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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눈물 어린 고백

데뷔 후 6년만에 ‘혼혈아’ 의혹 밝힌 탤런트 이유진

‘어머니를 언니라고 불러야 했던 가슴 아픈 지난 날’ 솔직 고백

■ 글·조득진 기자 ■ 사진·굿데이 제공,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3. 07. 02

탤런트 이유진이 스스로 혼혈임을 고백했다. 데뷔 이후 줄곧 ‘혼혈아’ 소문에 시달렸지만 그때마다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던 그가 마침내 용기를 내 슬픈 가족사를 밝힌 것. 고백하기까지 상당한 고통을 겪은 그는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흘렸다.

데뷔 후 6년만에 ‘혼혈아’ 의혹 밝힌 탤런트 이유진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에 응했던 그는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이렇게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며 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마스카라는 계속 번지고 있었다.


탤런트 이유진(26)이 “나는 백인 혼혈”이라는 충격 고백을 했다. 지난 5월28일 밤 9시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1시간 가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슬픈 가족사를 스스로 털어놓은 것.
이 자리에서 그는 “주한미군이었던 스페인계 미국인이 아버지다. 그러나 내 나이 세살 때 아버지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부모님이 이혼했고, 난 외할아버지의 딸로 호적에 올라 있다. 호적에 따르면 엄마는 내 언니다” 하는 충격적인 가족사를 고백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잘못한 일도 아닌데 기자회견까지 해 쑥스럽다”며 말문을 연 그에 따르면 아버지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던 75년 당시 여대생이었던 어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듬해 국제결혼을 했으며 77년 1월8일 그를 낳았다고. 그러나 아버지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부모는 79년 정식 이혼했고, 이후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늘 외로워하던 엄마, 시집 보냈어야 했는데…”
처음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기자회견을 시작한 그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특히 “어젯밤 엄마와 상의한 끝에 공개를 결심했다. 내가 먼저 공개하겠다는 결심을 털어놓자 엄마가 ‘그래 잘했다’며 승낙하셨다. 지금까지 혼자서 날 키운 엄마에게 보답하고 싶다. 이제 엄마를 시집 보내고 싶다”는 말을 하며 설움에 북받친 듯 흐느끼기도 했다.
그는 부모의 이혼 이후 한번도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현재는 연락조차 끊긴 상태라고.
“당시 대학 재학중 입대했던 아버지는 복무기간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엄마와 저를 데려가려 했으나 엄마는 생면부지의 미국으로 가는 것이 두려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버지 혼자 떠나게 됐고, 미국으로 떠난 지 1년 만에 결국 이혼을 하게 된 거죠. 이혼 뒤에도 몇년은 연락이 됐으나 이후 연락이 끊겼대요.”
그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된 시기는 네살 때. 당시 그는 혼자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갈 뻔했다고 한다. 그러나 출국 하루 전 사전 수속을 밟기 위해 김포공항에 갔다가 갑자기 팔에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던 중 이모들의 손에 이끌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데뷔 후 6년만에 ‘혼혈아’ 의혹 밝힌 탤런트 이유진

98년 슈퍼엘리트모델 출신인 그는 시트콤 ‘여고시절’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현재 SBS ‘도전! 1000곡’의 MC로 활동하며, 연기 활동 재개를 준비중이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이미 접었어요.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면 어머니가 속상해할 것 같아 참았죠. 하지만 단 한번도 제 앞에서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은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나쁜 감정은 없어요.”
한국사회에서 혼혈아로 살아가는 데엔 수많은 아픔이 따랐다고 한다. 호적에 외할아버지의 딸로 올라 있어 법적으로 어머니와 자매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는, 특히 새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매년 새학기마다 가족관계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었어요. 어린 나이에도 할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어머니를 언니라고 적어 내는 것이 너무 서글펐죠. 하지만 엄마나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아버지가 미국 사람이고, 그래서 외할아버지 호적에 올라 있다’고 직접 담임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또한 주변 사람들과 학교 친구들의 삐딱한 시선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혼혈아’라는 말까지는 참을 수 있었지만 ‘튀기’라는 말은 정말 싫었다고. 마치 ‘잡종’ ‘버림받은 아이’, 혹은 ‘결함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 같아 늘 사람들의 시선과 말 속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외삼촌, 그리고 이모부가 저를 딸처럼 키워주셔서 견딜 수 있었어요. 제겐 아버지가 세분이었던 거죠. 이모부는 저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주려고까지 하셨어요.”
“아버지를 만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아버지를 만날 계획은 없다. 이모부가 아버지 같은 존재다” 하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는 어머니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자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딸들은 엄마 얘기를 할 땐 늘 약한 것 같다”며 “아버지와 이혼한 이후로 나만 바라보고 사신 분이다. 엄마를 시집 보냈어야 하는 건데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군 채 흐느꼈다.

