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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 아줌마의 속 시원~한 수다

사람들이 로또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

2003. 02. 28

대학 선택부터 직장, 결혼 그리고 현재 회사 생활과 방송, 외고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에서 당당하게 의견을 내세워 관철한 일은 거의 없다. 최근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작은 일부터 내 주장을 피력해봤다. 그랬더니 “너무 따진다고 욕할지 몰라” 걱정했던 문제들도 생각보다 쉽게 내 의지대로 풀리는 게 아닌가.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로또에 열광하는 이유를 ‘자기선택·결정권’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내 뜻대로 숫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당첨이 될 경우 자신의 두뇌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 자기존중감이 생긴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내 목소리만 키워서는 안된다. 남들도 충분히 내 의견에 공감할 수 있도록 실력을 쌓고 주변 사람들 마음도 헤아리는 포용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로또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

“참자신만만하게 보여요.” “방송에 나와서도 어쩜 그렇게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지 부러워요.”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참 당혹스럽다. 목소리가 크고 말투가 좀 단호하긴 해도 자신만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대체 방송을 하는지, 남의 집 거실에서 수다를 떠는지 별로 의식하지 않아 자연스럽고 당당해 보일 수도 있으리라. 방송에 얼굴을 내민 지 10년이 넘지만 난 아직도 어느 카메라가 내 얼굴을 비추는지 잘 모른다. 또 대부분 생방송이어서 화면에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내 목소리가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모니터해본 적도 없다. 좀 무책임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 모든 게 부자연스러워지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
곰곰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당당하게 내 의견을 내세워 내 의지로 관철한 일이 거의 없다. 아, 간혹 식당에서 정말 내가 먹고 싶은 메뉴가 있을 때, 다른 이들이 자장면으로 통일하더라도 나는 “짬뽕!”이라고 말해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기는 한다. 그것조차 “짬뽕은 좀 시간이 걸리겠는데요”라고 하면 “그럼 나도 자장면” 하고 금방 꼬리를 내린다. 항상 남들의 의견을 따르거나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밖에 학교 선택부터 직장, 결혼 그리고 현재 회사생활이나 방송, 외고 등 외부활동에 이르기까지 내가 원해서,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혹은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해서 한 일이 드문 것 같다. 학교나 학과 선정도 성적이 적당해서, 직장 역시 마냥 백수로 지낼 수만은 없어서, 결혼은 궁합이 아주 좋다기에(속았다!!) 그리고 방송, 외고 등도 “출연 가능하신가요”란 제의에 시간과 내용이 맞으면 “네” 혹은 “아니오”라고 답했을 뿐이다.
책을 쓰게 된 것도 마음속에 강렬한 욕망과 쓰겠다는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난 나이가 들어 아줌마가 되니 너무 편하고 좋다”고 떠들었더니 한 출판평론가가 “참 신기한 아줌마구려. 그럼 뭐가 좋은지 책으로 써봐요”라고 권해서 한달 반 만에 글을 써서 책이 나왔다. 다음 책들은 출판사에서 제안을 해왔을 때 계약금에 눈이 어두워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삶은 주어진 숙제가 아닌 스스로 만든 창작품이 되어야
그동안 내가 쌓아온 알량한 이력 역시 내 특성과 소망이 담겼다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풀어낸 숙제의 결과물 같아서 좀 씁쓸하다. 운이 좋고 친구들이 착해서 그나마 신문기자 생활이나 가정생활을 그럭저럭 유지해왔지 이상한 사람들이 나쁜 제안들을 계속 해왔다면 내 삶의 지도 역시 이상하게 펼쳐졌을 것 같다.
그런데 주변엔 정말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성을 멋지게 지어가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여성은 30대 초반인데도 자신이 꿈꾸던 직장에 이력서를 내고 연봉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쳐 3월부터 새 직장인 외국계 회사에 출근한다. 첫 직장에서 차분히 경력을 쌓으면서 자기가 바라던 직장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고, 마침 그곳 직원이 다른 회사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인사담당 이사와 사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 요청까지 했다.
내 친구 하나는 항상 내게 요구와 지시를 한다. 그 친구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다.

“인경아, 그 브로치 나 줘. 너보다 내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그 책 내가 먼저 볼게. 일주일이면 다 읽을 거야.” “그 사람에게 전화 좀 걸어줘, 내가 내일 전화할테니까 잘해주라고.”
난 그 친구에게 부탁을 받으면 망치로 맞은 듯 멍해져서 “그래, 그럴게”라고 대답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다 들어준다. 난 단 한번도 그 친구에게 뭘 달라거나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고 신세진 적도 없다. 전생에는 모르지만.
왜 난 인생을 살면서 늘 끌려가는 당나귀처럼, 주어진 숙제만 끙끙거리고 하는 멍청한 학생처럼 살았을까. 숙제를 아무리 충실히 해도 그건 그저 숙제일 뿐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근사하게 만든 창작품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일단 시험 삼아 방송과 강연, 외부 원고 청탁이 들어왔을 때, 내 주장을 피력했다.
“강연료는 얼마인가요? 제 평균 강연료는 얼마입니다(전엔 돈을 입에 올리는 게 치사하고 속보이는 것 같아 물어보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았다). 저는 차가 없어서 가능하면 배차를 해줬으면 합니다(얼마 전까진 지도를 받아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물어물어 가느라 지쳤다).” “저는 그 주제보다 제가 읽은 책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요. 주부들에게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책들이 참 많거든요.”
전에는 “잘난 척한다, 돈을 밝힌다, 너무 따진다고 욕할지 몰라” 하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던 이야기들도 상대방과 충분히 의견을 나누다보면 너무도 쉽게 받아들여졌다. 그건 아주 흥미진진한 게임이었고 내가 아주 지혜로워지는 것 같았다.
심리학자들은 최근 열풍이 아니라 광풍이라는 로또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자기선택권과 결정권’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냥 복권판매소에서 주는 대로 받아 그 번호가 맞길 기대하거나 북북 긁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뜻과 임의대로 숫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당첨이 될 경우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자신의 두뇌와 노력에 대한 자기존중감이 생긴다고 한다.
이젠 무슨 일을 하건 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을 질 때가 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무조건 내 목소리만 크게 해서는 안된다. 남들도 충분히 내 의견에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내 실력을 쌓고 내 재능을 갈고 닦아야 하고, 좀더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리는 포용력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위해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들어가고 싶은 문을 부지런히 두드리고, 먹고 싶은 과일이 있다면 저절로 떨어지기 전에 내가 따먹을 생각이다. 비록 나의 의견이 거부당하거나 무시된다고 해도 난 그 과정을 충분히 즐기면 된다. 아, 걱정이다. 나이 들수록 이렇게 똑똑해지면 나중에 칠순, 팔순이 되면 얼마나 현명해질까. 그런데 과연 그 때 내 이야기를 누가 들어나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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