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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황주리의 그림 에세이

“7월은 꿈만 같아라”

2003. 07. 02

“7월은 꿈만 같아라”

황주리, 자화상, 2002, 캔버스에 아크릴릭, 46×61cm


7월이다. 문득 지난해 여름 베이징에서 보낸 날들이 떠오른다. 후끈거리는 베이징의 밤거리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먹던 생각, 달나라에나 있을 법한 자전거를 타고 공중을 수없이 쳇바퀴 돌던 신기한 서커스. 그리고 그때 서커스를 같이 본 반가운 친구.
그런데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중국이 진원지가 된 사스로 온 세상이 들썩였다. 온통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한 텔레비전 화면, 신랑 신부가 마스크를 쓴 채 결혼식을 하는 엽기적인 장면 등 꿈속에서나 볼 듯한 풍경들이 현실로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지난 여름 나는 꿈을 꾸었나 보다. 베이징에서 보낸 지난해 여름 그 무엇도 사스의 공포를 예고하지 않았다. 어쩌면 온 세상을 불안에 떨게 한 사스는 그저 물리적인 질병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 없는 이 메마른 세상에 던져진 경고장이 아니었을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곁에 늘 함께 있던 가난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급우들을 위해 나누어주던 옥수수빵 냄새를 기억한다. 요즘도 배가 출출한 시간에 빵집 앞을 지나다가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을 때마다 떠오르는 옥수수빵. 배고팠던 내 어린 급우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30여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간에도 텔레비전 속의 먼 나라가 아닌 바로 우리 곁에서 굶주리고 있을 아이들.
어릴 적, 7월이면 온 산과 마을이 다 푸르고, 조금만 걸어도 배가 고팠다. 눈이 나쁜 나는 눈을 잔뜩 찡그리고 새빨간 해를 바라보았다. 세월은 강처럼 흘러 다시 온 7월은 꿈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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