독했다.
가공공장에 들어서니 오전 6시에 짠 우유를 병에 담고 있었다.
“대개 시판 우유는 젖을 짜서 집유를 한 다음 원유를 수송, 저장합니다.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처리 과정이 길기 때문에 초고온(130∼150℃) 살균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희 목장에서 생산된 우유는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중간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죠. 갓 짠 원유를 저온살균해 우유 고유의 맛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포장해 곧바로 배달하거든요.”
공장장의 설명을 들으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시식에 들어갔다.

양궁선수 서향순씨 가족의 목장 체험

서향순씨는 아이들을 위해 즉석에서 우유부침개를 만들기도 했다.


“음, 어렸을 때 마셨던 우유, 바로 그 맛이에요.”
단숨에 우유 한병을 비운 서향순씨. 박경호씨도 담백해서 목에 잘 넘어간다며 어느새 빈 병을 내려놓는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서향순씨는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우유를 파는 농장이 있었다며 어머니 심부름으로 금방 짠 우유를 사러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성대와 성민이도 한병을 거뜬히 비우고 다른 병을 더 집었다.
“엄마, 저기 보이는 큰 통이 우유를 살균하고 숙성하는 탱크 맞지? 그리고 저기 보이는 통이 저장, 냉각시키는 탱크고.”
열심히 먹는 줄만 알았던 성대가 공장견학 숙제를 하기 위해 부지런히 머릿속에 메모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신우목장처럼 우유를 직접 가공하는 설비까지 갖춘 축산농가는 세곳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낙농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생산자가 가공까지 해서 하루 시스템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공설비에 엄청난 돈이 투자되기 때문. 가뜩이나 우유 소비량이 적은 나라에서 개인의 자금력으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것.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집유 형태로 우유를 공급한다.
가공공장에서 나와 간 곳은 조리실. 우유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오늘의 메뉴는 우유부침개. 깻잎, 부추, 양파 등의 야채와 밀가루, 우유가 재료다.
“오! 드디어 엄마의 시간이 왔네.”
팔을 걷어붙인 서향순씨는 망설일 것도 없이 야채에 밀가루, 우유를 넣고 반죽을 한다. “이만하면 농도가 됐겠지.” 13년째 햄버거를 구워내고 있는 솜씨를 발휘하여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한 국자 올려놓자 부침개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었다. “엄마 빨리요” 부침개를 뒤집기가 무섭게 접시를 들고 조르는 성대. 마침내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익은 부침개를 접시에 올려주자, 박경호씨도 젓가락을 들고 와 아들 옆에 선다. “뜨거워. 입 데지 않게 조심해.” 엄마가 주의를 주지만, 어느새 성대는 부침개를 잘라 덥석 입에 넣었다. 먹는 건 역시 즐거운 일.
양궁선수 서향순씨 가족의 목장 체험

84년 올림픽에 이어 86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3관왕에 오른 그는 89년 은퇴를 하고 결혼을 한 후엔 활시위를 잡지 못했다. 지인들의 부탁으로 행사장에서 풍선을 쏘아 맞추는 일을 서너번 했을 뿐. 성민이와 성대를 낳고 키우며 또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하며 엄마, 아내, 여성 사업가로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의 양궁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그는 요즘 들어 양궁에 대한 향수에 젖는다고 한다.
“매일 오후 2시에 매장에 나갔다가 밤 9시에 집에 들어옵니다. 솔직히 양궁은 물론 운동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이 없었어요. 그러다 지난해 11월에 허리가 아파 디스크수술을 받고, 이번에 남편까지 아프고 나니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은 헬스클럽에 나가 하루에 2시간은 꼭 운동을 해요.”
운동을 하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는 그. 석사 학위를 받고 끝낸 체육학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한다.
“내년엔 미국에 갈 계획이에요. 성민이, 성대가 유학을 가는데 저도 따라가서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제 공부도 해 볼까 싶어요.”
“그럼 남편은요?” 하고 묻자 서씨는 “기러기 아빠가 되는 거죠” 하며 시원스런 웃음을 터뜨린다. 13년째 주말부부로 살면서 늘 신혼부부처럼 살기에 떨어져 사는 데는 남다른 노하우가 있는 듯했다. 그는 “가족 모두가 건강한 것 외에는 더 큰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며 초원 위에서 환한 웃음을 날렸다.



여성동아 2003년 7월 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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