데뷔 후 6년만에 ‘혼혈아’ 의혹 밝힌 탤런트 이유진

176㎝의 큰 키, 서구적인 외모와 시원한 성격으로 사랑을 받아온 그는 눈동자 색깔도 다소 푸른 편. 때문에 끊임없이 ‘혼혈아’ 소문이 돌았다.


“엄마 생각만 하면 슬퍼져요. 엄마에게 정말 미안해요. 지금까지 저 때문에 마음의 짐이 많았을 거예요. 단 둘이 살며 엄마가 외로워하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데뷔 후 6년 동안 자신이 혼혈임을 숨기고 살았던 그. 스스로 자신의 가슴 아픈 과거를 고백한 후 그의 표정은 다소 밝아진 느낌이었다.
“털어놓고 나니 너무나 홀가분하지만 약간 걱정스럽기도 해요. 지금껏 본의 아니게 거짓말했던 이유를 팬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오늘 제 행동을 보고 ‘저렇게 자신을 밝힐 정도로 잘 자랐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때문에 마음 편치 않았을 가족들의 짐도 덜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그는 “나는 항상 한국사람이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사고 방식도 한국식이다. 혼혈이라는 사실보다 내가 살아온 과정을 보고 나를 평가해주면 좋겠다”며 “우리나라에서 혼혈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국제결혼도 많고, 외국 스타들 중엔 혼혈도 많다. 앞으로 힘 닿는 대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98년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연기자와 MC로 활약한 이유진. 그러나 그는 데뷔 후 줄곧 ‘혼혈’ 논쟁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소속사의 반응은 ‘사실무근’.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자신이 혼혈임을 밝힌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감추었던 것은 아니예요. 연예계 데뷔 후 ‘혼혈’에 대한 선입견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감추게 됐어요. 혼혈아라는 사실을 배제한 상태에서 저를 평가받고 싶었거든요.”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소문은 더욱 확대됐다. 급기야 5월초에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유진의 아버지는 독일인’이라는 논쟁이 뜨겁게 불붙었다. 이어진 각종 매스컴의 취재경쟁과 인터뷰 요청에 그는 마음을 굳힌 듯 “잘못한 일도 아닌데 굳이 거짓말할 필요가 있냐”며 직접 나서서 소속사를 설득해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솔직한 고백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대부분 그의 용기에 대한 격려였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개적인 비밀’이었다”는 반응도 있다.
한 네티즌은 “얼마전에 그가 자신은 혼혈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얼마나 됐다고 다시 혼혈이라고 밝히나. 어이가 없다. 이럴 것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서 동정받기를 원하고 인종차별 문제를 거론하다니 혼혈 여부를 떠나 너무 싫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대다수의 팬들은 “혼혈이 무슨 죄냐? 늦게라도 자신이 혼혈임을 떳떳이 밝힌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는 반응. 또한 “혼혈이 범죄도 개인의 잘못도 아닌데 그 사실을 ‘고백’이라는 형식으로 밝혀야 한다는 게 한국사회의 폐쇄성과 차별 정도를 드러낸다”며 이번 기회에 혼혈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터져나오고 있다.
현재 SBS ‘도전! 1000곡’의 MC를 맡으며 이전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으려 노력중인 그는 물 밀듯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고 있다. 연예 관련 프로그램뿐 아니라 각종 시사 프로그램에서 앞다퉈 인터뷰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 비영리 국제기구인 펄벅 재단에서도 그가 혼혈아동의 인식 개선 활동에 동참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유진측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자칫 어렵게 결정 내린 혼혈 사실 고백이 ‘언론 홍보성 쇼’로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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